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고 그리운 것이 있다. 햇빛이다. 해를 못본지 어언 50일 정도 되어가니 없던 우울감이 솟구쳐 오르려 한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어쩌다 더위를 시켜줄 소낙비가 그립겠지만 올해같이 줄기장창,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 하늘이 검게 내려앉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거려진다. 예상치 못한 비로 전국 곳곳에 수해 피해가 이만저만 아닌 상황이라 뻥뻥 뚫려 대책없이 내리는 비를 향해 이런 표현도 서슴지 않게 된다. 오메! 징글징글하다.

동요가 생각난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해가 얼마나 그리우면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려질까! 이 노래의 앞소절도 덩달아 떠오른다. “쨍 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노래를 못하는 나이지만 이런 노래는 쉼없이 내리는 비를 향해 소리높여 언제든지 부를 수 있다. 지금도 밖에는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당은 이미 빗물에 곤죽이 되어 발을 디딜때마다 푹푹 빠지기 일쑤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장마철에 좋은 신발, 예쁜 신발을 신을 수가 없다. 하얀 고무신이나 검정 고무신 한 짝이면 한여름을 날 수 있고, 털실 한 짝이면 한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이 농촌이다. 봄과 가을은? 봄은 닳아진 겨울 털신을 잠시 끌고 다니면 되고, 가을은 찢어진 고무신을 유야무야 신고 다니면 1년 365일, 사계절이 지난다. 멋도 해가 나야 꾸밀 수 있다.

이번 비로 집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난주에 썼다시피 비가 걷히고 해가 나고 흙이 얼추 마르게 되면 일종의 토목공사를 해야 한다. 무너져 내린 밭비탈에 임시방편으로 시퍼런 천막을 덮어놓았지만, 그것을 치우고 자루에 흙을 담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처음 이곳에 내려와 첫 논농사를 지을 때 비가 한바탕 쓸고 갔다. 그때는 논둑이 무너졌다. 그것을 복구하는데 소속교회 목사님과 교회 집사님 그리고 나는 하루 온종일 걸렸다. 자루 하나에 흙을 담아 쌓기를 서너번 했더니 완전 녹초가 되어 거친 언어가 저절로 나왔다. 삼박 사일 끙끙거리며 허리를 부여잡고 다녔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그런 작업을 이제 조금 있으면 다시 해야 한다. 이전에는 함께 할 사람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엔 고스란히 누구의 몫이겠는가! 오고가며 그곳을 바라볼 때마다 온통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린다. 언제 할 것인지 누구와 할 것인지도 숙제 중에 하나다. 몇 년 전만 해도 농촌농활도 쏠찮게 왔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다.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저러나 햇님이 방긋 웃어줘야 이 모든 것도 가능한 일이다.

집 주변과 밭 그리고 보이는 모든 곳은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를 이기는 생명은 없다. 하기야 사람의 편에서 잡초이지 자연 안에서는 모두 같은 생명체가 아니던가. 그래도 나의 작물들은 비와 풀 속에 잠겨 하염없이 농부를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비록 양아치 농부라 할지라도 작물들은 자신을 덮고 있는 풀들로부터 해방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오늘 내일 비가 그치면 풀들과 전쟁 선포를 하겠노라 여러번 파발을 보냈지만 파발은 가는 도중 갈취를 당했거나 분실이 되어 지금까지 휴전 중이다. 아니, 일방적으로 밀리는 태세다. 며칠 전 기사에 상추가 금값이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 할지라도 몇날 몇일 내리는 비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작물이 녹아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이 딱 그렇다. 집 앞에 심은 이웃집의 참깨는 깨가 토실토실 잘 맺혔는데 지금 내리는 비로 까맣게 녹아내리고 있다. 밭의 콩은 웃자라기만 하지 콩이 맺히지 않고 있다. 논의 벼도 쑥쑥 키만 컸지 낟알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는 자람새를 멈추고 썩어가고 있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여름철 과일 복숭아는 비를 맞고 뚝뚝 떨어지거나 성한 것을 딴다 해도 더운 습도에 쉽게 무르거나 곰팡이가 슬어 상품성이 없다.

이 모든 것이 과유불급에서 일어난 일이다. 차라리 모자란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는 게 농사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이번의 과유불급은 자연의 범주다. 예상도 못했고, 예고도 없었던 처지라 자연의 과유불급은 더 쓰라리다. 인간의 힘으로 손을 쓸 수 없으니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 앞에 선 우리의 자세다. 엄밀히 따진다면 지금과 같은 기후이변은 매체를 통해 느끼는 것이지만 고스란히 인간의 역사 100년 안에서 일어난 결과다. 아니, 2차 대전 이후 혹은 70년대 이후 고속도로 개발된 전 세계의 움직임이었으니 70년의 인간의 욕망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잠시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뉴스만 들어도 느끼듯이,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연의 정화와 회복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참에 지구 앞에, 자연 앞에, 그리고 우리에게 보시기에 좋은 삶의 터전을 주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해야 한다. 자연의 과유불급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대로 멈춰라” “잠시 쉬어라”는 하늘의 음성으로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