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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살아있는 신화이야기나무를 심는사람, 박흥규목사의 산자락 농사와 신화에 얽힌 이야기(4)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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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3월 11일 (일) 00:00:00 [조회수 : 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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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작년 당당뉴스에서 3달간 사랑방모임을 인도했던, 감리교 목사 공상퇴회 후 대관령 산자락을 일구며 살아가는 박흥규목사의  산자락 농사와 신화에 얽힌 이야기를 새롭게 정리하여 당당뉴스에 제공하여 준 기사다. 박흥규목사는 30년전부터 이곳에 나무를 심어왔다. 모두 9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사랑방 이야기(4)
우리 안에 살아있는 신화 이야기

1.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시가-부도지

‘부도지((符都誌.)’는 대한국 초대사로 1만년 전 파밀고원의 마고성 이야기로부터 시작 된다. 마고의 자손은 12지파이며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에 기초한 낙원건설을 목표로 둔 이화세계로의 복귀이다. 마고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이며 17세의 처녀이다. 마고성은 산악 민족이 살던 고산지역이고 율려란 음으로 천지를 창조한다.

보금자리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렸다.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  오마를 맛보니 바로 보금자리 난간 넝쿨 달린 포도였다. 지소씨는 일어나 팔짝 뛰었다. 그 독의 힘 때문이다. 포도가 참 좋다.(부도지 5장)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가 생겼다. 그 일로 이는 뱀의 독과 같이 변하여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게 되었다.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부도지 6장)
혁거세씨는 천성이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 같다. 남 태백산에 천부 소도를 건설하고 들에는 곡식이 쌓이고 집 안에는 베가 저장되어 착한 일에 쓰였다.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전하고 우두머리를 이어 받는 방법은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우두머리를 삼었다.(부도지 29장)

2.죽음과 노니는 오구굿

오구라는 영화가 상영 된 일이 있었다. 이 영화는 어느 노인이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꿈을 꾸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승에 갈 수 있도록 무당에게 오구굿을 요구한다. 죽음을 앞두고 마을 사람들과 가족 앞에서 무당의 춤과 노래로 한 마당이 되어 죽음을 친숙한 것으로 만든다.

죽음과 함께 논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가진 사생관이며 오구굿의 내용이 된다. 굿을 통해서 망자의 한을 풀어주고 살문(갓 죽은 망령일수록 살문이 강하다. 죽은 지 한 달이 넘지 않는 망령을 말한다)을 풀어 주는 일이다. 오구굿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은 죽음과 친숙해진다.

오구굿 을 통해서 무교적인 인생관이 우리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머무는 곳은 저승이다. 이 저승에 대한 불안을 해소 시키는 일은 버림을 받고 서러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온 바리가 저승을 찾는 이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

인간은 이승에서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바라는 것은 이승에서의 장수와 풍요로운 삶이다. 그러기 때문에 죽은 영혼은 이승을 떠나는 한스러움과 억울함을 굿을 통해서 푼다.

우리 신화 에서는 심판의 사상이 없기 때문에 낙천적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죽으면 저승에 가는 것이요 가면 그 뿐이다. 본래 저승은 극락도 지옥도 없다. 윤회가 아닌 내세에 재생된다고 믿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친숙해 진다. 오구굿을 통해서 죽음과 더 친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우리 신화의 한 면을 보게 된다.

3. 살아 있는 우리 신화

일 만 년 전 ‘부도지’란 신화가 우리의 겨레의 가슴 속에 희망과 생명으로 살아 숨쉬어 왔다. 한겨레의 고난의 여정에서 기쁨, 슬픔, 웃음이 배어있는 생명의 서사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신화는 잊어진 존재로 사라져가고 있다. 무속이나 제의 굿을 통해서 우리 신화를 만나게 될 때 우리 신화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굿이나 무가를 통 해서 만나는 무교의 세계관은, 자연의 변화나 인생의 변화는 신령에 의해서 지배되고 가치의 세계는 생존을 위한 가치에 집중한다. 신령과의 교류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무속을 미신이라고 하는 편견을 버릴 때에 소중한 우리의 신들을 만나게 된다. 재료는 구전 자료들이다. 구전의 내용도 장소에 따라 편차가 있어 많은 부분들이 변질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신화는 우리 속에 감추어진 가치를 아직 보존하고 있어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준다.

