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먹방이 대세다.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채널을 돌리다보면 서너 개 중 한두 개가 먹는 방송이다. 일인 요리사가 요리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담아내는 경우도 있고, 여러 명의 요리사가 함께 요리한 음식을 초대한 연예인에게 대접하는 방송도 있고, 유명한 혹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소개하며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방송은 참여자들이 직접 요리를 하고 함께 먹는 등 다양한 형태의 먹는 프로들이 있다. 그 많은 먹방 중에 개인적으로 끝까지 보았던 프로그램은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오는 ‘삼시 세끼’였다. 주변의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그날의 삼시 세끼를 뚝딱 만들어 먹는 것도 좋았지만, 요리하면서 보여주는 차줌마의 좋은 인성을 보는 것도 깨알같은 재미였다.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이 화면 안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런 조리법을 알고 모두의 입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저런 정성과 노력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난주 추석 연휴를 맞아 간만에 음식을 만들었다. 나 혼자 먹는다면 그렇게까지 만들지 않겠지만, 모처럼 동생이 찾아온다고 하였고 집밥이 그립다는 요청에 몇가지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었다. 녹두전, 동태전, 배추전, 동그랑땡, 산적, 수정과, 불고기, 갈비찜을 했다. 뭘 그리 많이 만들었느냐 하겠지만 밥통이 큰 동생이라면 이 정도의 음식은 무난하다. 연휴 시작하기 전날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저녁부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드는 나의 손놀림은 빠르다. 음식을 처음 했던 20대 초반, 음식을 만드는 나만의 지론을 세웠다. 그것은 모든 음식은 가급적 30분 안에 마치게 하는 것이다. 30분 이상이 넘어가면 따분하고 지루하고 싫증이 나기 시작해서 크든 작든 음식 조리 시간은 최대한 30분으로 제한한다. 그러니 이번의 명절 음식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고 마쳤다. 맛은 어떠냐? 괜찮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바다. 하하하. 착각은 자유고, 믿거나 말거나다. 중요한 것은 이번 추석을 통해 얻은 귀한 깨달음이다. 동생 덕분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삼시 세끼를 잘 챙겨먹었는데, 동생과 함께 한 식탁은 혼자 먹는 식탁 풍경과 달랐다. 식탁 위에 수저 한 벌 더 올렸을 뿐인데 식탁은 풍성함과 비어짐이 공존했다. 혼자 먹을 때는 맛있는 것도 젓가락 몇 번 가면 족하다. 그러나 함께하면 음식을 그릇에 담는 양이 다르다. 그득하게 담는다. 가짓수도 많다. 젓가락 가는 횟수도 넘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천천히 먹어도 급하지 않다. 그러니 식탁 위에 풍성한 음식이 어느새 깔끔히 비어진다. 버리는 것이 없으니 설거지가 편하다. 그 덕에 그간 꽉찬 냉장고가 헐렁해졌다. 말끔히 정리됐다. 혼자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동생과 겨우 하루 삼시 세끼를 먹었을 뿐인데 애쓰지 않아도 냉장고를 비었으니 함께 하는 밥상 공동체가 얼마나 즐겁고 고마운 일인가!

점차 밥상 공동체가 사라지는 추세다. 4인을 기준으로 하는 핵가족 세대가 이제는 셋도 많다 한다. 지금은 둘 아니면 1인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 따뜻한 밥과 국을 매끼마다 올렸던 밥상은 두끼 혹은 한끼로 줄어들고 있으며 어떤 때는 하루에 한끼도 집에서 먹지 않을 때도 있다. 입맛이 바깥 음식에 길들여지고, 가족보다는 외인과 함께 먹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면서 편의점 도시락이 인기다. 식재료는 부실해보여도 쉽고 빠르게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기에 인기가 있을 수 있다. 밥상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어릴 적에 보았던 ‘전원일기’ 프로가 있다. 4대가 더불어 사는 이장집은 유난히 식사시간이 많이 나온다. 비록 가부장적 세대의 모습이 보이지만 거기엔 옛날 우리네 밥상 공동체를 잘 보여준다. 밥상이 세 개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와 아버지가 한 상을 받고, 아들들과 손자들이 한 상을 받는다. 그리고 며느리들이 한 상을 받아 식사를 한다. 21세기 시대에, 밀레니엄 세대에겐 많이 낯선 모습이지만 아날로그 세대인 나로서는 이 풍경이 여전히 따뜻하고 그리운 상으로 남아있다. 식탁 위 수저 한 벌 더 올려지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가끔 누군가의 식사 초대를 받아 세끼 중 한끼를 먹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밥상 앞에 선 나는 저절로 경건해진다. 감사가 차오른다. 차가워지는 이 가을, 따뜻한 밥상이 더없이 그리워지는 때다. 이러한 계절에 나도 누군가를 초대하여 따뜻한 식탁으로 따스한 온기를 누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