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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도 서로 잘 모르면 대형교회"코이노니아, 충만한 기쁨…자기 개방이야말로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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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25일 (금) 00:00:00
최종편집 : 2019년 04월 09일 (화) 22:40:38 [조회수 : 4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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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서 1장 3~4절, 4장 16~21)

저는 지난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에덴기도원에서 최완택 목사께서 인도하시는 '민들레성서공동연구' 모임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20여 명의 젊은 목회자들이 함께 모인 이번 모임의 주제는 '코이노니아'였습니다. 코이노니아는 친교, 사귐, 교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교, 봉사, 교육과 함께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요한 1서 1:3)에 의하면 진정한 교회와 진정한 성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통하여 더불어 충만한 기쁨을 맛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 아버지와 친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이웃과 친교하여 우리 삶이 충만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의 관점에서 보면, 대형교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코이노니아, 곧 친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만나지도 못하며 서로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대형교회에서 친교란 불가능합니다.

성도간의 친교는 없고 조직과 조직이 만나고 형식과 형식만 존재하는 대형교회에는 나와 너의 진정한 친교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형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이들도 나 홀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만족하고 코이노니아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목사와 성도, 성도와 성도가 서로 긴말하게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작은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나와 이웃, 교회와 마을이 새로운 친교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더라도 서로 잘 알면 작은 교회이고, 아무리 교인이 적은 작은교회라도 서로 잘 모르면 대형교회"라는 최완택 목사님의 말씀은 지당하십니다.

작은 교회라도 서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친교를 이루기 위해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하고, 코이노니아가 살아 숨쉬는 작은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교통, 친교, 코이노니아만을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코이노니아를 이루기 위해서 신앙의 온 힘을 쏟아 붓습니다. 기도원에도 가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영적인 코이노니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하느님과 코이노니아를 갖는 사람은 자기 형제와도 코이노니아를 가져야 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교통하고 코이노니아를 이루었다고 하면서 자기 곁에 있는 이웃과 담을 쌓고 살거나, 식구와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느님과 영적으로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며, 교회 건물을 높이 짓고 과시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국교회는 이 세상, 곧 이웃과 코이노니아를 이루는데 실패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악마들이 사는 곳으로 치부하면서 자기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으며 천국 티켓을 따기에만 바쁜 이 땅의 교회들의 모습에서, 저는 저들이 하고 있는 하느님과의 영적인 코이노니아도 위선이요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느님과 코이노니아가 되는 사람은 이웃과 코이노니아가 되어야 하고, 하느님과 코이노니아가 되는 교회는 세상과 코이노니아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과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고 친교하면 하느님과 화해하고 친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과 코이노니아하는 사람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코이노니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내가 영적으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와 네가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 더불어 하나가 되는 코이노니아가 이루지면 너와 나 사이에는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교회와 마을이 서로 친교를 나누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코이노니아가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신앙인의 삶입니다. 코이노니아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먼저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빛은 나와 너 사이에 막힌 담을 투명하게 해 주지만 어둠은 서로를 볼 수 없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좇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요한1서 1:6-7)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빛이시기에 우리를 향하여 활짝 열려 있는 존재이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코이노니아(사귐)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당신을 개방해 놓으신 하느님은 우리와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빛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와 사귐을 원하시지만, 우리는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 식대로, 즉 자기 생각, 자기 원칙, 자기 잣대, 자기 욕심으로 사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코이노니아는 하느님도 속이고 자기 자신도 속이며 거짓과 위선의 코이노니아를 할 뿐입니다.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를 빛 가운데로 투명하게 열어 놓아야 합니다. 자기 개방성이야말로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합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이웃에게 열어놓을 때 코이노니아는 이루어집니다. 이런 참된 코이노니아를 통해 감화감동을 얻고, 우리의 죄는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빛 가운데 사는 성도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하느님을 섬기듯이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처럼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갈 5:13)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주인인 것처럼, 이웃을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고 서로 종노릇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코이노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가장 소중한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우리와 하나되시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 나눔으로써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자기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만찬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삶을 번제물로 들려지는 삶을 살 때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좋은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은 제물로서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을 번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하느님께나 이웃에게나 코이노니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웃과 불화가 생기고 서로 담을 쌓고 있다면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이웃을 찾아가 함께 음식을 나누며 화해하십시오. 그러면 코이노니아를 통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웃과 화해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의 영적 코이노니아도 온전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충만한 기쁨으로 언제나 가득 차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4.09.06/출처 뉴스엔조이

(위 내용은 최완택 목사님이 인도하는 '민들레성서공동연구' 모임에 다녀와서 정리한 것입니다)

 

샬롬!
이 사진은 지난 늦가을 저희 부부도 함께한 최완택목사님 회갑기념 모임을 마치고 다들 태백산에 올랐을 때 누군가가 찍은 휴대폰사진이 민들레게시판에 올랐길래 여기에 올립니다.

   
 
 
 
채희동목사와 몇몇이 열심히 최완택목사님 기념 문집을 만들었다가 된통 혼이 난 채희동목사였지만 언제 꾸중을 들었냐는듯이 즐거워했고 사실 산행 중 최완택목사님도 채희동을 특히 좋아하셨더랬죠.

저는 일전 목회를 접고 성탄절을 어찌 지낼까 하다가 집사람과 함께 겨울 지리산을 올랐습니다.
23일 오후 뱀사골로 올라서 매섭게 추운 밤에 뱀사골산장에서 10여명이 함께 잠을 자는 데 솔직히 나를 고소한 동대문교회 장로들과 교인들과 서기종목사와 송○○목사를 생각하느라고 한 숨도 못잤습니다.
그리도 추운 밤에 산장 밖에서 떨던 나는 채희동목사를 생각하면서 겨우 새벽녁에나마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산장을 떠날때부터 세차게 내린 눈은 산행을 힘들게는 했지만 반야봉을 오르내리고 임걸령을 지나 피아골 산장에 이르기까지 즐거움이었습니다.

다리도 풀리고 장비도 부족하고 옷도 흠뻑 젖어 얼어붙으니 더이상의 무리한 산행을 중지하고 피아골산장에서 둘이서만 오붓한 밤을 지냈습니다. 구례거쳐 남원거쳐 함양에서 인터넷되는 여괸에서 휴식 중 이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사실 저는 채희동목사를 잘 모릅니다. 다만 글로만 알뿐이지요. 한번도 가까이 차분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습니다.

더욱이 이진영전도사는 멀치감치 바라보기만 했을 뿐 아마 장례식장에서 처음 대면했지요.
그러나 채희동의 죽음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채희동목사야 말로 맑은 영혼의 진실한 목회자로써 멀지 않아 미래에 한국교회의 진보와 보수, 좌우를 아우를 영성적 인물로 그야말로 참된 교회 개혁의 기수로써 나아갈 인물로 내다 보였기 때문이었을 껍니다.

목요기도회 활동을 하면서 이리 부대끼고 저리 부대끼면서 채희동 같은 이가 대안이라고 여겼던거지요.

그리고 그는 훌쩍 떠나갔습니다. 돌아가셨지요.

시간나는 대로 이진영전도사를 만나보아야겟습니다.
채희동목사 추모사업을 위해서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굳이 슬픔을 드러내지는 않으시지만 채희동목사의 사부였던 최완택목사님의 채희동목사를 위한 바램의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

채희동목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 200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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