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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행복했던 친구가 봄길에게故 채희동목사를 추모하며...(박순웅, 전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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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1월 12일 (토) 00:00:00 [조회수 : 3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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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바쁘셔서 그리도 일찍 갔는가? 힘들면 쉬었다가 가지. 숨이나 돌리고 ........ 자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넋두리를 해본다네. 뭐 그리 바빠서.........
아니면 또 다른 뜻을 우리에게 전해 주려고 .......뒤늦게 더듬어 보니 행복을 전해 주려고 그러했나 보다. 하지만 그 행복을 받는 우리로써는 너무나도 큰 상처입니다. 봄길, 제 자신도 힘겨울 텐데..... 우리를 찾아와 위로하니 언젠가부터 이놈 위해서라도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한 해 동안 가끔씩 봄길 생각하며 이렇게 살아왔네요?

늦가을에 봄 길을 생각합니다.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저는 오늘 봄 길의 추모라기보다는 다시 태어난 봄 길의 “돐 잔캇를 함께 하려 합니다.
굳이 왜냐고 한다면 가끔씩 생전에 전화하고 찾아 온 것처럼, 그렇게 가끔씩 제게 다가온 친구이기 때문에 다시 갓 태어난 친구에게 첫돌의 잔치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것처럼, 제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기억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오듯, 슬픔이 깊어지면 반가움도 오듯이, 제게는 친구가 그렇게 슬픔 뒤에 행복으로 다가오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여보게 봄길!
밭에서 배추를 묶어 주다가 잠시 쉬었다네. 자네 생각을 좀 했지. 그러는 순간. 전봇대 전기 줄에 곤줄박이 새인지, 멧새인지 콩새인지 한 마리가 앉아서 노래를 부르더군. 몸집이 아주 작은 새이지만 온 대지와 우리의 밭에 공명을 일으키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던지 한 동안 넋을 잃고서 들었다네. 그러면서 문득 자네 생각이 나더구먼.
세상에 보잘 것 없는 듯 한 자네를 발품 삼아 아름다운 글과 삶으로 공명을 일으켰으니 그것도 베스트셀러가 아님 어떤가? 평범함으로 잔잔하게..... 마치 전기 줄의 새처럼 말일세. 과소평가 했다면 용서하게나. 새는 스스로 노래를 불렀을 거야. 그 부른 노래가 나에게까지 그리고 모든 보이지 않는 피조물에게까지 행복을 전한 것이지.

자네도 언제나 그러했지. 스스로의 정진과 수행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모든 이에게 기쁨을 준 것처럼 말일세. 자네는 사람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까지 보듬으려고 애썼음을 자네 보내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니 더더욱 그러 허더구먼. 고마운 새 한 마리가 자네 모습되어 나에게 와 같이 놀다 갔으니 참으로 행복하네.

한 동안은 설거지를 하면서 자네를 생각했네.
문득 자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글들이 생각났네.

언제나 안에만 깨끗하게 닦는 우리의 모습에 밖의 뒷모습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네. 자네가 예뻐했던 우리의 셋째, 넷째 아이들과 함께 설거지 할 때면, 자네 이야기를 한다네. “너희들 알지! 윤기 아빠 채 목사님이 그릇을 닦아 낼 때는 앞면과 무엇보다도 뒷면을 잘 닦아야 된데” 아이들은 정성껏 앞, 뒷면을 닦아 낸단다. 설거지 때면, 뒷면을 보이면서 “깨끗하지” 이야기하는 아이들 보면서 자네는 우리네 아이들의 어른이기도 했다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만 자랄 수 있다면 크나 큰 행복이라네. 살림살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잘 느끼게 해준 것도, 순간순간 다가 와 아이들과 함께 한 것에 참으로 행복하다네.

