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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곰목사가 들려주는 신화이야기유아사 야스오의 몸과 우주 (동양과 서양) 身體の宇宙性 : 東洋と西洋 를 읽고-이정배, 이한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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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9월 25일 (화) 00:50:55 [조회수 : 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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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당당뉴스에서 3달 여 사랑방모임을 인도했던, 감리교 목사 공상퇴회 후  대관령에서 산자락을 일구며 살아가는 영원한 곰, 농사짓는 박흥규목사는  산자락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히 책을 읽는다.  당당뉴스는 박흥규목사의 신화에 얽힌 이야기와 몇몇 단상과 신간 다이제스트들을 계속 연재한다. 노인의 맞춤법인지라 운영자가 대충 손을 보았다.

몸과 우주 (동양과 서양) 身體の宇宙性 : 東洋と西洋
유아사 야스오| 이정배, 이한영 공역| 지식산업사| 2004.04.30 | 419p | ISBN : 894236022X


   
 
   
 
기원전 2세기부터 세계창조에 관심을 가지고 인류의 시작은 형체가 없는 어둠에서 이루어 졌다고 말한다. 자연현상을 의인화시키며 인간과 자연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자연도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교류하는 존재로 여겼다. 중국 한국, 일본은 동아시아로 같은 자연관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커다란 생명체로 인간은 살아있는 자연 안에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자연의 힘을 수용하고 사는 존재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와 과학기술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는 자연을 오래전에 잃어 버렸다. 생명으로써 자연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 우리문화의 원형을 찾는 일이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 하는 일이다. 대관령 숲에서 풀을 베고 나무를 기르며 사는 내게는 숲이란 살아 있는 생명이며 어떻게 자연과 교류하며 몸과 마음이 자연과 같이 느낄 수 있는지는 내 과제이며 수행이 된다. 자연을 올바로 보는 일이 인간을 올바로 보는 일이다.

인간이 이 세계 가운데 있는 한. 인간은 몸과 마음을 나눌 수 없는 통합성 안에 놓여 살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점은 근대과학이 설정한 심신 이원논적인 사고를 어떻게 극복 할 수 있는가 과제 가 된다. 그러나 동양전통에서 태어 난 동양의학은 氣의 관점에서 이원론을 극복한다. 氣에 대한 사고는 통합적인 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고이다. 마음(심리), 몸(생리), 물질(물리) 등 인간경험의 3가지 영역을 관통 하고 있다. 氣란 감각의 차원을 넘어선 생명이 가진 특유의 영역이 된다. 이 기의 체험이 종교의 영적인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느냐는 새로운 과제가 된다.

서양의 고대 사고는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로 말미암아 그 방향이 정해졌다. 서양에서는 죽음과 영원의 사고가 발달되었다. 플라톤이 바탕을 만든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분리하는 이원논적 사고가 형성되고 영혼과 육체를 분리 하는 기독교의 인간관도 같은 바탕에서 형성되었다. 근대의 과학적인 세계관은 인간의 마음을 부정하고 인간의 육체만을 인정하며 영혼이나 사후의 세계를 부정하는 사고로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육체와 물질만이 남게 되었다. 현대인은 인간을 몸과 마음이라는 전체성을 가지고 보려는 시각을 포기하고 인생의 기본적인 가치를 육체의 영원성( 젊음, 건강, 성)과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일에 두었다. 영혼과 죽음, 영원성을 버렸다.

4년 전부터 신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계된 자료를 모으는 일을 해왔다. 신화적인 사고는 내게 인간이 가진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에 도움을 주고 현생인류의 뇌 조직 속에 신화적인 사고가 있었으며. 거기에 초월성에 대한 직관이 있어 종교가 형성된 과정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유아사, 야스오의 몸과 우주는, 동아시아 사고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란 공시성을 가지고 서로 반응을 가진 관계성으로 보는 시각을 열어 주었다.

3만 년 전 현생인류는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고로 신들의 세계를 탄생시켰다. 다양한 신들이 존재했으며 그 중 하나가 세계를 지배하거나 군림하는 신은 없었다. 자연속의 신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은 행복했었다. 그러나 유일신을 만들어 그 신에게 절대권력을 주었으므로 유일신을 믿는 일로 자본주의, 글로벌리즘을 만들어 인간이 불행해 지기 시작한 원인이 된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맹목적으로 친미주의라는 선교 종주국인 미국의 힘에 대한 선망을 신앙으로 여겨 미국의 성조기가 예수 못지 않은 숭배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다. 타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배타성은 한국 기독교가 동양적인 사고의 전통이나 토속신앙이 지닌 민중성과 교류를 가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지만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힘이 피선교국 문화와 종교를 무시하며 오만했던 일이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전통이 되어갔다.

