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아니면 까무러 치기 식의 삶의 태도는 때론 형언할 수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엄습하기도 하지만,그 반대급부로는   마음속에 평안과 자유를  안겨주기도 한다. 겁에 질려 바들바들 거리는 대학생들과 달리 나는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천안경찰서 대형감방에 들어갔다. 벌써 몇번이나 들락날락한 탓에 오랜만에 찾은 내 고향집처럼 경겨운 느낌도 없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에게든지  정신과 육체가 속박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일생을 통해 아버지에게 뭇매를 맞은 영향에 기인하는 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나는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일단 자유를 찾기 위해서라면, 죽기아니면 까무러 치기 식으로 혈전을 벌인다. 나에게 명령이나 강요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내가 그런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함부로 나를 자신의 시다바리처럼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군대처럼  하늘같은 고참들이 존재하는 수인생활에서 자유분방한 삶이란 손쉽게 얻어지는 부산물이 아니다. 온몸과 정신이 뭇매를 맞기도 하고 , 끊임없는 투쟁속에서 그나마 어느정도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드리면 개가 되는 개같은 인간을 결국은 달래는 수밖에 없게 되었을 정도로 피나는 고퉁후에 얻어지는 희생의 댓가인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여유만만하게 감방에 들어서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힘꽤나 주고 소위 왈왈이란 행세를 하며 왈왈대고 있었다. 나에게 수없는 뭇매를 맛았던 후배들도 각각의 방에서 행세를 하며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하룻밤을 지샌후 선배가 다가와서 담배를 건내 주었다. 교도소나 구치소에 갇힌 수인들이 음주와 흡연을 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지만, 불법과 부정이 난무하는 교정시설에서는 그 불법이 존재한다. 감방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물질이 바로 담배이다. 하루에 네댓번 피우는 담배는 그 맛이 세상 그무엇보다 황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아늑한 심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말이다. 사회에 나가서는 절대 그맛이 나지 아니한다.

자칭 왈왈대며 잘나가는 사람들과 친분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얻은 귀한 담배를 매일매일 조달해 주자 대학생들은 나에게 무진장한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나를 좇아다니면서 함께 데모를 하다가 잡혀온 친구도 입이 벌어지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워 하는 눈치였다. 구류 처분을 받은 대학생 한명은 나갈 때 까지 절대 국가에서 주는 밥을 먹지 아니하겠다고 금식을 선언 하였다. 나는 그것이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깡보리 밥에 단무지 몇개  멀건 배추시레기국이 전부인 밥상을 두고 처음부터 밥을 먹을 수있는 사람은 없기에 그같은 각오를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세끼밥을 한번도 굶어 보지 아니한 자들의 행복에 겨운 말장난일 뿐이다. 

하루 이틀 정도만 굶고나면 생각은 달라진다. 세끼굶어 도적질 하지 않는 사람없다는 옛속담은 틀린말이 아니다.내 눈앞에서 음식을 쩝쩝대며 먹는 것을 보면서 참는 다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다. 환경변화의 부적응을 거부로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고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다.다음날 사식반찬도 생기고 주점부리도 생기자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그 대학생은 단식 삼일만에 밥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6월 항쟁은 나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없는 잔상을 남겨 주었다. 수많은 사람앞에서 목청껏 소리높여 연설을 하며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자고 소리높이던 모습이 과연 나의 또다른 모습인지, 아니면 술기운인지,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내 인생의 또다른 획기적 사건으로 남겨졌다는 것이다.나는 그 댓가로 또 하나의 별을 단것이였다. 배우지 못하여 빌빌거리던 인생이 뭔가 또다른 세계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를 구속시켰던 형사들의 모습과 나또한  전두환 독재정권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나를 6월항쟁속으로 자연적으로 몰고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그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