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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15] 떠나는 자와 오는 자의욕상실을 한 저 자신이 지금 무슨 기도를 해야 할 지 고민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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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12일 (목) 00:00:00 [조회수 : 2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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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오늘은 우 안드레이가 재판을 받는 날이다. 어제 집에서 깨끗한 양복이 도착을 하였고 똘만이들이 세 명이나 붙어 면도와 간이목욕을 시켰으며 아침에는 향수까지 뿌리고 나갔다. 한국 미결수들은 번호판을 붙인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지만 러시아 죄수들은 아직 판결 전이라 죄수가 아니기에 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다. 깨끗한 양복을 입는 것은 법원에 대한 예우며 사회에 나가도 능력 있게 살 수가 있다는 증명인 것 같았는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판에서 2년 실형을 받고 온 안드레이는 머리를 숙인 채 담배연기만 뿜어댄다. 감방마다 족집게 판사들이 있어 실형의 각오는 했으나, 그래도 초범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나간 것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양복을 벗어 도로 집으로 보내라고 간수에게 전하고는 짐을 꾸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아래칸 바닥의 개인가방에서 일용품을 꺼내 선물하는 것이다.
“한국에 가서 꼭 전화를 해.”
모두와 껴안는 작별인사를 한 후 마지막으로 날 껴 안으며 속삭인 안드레이의 작별인사. 막내며 외아들이라 반말만 배웠기에 나의 속도 많이 태웠으나 통역자며 한국음식을 먹여 준 정든 녀석이라 속에선 울고 있었던 나 자신이다. 그러나 이곳은 떠나는 것이 축복이기에 눈물대신 미소로 답하고 굳게 손을 잡아 주었다. 4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외국인들이라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지하실의 희미한 전등아래 바퀴벌레처럼 옹기종기 살았다는 추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안드레이가 교도소로 가고 바로 젊은이 5명이 들어 왔는데 기존세력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대학교 중심의 신흥 똘마니 마피아였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국립사범대학이 사할린의 유일한 대학이었는데, 개혁이후 모스크바의 사립 대학들이 사할린 분교를 창설함으로 공부는 못하나 돈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안방을 차지했기에 무질서한 면이 있었다.
사식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돈으로 밀어 부치기에 아래층의 질서가 무너져 버렸다. 특히 10년 나이차이도 친구가 된다는 러시아 개념과 상하의식이 희박하기에, 나 같은 경우는 상당히 힘이 들었으나 10일 만에 보석으로 다 나갔기에 한숨을 쉬게 되었다. 기존질서가 무너지면 나이 든 사람들이 제일 큰 타격을 받기에 늙을수록 보수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순>
안드레이가 교도소로 간 후에는 더 열심히 공책에 성경을 적고 깨알 같은 톰슨2 성경주석을 눈이 빠져라 읽었다. 어릴 적부터 일요일이면 교회에 놀러 다녔고, 학창시절에는 연애당에 다녔고, 대학시절에는 토요일에 창녀촌에서 자도 다음날 교회는 간 덕분으로 날라리 집사까지 되었지만 성경말씀을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올레샤 사건을 용서 받으려면 내가 성경에 대해 박식해야 아내가 믿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30대 후반의 동포가 생글생글 웃으며 신고식을 하는데 콘트라반드(밀수)라는 귀에 익은 러시아 말이 종종 나왔으나 우 안드레이가 없었기에 답답할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시죠.”
신고식을 마친 동포가 나에게 다가와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기에 너무 반가워 나의 옆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30대의 동포들이 유창하게 한국말을 잘 하려면 가정교육이 엄한 집안 출신이거나 부산 텍사스 거리에서 통역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야 했다.
젠(러시아에선 전씨는 젠이나 텐으로 부르고 이응 발음을 하지 못하기에 정씨도 마찬가지) 동포는 한국에서 사할린으로 오는 어선에 짐을 가득 싣고 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정식부두가 아닌 일반부두에서 몰래 짐을 내리다 잡혀왔다는 것이다.
“혹시 박 샤샤가 소개한 배 아니요?”
젠은 맞다며 어찌 아는가 되 묻는다. 4월 말에 급히 물건을 싣지 않았으면 박 샤샤가 소개한 전문 밀수배에 6월 달에 선적을 하려고 계약금 3000불까지 주었기에 나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상대가 생겼기에 너무 반가워 감옥이지만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였으며 특히 검은 종자 코스쟈가 배워준 나르더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새기도 하였다.
젠은 며칠 전에 승용차에서 카세트를 훔치다 잡혀 온 15살 정도의 에직이라는 동포에게 애정어린 훈계를 하는 것은 자신의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나도 돌아누워 초등학교 졸업반인 딸과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들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를 않는다. 특히 한국 구치소에 엄마를 따라 면회를 온 어린 딸은 아버지와 자기를 막고 있는 유리가 왜 있어야 하는지 자꾸 두드려 보았는데…, 아버지가 외국에 가서도 구치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하는 점이 나에게는 제일 큰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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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감옥에서 유일한 낙은 신약성경을 공책에 적는 일이었습니다. 희미한 전등 속에서 “주님! 밝은 곳에서 성경을 마음껏 보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만 7개월 만에 1년 집행유예로 풀려나 밝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성경에 대한 열정보다 고철에 대한 열정으로 3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구리를 얻기 위해 전선까지 절단하는 소동이 일어나자 오랜 기간동안 허가를 취소해 버리더군요.
사할린에서 제일 먼 곳에 개척교회를 세운 왈가닥 할머니 선교사 곁으로 가서 3년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고 독학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부질없는(?) 짓이었으나 주님이 기도는 들어준 셈이 되었죠.
몇 달 후의 귀국을 앞두고 의욕상실을 한 저 자신이 지금 무슨 기도를 해야 할 지 고민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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