나의 삶의 현장은 이 땅에서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다. 땅을 가꾸는 일이 현장에 튼튼하게 서는 일이 된다. 내가 가진 자연에 대한 사고는 노동을 통해서 겪은 아픔과 기쁨에서 얻어진 것이다. 소우주로서 몸과 대우주인 자연과 만남은 동양적인 사고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자연과 공감 하는 삶의 사고를 가지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상징과 신화를 잃어버릴 때에 종교는 세속화 되어 자본주의의 상업적인 기능만을 남게 되어 알맹이를 잃은 값싼 상품만을 팔게 된다. 그러나 현생인류가 발명한 영성은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다. 인류의 몸과 우주와 관계의 신비성을 발견하여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 할 대안을 만들 수 있다.

박흥규목사가 요약한
유아사 야스오의 몸과 우주 (동양과 서양) 身體の宇宙性 : 東洋と西洋


몸은 그릇 또는 어두움으로 표현되며 분석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본능에 대한 기본적인 체험을 하는 곳이 몸이며 신화적인 사고에서 몸의 열린 부분인 눈, 귀, 입, 배꼽, 항문 등은 밖의 힘과 소통되는 특수한 누미노제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한다. 신화에서 세계의 시작은 굳게 껴않은 남녀의 몸에서 시작되며 껴안아 결합된 몸을 조상신 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외부세계의 모든 현상과 연관시켜 자기 내부에 나오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주변세계를 본다. 역의 사상에서 몸과 우주는 소우주와 대우주로 감응되며 예정 조화되어 있다. 역에서는 외부세계에 있는 천체, 성좌, 방향, 신, 악마 등을 몸의 각 기관으로 연관 시킨다. 몸의 각 부위들이 외부 사물 사이에 상관관계를 열어 신비한 경험만이 아니라 일시적인 느낌도 준다고 주장한다. 신화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안과 밖, 세계와 인간, 힘과 사물을 늘 분리 하지 않고 늘 결합되며 통일성이 유지되며 막힘이 없는 일체의 세계에서 살았다.

중국의 진한제국 이전의 종교 습속은 자연령에 대한 제사이다. 명천, 대산, 일월, 성신 등이다. 신화시대 습속인 장소의 정령, 자연령에 대한 신앙이 강하게 남아있다. 진한제국이 성립되며 유가에 대한 대항 세력으로 방사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술수가, 음양가, 신선가 등으로 불려졌다. 그들은 신화적인 사고를 종교습속으로 유지해 왔고 신선술이라는 심신훈련법인 수행법을 만들어 냈다. 중국사상의 핵심인 신체론과 몸의 우주성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냈다.

방사들은 방술을 사용하여 몸의 모습을 없애기도 하며 다른 모습으로 바꾸며 그것을 귀신의 소행으로 빙자했다. 신화시대 샤먼적 기술을 사용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속인들에게도 널리 수행의 습관이 퍼져 있다. 거사선이다. 거사란 속인 수행자를 말한다. 몸에 관한 철학적 사고가 형성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 졌다. 선인은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다. 심산유곡이나 바다 가운데 있는 신산으로 들어가 수행생활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 갔다. 명산 자연령의 신앙을 가진 원시시대 종교적인 습속의 모습이다. 이런 전통적인 신앙과 역의 사상이 합쳐져 중국인의 사상적인 기반이 굳어져 갔다.

동중서는 음양오행론을 인용하여 천인합일의 이론을 주장했는데 천문의 이상과 자연의 재해를 도덕적으로 해석했다. 천문의 이상현상은 하늘이 군주에게 정치적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을 했다. 국가운영에 도를 벗어나 있다면 하늘은 먼저 재해를 일으켜 경고한다. 그래도 자성하지 않으면 괴이한 현상을 일으켜서 놀랍고 두렵게 만든다.

역경은 중국의 수행론과 자연관, 그리고 과학기술관을 보여주는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음양오행설은 유가의 사상은 아니지만 시황제가 오행설을 채택하자 유교사상의 중심까지 들어오게 된다. 음양이란 자연을 지배하는 기와 에너지가 가지는 음양, 두 개의 기본형식이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의 운동방식이다. 오행설은 자연과 인간 양쪽에 걸쳐 있는 모든 현상을 이론적으로 정리해서 설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철학체계이다. 오행설이 역경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는 이론이며 중국의 철학사상이 된다. 방술은 중국만이 가지는 신체론을 형성 시키며 자연을 대하는 신화시대 감수성이 중국인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집합심리 안에 보존되어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자연관을 형성한다.

