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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대한 이해대관령의 곰, 박흥규목사의 산자락 농사와 신화에 얽힌 이야기(1)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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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1월 22일 (월) 00:00:00 [조회수 : 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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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작년 당당뉴스에서 3달간 사랑방모임을 인도했던, 감리교 목사 공상퇴회 후  대관령에서 산자락을 일구며 살아가는 박흥규목사의  산자락 농사와 신화에 얽힌 이야기를 새롭게 정리하여 당당뉴스에 제공하여 준 기사다. 모두 9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숲에 대한 이해

(1)  단  오  제

영동지역  대관령 위에 위치한 선자령은 해발 1200 으로  야생화의 천국 으로  수정란 풀은 여름에는 눈꽃 같이 보인다. 전설의 땅 으로 보인다 단오제는  이 선자령 밑 대관령에서 드리는 산신제이다.

동양에서는 명산에는 신령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산은 신들이 사는 신성한 장소로 믿었다. 매년 3월 15일부터 5월 6일 까지 단오제가 열린다. 굴 참나무나 상수리 나무를  신목(성목) 으로 정 하고  국사 성황신의 강림을 기원 한다. 접목되고  강신 현성이 이루어 지면  신간목이 되어 제관들에의해 하산을 한다.

관민의 영접을 받으며 강릉 입구 성산 외각인 곳에서 여성황과 합류 하여 휴식 후에 남대천에 모셔 진후 5월 6일 까지 민중들의 축체가 계속 된다. 여기에서는 서낭굿 가문굿 지신굿 조상굿 등 열두가지 굿들이 행해진다.

대관령 웃제변리 옛길 주막 터 에도 40년 전 까지 만 해도 7가정이 살았고 일년에 한번 씩 당제를 지금 남아 있는 성황당에서 지냈다. 제사준비는 공동 으로 하고  제관은 매년 집 집 마다 순서를 바꾸었다. 금줄을 치고 부정을 맊으며 제사를 드렸고 제관과 마을 사람들이 특별한 구별이 없었다.

단오제의 국사신 으로 범일을 지칭한다. 범일은 신라 말 고승으로  당나라 유학을 했고 고향인 강릉에 굴산사를 졌고  선종의 영향을  심었다. 굴산사의 사리탑은  범일국사의 것 으로 추정 된다. 범일은 후에 대관령에서 수행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단오제란 산에 대한 민중들의 신앙과 실존 인물 범일의 수행과 조화 된 신화로 보인다.

당목인 성목은 고대인들이 순수한 직관을 나무에서 얻었다 나무는 신성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계시를 발견 했다. 나무를 우주의 상징으로 보고 종교의식을 가졌다.
에집트에서 대여신 히토로 신은 천상의 나무로 사자에게 안식을 제공 하며 고대 오리엔트 에서는 포도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정하고 예수를 선한 목자로 생명의 나무로 묘사한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성목으로 볼 때는 역사적인 사건을 넘어서서 신화적인 사건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인간의 이야기는 신의 이야기로 발전 시킬 수 있다 범일의 대관령 수행은 단오제를 통 해서 구체적인 사실인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신화와 만난다.

그러나 서양적인 사고는 자연을 지배  또는 정복의 대상 으로 보고 있다. 동양 사고의 이사무애는 이의 세계(진리의 세계)는 현상의 세계(자연)와 그대로 하나로 본다. 물질적인 자연을 생명체로 본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로 부르며 이 땅의 모든 것은 땅의 자식 으로 이해 하고 있다.

이런 자연관을 바탕 으로 색과 공 성과 속을 분리 해서 보지 않는다. 신라 대장군 김유신 이나 호랑이를 종처럼 부리는 범일을 단오제의 주역으로 삼은 일은 이런 바탕에서 이해 할 수 있다.

(2)  조화로운 세계인 숲

아침에 어치의 소리에 눈을 뜨고 다람쥐 청살모 고라니와 함께 생활이 시작 된다 봄이면  야생화도 흰꽃 노란 꽃 보라 색 계절마다 다른 야생화를 마난다. 자연은 가장 큰 학교로 보는 열린 마음을 가지면 숲은 느낌과 배움을 새롭게 우리에게 주고 있다.

숲은 자각과 관찰  체험 공간이 된다. 숲을 만나는 일은 나무 풀 동물 돌이 개체로 분리 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관 되어 있고  유기체로 살아있는 존재들 이다.인간 역시 자연과 연계된 존재로 같은 위치에서 다른 생명체와 같이 자연의 힘을 수용하고 살아 가는 존재이다. 근대과학은  자연과 인간 관계를 주관과 객관 으로 분리하며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 하므로 생태계가 파괴 되고  자연을 잃어 버렸다.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 까지 숲에서 사는 일은 나의 일상이다. 계곡의 물을 식수로 하고 죽은나무로 연료로 쓰며 땅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 초는 나의 먹거리가 된다. 자연은 끊임 없는 자양분을 내게 공급하고 있다. 문명의 마지막 시간을 쓴 톰 하트만은 현대문명의 바탕인 석유 고갈이 가져다 주는 재앙이 우리 아이들과 미래 세대에 불행을 경고 하고 있다.

