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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의 물질 낭비와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관계론으로신영복의 동양고전 독본, 강의(2)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
당당뉴스 편집실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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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8월 27일 (월) 19:48:12 [조회수 :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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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당당뉴스에서 3달간 사랑방모임을 인도했던, 감리교 목사 공상퇴회 후  대관령에서 산자락을 일구며 살아가는 영원한 곰, 농사짓는 박흥규목사는  산자락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히 책을 읽는다. 이번엔 신영복교수의 [동양고전독본, 강의]라는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당당뉴스에 이메일로 보내왔다. 2번째가 이어진다. 당당뉴스는 박흥규목사의 신화에 얽힌 이야기와 몇몇 단상과 서평들을 계속 연재한다. 노인의 맞춤법인지라 운영자가 대충 손을 보았다.

신영복의 동양고전 독본, 강의(2)
자본주의 체제의 물질 낭비와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관계론으로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자, 순자, 한비자등은 중국사상의 전체 흐름에서 비주류에 속한다. 개인으로부터 떠나 사회적인 존재 양식의 일환으로 이해해야한다. 사상이란 독자성에 앞서 시대성을 공유하고 있다. 시대가 사상을 낳는다.

묵자의 검은 얼굴
묵자는(BC479-381)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 노자나 장자와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묵자는 하층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묵이란 먹이지만 죄인의 머리에 먹으로 그리는 묵형을 의미한다.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이다. 복장의 검은색은 노역과 노동주의를 의미한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며 허례와 허식을 반대하며 근로와 절용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들의 집단이다.
근검 절용하며 실천궁행하는 모습이다. 검소한 실천가의 모습이다 맹자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인 사랑을 주장하면서 무릎이 달아 없어질 때까지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유가란 귀족들에게 기생하는 집단으로 보았다. 한 나라의 공동체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묵자는 제자들에게 우임금을 따르기 원하며 거칠고 남루한 옷도 고맙게 여기고 짚신에도 만족하게 여기고 몸소 실천을 근본 도리로 삼는다. 그는 기층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 하는 모습으로 묵가의 이미지이다.
공자와 묵자는 다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인 상황을 사회적인 위기로 보았다. 무도하고 불인하고 불의하며 이기적인 상황을 파멸의 시대로 보았다.
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주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 기층민중의 고통에 마음을 썼다. 여기에서 보편적인 박애주의와 상생이론을 선언한다. 묵자는 자기사상을 실천하는 일에 개인주의나 개량주의가 아닌 언제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철저한 규율을 가진 집단으로 알려졌다. 묵자는 불 속에 뛰어 들고 칼날 위에도 올라설 뿐 아니라 죽는 한이 있어도 발길을 돌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기원전 100년경에 묵가는 탄압을 받고 해외로 망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20세기 초,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중국에 소개될 때에 묵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었다. 종래 지배계층의 계약을 철저히 부정하고 유가의 덕치 이념 대신,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의 협동연대와 경제적 상호이익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실천적 의지인 힘을 강조 한다. 묵가의 개혁성과 민중성은 유가 사상과 대항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 신영복의 동양고전 독본, 강의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혼란의 원인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사회의 혼란은 모두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문제는 개인적이고 심정적 차원이나 묵자는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천하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롭게 되도록 법을 바꾸어야 한다. 묵자가 말하는 겸애는 다른 나라를 자기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 보듯이 해야 한다.
천하가 서로 겸애하면 평화롭고 서로 증오하면 혼란해 진다.
묵자의 하느님은 기독교의 하느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겸애하면 평화롭고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


거자 맹승 이하 183명이 성위에 누워 자살하다
묵가는 집단 자살이라는 매우 비정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의 책임자인 거자가 생사여탈권을 가질 정도로 조직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다. 거자인 맹승은 초나라 양성군 진영의 수비를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신의가 두터웠다. 양성군은 왕실에 도전하다가 패하여 달아났다. 맹승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최후선언을 한다. “양승군과 나는 스승과 제자 이전에 벗이었고 벗이기 전에 신하이었다. 우리가 죽기를 마다하면 앞으로 엄격한 스승을 구할 때에 묵자파는 반드시 제외될 것이며 좋은 벗을 구할 때도 제외될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택하는 것이 묵자파의 대의를 실천하고 기업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묵가는 중국 사상사에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다. 전국시대 패권적 질서와 지배계층의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세력으로 기층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대중 속에서 모범을 보였고 대중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좌파 운동가로 중국의 선구자의 위치에 있었다.