동양의 사고양식
혼돈과 질서―역의 사고

역경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최초의 사색이다. 역경은 도교의 책이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자연과 인간을 중시했지만 유교, 도교 같이 역경을 수용하여 중국사고의 원형으로 발전시키었다. 형 위에 있는 것을 도라고 하며 형 아래 있는 것을 기라고 말 한다.
도덕경에서 도는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이 혼돈으로서 흘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흘러 움직임은 항상 만물 가운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 세계를 생성하는 어머니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형체에 앞선 것은 생명을 생겨나게 하는 모태와 같은 혼돈인 것이다.
일음일양, 이것을 도 라고 한다. 음양이 가지는 상호 움직이는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기라는 말이 사용된다. 기란 만물의 질서에 스며들어 흘러 움직이고 있는 형체 없는 에너지이다. 기란 수증기 같은 기류가 굴곡을 그리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이미지 한 것이다. 기란 보이지 않는 도의 움직임을 수용하는 그릇이다.

분석심리학자인 융은, 역경이 중국사고의 본질을 잘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융은 역의 복점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점이 맞는다는 것과 맞는 확률을 체험한 것이 그의 역경에 대한 출발점이다. 융은 복점의 본질이 무의식에 내재하는 직관지와 관계 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역경을 과학의 원리로 융은 이해했다. 가끔 손녀 혜안이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에 혜안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런 경우에 공시성을 이해하게 된다. 공간적으로 떨어진 두 가지 이상의 것 사이에 감응에 따라 동조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 손녀와 나 사이에 동조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작용마당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흐른다. 이를 기라고 한다.
역이란 상(symbol)이며 상이란(image) 이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주자가 최초이며 융이 최후이다. 주자가 말에서 터득한 것은 얕고 상으로부터 터득한 것은 깊다. 공시적인 감응관계를 아는 것은 무의식 안에 잠재하고 있는 하나의 직관지이다. 그 앎의 원천은 의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자기의 책임에서 그 앎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공간 가운데 있는 사물의 질서에 변화를 성숙시키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체의 상태변화를 기준으로 시간을 받아들였던 것에서 생겨난다. 생명체는 혼돈에서 발생하여 형체를 가지고 다시 혼돈의 가운데로 사라져 간다. 그 변화과정에는 에너지가 성장, 숙성, 쇠퇴해 가는 움직임이 있다. 우주는 이런 성질을 가진 살아 있는 대자연이다. 인간도 그가 살게 하는 움직임을 받아 드리는 그릇의 하나이다. 역의 복점은 이러한 생명으로써 자연 가운데 움직이고 있는 때를 느끼는 것을 말 한다. 역의 복점은 주체의 내면에서 이러한 변화를 느껴 현명하게 대처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시간은 생명을 성숙시키는 에너지를 품고 있고 공간은 그것을 받아 드리는 마당으로써 할 일을 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의 본질은 그것 자체가 힘이고 에너지를 가진 움직임(운동) 이며 공간은 그 힘을 받아 변화하는 마당이다

동양의학에서 보는 몸
―몸과 마음의 관계의 공시성―

서양의학은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다루는 이분법을 가진다. 그러나 동양의학 에서는 주체적인 몸을 기본 관점으로 본다. 이런 동서양의 차이는 자연을 관찰의 대상으로 보는 서양과 자연을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온 만물의 어머니로(노자) 보는 관점의 차이다. 이러한 구분으로 죽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경우 삶을 넘어서서 피안의 세계 사후 영원을 보았다. 여기에서 인간의 죽음을 몸과 별개의 차원에 속한 것으로 보는 이원론이 생긴다. 공자나 노자의 경우 죽음을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 드렸다. 이유는 삶도 죽음도 영원한 생명 아래 있다는 점이다.