단풍이 곱게 물든 우리 동네에 있는 수타사 계곡을 걸었네. 자네도 몇 번 와 봤지 않았던가? 몇 년 뒤에 함께 살 자리도 같이 보았던 그곳.
우리의 아이들이 그러더군. “어 여기 율미 아빠와 윤기 율미 우리 모두가 갔었던 곳인데 그때 삼촌이 우리를 안아주고 그랬지 아빠!”라고 싱그럽게 이야기 할 때, 나는 얼굴을 약간 돌리고 반대편에 있는 먼 산만 바라보았다네. 좀 공허했지. 삶으로 보여주었던 자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큰 인상이었던 같네 그려. 어디 우리들의 아이들뿐이었겠는가?
그 짧은 순간 자네는 이미 아이들에게까지 아름다운 심성을 주고 간 듯싶네. 한 시간 넘게 산과 하늘 속에 웃는 자네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네.
곱게ㅡ 물든 산에 투명하게 찾아 온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네.

오늘도 가을걷이에 바쁜 농부님들을 보면 자네가 생각이 난다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목사가 되어 농사꾼처럼 살지 못함에 부끄러워 대신 농부님들의 이야기를 썼지. 세상에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찾아 삶의 이야기를 전해준 발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또 다른 농사꾼의 모습을 보여준 거여. 작은 소수인들 이겠지만, 너의 농사꾼 같은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이 흔들릴 때마다 튼튼하게 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네. 자네의 그 씨앗과 열매들은 헛되지 않을 것이야. 그래서 행복하다네.

우리 아내가 옆에서 그런다. “나 잘 가서 잘 지내니. 니들이나 잘 먹고 잘 살라고.......”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자네가 그립구만. 우리 아내라고 자네가 안 그립겠는가? 그냥 하는 소리지 아마도 나보다 더 그리워 할 걸세. 그러니 이 또한 행복한 것 아닌가?

그런 거 보면 예전 경철이 형 보내고, 형의 글 한 묶음 엮어서 찾아와 이야기하길, 유고집 출판을 하려고 하는데 형이 그러더라, “어이 동생 뭐 그런 거 하려고 그런 라는 소리에 한 동안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랐던 자네의 모습이 떠오르네 그려. 가끔씩 찾아오는 자네도 어쩜 그렇게 똑같이 그러는가? 뭐 그렇지 우리들의 모습이, 우리 동네의 어르신 말씀처럼, “늘 그 밥에 그 나물이지” 그래도 우리 주위의 이러한 사람들과 살아가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며 기쁘다고 여겨진다네. 자네 보내고 나니 자네도 비슷한 소리를 나한테 하지만, 자네도 그렇게 살아 온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좋아서 이렇게 한다네. 너무 뭐라 하지 말게나. 우리 뒤 누군가도 이렇게 슬퍼하고 기뻐한다면 이런 것은 좋을 듯싶으이. 재밌고 즐겁지 않은가? 눈물겹게 말 일세.

너 죽고 난 토요일 오후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주일 예배 후, 강단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줄 줄 줄 흘렸지. 그렇게 한 참 시간이 지났을 때, 왜 우리교회 농사부장이신 자네도 아는 엄 집사님 있잖은가? 그분이 그러시더군. “친구가 갔으니 얼마나 맘이 아프실까?” 하시며 백발 노인장께서 자네를 생각하며 나를 위로하시더군. 그게 어제 같은 일인데...............
그때는 자네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는데 막상 현실에 다시 돌아오니 그저 한 나약한 사람일세 그려.

우리의 현실이란 이런 것일세.

언젠가 자네 아내와 아이들이 왔을 때, 자네 아내가 그러더구먼.
이제 윤기가 커서 목욕탕엘 아이와 같이 갈 수 없다고, 성별이 달라서....
가슴이 짠해 지 더 구만. 미안함도 들고.
해서, 우리의 친구인 강승욱의 아이들과 우리의 식구들과 함께 홍천 온천엘 갔지. 두 시간 윤기와 함께 두 친구가 잠시 자네 노릇을 했다네.
그 정도 밖에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네.
그저 우리 집과 승욱이 집엘 오면, 무조건 홍천 온천에 가서 목욕하며 물놀이 하는 거지. 윤기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행복하다네.
욕탕 안에서 가끔 슬픔이 물 밀 듯 밀려오면, 대가리 욕탕의 물속에 쳐 박고 한 참 동안 소리 없이 있다가 나온다네. 눈에 실핏줄이 시뻘겋게 보일 때도 있지. 자네가 없어서 그렇겠지. 그래도 어쩌겠나, 좀 지나고 나면 괜찮아 진다네. 잠시지만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과 윤기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네 그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서로를 보듬어 안아가며 살아간다네. 그렇게 몇 번 보낸 시간도 행복하였다네.

