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고향에 사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학업으로, 생계로, 결혼으로, 기타 다른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향은 누구에게나 늘 그리움의 시‧공간이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사자성어가 회자되는 것처럼,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은 원초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고향에 대한 심리일 것이다.

나도 고향에 대한 기억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학창 시절 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고향 땅에 살 때 형편이 꽤나 어려웠다. 아버지는 날품팔이를 하셨고, 엄마는 리어카로 물건을 싣고 돌아다니시며 행상을 하셨다. 그리고 농사도 지으셨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치열한 삶의 현장에 계셨고, 어린 나는 그 진실을 잘 몰랐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두 분을 회상하면서 나의 부모님이 얼마나 힘겹게 사셨는가를 깨달았다. 모든 부모님이 그렇듯이 사시는 동안에는 자식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시려고 애쓰셨던 것이다. 그 모습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고, 때늦은 후회는 지금도 간간히 마음을 적시곤 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고향을 밟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보면 나도 참 모진 성격이다. 물론 나의 가족과 친척 모두가 이후 타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기에 내 발걸음이 성큼 내키지 않은 것도 한 몫 한다. 그런 연유로 농촌선교를 결단하고 찾은 곳도 고향 제천이 아닌 그 옆에 있는 음성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뒤끝을 이기는가보다.

얼마 전 동생의 일로 제천을 다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친구를 만나러 고향 언저리에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고향 한복판에 들어서며 고향을 추억한 것은 처음이었다. 삼십 년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세 번 바뀐 모습이 완연했다. 초등학교 때 살았던 교동도 그렇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났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놀이터였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10만이란 인구가 1980년대 이후 썩 늘어나지 않았을텐데, 아파트와 상가는 어찌나 많이 밀집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때의 번화가는 죽었고, 굴다리 너머의 논밭이었던 곳이 엄청 개발이 되어 있었다. 동생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곳이 어디였고, 저곳이 어디였는가가 주된 화제거리였다. 그나마 동생은 그의 친구들이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고향 왕래가 훨씬 잦았다. 변한 동네들을 하나씩 듣는 것도 재미이기도 했다.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제천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점이었는데 코로나19 여파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사회적 거리 두기로 편안하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참 맛있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중인데 식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나의 귀에 익숙하게 전해왔다. 먹던 속도를 줄이며 노래를 들었다. 어머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였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앞부분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뒷부분이 강렬하게 귀에 박혔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오 오 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그 날이여.

밥을 먹다가 갑자기 감상에 젖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이선희의 노래를 삼십년이 지난 지금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그 사이에서 파도치며 흘러왔던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이 언제 끝날까 마음 졸이며 보냈던 시간들이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방울방울 하나의 추억이 되어 그리움의 열매로 맺어있다. 삶에 여유가 묻어나고, 가슴 한구석 성장 중에 상처였던 것들에 새 살이 돋고, 좋고 나쁜 것에 대한 분명함이 흐려질 때가 되니 가기 싫다던 그 고향도 당분간은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나의 역사 찾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다시 온다고 해도 가려고 하지 않겠지만,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겠지만, 부모님과 고향 친구들과는 한번쯤 실컷 놀다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