동양의학은 마음을 중시한다. 병의 원인은 내인, 외인, 불내외인으로 나눈다. 내인은 정동의 치우침, 외인은 풍우, 건습, 거처 등 외계의 조건과 그것에 대한 대비부족, 불내외인은 과도한 음식, 노동, 방사 등 환자의 생활방식이다. 동양의학의 질병관은 인과관계로 몸의 상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생체반응을 관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병이란 기의 흐름의 이상과 불균형으로 본다. 음양, 열과 한, 허와 실 개념을 사용한다. 서양의학은 원인 발견, 그것을 없애려는 방법 즉 공격형 치료이다. 그러나 동양의학은 치료방법을 선행하는 실제적인 목적을 둔다. 생체의 기의 불균형을 되찾고 몸 안에 있는 자연치료력을 활성화함으로 자연적으로 건강을 되찾게 한다. 전체로서의 생체반응으로부터 심신관계를 받아 드리는 관점은 공시성의 사고방식과 상통한다. 동양의학은 심리현상과 생명현상 관계 속에서 몸을 본다. 공시성의 사고방식으로 몸을 본다. 즉 몸을 마당(장)으로 하여 심리작용과 생리작용은 언제든지 전체적인 동시동조적 관계에서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 몸의 기본적인 구조를 경락의 네트워크 바탕에서 다루는 관점이다. 경락은 12개의 간선, 경맥, 정경, 거기에서 나누어진 지맥, 난맥으로 이루어진다. 기의 에너지가 몸 안에서 순환하는 통로를 경락이라고 말한다. 이 흐름이 막히면 몸에 이상이 일어난다. 동양의학의 중요한 것은 경락을 흐르는 기가 심리작용과 생리작용을 결합시키는 구실을 한다. 기는 정신현상과 생명현상 사이에서 공시적 동조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라고 여긴다. 무의식적 인 신체의 시스템으로 본다.

기의 흐름은 경락에 있는 많은 경혈, 특히 손발 끝에 있는 경혈을 통하여 몸 밖으로 유출 유입하고 있다. 기는 원래 우주에 충만한 생명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에 환경과 분리되어 단절된 몸의 체계를 생각할 수 없다. 기는 심리(정신), 생리(생명), 물리(물질)의 세 차원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체되는 몸의 바탕에서 보게 된다. 역의 사상은 천인상관 즉 소우주인 몸과 대우주 사이 교류, 감응 이라는 사고방식에 서게 된다.
땅의 오행의 운과 하늘의 6개의 기를 기본으로 질병의 발생원인 분석이나 약물처방에 대한 방법을 탐구해 나갔다.(기상의학) 여기에서 자연의 기와 사람의 몸의 기 사이에 공시성 인식이 있다고 본다. 공시성 이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있는 동시동조적인 감응 관계를 말한다.

성과 속은 하나다
―기술 철학인 易―

易經은 卜占의 기술에 대해 쓰여진 책이다. 심리분석은 환자의 꿈과 공상에 대한 진단이며 역은 점치는 사람의 무의식 직관지가 중요하다. 프로이드는 과거 경험의 축적을 무의식이라고 하지만 융은 무의식에 미래를 아는 직관적인 기능이 잠재하고 있다고 본다. 예지몽, 전망몽을 말한다. 융은, 역을 무의식을 포함한 인간심리를 관찰하는 기술을 기본으로, 의술, 인사, 자연을 관찰하고 진단하는 종합적인 技術學으로 이해했다. 역은 인간의 마음에 바탕을 둔 기술철학이다.
중국에서는 물리적인 自然 보다 먼저 생명적인 자연에 주목하는 태도가 강하다. 자연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視線이다. 원래 선도라는 선인이 되기 위한 방법과 기술을 말 하는데 정신적 의미에서 완전한 인격을 목적으로 한다. 중국문화의 특징은 세속적인 것에 완전한 정신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근대인들은 세속성이 성스러운 차원으로 이어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중국문화는 聖과 俗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있다.

중국의 철학적 사고는 항상 정치, 도덕, 건강, 장수, 행복이라는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두며 자연에 대한 관심은 마음의 눈길 저 편에 둔다. 그들의 눈길은 세계중심에 있는 주체로서 자기 마음의 영역에서 자기 몸의 생명으로, 그것에서 자기를 둘러싼 살아있는 자연으로, 라는 순서를 따르고 있다. 정신-생명-물질이라는 존재의 서열에서 우주를 보는 태도를 가진다. 그래서 대우주는 정신, 생명의 작용에 이루어진 거대한 생명체로 본다. 역의 원리는 그러한 생명적인 자연관에 의지하여 자기와 우주와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心理(정신), 生리(생명), 物理(물질)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주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본다. 내적인 체험과 외적인 체험이 동시적 동조성인 공시성을 가진다.