숲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가지느냐 따라서 문제에 접근 하는 방식을 바꾸 수 있다.
유아사 야스오는 인간의 몸을 소우주로 보고 자연을 대우주로 본다. 소우주로 내적인 가치를 깨닫는 일은 대 우주로 자기가 되는 것으로  자신과 자연은 조화적인 대응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연을 올 바로 보는 일이 인간을 제대로 보는 일이라고 말 한다.

중국 한 대 이후 생긴 역 사상에는 천인합일의 이론을 가진다. 천문의 이상과 자연재해에 대한 도덕저긴 해석을 가졌다. 기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 날 때에 하늘이 군주에게 정치적인 책임을 묻고 있다고 해석을 했다 .

인간의 삶은 본래 자연 가운데 그것의 움직임에 따라 살고 있다. 인간과 자연 집단과 집단 사이로 옮겨 다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력이 활발하게 움직 이고 있다. 개체성을 초월한 영원적이며 보편적인 생명의 원리가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중국인은 우주공건의 마당에서 동시동조 현상을 불어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기)에 주목한다. 기는 대자연을 운행 시키는 생명의 근원에서 일어나는 작용 으로 보고 있다. 동양은 보이지 않는 작용에 바탕에서 세계를 보려고 한다.

인간과 우주 관계를 몸과 연관 시키어 보려고 했다. 천체 .별의 방향. 신 .악마를 몸의 각 부분과 연관 시키어 설명하는 고대 세계관을 만들었다. 중국의 음양 오행설은 인간과 자연의 신비로운 융합 상호 의존 관계로 형성 되었다. 안과 밖  내부의 힘과 사물을 분리 하지 않고 결합 시키었다. 원시인의 신화적인 우주관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졌다.

하늘과 별. 달 산 동식물 자신과 똑 같은 영(스피리트)을 가진 존재로 직관적인 사고를 가졌다. 가끔 약수터에 가면 우물 속에 있는 용왕 신에게 새로운 물을 바치며 예를 표 한다.

우물 속은  정령이 존재 하는 장소이며 우주의 영적인 힘을 발견 하는 장소이다. 일신교인 기독교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 으로 보고 자연에 존재 하는 정령을 몰아 내고 자연을 파괴 시키는 인간과 자연을 비대칭 사회로 만들었다.

3 숲은 살아있다

지난 8년 버려지고 황페한 땅을 원시적인 방법으로 개간하고 여려종류의 나무를 끈임없이 심었고 환경에 적응하는 나무는 지금 잘 자라고 있다. 며칠 전 겨울 추위로 꽁꽁 언 땅을 더덕 도라지 당귀 씨앗들 거기에는 3년째  계속 심은 탱자 나무 씨앗들이 있다 모든 씨앗들의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졌다. 푸르던 산들이 거무스러 해져 간다 시냇 물도 여전히 흐르지만 그 밑에는 겨울의 차거움이짖어져 있다.

마우리 원주민들은 땅을 성화 시키는 제의를 가졌다. 사람. 땅. 대지 동물.을 위해 제사를 들인다. 토지 하우(성)란. 땅을 성화 시키어 그 땅의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증가 시키는 제의 행위 이다. 고구마 하우란 그 고구마의 생산력과 생명력을 증가 시키는 제의이다.

숲 이란 제의가 이루어 지는 곳이다. 고대 중국 에서는 제사를 행 하는 것을 눈 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제물을 바치는 일이며 눈 으로 볼 수 없는 행위는 정성을 바치는  제사로 성의와 마음을 다 바치는 행위이다.

인간과 대지 숲 식물은 소통 되는 세계로 하우를 통 해서 일체와 시키었다. 마우리란 신이며 생명의 원리이다. 생물과 무생물을 불문하고  모든 것은 제각기 생명의 윈리 마우리를 가지고 있다.

마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번식이나 성장을 할 수 없다고 믿었다. 신화적인 사고란 구체적인 것으로 매일 생활하는 대상 동물 식물 약 독 음식을 소재로 갖는 철학이다 레비스트로스는(프랑스 인류학자)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를 통하여 사고의 논리성과 과학성을 나타냈다.

종교적 사고란 초월성에 대한 직관을 자기 안에 받아 드리는 것으로 추상적인 힘 만이 다이나밐한 활동 가진다. 이 추상적인 힘은 다른 질서를 만든다. 신화적인 사고로 숲을 보게 될 때에 숲은 지금도 살았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뇌리에는 인류공통의  직관적인 자연이 담겨졌 있다. 이런 사고의 바탕이 동양적인 자연관 인간관에서  인간의 몸과 우주 와의 관계에서 분리 되지 않고 늘 소통 돠는 통일성이 유지 된다.

자연(우주)과 나(몸)는 쌍방이 소통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연과 몸이 전혀 막힘이 없는 일체의 세계로 볼 때 숲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이다.


현대인은 자연에 대한 정복에서 떠날 때에 자연 속에서 삶의 실제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숲 계곡바다의 풍경이 트일 때에 영적인 현실감을 강력하게 느끼게 된다.(연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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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의 곰, 박흥규목사

그는 여름내내 화전을 일구며 잡초를 뽑았다.

지난 1월 14일 대관령 산막에 머물고 있는 이필완목사를 산막주인 박흥규목사와 기독교환경연대 양재성목사가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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