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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채희동 목사 추모모임에 모인 사람들모두가 채 목사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채 목사는 죽지않는게 분명했습니다.
당당뉴스 편집실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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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11월 18일 (화) 15:15:47
최종편집 : 2008년 12월 10일 (수) 17:52:12 [조회수 : 7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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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와 사진은 한겨레신문 조연현 기자가 이메일로 보내준 것입니다.

어제(13일) 오후 4시30분 서울 냉천동 감신대 웨슬리채플 소예배실에서 작은 예배모임이 있었습니다. 채희동 목사 4주기 추모예배였습니다.

   
생전의 채희동 목사와 가족.  ⓒ 한겨레 조현

제 친구였던 채희동은 충남 아산의 신자 20명도 안되는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권정생, 이현주 목사,최완택 목사 등 영성가들의 글을 실은 <샘>이란 잡지를 내 기독교에 생명의 자연의 영성을 불어넣었던 목사였지요.

그가 불현듯 세상을 떠난 것은 2004년 늦가을이었습니다. 너 밖에 기독교의 생명 운동을 주도할 사람이 없다는 주위의 강권으로 기독교환경연대 사무총장에 내정된 직후였습니다.

그는 아산의 강 둑방 아래 있는 마을에 살았는데 그 길 횡단보도에서 봉고차를 끌고 정차해있다가 뚝방 길을 고속으로 내달리던 유조차에 치였습니다.

만약 그가 유조차를 맞이하지않았다면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됐을지 모를 상황에 그는 쓴 책 <걸레질하는 예수>처럼 자신의 몸이 걸레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유조차를 맞았습니다.


   
ⓒ 한겨레 조현

그는 그렇게 조용히 살다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가버렸지만 그가 남긴 향기는 지금도 제 코끝을, 아니 가슴을 울립니다.

그는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란 시처럼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간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봄길 목사'라고 불렀고, 그가 간 뒤 감신대에선 1천여명이 모여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학술제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날 추모예배에도 무려 그가 간지 4년이나 됐지만 농사짓는 어떤 친구는 햅쌀로 만든 떡을 가져오고, 어떤 이는 자신의 밭에서 지은 고구마를 쪄오고, 어떤 이는 사과 밭에서 딴 사과를 가져와 나누며 채 목사의 삶을 기렸습니다.

   
추모예배에서 채희동 목사가 작사한 찬송 <하늘아 온땅들아>를 부르고 있는 이정배 교수(왼쪽)과 김영동 목사.

채목사의 선배로 감신대에서 변선환의 뒤를 이어 기독교가 도그마를 깨고 이 세상과 소통하는 기독교 신학을 열어가는 이정배 교수, 그의 친구로서 그가 가버린 바람에 그를 대신해 기독교환경연대사무총장을 맡아 기독교환경운동을 이끌고 있는 선봉장 양재성 목사, 감리교 감독회장직을 놓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감리교단 사무국총무로서 중심을 잡고 정의에 입각해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있는 김영동 목사, <당당뉴스>라는 기독교 인터넷대안매체를 만들어 '깨어나는 기독교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필완 목사(한반도대운하반대 종교인 100일 순례단단장) 등 요즘 한국 기독교의 새로운 희망들이 그곳에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채 목사의 절친한 선배이거나 친구입니다.

   
추모예배에서 기도하는 채목사의 친구 양재성 목사와 친구들.

홍천 동면교회에서 아름다운 농촌 목회를 하는 채 목사의 친구 박순웅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에서 이정배 교수는 "조직에 순응해 생명력을 잃어버린 99마리의 양이 되지 말고, 홀로 서서 광야에서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이 되자"는 역설로 설교를 대신했습니다.

   
남편을 추모하는 기도중인 이진영 목사 ⓒ 한겨레 조현

채 목사의 아내 이진영은 감신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올해부터 채 목사가 이끌던 시골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채 목사가 갈 때 다섯살 세살이었던 윤기와 율미도 초등학교 3학년과 일곱살 꼬마로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추모 예배 제단 앞에는 누군가 해변가에서 주워온 조가비들을 늘여놓았습니다. 윤기와 율미는 "이걸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채 목사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채 목사는 죽지않는게 분명했습니다.

채희동 목사가 남긴 글입니다.

"당신은 왜 자꾸 하늘만 바라보고 있나요.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가난한 이들과 병든 세상을 돌보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가난한 이웃은 차가운 땅에서 따스한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은 당신의 평화와 통일의 외침을 바라고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사람들의 탐욕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데, 당신은 여전히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구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이 날 강원 고성 오봉교회 장석근 목사는 아름다운 새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들려 주었고 모두들 사랑 나누며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이 모임을 주최한 봄걷사의 카페는 [봄길을걷는사람들]  cafe.daum.net/revchaeheedong 이다.