사람과 우주의 감응 ― 천인相關
중국의 수행법은 한나라 말기에 형성된 천인상관의 사고방식을 근거로 형성된다. 易경에서는 乾은 머리로 하고 坤을 배로 하고 震은 발로 하고 巽을 다리로 하고 坎을 귀로 하고 離를 눈으로 하고 艮을 손으로 하고 兌를 입으로 한다. 8개의 掛는 방위를 분류하는 범주로 쓰이며 공간의 방위와 인간 사이에 있는 일정한 대응관계를 가진다.
동양사고의 특성은 몸을 바탕으로 한 기술적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 역은 동양사고의 사상적 출발점이다.

기술적 자연관― 수행과 卜占
수행법 중 하나로 외부에서 기를 받아 들여 몸 안으로 보내는 모습을 이미지화 하는 일이 존사라는 수행이다. 주술능력을 얻기 위해 풍수설이나 望氣術이 있다. 풍수란 인간이 이용 하기위한 지리적 경관을 관찰 하는 방법이다. 도읍이나 주거지를 정할 때에 陰陽, 寒暖, 流水의 상태를 보는 방법이다. 이는 복점의 원리에 둔다. 언덕의 골격이나 산기슭 부분에는 生起가 둘러싸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람에 따라 생기가 흩어져 간다. 그러나 물이 있다면 생기는 그곳에 머문다. 그곳에서 생기가 흘러가지 않도록 둘러싸서 머물게 한다는 의미이다.
풍수에서는 龍脈, 穴, 砂, 局을 중시 한다. 龍脈은 생기가 흐르고 있는 지맥의 지점 인데 산이나 언덕 등성이에는 기가 활발히 흐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생기가 모여 있는 부분을 혈 이라고 한다. 사는 혈의 주위를 둘러싸서 기를 모으고 조화시키는 산과 언덕의 형태를 말하고 그것이 맥을 따라 흘러가는 모양을 용맥 이라한다. 그 위의 전체를 국이라고 한다. 풍수의 사고방식은 사람의 몸에 대한 관점을 확대하여 자연의 경관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점이다.

망기술은 군사작전을 세울 때에 적군의 위치와 움직임을 氣에 따라서 관찰하여 알게된다. 기의 관찰이라는 것은 몸과 관계 된 의술뿐만 아니라 지리에서 정치, 군사 등의 중대한 문제였다. 이는 자연의 범위가 최종적으로 대우주의 천문현상까지 이른다. 점성술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시대에도 볼 수 있는 현상 이었으나 기독교가 점성술과 연금술을 악마적인 것으로 혐오하여 추방해 버렸다. 동양의 사고에는 신성한 존재의 세계 안으로의 개입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동아시아의 불교
수행과 신비주의― 불교는 어떻게 수용 되었는가

중국불교는 후한 무렵에 들어 왔는데 남북조시대(4세게-6세기) 왕성하게 되었다. 불교가 왕성해진 이유를 神異, 神通에 두고 있다. 신이란 불교의 六神通 이라고 부르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현상인데 수행으로 얻어진다.
대승불교에서는 인간은 如來藏(부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또는 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수행의 체험을 전제로 나온 것이지 보통 사람이 아무런 수행이 없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기본을 自然法爾(자연스럽게 진리대로 있는 것) 정의하고 있다. 자연이라든가 있어야 하는 것이란, 인간으로서 본성이 나타내는 것을 체험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수행은 이러한 마음의 심층영역에 잠재하는 자율적 과정을 발견하고 자기실현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부처를 본다. 안다는 것은 성스러운 차원의 신성의 영역에 맞닿는 것이다. 수행을 몸의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자연치유력을 불어 일으키고 그것을 활성화 하고 강화해 나가는 효과를 가진다. 수행은 치료법으로 유효하다. 마음의 측면에서는 수행은 자아가 세속적인 것을 넘어 성스러운 차원과 결합을 뜻한다.

