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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18일 (수) 00:00:00 [조회수 : 30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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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순>
한 달간의 휴가라던 변호사가 두 달이 되어서 나타나서는, 몇 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해 큰 땅에서 한 달 더 쉬려고 했는데 미스터 리가 솔직하게 털어 놀 이야기가 있다고 통역노인이 독촉 전화를 하였기에 서둘러 왔다는 것이다.
문이 열린 러시아에 처음 온 한국 사업가들은 저렴한 인건비와 전기세, 값싼 넓은 토지에 공장을 유치할 생각으로 법을 알아보면 토요일 휴무, 일년에 한 달은 의무적인 휴가, 여성 근로자에 대한 특별대우, 미국보다 앞선듯한 노동자에 대한 복지법으로 두 손을 들고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같은 공산주의지만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은 수준과 질이 다른 공산주의인 것 같았다.
같이 온 통역 노인은 사식을 넣어주던 아내가 수고비조로 500불을 챙긴 것이 미안한지 ‘돈이 무엇인지…’를 연발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기에, 처음부터 돈을 드리고 부탁을 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라며 도리어 위로를 해 드렸다. 물론 통역 노인은 정부로부터 시간당 수고비를 받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감옥에 갇힌 자에게 돈 받을 욕심으로 일을 한 아내에 대해 무척이나 섭섭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한 거짓자백은 서울 레스토랑에서 만난 동포는 내가 꾸민 이야기며 세관 일은 게나지가 전적으로 알아서 한 일이라는 고백을 하자, 5일 동안 계속 조사를 받았으며 상대와 대면을 시켜달라는 나의 요구에 이는 법정에서 해결할 일이라 하였다.
정보국에서 재조사를 받기에 늦게 감방에 돌아왔더니 내 자리에 사식 비닐봉지가 평소보다 훨씬 많이 쌓여있었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조카들 뒷바라지를 하는 이집사님도 큰 땅에 사는 자식들은 만나러 가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사식을 보낸 것 같았으나, 내용물을 보니 평소에 내가 먹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오징어 튀김, 돼지족발, 김장김치, 교회에서 담배는 질색이기에 항상 부족했던 담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것을 보낸 사람은 누굴까? 그렇다! 젠이다. 자신의 물건을 세관에 바치면 금방 풀리나 한 푼이라도 건지자고 재판을 하겠다는 젠이 물건을 포기하고 석방이 된 것 같았다. 그래, 나도 이제 실토를 했으니 서둘러 재판을 받고 나가게 해 달라고 오징어 튀김을 씹으며 기도를 하였다.
<중순>
앞 방의 여자들 때문에 술렁대던 죄수들도 시간이 지나자 자식 둘 낳은 마누라 보듯이 흥미를 잃었는데, 내가 ‘둔돼지’란 별명을 붙여준 20살 정도의 자동차 절도범은 사랑에 빠져 열기가 더해가고 있었다.
듬직한 체구에 물살로 무장된 둔돼지는 나처럼 잘 씻지도 않았고 나르더 게임을 해도 말을 사용하는 머리가 없기에 연패의 실력이나, 먹는 것은 황소였기에 사식이 오는 날에는 남의 것까지 쳐다보는 표정이 하도 불쌍해 하나라도 주어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앞 방의 스웨타라는 18세 처녀가 나타나자 축 처져 있던 눈이 동전으로 돌변한 것이다.
스웨타는 집털이 조직에서 좋은 인상으로 아파트 문을 안심하고 열게 하는 담당인데 까만 종자 비슷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깨가 좁고 가는 허리와 긴 다리를 지녔기에 쭉 빠진 체형을 지닌 민족인데, 황신혜는 옆에도 서지 못할 미인들이나 까만 눈동자가 싸늘하고 인형처럼 감각이 없기에 찬 바람이 불 정도였다.