예수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히 빈 들에서 오셔

농부 하나님과 농부 사제

우리 교회 주일학교 교사인 김선실 선생의 아버지,
김칠성 성도는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온 농사꾼이다.
그는 몸이 불편한 아내 이순임 집사와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의 농토가 있는 산 밑에 자그만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먹고살면서 농사를 짓는다.

언젠가 심방을 갔을 때 그는
"사람은 흙을 떠나서 살수가 없지유.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고,
또 흙에서 난 것을 먹고살라 하셨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람이 흙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수가 없지유.
그란디 요즘 사람들은 흙을 떠나서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니께 그게 문제구먼유" 하신다.

너른 들녘에 나아가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돌보는
농부 김성칠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고 묻으면 '하나님은 농부이시다'고 고백하고 싶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기 위해 지금도 농부처럼 일하신다.
하나님은 사계절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세상에 생명들이 움트고 자라고 꽃 피며 열매 맺도록 비를 뿌리시고 햇빛을 내리시며,
바람을 보내시고 흙에는 많은 영양분을 내주신다.
그래서 한 톨의 쌀은 농부의 땀만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흙의 기운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한데 어우러져 자라고 익어 거두어들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밥 한 사발이
농부의 땀 한 사발, 자연의 기운 한 사발, 하나님의 창조의 영 한 사발의 모여
우리의 밥상에 올려지는 것처럼,
이 세상도 농부의 생명 돌봄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없으면 이 세상이 있을 수도 없고 지금 이렇게 남아있을 수 없듯이,
이 세상에 공장이 없고, 자동차가 없고, 군인이 없고, 대통령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농부가 없다면 살 수 있을까.
생명을 보듬은 흙이 없다면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농부는 자기의 몸으로 땀 흘려 생명을 돌보고 살리며 우리에게 먹을 것을 준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옷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집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농부들이 씨 뿌리고 거두어드린 밥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농사꾼 김성칠 성도를 보면서
이 세상에 생명을 돌보고 살리며 먹이는 농부야말로
생명이신 하나님의 참된 사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몸으로 실천하는 사제, 그가 바로 이 땅의 농부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농부에게서 배우고, 농부의 일하심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우리의 들녘은 빈 들, 빈 농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세상이 아니다.
농부를 우습게 보는 세상이요, 농사를 천하게 보는 세상이다.
마지막 세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농부를 멸시하고 천대하는 세상이다.
농토를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곡식을 돈으로 보며, 농사를 사업으로 보는 세상.
농사꾼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수 있다고 하는 세상.
그래서 농사꾼을 농토에서 내몰고, 농토를 없애 공장을 세우고 아파트를 짓는 세상.
농촌은 더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세상. 이 세상이 마지막 세상이다.

이제 모두가 떠나갔다.
곡식 익어 풍요로울 때에는 참새떼도 마을을 돌며 시끌벅적했는데,
이제는 참새마저도 오지 않는다.
청년들도 아이들도 떠나가고
빈 몸뿐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남아 마른 몸을 일으켜 힘겨운 삶을 이어갈 뿐이다.
지금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들이다.
내가 서 있는 이 농촌에는 가을의 풍요로움은 짧고 겨울의 배고픔은 길다.
어제 추수를 했는데도 오늘 우리의 곳간은 텅 비어 있다.
10년의 양식을 1년에 먹어 치우는 사람들의 곳간에는 언제나 차고 넘치는데
우리의 곳간은 늘 빈약하다.

빚 때문에 농약을 마시고 돌아가신 민혜 아버지의 한 많은 삶의 이야기는 그만 두고라도,
우리는 지금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빈들이다.
이 추수감사절기에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나열하며
한 해 동안 수 십 배, 수 백 배의 결실을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우리는 이 감사절기에 감사드릴 것이 없다.
결실의 계절, 풍요의 계절에 우리의 들녘은 빈 들이고, 우리의 곳간도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이 차고 넘치는 풍요의 계절에 우리는 참 가난하다.
1년 헌금을 주체 못해 교회를 허물고 다시 짓는 교회들 속에서 우리 교회는 참 가난하다.
하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언제까지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가.

예수, 빈 들로 오시는 이

얼마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에 공장에 취직한 만형이에게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어떠냐고 권면한 적이 있다.

만형이는
"목사님, 농촌에 희망이 있습니까? 농사짓는 제 아버지도 빚 못 갚아 허덕이시는데요.
저는 돈 많이 벌어 제 집안을 일으켜 세울 겁니다."