불교사상의 중국화 과정―천태, 화엄의 우주관
인도 대승불교의 기본사상은 色卽是空 명제를 가진다. 색으로 번역된 것은 形이 있는 것으로 세계의 만물 또는 그 질서를 말한다. 空이란 속이 텅 비다, 그것이 변하여 없다든가, 비존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色, 刑 의 세계 상태와 성질은 존재의 참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참모습은 공이라고 부른다.
空 사상은 緣起 相依相關 관계성으로 설명 된다. a는 비a와 관계 되어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 관저에서 본 존재의 참모습이다. 참모습은 감각에 의존하는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알수 없지만 깨달음을 통해서 초월적인 체험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남인도의 용수(150-250)는 시간적인 변화에 지배되지 않고 영원성, 불생불멸을 말한다.
그는 언어를 초월하여 진리를 새롭게 깨닫는 방법을 사용했다. 언어를 사용하되 언어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방법을 통하여 공의 세계를 설파했다. 시간적인 변화를 넘어선 상태이다. 그러나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의 논리학을 받아 드리지 않고 실천적인 경향으로 수행체험을 바탕으로 불교를 받아 드렸다. 천태종의 3대 교조 지의는 색의 세계와 공의 세계를 수행, 관법으로 이해했다. 일상적인 경험에서 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공의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세속이 세계를 바로 잡는 종공입가를 말한다. 열반을 구함과 자비의 행위를 중시한다. 上求菩俚 下化衆生 자비의 실천을 염두에 두고 空과 色의 관계를 본다. 둘을 종합하는 천태 삼관을 말한다. 천태종을 이은 華嚴종은 법계삼관으로 현상계(事의 세계)가 그대로 진리의 세계라는 진리의 표현으로 보는 事事無薆이다.

지의는 수행론의 관점에서 색과 공의 세계는 실천을 통해서 서로 오갈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색과 공은 일체이어서 막힘이 없는 2개의 차원으로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 경우에는 성과 속의 개념은 밀접되어 있다. 색즉시공은 이시무애로 성과 속은 불가분한 관계를 가진다. 세속적인 것 안에 높은 정신성을 발견하려는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의 반영으로 본다. 지의는 불교를 논리적으로 받아 드리지 않고 인격완성 이라는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수행론의 관점에서 받아드렸다.

색즉시공, 色은 空이다. 즉심시불-마음에 깨달음을 얻은바 그대로 부처이다. 즉신성불-현실의 몸 그대로 부처가 된다. 성불의 시간이 빠르다는 어감도 있지만 마음, 몸, 불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體用는 본체와 작용을 뜻하며 本體는 현상의 본질적 모습, 존재의 참다운 상태를 의미한다. 작용은 경험 되는 현상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활동이다.
理事無礙의 세계관에서 이와사의 관계는 본체와 작용 관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성과 속의 일체적 관계는 체용론에 따라 이해된다.

범신론적 우주관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달 되었다. 수행은 몸을 바탕으로 마음의 내적인 영역으로 향하므로 그 심층에서 열려지는 세계를 체험적으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곳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우주로 투영할 때에 우주는 신적인 움직임으로 살아있는 자연으로 파악 하게 된다. 緣起 -따라서 일어남- 12지연기, 12 인연에서 나온 말로 무명에서 생긴 생명이 성장하고 노쇠하여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연기설에서 관계성은 인과적 사고 양태로 형성된다. 사사무애란 현실세계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부처들이 만들어 내는 성스러운 움직임에 따라 막힘없이 하나로 연결 되어있다. 우주의 모든 현상의 본질 상태는 一卽多 -하나 인 동시에 여럿이다. 일체중일-일체 가운데 있는 것은 일체 가운데 있는 것과 서로 감응하고 있다. 역의 사상 가운데 음양의 논리로 천인상관(우주와 인간의 감응관계)을 만들고 예정 조화사상을 만들었다.

만다라를 자신의 몸에 두다.
만다라는 본질이라는 뜻이다. 모든 현상에 가려진 본질로 명상이나 의례 가운데 제례에서는 토단을 쌓고 꽃이나 공물을 갖춘다. 자신의 몸을 만다라 한다. 몸을 소우주로 하고 대우주와 대응시키는 사고가 형성된다. 원단 자체가 空을 나타낸다. 밀교가 일본에 전해지자 신화시대에 가진 민중의 습속인 산, 강, 바다, 숲 등 자연이 있는 곳에 자연령들이 살고 있다는 종교적인 습속과 연결 되어 神佛習合이 형성 되다. 자연은 신이 거하는 장소로 산들을 찾아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산악수행의 관습이 널리 퍼졌다. 자연은 몸과 마음의 모든 것을 그 안에 투입하여 일체화 하는 장소가 된다.

