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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자가 다 목회자입니다목사직의 변질과 세속화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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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11월 29일 (화) 19:49:24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55:37 [조회수 : 4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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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란 "내 양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거룩한 사역입니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개혁 교회 내에서는 목사에게 우선으로 맡긴 주요 직무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목사'라는 직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계급적 사제직을 폐하고 대신에 이 목사직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 '목사'라고 번역된 이 직분은 신약성경 속에 단 한 번, 그것도 아주 간략하게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여기서 성경 원문인 헬라어 단어는 '포이멘(ποιμήν)'으로 목자 또는 양치기라는 의미이며, 이 단어의 라틴어 번역 '파스토르(pastor)'에서 목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pastor'가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상황을 보여 주는 신약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누가 그 목사직을 받았고 또한 어떤 사역을 했다는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다만 '사도'나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교사'와는 별도로 분류한 것으로 미루어 추측할 때, 일단 전도나 선교나 교육은 포이멘의 일차적인 직무가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단어 그대로 '양치기' 또는 '양을 돌보는 자'로 해석함이 무난할 듯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재의 목사직은 포이멘의 역할보다는 도리어 신약성경 다른 부분에 언급된 '가르치는 장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나 집사직이 오히려 원어 그대로의 포이멘에 더 가까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입니다.

하지만 빌립과 스데반 집사가 전도하거나 '다스리는 장로'가 구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직분은 신분이 아니므로 필요하면 중복적인 역할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오늘날 목사직의 기능에 대하여 교단별로 다소 혼선이 있는 것도 이 포이멘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연유합니다.



목회는 종합적인 사역

여기서 우리는 먼저 목회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목회를 목사나 전도사 등 교역자들의 전문 분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는지를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이미 잘 아시는 대로 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도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혹자는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만이 목회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실 것입니다. 물론 아닙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사도 시대 이후에는 아무도 목회를 할 자격이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제자에게 하신 명령으로 보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목사는 사도가 아닙니다. 또한, 다른 직분보다 우월한 특수 직분도 아닙니다. 단지 장로나 집사처럼 신약성경에 언급된 교회 내 여러 중요한 직분 중의 하나입니다. 집사가 장로보다 낮은 직분도 결코 아니고, 목사 역시 '가르치는 장로'의 직임을 맡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스데반 집사의 사역이나 설교가 사도 베드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는 목사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목회는 단순히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역입니다.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가르치는 일이 목사나 교사의 주요 사역이라면, 양들을 치고 돌보는 일은 장로나 집사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교회에서 가끔 보는 것처럼, 목사가 홀로 독주하며 가르치고 다스리고 관리하고 돌보는 모든 일에 깊이 관여하여 월권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그 직분이 목사이든 또는 장로나 집사이든 결국 목회는 모든 주의 제자들에게 맡긴 공동의 사역입니다. 즉 가르치고 다스리고 섬기고 돌보고 관리하고 봉사하는 이 모든 일이 서로 다른 일이 아니라, 사실은 모두 같은 목회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른 인식은 바른 실천에 필수적이며, 바른 실천만이 바른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왜 지금 한국교회에 엉뚱하고도 기형적인 열매들이 이리도 많을까요.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현행 목사직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목사직의 변질과 세속화

종교개혁 이후 목사직은 많은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종교개혁 초기 시대에는 목사직이 헌신적이며 강력한 지도력으로 교회의 진리와 순결을 지키며 긍정적인 역할을 한 바가 매우 큽니다. 반면에 개혁 교회가 점차 성장하면서 비대해지자 그 역기능도 많이 표출되었습니다. 특히 근세에 이르러 미국 교회와 한국교회 상당수 유명 목사들의 타락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 결과 때문에 목사직이 과거처럼 지역사회에서 각별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한국의 대형 교회들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중에서 사회의 존경을 받는 목회자가 과연 몇이나 있는지요. 도리어 듣기에도 거북한 욕을 먹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교회들은 목회 독재를 넘어 아예 목사 왕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는 당회의 승인을 통한 정당한 절차나 영수증조차 없이 교회 공금을 수십억이나 유용하고도 계속 설교를 합니다. 또한, 이대 세습은 기본이고 이제는 삼대 세습까지 넘보는 목사도 있습니다. 성추행한 목사도 당당히 목회합니다. 더구나 교단 상층부를 장악한 교권주의 목사들은 이권에 따라 몰려 다니며 뇌물을 주고받고 매우 분주하지만 그 어떤 치리도 없습니다. 이분들은 과연 신도들의 심정이 어떤지를 알고나 있을까요. 마치 어물전에 그럴듯한 생선은 별로 없고 꼴뚜기만 잔뜩 늘어놓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거의 예외 없이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부자라는 사실입니다. 사이비나 이단의 교주 중에 부자가 아닌 사람을 보셨는지요. 마찬가지로 이들 변질한 목회자들은 겉으로는 성직자라고 위선을 떨지만, 뒤로는 언제나 돈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단의 교주들이나 하던 부끄러운 일들을 요즘은 소위 건전한 정통 교단의 목사라는 분들이 밝은 대낮에 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양들을 먹여야 할 목회자가 오히려 양들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양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양들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무조건 교회 덩치만 키우려는 이유가 잘 설명이 됩니다. 한국교회가 영적 비만에 걸린 가장 큰 이유도 대형 축사들을 지어 육류용 목축에 몰두하는 이런 거짓된 목동들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먹이기 위한 목회가 아니라 먹기 위한 목회를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밥벌이 목회'가 자신을 망치고 동시에 교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단순히 밥벌이 정도에서 그치는 목회는 순진한 편에 속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목회는 '돈벌이 목회'입니다.

