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걸 목사, 백석대 교수

채희동(1964-2004)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같이 일구어갈 아름다운 꿈 (1)

희동이,

채희동,

봄길 채희동 목사!

이 이름 앞에서 우리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 지경을 당했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 앞에서 우리는 아무런 글을 쓸 수 없는 처지를 당했습니다.

어떤 말로도, 어떤 글로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말이 끊어진 자리,

세상이 끝난 자리를 경험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이런저런 말과 행동을 했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그 어떤 수식의 글도, 그 어떤 행동도 그 환한 미소로 숨쉬는

희동이를 다시 데려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속 깊은 신음과 울음만이 겨우 우리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1주기를 맞이해 준비한 자리에서 우리는 또한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반쪽이 된 그의 부모, 그의 가족, 그의 아내, 그의 분신인 자녀들 앞에서 우리는

용기를 내어 서로 이런저런 위로와 사랑의 말을 주고받았지만, 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자리를 경험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의 가족 가운데,

우리 곁에 다시 살아 움직이는 희동이를 데려올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2

지금도 이 마음이 남아 있지만,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고,

숙고하고 또 숙고한 끝에 감히 용기를 내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어떤 자격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사실은, 저에게도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과

그 충격이 일년을 넘게 갔습니다. 머리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뒤틀려 보이고 마음 한 구석으로 절망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떠나지 않았습니다. 괜히 화가 나고 심술이 생겼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도 사랑과 희망의 마음으로 대해지지 않았습니다.

‘뭐 이래, 뭐 이런 게 다 있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계속하여 일어나며

세상만사를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떠나보내고 또 한편으로 경험한 것은,

일년을 넘게 꿈속에서 희동이를 만났습니다.

꿈속에서 너무 생생하게 찾아 왔습니다.

너무도 실제적으로 우리 가운데로 들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반가워서 그 꿈 내용을 기억하고 되살려서 글로 남겨보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희동이가 꿈속에 자주 찾아와 일상적인 일처럼 되자 그만두었습니다.

너무나 환한 모습으로, 희동이 특유의 그 밝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와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모임도 갖고, 축구도 하고, 여행도 하고, 진지한 대화도 하고….

꿈을 꾸면서도 제 생각이 ‘이건 꿈인데 너무 진짜같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꿈속의 세상에서 함께 지내면서도 ‘이건 부활한 희동이의

영체(고전 15장)인데’라고 깬 의식을 가지고, ‘너 살아있는 영체지’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참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희동이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든가, 생각을 하든가,

함께 지낸 장소를 지나든가 한 그날 밤이면 대개 그러했습니다.

한 친구는 그가 낮에는 땅 속에 누워 있고 밤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

돌아다니기에 바쁘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부활한 희동이의 살아있는 영체(靈體)입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그러하고, 실제로도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자본주의 물질문명 세상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物)’과 ‘상(相)’의 세계에 걸려서 그 안에서 허덕이며 살고(用) 있어서 그렇지,

그것을 넘어, 그리고 그것을 꿰뚫어 있는 영원한 생명의 본체(本體) 세계에

들어가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장벽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물상(物相)’의 세계와 ‘진체(眞體)’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 영원한 창조적인

사랑의 생명 안에서 삶과 죽음의 두 세계, 이승과 저승의 두 세계를 오가며 만나고

대화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낮에 눈을 뜨고 바쁘게 ‘물’과 ‘상’의 세계에 빠져서 마음이 산란할 때는

보이지 않고 만날 수 없던 영체가, 그래도 표면의식이 잠을 자고 그것을 넘어

고요한 참된 생명의 세계를 응시하는 또 다른 심연의식이 눈을 뜰 수 있는

꿈속에서 실제로 보다 더 쉽게 출현한다고 생각됩니다.

꿈속에서 만난 희동이의 또 다른 생명이 바로 희동이의 살아있는 본체이고

진체이고 영체이고 부활체(復活體)라고 확신합니다.

한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하나님 안에서 삶과 죽음이, 이승과 저승이, 여기와

거기가, 영원과 시간이, 우리와 희동이가 어찌 두 세계로 갈라져 있겠습니까.

3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픔니다.

아프니까 사랑이겠지요.

저는 우연찮게 희동이가 태어나 자란, 이 땅에서 그의 생명과 인격의 바탕과 방향이

틀 잡혀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그의 고향에 살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 그의 유족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람의 미래란 어찌 될지 모르기에 가능하다면 이때에 봄길 채희동 목사의 삶의

자취와 생각들, 생애와 사상, 삶과 신학, 그의 신앙과 아름다운 꿈들을 한번

복원하면서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은, 생전에 그와 같이 오르내리던 설화산에서 그의 고향집, 고향교회가 있는

마을에 오고가는 희동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서 떠오른 생각이기도 합니다.        

부활한 희동이의 영체와 함께 대화하며 그의 생명과 숨결을 역사화하고

문화화하고 시대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희동이가 희동이 안에

내가. 우리 안에 희동이가 희동이 안에 우리갗(요한 14장) 함께 숨쉬면서 같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일 것입니다. 영체의 세계와 문화(文化)의 세계가 둘이면서

또한 한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한생명’의 세계이겠지요. 참된 생명의

세계란 이승 사람만도 저승 사람만도 아닌, 한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참여하며 일구어내는 기쁨의 세계라고

느낍니다. 부디 부활한 희동이의 영체와 우리가 창조적인 사랑과

지혜를 교류하는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걷는 새로운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4

봄이 왔습니다.

죽음과 같이 차디찬 겨울을 이어 사랑과 생명의 노래가 가득 찬 새봄이 왔습니다.

아름다운 시혼을 지닌 봄길 채희동 목사는 새봄을 맞으며 우리에게 사랑스런

님이 되어 봄길을 걷자고 손짓합니다.

“그대는 이 봄날에 봄바람 가득한 봄길을 걸어보셨나요?

담장 위로 들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너풀너풀 춤이라도 추어보셨나요?

봄바람에 예쁜 꽃 입술로 유혹하는 이름 모를 봄꽃들과 입맞춤하며

사랑을 나누어 보았나요? 앞산 뒷산 아랫녘에서 윗녘까지 피어오르는

산꽃 한 아름 꺾어 사랑하는 님의 품에라도 안겨드리셨나요?   

봄이 왔습니다

사랑이 왔습니다  

언덕 위에 피어난

새싹들의 설레임처럼

내 사랑은 그렇게 왔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님이 왔습니다

봄 햇살에 터지는

꽃망울처럼

내 님은 그렇게

어여쁘게 왔습니다.

- 채희동

새봄이 왔습니다. 이 따스한 새봄에 그가 님이 되어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부활한 봄길 채희동 목사가 사랑스런 영체의 님으로 우리 가운데 다가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온갖 문명의 옷과 자본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보자. 살벌하고 잔인한 인간들의 삶의 방식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자연의 옷을 입어보자”고 미소 지으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새봄에 님을 맞아 ‘그 안에 우리가 우리 안에 그가 있어’ 함께 봄길을

걸어서 영원한 창조적인 사랑의 기쁨을 나누며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펼쳐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