동양사고의 형성
명상과 철학―他자, 자연, 성스러운 것

명상은 일상의 보통 상태에 있는 자기의 존재방식을 변화 시키어 새로운 자기로 태어나는 노력이다. 그 노력을 통하여 우리들은 마음의 세계의 깊음과 넓음을 체험한다. 새롭게 변하여 태어나는 자기변용과 자기실현이다. 변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자기는 타인과 자연과 초월적인 차원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의 문제이다. 여러 종교나 역사 문화적인 풍토에 따라 다르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자연관은 동양적인 사고를 통해 형성된다. 풍부한 감정과 평화로 가득 찬 자연과 인간의 마음의 교류이다. 동아시아 고대적인 사고는 대자연의 운행 가운데서 인간과 교류하는 마음의 감응을 역사상으로부터 출발하여 산천초목에서 생명을 보는 불교적인 자연관을 보게 된다.

反철학으로서 禪 ―주체의 밑바닥은 우주와 통한다.
禪宗은 화엄종의 뒤를 이어 당나라 말기 송나라를 거쳐 중국불교의 주류가 된다.
선은 불립문자로 경전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는다. 개념에 따라서 지적으로 추리하여 판단하는 태도를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진다. 실천적 체험지 즉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이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에 집중한다.

산수경에 부용도해(1043-1118)는 ‘청산상운보 석녀야생영’이라는 표현이 있다.
석녀는 결코 애를 낳을 수 없다. 애를 나을 리 없는 석녀가 애를 낳는다. 인식, 분별이 끊어진 칠흑같은 어둠 속에 석녀는 순간순간 계속 애를 낳는다. 석녀는 이미 여성도 남성도 아니다. 영원함이 佛祖의 생명이다. 내 생각이 완전히 소멸하는 저쪽 편에, 내 눈이 먼 이쪽 편에 생명은 하나하나 사건을, 사물을 계속 해서 생산해 내는 것이다. 석녀의 밤은 지성의 한계를 넘어 우주의 생명의 근원은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차원에 숨겨진 체 계속해서 운행하고 있다. 선의 표현에는 산수의 정경이나 대나무의 소,리 꽃의 향기 등 자연의 산물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적으로 말한다. 자연의 운행 가운데 영성, 신성의 움직임을 감득하는 태도를 느낀다.

중국의 禪者는 자연을 知적으로 설명 하려 하지 않는다. 수행을 통해 일상적 경험의 마당에 있는 주체적인 자리에서 자기와 자연이 서로 맞다아 살아있는 감응을 상징으로 말할 뿐이다. 지적인 이해를 일절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반철학 반논리적으로 선을 이해하고 있다.

고레노부( -740)는 선의 깨달음에 대해 설명 한다.
그 사람이 선을 배우기 전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다. 선의 진리를 통찰한 뒤에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평안함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깨달음의 경지를 얻었을 때에) 산은 다시 산이요 물은 다시 물이었다. 일상적인 지적 논리가 무너져 자기가 보는 것을 잃어버려 모든 것이 혼돈으로 돌아갔을 때를 뜻한다. 참세계를 인식 할 때에 다시 질서로 돌아간다. 혼돈을 단순히 혼돈으로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이다.
시간은 주체로서 살고 있는 자기를 움직이고 있는 움직임 이다. 그래서 시간의 움직임 가운데 그대로 존재할 때에 자기와 우주는 하나이다. 그것이 수행이요 깨달음이다.

理 氣철학의 체험적 밑바탕 ― 내향적 실천과 외향적 실천
당나라 말기와 송나라 초에 유,도, 불 3종교의 교류시대로 도교와 불교가 이기철학을 탄생 시켰다. 이론적 측면에서 이기철학의 기본은 易의 사고에서 유래되었다. 이기철학의 근거가 되는 음양오행설은 도교가 가진 자연에 대한 관심이다. 인도의 사고는 현실세계를 초월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관점으로 삼았는데 천태철학은 空은 色이라는 두 개의 질서가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아 理事무애의 우주관이다. 이사무애란 초월적 내재적(경험) 2가지 차원의 관계를 본체와 작용의 관계로 일체화하여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다.

서양이 2가지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과 달리 동아시아 사고는 수행을 통해서 하나의 관계로 파악을 한다. 도의 차원을 통해서 선인이 되는 것이 공의 영역을 체험한 부처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인성과 신성 속과 성의 관계는 단절이 아니라 서서히 서로 침투하고 있다.