자네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갔다네.
우리네가 살고 있는 농촌의 기쁨과 슬픔, 애환과 위로, 농촌뿐만 아니라 농촌교회의 모습을 청사진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를 보여주었다네. 나는 언제나 자네의 그러한 것을 현장에서 교우들과 함께 나누었지.

그래 그러구 보니 이런 것도 생각나네.

자네가 죽기 전에 함께 했던 큰 행사, W.C.C 주최인 “지구 대안 농업 포럼” 생각 날 거야. 원주의 소설가 박경리씨가 거하는 토지 문학관 넒은 잔디밭에서 몇몇 농목의 동지들과 예굿이라는 사물놀이 팀이 함께 했던 개회 예배준비. 실제로 강당에서의 개회 예배 때 메시지를 우리는 연극으로 표현했지. 농촌의 아픔과 슬픔을, 그때, 자네는 십자가를 지면서 이렇게 외쳤지.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이 농촌을 버리시나이까?” 어데 농촌만 이었겠는가? 당신의 자비로부터 함께해야 할 곳은 모두 포함 되었지!

자네가 가고 난,
올 4월에 농업을 대표하는 세계 30여개 나라 사람들 40여명이 원주에 모여서 국제 행사가 있었다네. 자네가 만들어 놓은 예배문을 가지고 외국인, 내국인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개회 예배를 보았지. 사회를 보아가며 함께 했을 때, 자네 생각이 나서 몸과 마음이 울컥 했다네. 우리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자네가 다듬어서 세계에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고 흥겹게 걸 지게 예배로 한 판 놀 수 있다는 것에 모두가 감격을 했다네. 자네도 봤으리라 믿고 싶다네. 예배 후 홀로 앉아서 자네의 얼굴을 떠올리니 감개무량하더구먼. 서로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네.

그 후로는 가끔씩 자네로 인해서 홍천은 행복했단다.

올 여름에는 자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 번 모이자고 해서, 마치 자네가 온다 생각하는 마음처럼 들떠서, 승욱이와 함께 이른 아침에 개 한 마리를 잡았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백성을 먹이 듯, 거룩하게 각을 뜨고, 내장을 청소해 깨끗하게 다듬은 것을 한 솥 삶아 열 대 여섯 명이서 잔치를 벌렸다. 이제는 뻔뻔하게도 공식적으로 자네 이름을 가지고 잔치를 치르면서 행복하게 보낸다네. 살아 있을 때 함께 더 기쁨을 나누지 못해 미안하구먼.

그렇게 자네도 가끔씩 우리를 찾아 왔지.

가을 “호박이 덩굴째 들고 나네요“라는 제목으로 동네 분들과 재밌게 놀았다네. 주일 국악 찬양의 예배도 자네가 만들어 놓은 예배의 틀 거리로 함께 했지. 자네가 좋아했던 이현주 목사께서 한 몸을 이야기해주실 때,
자네도 이미 우리 곁에 있음을 알았다네. 한 몸이기에.......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교우들, 우리의 친한 친구들 광식, 찬석, 청구, 재성, 승욱, 너를 아끼는 영동 형님,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과 아이들 모두는 한 몸인 것을 알았단다. 그래서 큰 위로가 되었지. 자네가 있기에 우리의 예배도 기쁨도 나눔도 음악과 함께 춤도 모두 한 몸이었고 그야말로 행복 자체 이었다네.

이제 1주기 혹은 첫 돌을 맞이하여 여기 그대를 사랑하고 좋아해 혹은 슬픔도 위로하고 함께 하고자 이렇게 모였다네. 그대로 인해서 더더욱 이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행복하길 빌어 마지않는 다네 그려. 자네도 언제나 지켜 봐주게나.

