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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17] 땅굴 소동3명의 탈옥수를 찾지 못했지만 높은 사람들이 다녀간 후에 방마다 돌아가며
이승칠  |  gooneye7805 @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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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16일 (월) 00:00:00 [조회수 : 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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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탈옥 사건이 벌어지고 3일 후부터 한 명씩 잡혀 들어오기 하면서 기습도 하루에 3차례에서 2차례로 줄었고, 탈옥사건이 일어난 3일 후부터는 일주일에 한번 급식도 허용이 되어 조금 숨을 쉴 수가 있었으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도망 간 녀석 중에 잡혀온 한 명이 우리 방에 옴으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었는데, 마피아인 금고털이 전문가가 성폭행으로 구치소에 오게 되었는데 모스크바에서 이 전문가를 요청을 했기에 탈옥사건 10일 전부터 창틀을 톱날로 자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방에 12명이 있었는데 밤 2시에 창틀의 마지막 부분을 절단하고 금고털이부터 차례로 탈옥을 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자신은 남아있으면 신고하는 개가 되어야 했기에 외출하는 기분으로 나가 비어있는 개인농장에 숨어있다 잡혔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개인마다 주말을 이용하여 채소도 심고 꽃도 키우며 휴일을 보내는 일명 ‘다챠’란 곳이 많았는데, 겨울철에는 거의 사용을 안 하기에 굴뚝에 연기를 피웠으니 금방 잡히는 것이다.

젠은 자신이 학생일 때 이웃 도시의 친척을 방문하여 나이 드신 삼촌을 모시고 공동 목욕탕에 갔는데 탕 안에서 목욕을 하던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더니 경찰이 와서는 목욕하고 있는 자기에게 수갑을 채웠다는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당한 일이라 심하게 항의를 했더니 잠시 후 경찰은 미안하다며 슬그머니 수갑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젠이 발가벗고 졸지에 당한 일의 발단도 탈옥 사건이었다. 그 도시의 교도소에 북한에서 사할린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이 법을 어겨 8명 정도 교도소 생활을 했는데 땅굴을 파고 탈옥을 한 것이었다. 젠은 여름이라 비듬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밀었고, 나이 드신 삼촌은 러시아 말을 잘 모르기에 등을 밀어드리며 한국말로 대화를 하였기에 탈옥한 북한 죄수로 오해를 받을 만 하였다.
젠이 발가벗고 당한 일은 1970년도라 1974년 땅굴 사건을 이야기 해 주니 젠은 러시아가 조금만 더 일찍 문을 열었으면 서로의 소식을 알아 북한의 땅굴 파는 실력을 알아 미리 방지할 수가 있었을 터인데 하며 아쉬워 하였다. 그러나 정녕 아쉬워 해야 할 사람은 젊을 때 강제징용 와 고향과 가족을 그리다 88 올림픽도 보지 못하고 숨진 1세대 노인들이다.

러시아는 땅이 넓어서인지 국내선은 물론이요, 기차표를 구입할 때도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항상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지라 증명서가 없어 비행기를 탈 수 없으면 구멍을 찾는다.
비행기에는 항상 중요한 손님을 위해 항상 2~3개의 좌석을 비워두지만 출발을 할 때는 만원인 것은 중요한 손님좌석이 증명서가 없거나 급하게 가야 할 사람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단지 비행기에 승객의 짐이 먼저 실린 후에 화물칸이나 조정석 심지어 화장실에 숨어 기다리는데, 승객이 타고 항공회사 직원이 비행기 표 숫자와 승객의 머리수를 확인하고 내려간 후에, 유유히 중요한 손님에게 배정된 좌석에 앉아야 하는 수고는 해야 했다.

이 방법을 제일 먼저 개발한 사람은 공산주의 시절 동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조국애로 소련 패스포드를 거부하였는데, 큰 땅의 일부 대학에선 문제를 삼지 않았으나 국가 항공사에선 예외를 두지 않았기에 꾀돌이 젊은 동포들이 이 방법으로 큰 땅을 오가며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 실제로 공항에서 한국인만 보면 멋진 손짓을 하며 요새도 비자기간이 만료된 보따리 장사꾼 중국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구멍이다.

<하순>
3명의 탈옥수를 찾지 못했지만 높은 사람들이 다녀간 후에 방마다 돌아가며 창 뜰을 용접하고 감방의 벽 사이에 뚫린 구멍을 봉한다고 어수선하다. 감방장은 당분간 술 먹기는 틀렸다고 투덜거렸고, 너무나 인원이 많은 점이 지적되어 일부가 큰 구치소로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젠도 포함이 된 것이다. 거의 한 달을 같이 있으면서 정이 듬뿍 들어 섭섭해 하는 나에게 ‘자신도 동포지만 동포들을 너무 믿지 말라’는 묘한 말을 남기며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생긋이 웃으며 떠났다.
삶에서 믿을 것과 믿지 말 것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살아온 사람도 드물지만, 말도 모르고 문화가 다른 이국에서 동포라는 연결줄을 믿지 않을 수 없지만 당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에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었다.

탈옥사건 이후 사식은 철저하게 조사가 되어 빵이나 생일케이크도 절단을 하였고 담배도 가끔 포장을 열고 검사를 거친 후에야 공급이 될 정도였으며, 방마다 소독을 했기에 바퀴벌레들이 떠났으며 매달 의사들이 와서 건강상태를 점검해 주었고 5개월 동안 한번도 실시하지 않던 샤워가 한 달에 2번이나 실시됨으로 똘마니들이 부어주는 물로 간이목욕을 하던 일도 사라져 버렸다.

“형님들, 잘 주무셨습니까?”
30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한국 경제방의 첫 혜택은 첫날 급하게 주워 입은 수의를 물품과에 가서 자신의 몸에 맞는 것으로 골라 입을 수가 있었으며,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할 때는 다른 감방은 급하게 하라고 조수들이 고함을 지르지만 경제방은 작은 목욕탕 물까지 새로 받아두고 온 몸에 문신투성이의 조장들이 등을 밀어줄 정도였다. 물론 이들은 먹을 것을 제공받지만 사회에 나가선 경제방 손님들은 자신이 취직한 유흥업소의 고객이 되기에 관리차원의 성격이 더 짙었기 때문이다.

탈옥사건 후의 감방에서 제일 큰 변화는 여자들의 수다 떠는 소리와 간드러 질듯한 웃음소리로 새벽이 왔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탈옥방이 여감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우대 사회라 여자들은 매일 아침 샤워실을 이용하였고 경찰과 함께 자신이 맡겨둔 돈으로 경찰서 앞의 상점에서 직접 물건도 살 정도였다. 한국 구치소에서 여자구경은 매일 면회 오는 마누라를 제외하곤 포승줄에 묶여 법원에 가는 차 안에서의 여죄수들 뿐이었는데 러시아에선 열려진 마마입을 통해 얼마든지 구경을 할 수가 있는 호강(?)에 빠진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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