氣의 혼돈의 흐름 가운데 지배하고 있는 理를 탐구 하는 것이 이기철학의 과제이다. 그러나 氣 에너지는 감각의 눈으로 그 존재를 관찰하여 인식할 수 있는 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만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의 밑바탕에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다. 감각의 눈으로가 아니라 주체의 실천적이고 내향적인 체험에서 직관으로 느낄 수 있다. 주자는 형이상자를 도라고 하고 형이하자를 기라고 한다. 기란 초월적 차원과 경험적 차원을 연결하고 형체가 있는 것 뒤에 움직이면서 그것을 생성시키는 흐름이다. 기란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이기철학의 우주관을 체계화 시킨 것이 한나라 때 만든 대학의 格 物 致 知 사상이다.

物은 존재,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인간의 마음이나 덕, 귀신, 신등도 물에 해당된다. 중국에서는 제사를 薺라고 하는데 제물을 바치는 행위와(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 성의 마음, 귀신, 조상(눈으로 볼 수 없는 형태)에계 바치는 것으로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다. 인간이 誠意를 다바쳐 마음을 바로 하여 제사를 드릴 때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나 조상의 영이 제사 장소에 와서 그것을 받아 드린다는 심리적인 대응관계가 있다고 본다. 격물치지와 성의진심이 고대부터 제사 속에서 발견되는 심리적인 상황이다.
격물치지란 원래 인간의 성의와 正心을 신령에게 바침으로 신령과 교섭하게 되고 심리적인 교류가 되어 초월적인 직관지가 만들어진다. 신인교섭인 신내림을 통하여 신명과 인간이 일체화 된다.

주자의 鬼, 神 이해
귀신은 형체가 있는 物이 아니라 물 바탕에 있는 생멸변화의 움직임으로서 氣에 속한다.
형태 뒤에 흐르는 움직임이다. 외경의 마음을 가지고 제사하면 그 엄숙한 종교적 감정이 귀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기의 움직임으로 생긴 자기의 정신이나 지각은 선조의 지각이나 지각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정성을 다바쳐 제사를 드리면 조상의 영과 감응 되며 교류하여 감격감통 할 수 있다.

심층심리학에서 귀신이란 무의식의 영역에서 감지되는 자율적인 힘을 보는 일이다. 수행을 실천함으로 마음의 내적세계가 가지고 있는 체험적인 넓이와 물의 외적세계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넓이가 하나로 되는 일이다. 이런 사고 바탕에서 소우주로 인간과 대우주로 자연 사이에 예정조화적인 교류가 이미 있기 때문에 인간은 소우주로서 자기의 내적세계를 앎으로써 대우주의 자기가 되는 것이다.

고대의 思考와 현대
몸의 바탕으로 대우주와 소우주,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고는 인류의 신화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신화에 몸을 변화시켜 세상을 창조한 거인 반고는 몸 하나하나가 세상 만물로 변화된다. 살은 흙이 되고 뼈는 돌이 되고 피는 강이 되며 머리카락은 숲이 된다. 반고라는 거인의 몸이 오늘의 지구가 된다. 이런 신화적인 사고에서 몸과 우주를 이해하는 중국인 사고의 원형을 발견한다. 신화는 문화의 원형이다. 원형을 알게 될 때에 문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 야스오는 동양문화 특히 중국문화를 이룬 중국사고의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변화 되어온 사상을 소개 하며 신화시대 고대 중국인들의 몸에 대한 사고가 일관되게 지속 되어 온 것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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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섭 (24.174.200.32)
2007-11-14 03:31:41
건강해 보이셔서 반갑습니다.
박흥규 목사님의 건강해 뵈는 모습이 반갑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와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는데 오늘 여기서 만나뵈니 갑사합니다. 건강하게 평안하게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엘파소에서 심용섭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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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
역자가 두분인데. (58.142.89.84)
2007-09-30 20:13:48
역자가 두분인데
이정배 이한영 공역입니다.
책의 정보에 있어서 이정배 이한영 공역입니다.
리플달기
7 12
하늘문 (124.199.57.158)
2007-09-26 21:20:57
몸과 우주
제가 처음으로 '심리와 생리와 우주를 일체로 보는 동양의 세계관'에 전문적으로 접한 책입니다. 이 책을 대하기 전까지, 막연히 몸과 마음(혹은 영)을 이분법적으로 대하는 것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서양의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동양의 사고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약점은 좀 어렵다는 것이지요.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분을 상당히 당황스럽게 할 것이며, 동양 사상에 생경(生硬)한 분은 황당하기까지 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만 먹는 다면 충분히 독파할 수 있고 또한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컴퓨터를 옆에 놓고 읽었습니다. 전자사전 찾아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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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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