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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10] 감방의 특별손님여름이 짧은 사할린에서 8월 초순은 황금의 계절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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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3월 30일 (금) 00:00:00 [조회수 : 3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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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순>
여름이 짧은 사할린에서 8월 초순은 황금의 계절이라 공원에는 팬츠만 입은 남녀들이 일광욕을 즐기나, 지하실에 갇혀 사는 인생들은 눈요기는커녕 햇살마저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빼앗긴 상태이다. 바퀴벌레의 극성은 여전하나 파리나 모기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외로움에 예민해 있는 죄수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자유에 시기를 느껴 악착같이 잡기 때문인 것 같았다.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서인지 간단한 사고를 치고 잡혀와 3일만 지나고 나가는 날라리들이 많아져 잠자리가 불편하고 분위기는 어수선해지나, 밖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고 나갈 때 집에 편지를 보낼 수가 있었기에 나는 공책을 떼어 편지지와 볼펜을 준비해 두는 역할을 맡았다. 날라리는 대부분 초범으로 비둘기로 신원조회가 불가능했기에 폼 잡기를 좋아하는 안드레이는 날라리 교육을 시킨다고 제일 바쁜 사람이 되었다. 아편쟁이가 대마초를 피우다 잡혀온 3명에게 훈시를 하는 모습이나 기가 죽은 날라리들이 숨도 쉬지않고 경청하는 모습은 완전히 코미디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간수와 친했던 날라리가 나가기에 각 자 숨겨둔 돈을 주어 먹을 것과 피부병에 바를 약을 부탁했는데 이 돈마저 먹고 사라진 녀석도 있고, 3일 동안 지내며 집이 북쪽이라 사식이 드문드문 오는 알둔의 어려움을 알고 가방 가득히 물건을 채워 보낸 날라리도 있었다. 세상 어디나 사람나름이라는 말은 불변의 공식 같았다.
호출을 하기에 정보국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면회실로 가기에 올레샤가 북쪽에서 돌아와 특별면회를 온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동포 아주머니와 러시아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힘드시죠? 사할린 한국노인회에서 나왔습니다. 불편한 점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으면 말씀 하세요.”
부회장이라는 50세 정도의 아주머니는 같이 온 러시아 청년에게 먼저 러시아어로 말하고 나에게 한국말로 하자, 정보원 같은 느낌이 드는 청년은 책상 위의 소형녹음기를 작동시켰다.
“간수들이나 한 방에 있는 동포들, 러시아인들이 잘 대해주어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화장실, 목욕, 응급약품 등의 불편한 점과 러시안인들은 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나의 신발로 통칸 받침을 한다고 항의한들 시비거리만 될 것이기에, 밝은 얼굴로 ‘러시아 법을 어겨 죄송하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까지 덧붙였다. 혹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즉시 노인회로 연락을 하라며 날이 더워 김치는 못 가져오고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가져왔다며 검은 비닐봉지를 주고 가셨다.
“고추장!”
외출을 하기 전이나 감방에 들어서기 전에 몸수색을 필히 하는데 간수가 나의 손에 든 것을 묻기에 큰 소리로 답해주었더니, 냄새를 맡으며 싱긋이 웃는 것은 사할린에 거주하는 러시안인 치고 김치와 고추장을 모르면 간첩이기 때문이다. 땅 덩어리 작고 외국 구경을 하기가 ‘하늘에 서 별따기 세월’을 오랫동안 살았지만 용하게 세계 각처에 흩어져 김치냄새를 풍기는 끈질긴 민족이 한국인이다.
<중순>
사식이 들어오는데 나의 코가 자꾸 끙끙대는 것은 한국음식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할린 동포들은 북한의 영향을 받아 추석을 양력 8월 15일로 지내기에 한국처럼 제사도 지내고 산소도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안드레이가 감방에 한국 사람이 있으니 추석명절에 한국음식을 해서 보내라는 비둘기를 집에 보낸 것이다.
김치, 고사리와 콩나물, 미역무침, 돼지족발, 생선 똥그랑땡 등이 아래칸에 차려져 마피아들과 동포들이 둘러 앉았다. 명절에는 간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2~3 시간 동안 얼마든지 떠들고 놀아도 되기에, 동포들은 한국의 진오케인 수저로 장단을 맞추고 러시안인은 수저로 드럼을 치며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며 두 달 동안의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었다. 게다가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를 한 곡 불렀더니 감옥 안이 떠나가는 박수와 환호에 3번이나 재창을 해야 했다. 러시안인들은 선천적으로 노래와 춤을 좋아하며 흘러간 노래와 신곡을 같이 소화하는 엄청난 위장을 지닌 것은 모스크바가 동서양 문화의 혼합장이기 때문이며,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이 건강하듯 이방문화도 잘 소화를 하는 민족이 강국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며칠 후. 주임이 와서는 벽에 소켓을 설치 하였기에 이제 각 방은 살판이 난 듯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이제 도둑 전기를 쓰지 않고도 당당하게 홍차를 끓여 먹을 수가 있고 최고급 사식인 한국 도시락 라면도 뜨겁게 해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진작 이 설치를 하여야 하지만 전력보다 얼마되지 않는 설치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야~. 옆방에는 텔레비전도 있다.”
