“아드님이 부경대학 산업경제학과에 붙었습니다. 힘 내세요.”수갑을 차고 재판실로 들어가자 방청석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할린 한국교육위원회 성백경 부원장이 고함을 지르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는데, 부도 내고 아버지 마저 외국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어려

이승칠   2007-04-23

1997년 1월 <초순> 모두들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보신각 종소리가 아니라 근처의 레닌 광장에서 불꽃놀이의 첫 공중폭파로 사할린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스노이 고덤!”방마다 차례로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함성이 터져 나온다. 6시간

이승칠   2007-04-20

12월 <초순> 한 달간의 휴가라던 변호사가 두 달이 되어서 나타나서는, 몇 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해 큰 땅에서 한 달 더 쉬려고 했는데 미스터 리가 솔직하게 털어 놀 이야기가 있다고 통역노인이 독촉 전화를 하였기에 서둘러 왔다는 것이다. 문이 열린

이승칠   2007-04-18

11월 <중순> 탈옥 사건이 벌어지고 3일 후부터 한 명씩 잡혀 들어오기 하면서 기습도 하루에 3차례에서 2차례로 줄었고, 탈옥사건이 일어난 3일 후부터는 일주일에 한번 급식도 허용이 되어 조금 숨을 쉴 수가 있었으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도망 간

이승칠   2007-04-16

11월 <초순> 점호시간이 멀었는데 복도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비명소리까지 들리기에 모두들 잠에서 깨어났다. “브이스트라!(빨리!)”갑자기 철문이 열리며 곤봉으로 철문을 치면서 밖으로 나오라는 고함소리에 얼른 안경을 쓰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복도

이승칠   2007-04-14

10월 <중순> 오늘은 우 안드레이가 재판을 받는 날이다. 어제 집에서 깨끗한 양복이 도착을 하였고 똘만이들이 세 명이나 붙어 면도와 간이목욕을 시켰으며 아침에는 향수까지 뿌리고 나갔다. 한국 미결수들은 번호판을 붙인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지만 러시아

이승칠   2007-04-12

10월 <초순> 변호사가 휴가 가기 전에 구치소와 교도소가 같이 있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 곳은 지하실이 아니기에 햇살도 볼 수가 있으며 운동시간도 있으나 사식이 일주일에 한번이며 시내 변두리에 있기에 사식제공자나 자신이 찾아오

이승칠   2007-04-09

“당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이렇게 공기도 좋지 않은 곳에서 담배까지 태워요? 교회집사가 담배를 태운다고 이곳 성도들이 무엇이라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 보셨어요?”이틀 후에 면회를 온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아내가 나를 보자마자 눈을 부르트며 언

이승칠   2007-04-06

9월 <중순>성격 좋은 젊은 쿠라는 6일 만에 변기통에 앉았으나 알리는 2주일이 지나도 참고 있었다. 성욕은 참을수록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대변은 너무 오래 참으면 병이 되기에 나는 걱정이 되어 알리를 변기통에 올라가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방

이승칠   2007-04-05

8월 <하순>어둠 속에서의 제일 큰 걱정은 5~6 년 전에 망박박리로 떨어진 눈동자를 붙이는 수술을 하였는데, 친구인 담당의사가 어두운 곳에선 책을 보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감방에서 유일한 낙은 성경책 뿐이기에 걱정이 되었다. 그

이승칠   2007-04-02

8월 <초순>여름이 짧은 사할린에서 8월 초순은 황금의 계절이라 공원에는 팬츠만 입은 남녀들이 일광욕을 즐기나, 지하실에 갇혀 사는 인생들은 눈요기는커녕 햇살마저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빼앗긴 상태이다. 바퀴벌레의 극성은 여전하나 파리나 모기가 힘을 쓰

이승칠   2007-03-30

7월 <하순>도변소의 귀에 바퀴벌레가 들어가 병원에 실려갔다. 귀에 들어간 바퀴벌레를 빼려면 어둠 속에서 불빛을 비추면 저절로 나오는 경우가 있기에 돌팔이의 실력을 발휘하여 일주일 전에 빼내 준적이 있었는데, 이번 녀석은 너무 깊이 박혔는지 나오지를

이승칠   2007-03-28

7월 <중순>작년 7월 13일 대형사무실을 폐쇄하고 아파트 전세금으로 대강의 빚 잔치를 하고는 연탄 아궁이를 사용하는 산중턱의 한 칸짜리 월셋방에 가족들을 풀어 놓고 조국을 도망치듯 빠져 나온지도 일년이 되어가는구나. 가계수표는 부도나고 레일을 부탁한

이승칠   2007-03-26

7월 <초순>6월 말까지 매일 조사를 받았으나 각본대로 게나지는 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고 주장하고, 나는 가공의 인물을 내 세웠으니 그들은 안개 속을 헤매는 꼴이었다. 한국 같으면 조사관이 고함을 지르거나 한 대 올려 부칠 상황이나 참을성이 많은 러시

이승칠   2007-03-24

속이 전혀 보이지 않는 철판 문에 6이라 쓰여진 곳을 간수는 2개의 둔탁한 열쇠로 열더니 나를 들여보낸다. 지하실이라 감방 안이 너무 어두워서 물체를 잘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5m 정도의 정사각형 공간에 아래 위로 눈동자들이 반짝거리며 웅성대고

이승칠   2007-03-22

6월 <초순> 서울 레스토랑 사장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왔는데, 나의 진술에 노발대발하며 어떤 동포가 자신을 빙자한 것이라며 이야기 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판사 출신이며 그 당시 사할린에선 손에 꼽히는 사업가이었기에 정보

이승칠   2007-03-16

해가 저물 무렵, 한국에 가기 위해 배에 탔던 빼짜 아저씨가 사무실에 나타남으로 내가 부두를 떠난 이후에 배에서 일어난 상황들을 정확히 알 수가 있었다. 수리를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 올라호는 서류상에는 아무 것도 실리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어야 하기에

이승칠   2007-03-14

5월 <초순> “띵똥! 띵똥! 띵똥!”세인트 버나드 종자인 키퍼가 손님이 왔다고 소파에서 잠을 자고있는 나의 얼굴을 핥는다. 5월1일 오전 8시 10분. 직원들의 출근시간이 한시간이나 남았고 이틀 간을 야근까지 했는데 걱정이 되는지 누군가 일찍 온 모

이승칠   2007-03-09

“윤양이 믿을 만 하나?”“세상에 믿을 사람 있더나?”고등학교 시절, 정부의 쥐 잡기 운동의 방편으로 쥐꼬리를 가져와야 하는 숙제에 반항하여 오징어 꼬리에 연탄을 바르는 꾀 대신 생쥐의 목에 줄을 묶어 등교하는 다소 엉뚱한 착상력을 가진 조사장의 대답

이승칠   2007-03-06

<시작하기 전에> 1869년부터 러시아에서 추방된 죄수와 혁명가들이 이주해 살던 사할린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표현대로 ‘슬픔의 틈새’였으며, 한국인에게는 일제시대 강제징용을 당하여 유배된 곳이며 해방된 조국마저 이들을 팽개친 슬픈 상처를 안고

이승칠   2007-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