나는 할 말을 잊었고, 정말 농촌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목사로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무기력하고 무능한 목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이 빈 들 농촌을 어찌 살릴 것인가.
가을걷이가 끝나 아무 것도 없는 빈 들 같은 이 농촌,
황량한 빈 들, 싸늘한 바람만이 가득한 빈 들을 어찌 살릴 것인가.

이때부터 내 목회의 화두는 '빈 들 살림'이 되었다.
나를 살리고, 이 빈 들 같은 농촌을 살릴 분은 누구인가.
그 분은 그리스도이시오, 우리의 주님이시다.
누가복음 9장 10절 이하(새번역)를 보면
우리 주님은 풍요롭고 먹을 것이 차고 넘치며 배부른 사람들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빈 들로 오시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 벳새다라는 성읍으로 가시자 무리들이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날이 저물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열두 제자들은 예수께 와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무리를 흩어 보내서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제자들은 곧이어 말합니다.
'주님,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들입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황량한 빈 들이니
저들을 먹이고 쉬게 하기 위해서는 무리를 흩어서 마을과 농가로 내려 보내자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신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주란 말인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황량한 들녘,
겨울 들녘처럼 빈 쭉정이만 바람에 날리는 이 빈 들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저 많은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란 말인가.

그러나 17절로 내려가 읽어보면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들에서 모두들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구나. 주님의 살림은 '빈 들 살림'이었구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빈 들에서 주님은 그들을 살리신 것이다.
차고 넘치는 밥상에서 살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들 살림,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것 없어도 서로 나누며 서로를 살리는 살림이다.
이것은 배부른 부자가 할 수 없고, 배부른 교회가 할 수 없으며, 배부른 성직자가 할 수 없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생명살림이다.

우리가 믿었고 증언했던 예수님은 언제나 빈 들로 오셨다.
넉넉하게 차려진 밥상에 오시지 않았고, 화려한 교회와 배부른 성직자들에게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언제나 모두가 떠나가고 아무 것도 없는 버려진 빈 들,
누구 하나 찾아 주시 않는 외롭고 쓸쓸한 빈 들로 오셨다.
그 분은 빈 들 예수가 되셔서 빈 들에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빈 들에서 드리는 감사절

올 추수감사절은 교회 건물 안에서 드리지 않을 생각이다.
모두가 떠나가고 비록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빈 들이지만,
빈 들로 오시는 그 분을 맞이하고 그 분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우리의 곡간은 비어 있고,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은 빚 때문이며,
자식들은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가지만,
오늘 우리의 들녘에는 가을햇살이 내리고 다시 새로운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새 희망을 뿌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다.

우리가 돈을 벌고, 집을 넓히고 높은 자리에 앉아 감사드리는 것처럼,
우리의 감사는 소유의 감사가 아니라
우리가 땀 흘려 일하고 거두어들인 곡식을 세상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길이며,
세상적으로 풍요롭게 누리지 못해도
빈들로 오신 주님을 믿는 우리가 마땅히 걸어 가야할 길임을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감사절기에 우리의 손과 발로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거룩한 농부의 일을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릴 것이다.
우리는 농부 하나님을 믿으며 농부로 살아 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처럼,
오늘도 들녘에 나아가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음에 감사 드리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빈 들에서 드리는 감사절 예배는
빈 들로 오시는 주님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채희동 목사 yoolmimom@hotmail.com
(이 기사는 2003년 가을호 <샘>에 실린 글입니다.)

흐르는 노래는 채희동 글,이천진 가락 [성령의 바람]입니다. 이세상 소풍길에 남기신 노래가 21C 찬송가 98.477장에 실려 있습니다  

[관련기사]

아 아, 채희동!
또다시 봄길을 생각하며 함께 걸었다!
예수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히 빈 들에서 오셔
故 채희동목사 추모모임 Photo 스케치 20장
[이찬석] 봄길 채희동 목사를 기리는 제1회 봄길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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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심 (220.86.138.210)
2008-11-18 16:29:37
친구 희동이의 길을 나도 묵묵히 따라 걸으려 하네...
몰라서 못가본 님의 4주기인데, 왠진 이토록 죄송 스러움이 밀려 오는지, 친구야, 감신 교정 거닐며, 고민하던 우리들 곁에서 늘상 빙그레 웃어주던 촌놈 순박한 친구의 모습이 새록 새록 돋아나네그려, 잘 나가는 사람 천지인 이땅에 뒤에서 친구들 등 떠밀며 니가 내 앞서 가거라 하는 희동이 너의 모습 이토록 그리워 진다. 한때 자네 친구로 그냥 지냈다는것만으로도 이렇게 훈훈해지네 그려 고맙네 ... 친구들 하고 조만간 자네 새끼들 사는 그곳 방문 해 볼걸세..서울서 희동이 친구 영식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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