스웨타에게 빠진 둔돼지는 꽃돼지가 되기 위해 매일 몸을 씻었으며 제일 멋진 옷을 입고 까까머리에 꽃무늬 손수건을 덮고는 철문을 스스로 지키는 보초가 되어 간수에게 아양을 떨며 양쪽의 마마입을 열었다. 자신의 수준을 과시하기 위해 나에게 영어로 연애편지를 써 달라고 졸라 스웨타에게 국제비둘기를 보내며, 돼지 목 따는 음성으로 <Love me tender>도 들려 준다. 정말 감옥에선 초능력을 경험하는데 영어로 편지를 써 보면 수 십년 전의 영어 교과서의 문장들이 다 기억이 날 정도이며, 음치인 꽃돼지의 노래 솜씨도 감정이 살아나기 시작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사용치 않으면 굳어지고 정신도 사용치 않으면 바보가 되듯이 자유를 박탈당한 어두운 감옥 속에서도 제각기 한가지 일에 몰두를 해야 정신적 고통을 피할 수가 있다. 비누로 인형을 만드는 자, 볼펜 심지를 녹여 낮잠자는 자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자, 성냥으로 불침 놓는 자, 하루 종일 재방송만 하는 자, 나처럼 공책에 성경을 복사하는 자…
<하순>
가방, 방한복, 겨울모자가 없는 자는 집에 연락을 하여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밖의 날씨가 추운 것 같았으며, 재판이 계속 열려 이동에 대한 준비 같았다. 겨울모자! 모자를 즐겨 쓴 조상을 가진 한국인이지만 학창시절에 교모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지, 추운 겨울날씨에 사할린에서 모자를 쓰지 않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은 백발백중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내복을 입은 한국인과 털모자를 쓴 러시아인을 잘 비교해 보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가 곧 재판이 열릴 것 같다며 ‘아.비.본’이란 서류를 주면서 잘 읽어보고 재판정에서 반론을 하라고 하였다. ‘아.비.본’은 나의 법을 어긴 기록과 관련자들의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A4 용지 20장에 한글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번역을 한 사람의 이름과 정부로부터 번역비로 600불을 받았다는 사인도 들어 있었다.
평소에 재판을 앞둔 러시아인들에게 아비본이 전해졌지만 글을 모르는 나이기에 무관심하였는데, 나 자신이 서류를 받고 읽어 보니 러시아인들의 법을 준수하려는 정신이 선진국이라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죄지은 놈이 무슨 할말이 있으며 고개를 들 자격이 있냐며 욱대기는 조국의 인권에 대한 태도는 깊이 생각해 볼 점이 있는 것 같았다.
젠이 떠난 후로 어린 에직은 내가 돌보아 주게 되었는데 말이 서로 통하지 않기에 불편했으나 러시아 영어 교과서를 보면서 공부도 하였고 나르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에직은 기분이 나빠 나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것이 삼일째가 된다.
며칠 전에 나르더 게임을 하면서 내가 극적으로 역전승을 하였더니 에직이 웃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며 ‘버릇없는 놈’이라 고함지르며 성을 내었다. 멍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에직은 찔찔 울면서 돌아누워 버리더니 아예 나를 상대를 않는 것이다.
7살 때 부모들이 이혼하여 2년을 어머니와 살면서 러시아 여자와 재혼을 한 아버지의 집을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여 부자의 정을 나누었고, 10살 때는 어머니가 러시아 남자와 재혼을 함으로 같이 살았으나 에직의 마음은 자신은 홀로라는 고독 속에 자랐음을 젠을 통하여 상세히 알고 있는 나 였다.
“Love me tender~ love me~”
돌아 누워있던 에직이 나에게서 젠과 같이 배운 노래를 훌쩍거리며 중얼거리는 것은 아마 말도 통하고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준 젠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보기가 딱해 등을 두드려주고 다정하게 타이르고 싶었지만, 성이 풀리지 않았고 다정하게 타이르는 러시아 말을 표현할 줄을 몰라 나도 돌아 누웠다. 며칠 뒤에 정보국에서 만난 통역 노인에게 이 해할 수 없던 이 일을 이야기 하자 ‘러시아 예습은 상대가 마음이 들면 나이에 상관이 없이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통역노인에게 부탁하여 ‘한국에는 절대로 아이가 어른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러시아 예습을 몰랐기에 성을 낸 것을 사과한다’라는 내용의 러시아말로 된 편지를 받아 쥐고 곧 올해가 마감되는 지하실 보금자리로 향했다. 올해 나에게 일어난 불행은 서로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에 생긴 일이라 이해를 하면서 잊어버리는 망년회를 맞이 하자며 16호 방을 들어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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