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다사다난 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올 한 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로 시작하여 또 그렇게 마칠 준비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얼음으로 만들었다. 시대마다 전염병을 통한 팬더믹이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비과학의 세계에 살았었던 옛 조상들이 맞았을 팬더믹은 지금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세상의 끝과 세상의 시작은 종이 한 장 차이런가. 

훈련원 사역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외부활동으로 움직이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올해는 거의 음성에 머물러 있었다. 상반기에는 드문드문 직접 대면으로 모임을 가지기도 했으나 후반에 들어서서는 거의 줌을 통한 만남으로 대체하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대신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을 이용한 화상 만남으로 다행히 눈에서도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일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처음의 익숙지 않았던 화면이 점차 익숙해지고, 두서너 차례 경험을 하고나니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었다. 최근 5인 이하 모임 금지 발표로 내가 소속된 교회는 어르신들이 많은 농촌교회라 아직 동영상 예배보다는 예배 순서지를 통해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리긴 하지만, 중대형 교회는 동영상 예배로 거의 적응되어 가는 듯 보인다. 처음엔 교회라는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여겼는데 지금은 각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괜찮다는 반응들이 크다. 생각과 관습을 내려놓으니 신앙의 새로운 문이 열렸다. 코로나 시대에 공동의 영성과 개인의 영성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 때가 되었는지 코로나가 우리에게 그리고 교회에 던져준 과제다.  

연말연시지만 시끌벅적함이 사라진 한 해의 끝자락이다. 매년 성탄절부터 연말연시 때까지 거리와 상점과 극장은 사람과 음악으로 가득 찼었다. 텔레비전에서도 연말 잔치로 갖가지 분야의 시상식이 일주일 내내 방송되어 덩달아 흥을 돋우곤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참 조용하다. 지난 성탄절과 주일 그리고 내일이면 송구영신 예배까지 좀 바쁘게 보냈을 연말이었는데 올해는 소리소문없이 지나간다. 조용한 성탄절을 보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 성탄절이 사실 이천년 전의 예수님 탄생 때도 지금처럼 조용하지 않았을까? 국교로 공인된 이후 12월 25일이 떠들썩한 축제가 되었지, 예수님 때는 단지 몇몇의 목동들 이외에 누가 예수님을 만나러 왔었을까.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었지만 그 기쁜 소식을 맞이한 사람은 단지 몇몇밖에 되지 않았을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니 올해의 조용한 성탄이 내게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외적인 분위기에 취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메시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누군가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내 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동안 나는 그 작은 울림의 소리조차 잊고 있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돌아온 시간을 돌아본다. 어느 때보다 바쁘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움직이지 않은 해였다. 우리의 시대는 무언가를 해야 하고, 바쁘게 움직여야 자신의 존재가 부각된다고 가르쳐왔다.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으면 경주에서 낙오되는 것이라 배워왔다. 그러나 코로나는 우리에게 부지런히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가르침에 일침을 주었다. 잠시 쉬어라. 덜 움직여라. 천천히 가라. 이웃을 돌아보라. 배려하라. 앉아 기도하라. 코로나가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과 습관을 내려놓으라 하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쉽지 않은 전환이다. 그래서 버티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나 알지 않은가. 인생살이에서 고집은 더 한 고통을 안겨줄 뿐이라는 것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 해가 가기 전 묵은 생각과 습관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그것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내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되도록. Happy New Yea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