가장 힘겨워하시는 자네의 어머님 아버님께는 뭐라 할 말이 없다네. 그 무엇으로 빈 마음을 채울 수 있겠는가? 그저 부모님께는 자네나 나나 우리의 친구들이나 미안함뿐이라네. 시간이 해결해줄 듯싶으이.

그럼
가끔씩 찾아오고 찾아가 언제나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만나세.

2005년 11월 10일 자네로 인해서 무지무지 행복했던 시간을 보낸 친구가 봄 길에게.

‘저도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우쳐 주신 채희동목사님 

   

                                                                                                                                전월순

‘걸레질 하시는 예수’라는 책을 만나게 된 지난봄은 저에게 가장 찬란하고 화사했으며 특별한 봄 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4월12일 한동안 멀리하였던 신앙서적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답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펼쳐든 책은 저의 마음을 걸레질 하라고 보내주신 성령의 바람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단어 하나, 글자 하나가 은혜였으며,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쁨으로, 힘으로, 위안으로 오랫동안 무거운 짐이 되어왔던 신앙의 문제가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어서어서 와서 성령의 불을 받으라’는 부흥집회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기도집회에서, 무수한 군중들에게 쏟아내는 이름난 목사님의 알 수없는 웅변같은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한권의 책! 바로 한권의 책과 함께 목사님이 저에게 오셨고, 혼자 오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함께 오셨음을 깨달으며 믿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거듭거듭.....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산하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전국방방곡곡 파헤치고 들쑤시는 공사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져 미소를 짓게 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싱그러운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거닐 때 느끼는 감촉이 왜 그리 부드러운지, 또한 더 없이 행복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이 왜 소중한지, 밥이 무엇인지, 흙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습니다.
살아있으므로 숨을 쉬고 마시고 배설하는, 그저 살아있으므로 하게 되는, 해야 하는 기본적인 그런 것들에 밑줄을 그어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저는 만나는 분들에게 “저 요즘 은혜 받고 있습니다!” 라고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미 이 땅에서의 소풍놀이를 마치셨더군요.
말없이 준비 없이 조용히 마치시고 떠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어찌 말로나 글로 쏟아 낼 수 있을까요?

목사님의 자취를 찾아다니다 ‘봄걷사’를 알게 되었고
매일 화면을 통해 함께 걷는 님들과 지내게 되었으며 오늘, 지금 이 자리에까지 와 있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한 몸 같이 여기셨을 가족이나, 여기 모이신 많은 분들의 애통함 앞에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어쩌면 옷깃도 한 번 스쳐지나가는 일이 없었을지 모르는 제가 갖는 슬픔을 내놓을 자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와 함께 걷고 있는 목사님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렵니다.

아침을 여는 새벽의 깨끗하고 신선한 기운 속에 함께 계시고,
들꽃의 꽃망울을 재촉하는 햇살과 봄기운 속에 함께 계시고,
봄과 여름을 견뎌 가을을 익게 하는 성령의 바람처럼 넉넉하고 깊이 있는 가을 바람 속에 계시고,
새 봄을 준비하는 겨울 들녘에 계심을 저는 느끼겠습니다.

저의 맘 속 깊은 곳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시냇물이 되어, 제 앞에 아니 우리들 모두 앞에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안내자가 되시고 계심을 알겠습니다.
소망하건데,
부디 목사님의 이 땅에서의 자취를 저와 같이 만나는 이들이 많아져,
봄길을 걷는 길동무들이 무리가 되어, 계신 곳에서도 외롭지 않으시고
환희의 나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2005.11.10.
봄길을 걷는 사람들....... 전월순




추모사를 준비해 달라는 이찬석목사님의 연락을 받고
놀랐습니다.

당치 않은 일이라 생각되어 못 하겠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처음 마음을 되새길 겸 정리를 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글은
저의 느낌 그대로 입니다.
준비를 하면서,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고,
더 알아야 할 부분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꽃 교회에 가서
큰 것을 받아왔는데,
부지런히 몸으로 보여주라는 것 이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씩
고쳐나가도록 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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