신들의 세상 인간의 세상
우리 신화의 터를 이루는 창세신화에는 하늘과 땅이 갈라져 새로운 우주질서가 형성된다. 위와 아래. 밝음과 어둠, 음과 양의 질서이다. 이승은 양이 되고 저승은 음이 된다. 하늘 옥황에는 옥황상제(천지왕)가 있고 땅 속에는 지하궁 지부사천대왕이 있다. 하늘은 밝음과 높은 세계이고 땅은 어둠과 낮음의 세계이다.

영혼의 땅 저승은 극락과 지옥의 영역으로 나뉜다. 극락은 위쪽, 지옥은 칼산지옥 무간지옥 등 그 수가 많다. 저승에는 지옥과 극락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신비한 세상인  원천강과 서천꽃밭이 있다. 신성한 공간으로 저승의 질서를 이룩한 대별왕이 머무는 곳인 원천강이며 서천꽃밭이다.

원천강은 시간을 주재하는 곳이니, 인간 세상의 주기를 넘어 서있다. 원천강에 앉아있으면  세상의 과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사시사철의 변화를 주재하는 곳이 원천강이다. 환생의 꽃, 멸망의 꽃, 웃음의 꽃, 울음의 꽃 같은 가지각색의 신비로운 꽃이 피어있는 서천꽃밭은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신성한 곳이다. 인간사 희로애락과 애오욕의 원천이 이곳에 다 있다.

인간은 신과 달리 자신의 세상에 갇힌 존재로 사는 일이 숙명으로 되어있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박덩굴을 타고 하늘에 오른 대별왕, 소별왕, 서천꽃밭으로 들어간 사라도령이 있다. 이런 일은 그들이 자신을 가볍게 자신을 내던진 사실로 가능해 진다. 인간은 자기를 버림으로 얻는 자유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권능을 얻게 된다. 인간이 가진 신성을 되찾을 때에 신들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은 만나게 된다.

신들의 계보 . 신들의 권능
옥황상제는 무속신화의 최고신이며 하늘의 큰 황제라는 뜻으로 하늘과 땅을 어울리는 왕으로 천지왕으로 부른다. 총명부인은 가난한 지상의 여인으로 옥황상제의 부인으로 지상의 왕의 소임을 맡는다. 인간의 딸로서 최고신과 결합을 한 상징성만으로도 의미는 깊다. 그리고 옥황상제의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이 곁에서 하늘과 땅을 지배하게 된다. 칠성신( 북두칠성)의 칠형제와 삼태성 삼형제가 밤하늘 별로 지상의 인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을 천상의 신들 이라고 한다.

지하의 신들은 지하국의 최고의 신인 지부사천대왕이 있다. 땅에는 지진을 일으키는 지진장군이 있다. 저승의 신들로는 시왕 혼령을 불러와 심판하는 열명의 왕이 있다. 그중 염라대왕은 저승의 왕으로 수많은 신하들과 장졸을 거느리고 있어 위엄이 크다. 수명을 다했거나 죄업을 쌓은 인간을 데려오는 저승차사들도 있다.

오구신 바리(바리공주, 바리데기)는 황천수를 건너온 영혼들을 맞으며 그들의 죄와 한을 눈물로 씻어 주는 신이다. 저승의 심판을 앞둔 불안한 혼령들을 감싸주고 지켜주는 모성과 자비의 신이다. 생명의 신으로 삼신인 당금애기와 어미 몸에 아기를 불어넣어 주는 생불왕 삼승할망이 있다. 아기의 신 삼신은 처녀이다. 결혼도 못해보고 아기도 낳아보지 못한 체 신이 된 처녀이다.

당금애기는 석가성인이 당금애기와 인연을 맺어 신령한 자식을 낳는 당사자가 된다. 당금애기가 시준님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이름을 지워주는 일은 당금애기가 체득하여 얻은 신성의 표상이 된다. 바다의 신들로는 사해용왕과 파도장군, 해일장군이 큰 위세를 지니고 있다. 바다는 풍요로운 물산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예고 없는 거친 물결로 인명을 휩쓸어가며 주변의 환경을 파괴시킨다.  바다의 신 용왕이다. 살아있는 인간이야 말로 신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므로 이승은 인간과 어우러진 신들의 세상이다.

