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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09일 (월) 00:00:00 [조회수 : 3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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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순>
변호사가 휴가 가기 전에 구치소와 교도소가 같이 있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 곳은 지하실이 아니기에 햇살도 볼 수가 있으며 운동시간도 있으나 사식이 일주일에 한번이며 시내 변두리에 있기에 사식제공자나 자신이 찾아오는데 약간은 불편하다고 했다. 지옥도 정이 들면 고향인지 나는 그냥 여기서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것으로 하고 대신 통역이 꼭 필요하니 우 안드레이와 같이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아침 점호시간에 6호 방에서 6명이 방을 옮긴다며 이름을 부르는데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짐이래야 작은 손가방 하나와 책과 공책, 옷을 싼 보따리 하나 뿐이었지만 4달 동안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 다른 방으로 간다는 사실에 겁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변호사는 나의 부탁대로 우 안드레이와 조를 짜서 다른 방으로 이동이 되었다.
“리상, 토마토 케챱 말하지 마.”
16이란 글자가 적힌 철문 앞에서 안드레이가 살며시 당부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싱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의 체질이지만, 이제는 진짜로 토마토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는 것은 러시아는 토마토가 야채이나 우리는 과일임을 아내의 면회로 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16호 방은 6호 방에 비해 2배 정도의 크기였는데 철문을 마주보며 ‘ㄷ자’형식으로 침상이 만들어 졌기에 자연적으로 가운데 공간이 있었으며, 변기통에도 천으로 막아두었고 바퀴벌레도 보이지 않는 청결한 위생 상태였다. 이동이므로 간단한 신고식을 한 후 6호 방과는 반대로 마피아는 위칸으로 나는 아래칸으로 배치되었다. 잠시 후 사식이 배달되었는데 엄청난 물량에 놀랐으며 담배도 고급만 피우는 소위 한국의 경제방 같은 기분이었다. 두목은 밤선생이나 잘 사는 집만 털며 혼자서 범행을 하는 자였는데 체격도 크고 잘 생겼으며 점잖았다. 정들었던 방에서 걱정을 하며 새 방으로 옮겼으나 분위기가 좋기에 저절로 잠이 든다.
“방송을 탔거나 신문에 보도된 자는 손들어!”
경찰서 지하감방에서 10일을 보낸 후 법원에 들러 구치소로 보내진 자들은 구름다리 위에서 벌거벗고 몸에 숨긴 것을 토하기 위해 토끼점프와 항문검사까지 받고는 교도관의 훈시를 듣는 것이다.
“아랫도리 검사는 하면서 젖가슴검사는 안 한 미친놈이 당신이야? 기다리고 있었어.”
이동X선 촬영기구가 무거워 간접 엑스레이 검사는 못해도 여자 병리사가 대기방까지 들어가 냉검사는 철저하게 했기에 나를 비꼬는 간수의 말이었다. 일 분짜리 목욕을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번호판 없는 푸른 수의를 입고는 줄선 순서대로 대기방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이다.
다음날은 이름대신 번호판을 붙이고 경제방에 배치를 받고는 첫 비밀편지(비둘기)를 가족에게 전하면서 간수에게 30만원을 상납하는 것이다. 경제방의 벽은 마분지로 만든 책장에 책이 가득 했으며 사식비로 공급 받을 수 있는 땅콩, 오징어, 과자, 주스 등의 먹거리가 풍부하여 야간당직 간수부터 가난한 좀도적의 방까지 물량배급처 역할을 하였다.
16호 방은 나이든 사람들이 끼여 있었기에 다소 위로가 되었고 50대 후반의 동포가 있었기에 기뻤으나, 큰 땅 출신이라 전연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사할린 동포들이 말을 잊지 않은 것은 강제징용 온 분들이 조국에 간다는 희망으로 말을 고집하며 살았고, 북한이 1964년까지 조선학교를 운영한 것이 큰 밑거름이 된 것이다.
