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기 전, 수린내 마을의 고양이들에게 알 수 없는 병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일년 정도 잘 크던 냥이들이 꽤 많이 나의 곁을 떠났다. 어린 냥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낳는 즉시 무지개다리를 넘었다. 코로나가 한창 돌기 시작하던 때라 혹시 고양이들에게도? 생각했지만 특별한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이유를 찾을라치면 오랫동안 고양이를 돌봐온 내 추측으론 근친 교배가 병의 이유라고 생각되었다.

처음 닭장 옆에 들어와 눈빛을 교환했던 첫 냥들은 엄청 튼튼하고 잘 자랐다. 먹기를 탐하고 놀기를 좋아하고 오지랖도 넓었던 터였고 이때까지만 해도 우성이 그럭저럭 있었다. 그러다가 삼대를 거치면서 주위에는 엄마, 아빠, 형제자매, 사촌 등의 혈육이 어울리면서 짝짓기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모두 비리비리해졌다. 몸도 작고 힘도 없고 병도 잘 걸렸다. 그러다보니 어미냥들도 약한 자식들은 주저없이 버렸다. 서로 정이 많이 붙었다싶은 어미냥들은 죽어가는 냥이들은 수돗가 앞에 갖다 놓기 일쑤였다. 그렇게 내 눈에 띄어 묻어준 냥이만도 근 오십여 마리는 될 것이다. 그래서 내 집 주변은 온통 냥이들 묘지다. 하도 묻어놔서 어디에 누가 묻혔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며칠 전에도 두 마리를 뒤안에 묻어주었다. 삼색이는 비오는 날 앞집 풀숲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더니 병을 얻고 마지막 날에는 나에게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그리고 사월이는 한동안 안보여 태어날 때부터 워낙 약해 스스로 떠나서 죽었거니 했는데 예초기를 치우는 중에 마당 한구석에서 발견됐다. 이미 구더기가 사체에 가득했다. 차마 묻지는 못하고 밭 근처의 풀숲에 넣어주었다. 이런 경우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고양이들은 직감적으로 안다. 냥이 중 몸이 약하거나 병이 있으면 곁을 주지 않는다. 근처엔 얼씬도 안한다. 그런 것을 보면 동물들이 참 매정하다는 것을 느낀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확실해 보인다. 그 중에 오월이는 행운 냥이다. 오월이도 오늘 내일 하였지만 특별히 내 눈에 띄어 집안에 들여와 보살핌을 받았다. 앞집에서 얻은 해열제와 항생제를 며칠 먹고 나니 회복이 되어 지금은 잘 뛰어 놀고 있다. 다시 태어난 기쁨이 큰 것일까? 그 어느 냥이보다 더 활달하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은 다반사고, 여기저기 안가는 곳이 없다. 특히 내 방에서 며칠 지낸 향수가 있는지 틈만 나면 호시탐탐 집안에 들어올 궁리를 한다. 이렇게 나의 손에 붙들린 녀석들은 그나마 낫다. 나의 보살핌이 조금이라도 있는 생명은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반복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법칙에 순순히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뻔했던 냥이의 개체수가 이런 식으로 조절이 되면서 이제는 더이상 냥이들에게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속끓이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운행해주니 말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연의 법칙은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런데…
자연의 법칙에도 예외는 있는 법이다.
삼색이와 사월이를 묻어주고 난 뒤 예외를 발견하곤 기암을 했다. 글쎄, 닭모이를 주려 닭장에 갔다가 거기서 여덟 마리의 어린 냥이들을 봤다. 정말 헐(;;;)이었다. 투와 대추가 낳은 냥들이었다. 공동 육아로 어찌나 잘 키워놨던지 모두 토실토실하다. 그리고 또 코제트가 낳은 냥이들이 네 마리였다. 또.... 또 있다. 이번엔 공리가 낳은 두 마리다. 총 열네 마리가 나와 상의없이 태어나 키워졌다. 햐! 모두들 고만고만하다. 어떤 녀석은 깨끗하고 건강하게 자란 녀석이 있었고, 어떤 녀석들은 눈꼽이 덕지덕지 끼여 나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모두 후다닥 숨어버렸다. 게다가 에미냥이들이 어딘가에서 돌진하여 내 옆에 오더니 하악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허참! 내가 뭐 어쨌다고.

뭐, 할 말이 없다. 그냥 포기다. 니들이 알아서 살라고 했다. 어쩐지 근자에 들어 투와 대추와 코제트와 공리가 열심히 밥을 먹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에 대한 모성애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임을 보며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런면에서 혼자인 나보다 녀석들이 훨씬 나아보이기도 한다. 어떤 때는 말한다. “니들이 나보다 인생 선배다.”

그렇지만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무슨 냥이 탁아소도 아니요, 보육원도 아닌데 녀석들이 갈수록 태산이다. 다시 한번 그들의 양육강식 법칙을 기다려야 할까? 영역이 좁으면 알아서 떠나기도 하는데 이번에 그것도 기대해볼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 많은 중에 암컷은 10분의 1이나 2 정도 된다는 거다.

어찌됐든 이 긴 장마철에 뽀송뽀송하게 키워낸 것을 보면 대견하긴 하다. 그 모든 수고를 에미냥들만 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어여쁘다. 어디건 아빠냥들은 밉상맞게 빈둥거리기만 한다. 한량도 그런 한량이 없다. 그래서 종종 내게 볼기짝을 맞곤 한다. 밥값을 하라고.

지나가던 객이 천막을 내달라는 꼴로 비집고 들어와 살더니 이젠 어엿한 가족으로 수년째 나의 집 마당을 지키고 있다. 그 덕에 내 본래의 집냥이는 영역을 빼앗겨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서 후덕한 할매냥이 되어가고 있다. 주객전도다.

오늘도 문을 열면 쪼르륵 달려오는 녀석들 앞에 난 온순한 집사가 된다. 밥을 주며 노래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대와 나! 있는 동안 어울려 즐거이 지내자구나. 아이구야! 나는 서른 냥들의 집사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