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니 눈발이 날린다. 이번 눈은 솜털처럼 가볍다. 차 보닛에 살짝 쌓인 눈을 쓸어내리니 보기에는 솜털과 같았는데 실상은 좀 무거웠다. 습을 먹은 것이라 그런지 살얼음까지 끼었다. 빗자루에 엉겨붙은 눈이 떨어지지 않아 힘껏 내리치자 겨우 떨어져 나

황은경   2021-01-14

새벽녘이면 나의 눈은 저절로 보일러 온도를 살핀다. 요즘 같은 추위에는 어김없이 15도라는 숫자가 찍힌다. 그래도 이 정도면 참을만하다. 처음 음성에 내려와서 몇 해 동안은 시골집에 대한 단열과 보온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때라 방안에서조차 입김이 허옇

황은경   2021-01-06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다사다난 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올 한 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로 시작하여 또 그렇게 마칠 준비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얼음으로 만들었다. 시대마다 전염병을 통한 팬

황은경   2020-12-31

주님이 오신 날, 성탄절이다.예년 같으면 거리에서나 가게에서나 교회에서 성탄을 기다리는 모습들이 여러 방식으로 보였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내가 사는 음성만 봐도 성탄 분위기를 찾기 쉽지 않다. 근 한 달 이상, 12월이면 해마다 늘 울려퍼지던 캐렬

황은경   2020-12-23

요즘 만나는 사람과의 첫 인사말은 "벌써 11월이다."로 시작한다. 인사가 끝나면 곧바로 이제 곧 크리스마스를 맞겠다는 말로 시간의 발 빠름을 아쉬워한다. 우스갯소리로 세월은 사람의 나이에 맞게 간다고 한다. 10대는 시속 10킬로, 20대는 시속 2

황은경   2020-11-05

일반적으로 밭의 작물은 90일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3월 중하순의 감자는 6월 하지를 전후로 캐어 먹는다. 4월에 심은 대부분의 먹거리는 6월부터 부지런히 먹을 수 있다. 고구마도 추석 전후로 하여 겨우내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구황작물이다. 들깨와

황은경   2020-10-22

어, 가을이네! 했던 물음이 하루 이틀 사이 그 깊이가 뚜렷해지고 있다. 자연은 소리소문 없이 빨강 노랑 물감으로 색을 입었는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그 색감이 짙어지고 있다. 덧입혀지는 속도는 화가의 손놀림보다 빨라 보인다. 2년 전 생태 조성으로 산을

황은경   2020-10-14

요즘 먹방이 대세다.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채널을 돌리다보면 서너 개 중 한두 개가 먹는 방송이다. 일인 요리사가 요리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담아내는 경우도 있고, 여러 명의 요리사가 함께 요리한 음식을 초대한 연예인에게 대접하는 방송도 있고, 유명한

황은경   2020-10-09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는가! 음력은 아직 8월 초순인데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기온은 10월 늦가을과 같은 차가운 기운이다. 어느새 방바닥은 두터운 매트를 필요로 한다. 밤마다 걷어차던 이불은 온몸을 감싸줘야 잠이 올 정도다. 내가 느끼는 계절의 변화가

황은경   2020-09-23

하늘이 맑다. 파란 하늘과 흰색 구름의 조화가 참 예쁘다. 여름의 끝을 지나 가을의 초입에 서서 요즘 하늘 보는 것이 즐겁다. 이런 날씨의 호사는 농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긴 장맛비에 결실의 속도는 더디게 가도 들녘은 어느새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황은경   2020-09-16

계절이 수상하다. 8월 말까지 비와 폭염과 습도가 번갈아가며 괴롭히더니 9월 첫 날, 아침 기온이 스산하다. 에어컨이나 선풍기와 같은 시원한 바람이 없으면 잠을 못 청했는데, 정말 하루 사이에 언제 더웠었나? 싶을 정도다. 새벽녘엔 찬 기운 때문에 걷

황은경   2020-09-09

지난 4월 시작한 논농사가 수확의 시기로 다가가면서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동으로 짓는 논은 차를 타거나 산책을 하면서 두 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논의 상황을 살피는 것은 별반 어렵지 않다. 그리고 6월 초에 방생한

황은경   2020-09-02

긴 장마가 걷히고 폭염이 찾아왔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하여 움직이는거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에어컨은 돈 먹는 하마라 정말 참다참다 더이상 못참게 되거나 아니면 여럿이 있을 때 잠깐, 냉방온도는 거의 바깥 온도와 준하게 27도에서 28도를 맞춰

황은경   2020-08-25

벚꽃이 피기 전, 수린내 마을의 고양이들에게 알 수 없는 병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일년 정도 잘 크던 냥이들이 꽤 많이 나의 곁을 떠났다. 어린 냥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낳는 즉시 무지개다리를 넘었다. 코로나가 한창 돌기 시작하던 때라 혹시 고양이들에

황은경   2020-08-20

요즘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고 그리운 것이 있다. 햇빛이다. 해를 못본지 어언 50일 정도 되어가니 없던 우울감이 솟구쳐 오르려 한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어쩌다 더위를 시켜줄 소낙비가 그립겠지만 올해같이 줄기장창,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

황은경   2020-08-13

올 여름은 백만년 만의 불볕더위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오십 평생 없던 에어컨을 큰 맘 먹고 동생을 어르고 달래서 중고로 설치했다. 올해는 이 에어컨 바람으로 나도 천국을 맛보겠거니 하는 기대가, 웬걸? 아직도 견딜만하다. 견딜 뿐이겠는가. 가끔은

황은경   2020-08-05

지금은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시대다. 집집마다 별의별 애완동물을 키운다고 하는데 그중에 가장 흔한 것은 개나 고양이가 될 것이다. 우리 마을도 집집마다 개를 한 마리 이상씩 키운다. 하얀 백구는 기본이다. 앞집은 무려 네 마리나 키운다. 옆집은 말티즈

황은경   2020-07-30

장마철이다. 띄엄띄엄 내리는 비이지만 한 번 내렸다하면 폭포수를 이루니 집 주위가 온통 물로 흥건하다. 그러다보니 땅을 밟을 때마다 물을 머금은 흙은 힘없이 패이기 일쑤다. 더군다나 집 자체도 흙집이라 여름날 시원한 맛은 있지만, 습기는 잡지 못하여

황은경   2020-07-20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고향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학업으로, 생계로, 결혼으로, 기타 다른 이유로 고향을

황은경   2020-07-15

어느덧 올해의 반이 훌쩍 넘어갔다. 하반기와 한여름의 시작 속에 서 있다. 이맘때면 여름 과일이 나올 때다. 여름의 대표적 과일을 꼽으라 하면 우선 복숭아다. 더욱이 음성과 내가 사는 마을은 복숭아가 다반이다. 오죽하면 ‘햇사래’라는 복숭아 브랜드가

황은경   2020-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