바닥에서 벽구멍을 통해 옆방과 대화를 하던 안드레이가 감탄을 하였는데 라디오도 못 듣게 하는 곳에서 텔레비전까지 등장을 한 것은 옆 방에 마피아 두목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할린에는 6개 조직의 마피아가 선두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전통적인 큰 땅의 콤스몰스크파와 신흥세력의 모스크바파의 다툼이었다. 새로 들어온 마피아 두목은 사할린파로 콤스몰스크파에서 모스크바파로 이전을 하자, 큰 땅의 콤스몰스크 조직에서 죽여버리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제일 안전한 감옥으로 당분간 피신을 한 것이라고 안드레이는 설명을 해 준다. 마피아 쪼가리이기에 확실한 정보는 아니나 피신을 한 것은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부산구치소에 있을 때 구치소의 특별 손님은 박 장로의 뽕쟁이 아들이었는데, 그가 구치소에 올 때마다 자비로 음악시설을 갖추어 주고 통로 바닥에 양탄자를 깔아주는 봉사를 하기에 구치소에서는 제일 반가운 손님이었다. 그는 한번씩 각 동을 비서를 데리고 시찰(?)을 하면서 비서의 양말 속에 숨겨온 담배를 방마다 한 대를 주는 선심을 베풀며 자신을 과시했으며 간수들은 물량공세에 대한 보답으로 모른 척 하는 요지경 세상이었다.
“리상, 옆방에서 초청했어.”
“초청? 무슨 일인데….”
옆 방에 들어온 마피아 두목이 ‘Love me tend’를 듣고싶어 특별히 초청을 했다며 안드레이는 ‘빠잘루스타’(please)를 연발한다. 러시아에서 상대가 ‘빠잘루스타’라고 하면 여간해서는 거절을 하지 못하는 묘한 단어였다. 그러나 한국의 구치소에서 옆방에 구두창에 금괴를 숨겨 들어오다 적발된 새끼 손가락이 절단된 젊은 일본 야쿠자를 불러 ‘개똥벌레’를 배워주고 부르게 하던 일이 생각나 거절을 하였다.
“리, 빠잘루스따.”
나에게 항상 호의적이던 간수가 철문을 열고 부탁을 하는 것까지 거절을 할 수가 없어 따라 나섰다. 옆 방은 크기는 우리 방과 똑 같았으나 변기통은 멋지게 천으로 칸을 막았으며, 6명이 있어야 할 위칸에는 3명이 깨끗한 천 위에 앉아 있었고 간이전등도 2개나 되어 환했으며 진짜로 소형 칼라 텔레비전도 있었다. 중간에 앉은 마피아 두목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고 좌우에는 보디 가드인 듯한 건장한 젊은이가 버티고 있었다.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두목은 깨끗한 일회용 컵에 주스를 따라주며 건배를 하자기에 마셨더니 보드카를 탄 것이었다. 얼마 만에 마셔보는 술인가! 한 잔을 더 마시고 감방에 ‘Love me tend’가 흘러 넘치게 해 주었다. 고맙다고 계속 주스 술을 권하기에 특별서비스로 ‘Come on let twist again’을 부르며 흔들어 대었더니, 러시아인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드는 것은 러시아 여자들은 춤을 타고 난 반면 남자들은 막대기였기 때문이다. 두목은 던힐 2볼을 선물하며 감옥에서 나와 자신을 찾아오면 비즈니스를 도와주겠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러시아에서 처음 타보는 상품이라 간수에게 한 볼을 주고 한 볼은 방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피아 두목은 보름정도 생활을 하다 답답했는지 밖으로 나갔는데 겨울에 유지노사할린에서 네월스크로 가는 인적이 뜸한 산 길에서 승용차가 벌집이 되도록 총격을 받고 즉사하게 된다. 마피아의 초상 행렬은 밴드를 앞세우고 멋진 승용차들마다 죽은 자의 사진을 걸고 묘지로 향하는 모습은 영화와 같았다. 한국의 깡패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나 러시아 마피아는 자녀들이 부모의 직업란에 비즈니스맨이라 떳떳하게 기록할 정도라 초보 선교사는 ‘울려고 내가 사할린 땅에 왔나?’는 가요를 부르며 한탄을 할 만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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