순자(기원전 313-238) 법제사상, 성악설
순자의 천론은 물리적 천이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이다. 인간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유가의 도덕천을 거부한다. 순자가 이단이 된 것은 천론에 있다. 그는 천인일뿐 서로 감응하지 않는 별개의 존재이다.
천론에서 하늘에는 변함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성군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폭군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바르게 응하면 이롭고 어지럽게 응하면 흉할 뿐이다. 농사를 부지런하게 하고 아껴 쓰면 하늘이 가난하게 할 수 없다.
하늘은 사람들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는 법이 없고 땅은 사람들이 걷기를 싫어한다고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물리적 천관에 의하여 인간의 적극적인 의지를 주장한다.

인간의 능동적인 참여
하늘이 위대하다고 사모하는 것과, 물자를 비축하여 그것을 잘 마름질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하늘에 순종하여 그것을 칭송하는 것과 천명을 마름질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인 참여를 ‘천명’이라고 한다. 천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순자의 천론은 당시 생산력의 발달과 천문학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 사람이 천지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는 소지를 버리고 천지와 동등한 자격을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순자는 인본주의적 관점을 가졌다.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버리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애 한다고 했다.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순자의 사상체계이다. 능참, 즉 주체적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자나 맹자에 비해 훨씬 더 현실적이다. 당시 패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적극적 의지와 능동적인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하려 했고 그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성악설 이해와 오해
순자는 천론에서 교육론을 전개하다. 천명을 전제 하고 그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고 선한 가능성을 확충함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성과 선단을 하늘로부터 이끌어 낼 수 없는 순자는 ‘능참’이라는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며, 교육이라는 외적인 기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성악설을 받아 드릴 때에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이해로 볼 수 있다.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적인 개념이다. 그의 교육론, 예론, 제도론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다. 전국시대 사회적인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 실천을 과제로 삼았던 수자가 성선설의 관념성을 비판하는 것이 성악설이다.

순자의 성악편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선이란 인위적이다.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추구한다. 이런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사람에게는 태어 날 때부터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남을 해치게 되고 성실과 신의가 없어진다. 사람은 태어 날 때부터 감각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음란하게 되고 예의, 규범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을 따르고 감정에 맡겨 버리면 반드시 싸우고 다투게 된다. 규범이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무너져서 드디어 천하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순자는 사람은 사법의 도에 의해 인도되어야 하는 결론을 내린다.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우리의 본성론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 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이다. 이 DNA는 40억년 전부터 장구한 기간에 거치어 이루어진 물체이다. 월슨은 이 DNA가 원초적 생명으로 본성이라고 하였다. 이 운동은 개체의 존속과 개체를 넘어선 존속, 생존과 번식, 유전의 운동원리로 본다. 닭은 계란의 생존 기계일 따름이다. 월슨은 인간의 욕망도 이 DNA의 존속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식욕과 성욕은 DNA의 활동이다.
묵자는 인간의 본성을 없는 것으로 보았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논리이다. 그러나 순자의 이론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한 성격을 교정하므로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된다는 논리이다.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와 법도를 알 수 있는 지의 바탕을 가지고 있으며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의 노력의 결정의 결정이라는 인문철학이기도 하다.

예란 기르는 것이다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면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하게 되고 사회가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옛 선왕은 이런 혼란을 방지키위해 예의를 세워서 분별을 두었다.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의 욕망을 위해서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란 기르는 것이다.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키 위한 사회 이론이다. 물질 생산과 소비에 일정한 한계를 두어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예를 세워야 한다. 사회의 제도와 규범이 순자에게는 법이 된다. 순자의 예는 전국시대의 예로 도덕적 내용 이외에 강제적 법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순자는 현실 인식의 냉정한 태도로 전통적 관념으로부터 단절 시켰다. 순자의 예론은 법과 제도이다. 이런 법과 제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간은 예의를 인식할 수 있는 지를 가지고 있으며 실천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 매우 긍정적인 인간관을 가진다.

