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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채희동목사의 유고집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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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7월 20일 (수) 00:00:00 [조회수 : 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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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시작하는 말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2004년 불의의 사고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故 봄길1)

채희동목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18개월 동안 썼던 글들을 한데 모아 엮은 유고집이다.  이 책은「교회가 주는 물은 맑습니까?」「꽃망울이 터지니 하늘이 열리네」「걸레질하시는 예수」에 이어 발간된 것으로 詩와 함께 묵상의 길을 걸었던 봄길의 순례와 영성이 고요하면서도 힘찬 외침이 있는 길이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이 다양한 시인들이 던져 주는 깊은 상상력과 통찰력을 매개로 사람과 자연속에의 영성을, 일상속에서의 영성을 캐내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주제로 봄길의 깊은 영성을 정리하는 것이 무리가 있음을 느끼지만, 필자는 봄길의 친구로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것들을 중심을 “사람, 자연, 나눔”이라는 주제로 이 책을 더듬어 보려고 한다.    



II  사  람

창조론을 통하여 하느님을 창조자로, 인간을 피조물로 규정하면서 신과 인간 사이에 철저한 경계선을 긋는 기독교의 전통적 인간이해는 타락설과 원죄설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고, 종교개혁 전통을 지나면서 ‘타락한 죄인’으로 자리매김 되어지면서 희망적이기 보다는 절망적이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음을 강조하면서 창조의 꽃으로 이해하는 기독교는 인간이 피조물중에서 가장 월등한 존재로 규정되어져왔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나약한 죄인이지만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서는 위대한 존재가 되어서 자연은 인간의 동반자, 친구가 아닌 착취의 대상이 되었고, 비기독교인 제3세계인들은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왔다. 神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다른 피조물 앞에서는 王이 되려는 이중성이 전통적 기독교를 지배하는 인간이해 이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이 타자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차별화가 필요하다. 차별화의 과정속에서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은 위선과 가식으로 포장되어진다. 신과의 차별화 원칙을 타자와의 관계속에 적용시켜 사람과 사람사이 자연과 사람사이에 수직적인 질서를 창출한다.

그러나 봄길은 “우리 주님께서 하늘에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처럼, 모든 사람은 하늘에서 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38) 라고 말하면서 사람은 가명과 가식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과 사람을 차별하는 근거는 하늘(인간의 본래적 근원지)에 뿌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가명과 가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돈과 상품, 건물만 보이고 사람이 없습니다. 체제와 이념만 있고 사람이 없습니다. 국회위원, 사장, 노동자, 학자, 변호사, 의사, 성직자, 죄수, 노숙자, 연예인, 프로선수 등 수없이 많은 가명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 . 이처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씌우고 온갖 가명을 붙여서 사람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왜곡시키며 살아갑니다. (35쪽)

위장술에 능숙하고, 명함을 돌리면서 자신을 위장하고, 겉모습을 치장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현대인이라고 (160쪽) 봄길은 꼬집으면서, 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고 가식과 가명으로 포장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 앞에 봄길은 욕망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죽음과도 같은 욕망입니다. 온갖 더러움과 흠흉함과 질퍽한 꿈, 이 욕망이 사람 안에서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는 한 종교도, 구원도, 해방도 한낱 더러운 오물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181) 

 

오늘 사람이 사는 시대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복제인간을 만들고, 고구마 줄기에서 고추가 달리게 하고, 슈퍼 황소를 만듭니다. 오늘의 사람은 사람만큼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나라는 날마다 정복과 죽음과 패망이 있습니다. (180)

끝없는 욕망의 늪에 빠져 사람만큼만 사는 것을 거부하고 위장술에 능숙한 현대인들에게 봄길은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14)에 근거하여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실 때 한 사람으로 오셨으며, 장성하여서도 당신을 사람의 아들로 칭하셨으며,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36-7쪽) 그러나 이 땅의 교회들은 예수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만 주장하고 예수를 슈퍼맨이나 마술사, 초능력의 소유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저들에게 예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신적 존재일 뿐이라고 봄길은 비판한다.(38쪽)



III.  자  연


봄길의 눈에 사람과 달리 자연은 자연만큼 살아간다.

나무는 욕심이 없습니다. 늘 언제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우리를 반깁니다. 나무는 자기 전 존재를 온전히 그분, 자기를 창조하신 분께 맡깁니다. 인위적으로 자기 모습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욕심을 앞세워 남의 것을 취하지도 않고,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돌연변이를 만들지도 않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바람불면 바람 부는 대로 언제나 그분이 주신 삶을 살아갑니다.(177쪽)

나무 앞에서 봄길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싹둑 베어 버리는 사람들에게, 오고가는 길에 심심풀이로 나무 가지를 뚝 꺾어 버리는 사람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베어 버리는 만큼 베어지고, 꺾이는 만큼 꺾이는 나무에게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나무는 성스러운 존재로 오늘의 예수로, 성자로 승화되어진다.(180쪽)

나무를 넘어서 허물을 벗은 매미에게서도 성스러움을 느낀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봄길에게 이렇게 들린다. “맴!맴!맴! 내 욕망을 꾸짖으소서. 맴!맴!맴! 내 거짓 생각을 거두소서. 맴!맴!맴! 내 허물을 벗기소서. 그래서 당신과 하나 되게 하소서.”(60쪽)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함께 기어이 허물을 벗은 매미는 성자(聖子)로 보여진다.