큰 땅 출신의 조 아저씨의 사식은 집에서 도시락에 밥을 담아 그 사이에 삶은 닭다리와 계란, 김치를 꼭 보냈기에 특별히 나를 불러 같이 먹자고 했기에 여간 고맙지 않았다. 우 안드레이를 통해 조 아저씨의 감옥에 온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 조 아저씨는 20년 전에 처가 동네인 사할린으로 와서 지금까지 제재소에서 일을 하였으며, 아내는 친정에서 물려준 밭이 있는 개인 집에서 농사를 지어 시장에서 팔았기에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한 달 전에 일은 마치고 개울을 따라 집으로 오다가 술이 취한 젊은 세 녀석이 술값을 요구하기에 훈계를 했더니, 도리어 신나게 얻어 맞고 얼마되지 않는 비상금이 든 지갑까지 털렸던 것이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세월이 변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개울에서 얼굴을 씻고 집으로 오는데, 한 녀석이 자신에게 뺏은 돈으로 술이 더 취해 걸어 가고 있기에 순간적인 울분으로 도시락 가방에서 조그만 손칼을 꺼내어 마구 찔렀는데 죽어 버린 것이다. 제 정신이 들어 살인을 한 일이 겁이 나 근처의 숲에 시체를 숨겨두었는데, 3일 후에 떠도는 개들에게 시체가 발견되어 살인과 시체유기죄까지 합쳤다며 한숨을 쉬는 것이다.
보드카 한 잔 마시고 취해 영화 속의 람보처럼 미니 고사포를 메고 레닌 동상 앞에서 시청을 폭파시키겠다고 시위하다 잡혀 온 자, 회사 창고의 물건을 빼내어 팔다 잡혀온 자, 나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 아들은 시장 소매치기, 일은 안하고 매일 누나에게서 용돈만 타 가는 처남이 자신의 승용차를 5일 동안 빌려달라기에 거절하자 화가 난 처남이 쌍욕을 하기에 식사하다 포크로 찔러버렸더니 병원에 누워 막대한 합의금을 요구하며 아내도 한 통속이라며 울분을 토하는 자, 허락 없이 연어알을 팔다 잡혀온 자, 총기류 소지자, 국가의 물건을 훔쳐도 자신의 집에 잘 보관했다는 신공산주의 사상의 소유자들도 제법 있었다.
“야! 잘 지켜.”
밤 한 시경. 항상 대기조인 비둘기 담당이 철문 앞에서 면도기 속에서 꺼낸 미니 거울로 철문 틈에 끼워 복도를 살피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고양이 소리가 두 번 나자, 한국산 마요네즈 플라스틱 통이 준비되고 깊이 숨겨둔 가느다란 링켈줄이 창살 틈을 빠져 밖으로 빠져 나가자 보드카가 링켈줄은 타고 잠입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2층이나 3층의 방에서 빈 바구니가 내려오면 일층의 경제방에서 먹을 것을 담아주는 소박한 모습이나 링켈줄을 타고 오는 보드카는 나처럼 국경을 넘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경찰서 구치소는 한국처럼 길어야 10일 정도 있는 곳이나 공급과잉으로 정원초과를 하였으며, 경찰서가 번잡한 대로변에 위치하였기에 반지하실의 감방 창살은 촘촘한 이중빗살로 되어있어 빛은 차단되나 길거리 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던 것이다. 완전히 밀봉을 하지 못하는 것은 대형 환기장치가 고물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나 제도도 갈고 닦는 노력이 없으면 녹이 쓸어 무너진다는 교훈을 또 한번 증명한 곳이 러시아이다. 일년 열 두 달 수도만 틀면 더운 물이 나오면서 똑 같은 물세를 내는 나라는, 찬 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으려고 수도꼭지를 꼭 잠그는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는 천국이었으나 그러나 천국은 공짜가 없는 법이다.
“취하면 빠져야 돼.”
위칸의 마선생족들이 아래칸에선 나와 람보만 불러 술파티를 벌렸는데 감옥에서 몰래 먹는 술맛은 진짜로 좋았다. 홍차 잔에 조금씩 부어 이야기를 한 후 같이 단숨에 들이키고 물이나 주스를 마시는 러시아 술 예법은 약간 답답하기는 하나 독주의 올바른 습관 같았다. 2개의 마요네즈 통의 술은 남기면 안되기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잘 마시고 누우니 고국 생각과 가족생각이 나 한참이나 뒤적거려야 했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 오는데….
“해외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여러분이 꿈에도 그리는 조국 대한민국 국영방송입니다.”
꿈 속에서 아리랑 반주 속에 여자 아나운서의 유창한 한국말이 들리기에 눈을 떠 보니 두목이 소형라디오를 나의 귀에 대고 있는 것이다. 술 먹은 날은 한 시간 빌려준다며 싱긋이 웃는다. 조국과 나라말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런 설움을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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