예와 악이 함께 하는 까닭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회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것이며, 법이라는 물이 잘 흘러가듯 해야 한다’라면서 악론을 말한다.

무릇 음악은 사람의 감정에 파고듦이 깊고 사람을 감화시키는 속도가 빠르다. 그러므로 선왕은 형식을 존중히 여겼다. 음악이 조화롭고 평온하면 백성이 희락하되 질탕한데로 흐르지 않고 음악이 엄숙하고 장중하면 백성이 정직하여 어지럽지 아니한다. 음악이란 사람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음악이란 천하를 고르게 하는 것이며 화목하게 하는 것이며 사람의 정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왕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순자 때 난세의 징조를 우리 현실과 비교해서 읽을 수 있다.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 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쫒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음악이 거칠다. 문장이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며,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시대는 이와 반대이다.

법가와 천하 통일
법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이다. 부국강병이라는 시대적인 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최후의 육국을 통일 했다. 유가, 묵가, 도가는 다 같이 농본적 질서를 이상 모델로 상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복고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여기에 비해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해 간다. 법가의 사관은 미래사관 또는 변화사관이라 한다. 당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세상이 변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인식이다.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성에 있다고 본다.
법가의 논리에 의하면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에 의를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옥중에서 사약을 받은 한비자
한비자(BC280-233)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의 대표이다. 그를 서공자라고 하는 것은 모계의 신분이 낮은 출신이라는 뜻이다. 한비자의 글에 감탄한 것은 적국 진나라의 왕이다. 뒤에 시황제가 된 진왕은 한비자의 고분, 오두 같은 글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했다. 진나라의 이사는 한비자를 옥에 가두게 한 후에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하였다. 권모술수의 대가인 한비자가 권모술수의 희생자가 되었다. 한비자는 눌변이며 매우 우직한 사람이다. 그는 엄정한 형벌을 주장하고 유가와 묵가의 인의와 겸애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한다. 군주의 절대 권력을 옹호하고 군주의 은밀한 술수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가의 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개원칙이라고 본다. 당시의 법치란 무엇보다 권력의 자의성을 제한하고 성문법에 의하여 통치하는 것이다. 법의 공개성은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상앙은 뛰어난 정치가로 사법 관청을 설치하고 사법관리를 두어 존귀귀천을 불문하고 법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형무등급의 원칙을 실시했다. 다음으로 상앙은 법에 대한 신뢰와 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신상필벌과 엄벌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법 지상주의의 선언은 강력한 나라의 절대적 요소로 임금이 법을 버리고 사사롭게 치리하면 상하의 분별이 없어진다. 법치란 먼저 귀족, 지자, 용자 등 법외자에 대한 규제로 나타난다. 주나라 이래로 규제 방식은 예와 형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공경대부 같은 귀족은 예로 다스리고 서민들은 형으로 다스리는 방식을 가졌다. 법가는 주대에 이러한 예와 형의 구분을 없애고 귀족들도 똑같이 상벌로써 다스리었다.
법가의 법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의미가 핵심이다. 군주권을 강화해야 전국시대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비자가 주장한 법의 기본적인 성격을 종합하면 첫째 법의 성문화, 둘째 전국적으로 공포된 공지법, 셋째 전국적인 법의 통일성이다.
춘추시대 360년간은 중앙정부의 권위는 무너지기 했지만 대의명분은 남아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진의 통일에 183년간은 정신적 중심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정의나 명분보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요구된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여야 하며 광범한 변화를 요구 하고 있었다.

임금의 두 자루 칼
임금이 신하를 제어하는 방법에 두 가지 수단이 있을 뿐이다. 형과 덕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형이고 상을 주는 것이 덕이다. 신하 된 자는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직접 형과 덕을 행사하면 신하들은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군주에게 귀의한다.
한비자에서는 주장하고 있는 여러 개념이 서로 긴밀하게 통일되어 있다. 그 중심은 시종일관 강력한 중앙 집권적 권력형태가 자리 잡혀 있다. 춘추 전국시대 법가에 의해서 통일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중앙집권적 권력 형태는 진을 거쳐 한으로 이어지고 20세기 초 신해혁명 때까지 이어짐으로 이천년 이상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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