허물을 벗자 매미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였으나 이 세상에 매이지 않는 하늘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에 연연해하지지도 않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싸우지도 않고, 너무 적어 속상해하지도 않고, 그래서 더 이상 피를 토하며 울부짖지 않아도 됩니다. 허물을 벗은 매미는 성자(聖子)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60쪽)



신발도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인 들풀을 보면서 봄길은 이렇게 고백한다. “높은 누마루에서 내려와 이름도 빛도 없이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들풀처럼 살다가, 들풀과도 같은 민초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를 외치다가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들풀처럼 살 수만 있다면........, 들풀이 될 수만 있다면.........”(172쪽)




IV 나  눔


“교회마저도 사람은 없고 표적과 기사만 있습니다. 성직자의 권위만 있고, 물질과 건물만 있습니다. 성장과 군림의 신학만이 있습니다.”(34쪽) 라고 봄길은 꼬집으면서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집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명예를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이기 때문에 ‘주시고의 기도’라고 이름을 짓는다.

이제부터 나의 기도는 ‘주시옵소서’의 기도에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모든 게 내 것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로 바뀌어야겠습니다. “교회도 내 것이 아니요, 책도 내 것이 아니요, 땅도 내 것이 아니요, 밥도 내 것이 아니요, 종달새 까마귀의 것이며, 다람쥐 메뚜기의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라고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93쪽)  

 

봄길은 예언자적인 소리를 낸다. “물신(物神) 맘몬을 섬기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혁명은 나눔뿐입니다. 내 것을 너와 나누는 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내 것을 너와 나누는 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나눔이었습니다.” (161쪽) 많은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풍요의 기적, 넘침의 기적으로 읽어가지만 봄길은 빈들에서의 살림의 기적으로 읽어간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황량한 빈 들에서 모두들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구나. 주님의 살림은 ‘빈 들 살림’이었구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들에서 주님은 그들을 살리신 것입니다. 차고 넘치는 밥상에서 살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외딴 곳 빈 들에서의 살림,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것 없이도 서로 나누며 서로를 살리는 살림이었습니다.(84쪽)

 

어느 숲에서 주머니에 상수리를 가득 모을 수 있었던 봄길은 상수리 나무에게 머리 숙여 이러한 인사를 한다. “상수리 나무님 귀한 열매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열매를 제게 주셨으니 이제 상수리 님과 저는 남이 아니라,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럼 나의 벗님, 안녕히 계십시오.“ (91쪽) 성장의 신화에 현혹된 사람들은 나눔보다는 축적이 생활화 되었지만, ”모든 생명체들은 자기 것이라 움켜잡지도 않고 모두의 것이라 내어 놓습니다. 밥과 물이 그러하고, 흙과 햇빛이 그러하며, 꽃과 나무가 그러하고, 하늘의 별과 달이 그러합니다.“(91쪽)

물질의 풍요가 은총이 아니고 신앙인의 진정한 은총은 가난함에 있다고 노래하는 봄길은 말한다. “

시냇가 버드나무는 흐르는 시냇물을 자기가 모두 독차지하려고 창고를 만들지 않습니다. 시냇물이 자유로이 흘러 모두의 것이 되게 합니다. 언덕 위에 핀 들꽃은 하늘의 햇빛을 자기만 받으려고 통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자기가 필요한 하루의 햇빛만 받고 나머지는 모든 들꽃이 골고루 받게 합니다.(71쪽)



V 나가는 말


‘살아 있는 것들은 성장한다’ 라는 명제를 진리로 삼고,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하면서 제3세계의 공동체와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나무, 시냇물, 들꽃으로부터 봄길이 길어 올린 영성에 밑줄을 긋고, 귀 기울이면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앞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돈을 들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그늘지고 병들고 가난한 뒷모습을 닦기 위해 교회의 얼굴 (앞모습)이 뭉개지고 더러워져도 기뻐해야 합니다”(12쪽) 라는 봄길의 예언자적 외침에 교회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봄길은 사람에게서 참다운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 . .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인류는 사람에 의해 망하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합니다. . . 우리의 희망은 바로 희망찬 어머니, 길이 되는 아버지, 좋은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사람 속에 우리의 희망이 시작됩니다.(52-3쪽)

“앞모습과 뒷모습이 서로 만나는”(14쪽) 사람에게 봄길은 희망을 읽어낸다. 가면을 벗고 사람만큼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봄길은 희망을 느낀다. 다른이를 먹이로만 여기지 않고 자신이 다른이의 먹이가 되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봄길은 희망을 본다.(기독교 사상 7월호에 실린 글을 저자 이찬석목사의 허락을 받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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