인간에게 집을 지어주고 가신으로 좌정한 성조씨안심국 계화부인이 있다. 질병의 신으로  명신손님, 각시손님, 막내손님 등이 있고 대별상 어전도가 있다. 마을의 신으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는 산신이 있다. 성소인 서낭당에는 마을 신 서낭과 본향이 있다. 마을 들판에는 농사의 신, 세경이 있다. 우물에는 요신이 있고 바다에는 용왕이 있다. 마을 어귀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장승이 있다. 장승은 악귀를 놀라게 하여 쫓아내는 수호신이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신들의 처소이다. 가정에는 성주신과 지신이 모셔진다. 방안에는 삼신을, 집 뜰 뒤에는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단을 두고 위하는 일을 볼 수 있다. 부엌의 신 조왕 할아버지, 조왕할머니가 있어 부엌일이 잘돌아가야 먹고사는 일이 원만해진다고 믿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조상들의 믿음은 많은 신들을 만들어냈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듯이 위험한 신들도 많이 있지만 인간을 수호하는 신들이 세상에 훨씬 더 많고 강하다고 조상들은 믿고 있었다.

우리 신화에서 신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면 초월적인 힘보다는 구체적인 사연에서 신성이 나타난다. 내가 겪고 보고 피부로 와 닿는 가슴에 스며드는 구체적인 삶의 사건들에서 신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 신화의 특성으로 본다면 위에서 명령으로 내리는 신성은 인간을 억압시킬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화는 우리의 가슴에서 나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전체성으로 신화를 이해하게 된다.

지금처럼 물질화된  우주시대에 왜 우리는 신화에 관심을 두어야 하나? 인간의 최초의 철학인 신화는 3만년 가까이 오랫동안 구전을 통해서 지혜와 지성을 간직해 왔다. 많은 변화 속에도 아직도 변화되지 않는 철학적인 사고인 신화를 우주의 원리로 볼 수 있다. 신화를 배우는 것은 인간을 배우는 것이다. 우주화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우리 신화에서 찾게 된다면  자기 정체성을 통해서 자기 세계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계를 보는 거시안적인 사고로 한국을 보는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서 한국의 기독교를 숭미주의에 희생된 예수로 본다. 교회는 한국의 민속신앙을 미신으로 보고 배타적이 되었다. 기복이나 번영, 성공, 치유 등 무속신앙의 바탕에서 교회 선교가 이루어지면서도 표면적으로 무속신앙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교회가 가진 숭미주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식민지화의 수단으로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는 1920년대 이후 민중의 기대는 사라져갔지만 아직도 개신교의 오만한 종교적인 폭력과 배타성으로 타 종교는 타파 소멸 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 시청 앞 광장에서 태국기와 성조기를 들고 성공기도회를 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개신교인들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힘의 상징인 성조기는 예수 못지않은 숭배 대상이 된다.

한국종교는 다원주의적인 큰 저력을 가지고 있다. 민속종교인 우리 신화야말로 서구 제국주의 문명의 허구성을 인식시키며 종교적인 상생을 위한 배타성을 극복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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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가 있었는데....

동북아 역사의 주인공이 변방으로 밀려나 역사의 뿌리를 빼앗기고 저들이 마음대로 바꿔놓은 거짓역사를 진실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우리의 이 모습이 안타깝다.



진정 가슴을 뜨겁게 한 것은 그동안 마음 속에 품고있던 '과연 우리민족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흔적이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의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도지'의 번역자이며 주해자인 김은수씨는 권말의 '대한국 상대사와 그 문화'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부도지' 본문의 내용중 일부를 정리한다.



"한국의 광명시대부터 전해오는 <부도지>의 내용과 <<구약성서>> <창세기>의 내용은 원형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부도지>에는 마고성이 있는 대신 <<구약성서>>에는 에덴동산이 있다. 둘 다 낙원이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단성생식(單性生殖)을 했으며 그들은 다같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추방당했다. 그리고 나서 홍수를 만났다."(본문307쪽)



또한 그는 책의 서문에서 "부도(符都)"에 대해 설명하기를; "부도라는 말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또는 그 나라의 수도라는 뜻으로, 곧 단군의 나라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곧 단군의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금단의 열매를 먹고 추방당한 선조들은 잃어버린 낙원의 회복(복본復本, 다물多勿)을 위해 천부(天符)의 도를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그래서 부도지에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은 낙원, 곧 하나님께로의 '복본'이며 '회복(=다물多勿)'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밑바닥에 흐르는 본성이라고 '부도지(符都誌)'는 말하고 있다...(아름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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