대형 교회들은 그 덩치에 걸맞게 부정도 대형으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한번 터졌다 하면 수십억 수백억입니다. 터지지 않은 비리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웬만한 귀족 목사들은 재벌이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잘 산다는 식으로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오도합니다.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조할 때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청빈한 선지자처럼 열변을 토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 땅에 부를 쌓고 있는 배도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 중·대형 교회의 그 많은 귀족 목사들은 자신의 땅을 팔아 그 일부를 가져온 아나니아와 삽비라만도 못한 바침을 하고 있는가요.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신 그런 말씀들은 왜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바리새인들처럼 십일조만 하면 끝나는 것입니까? 수입의 십 분의 일만 바치면 나머지로 부를 쌓으며 탐욕해도 된다고 자위하는 일부 목사들, 결국 이들은 땅에 계신 동안 스스로 가난을 택하신 예수님의 삶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중·대형 교회에서 목사직으로 사역하시는 여러 형제에게 부탁합니다. 우리는 이미 맘몬적 적당주의에 너무 타협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남들보다 적당히 경건한 척하고 적당히 설교를 잘해서, 적당히 명예를 누리고 적당히 부를 즐기며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의 삶 속에 과연 주님 십자가 고난의 흔적이 있기는 한 것인가요.

이웃 미자립 교회 목회자가 가족들의 생계마저 걱정하며 눈물로 기도할 때에도 그저 적당히 도와주고 생색만 내거나 자족한 것은 아닌지요. 또는 그나마도 못 본 척 외면한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큰 교회 목사만 주의 종이고, 작은 교회 목사는 신도들의 종인가요. 자신의 밥그릇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배고픈 형제의 밥그릇에 무심한 목회는 이미 십자가 정신을 상실한 목회입니다.

하지만 밥그릇이 이 글의 주제는 결코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바른 목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주님만 의지하는 목회입니다. 밥그릇에 연연하는 목회는 바른 목회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유급 목회의 권리가 있지만 이를 사양하고, 천막을 만들며 자비량 사역을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다 목회에 책임이 있다

오늘날 초대교회 사도바울의 자비량 목회 정신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정당했던 유급 사역이 그 도를 넘어 밥벌이 사역이나 돈벌이 사역으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빙자하여 자신의 세속적 사욕을 채우려는 가라지들이 교회 내에 너무 많습니다. 그 결과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교회에 잡초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잡초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려면 바른 목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목회나 목양은 목사님들만의 사역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적어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지 않는 한, 모든 신자는 다 목회에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는 양을 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목동이 양을 낳는 것이 아니라, 양이 양을 낳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양들이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직은 양들이 바르게 살도록 잘 가르치는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를 교회 사업이나 관리 그리고 행정 등 다른 업무로 바쁘게 한다면 이는 매우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다스리고 돌보고 봉사하는 목회는 장로나 집사직의 몫입니다. 따라서 특정 직분이 홀로 독주하는 목회는 병든 목회입니다. 모든 직분자들이 함께 합심하여 대등하게 동역하는 목회가 건강한 목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목사직을 지나치게 특권화한 일부 교단들의 헌법이나 교회 정관도 바르게 개정되어야 옳을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 시무하고 있는 목사의 직무도 적절히 전문화하고 차별화하여,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치는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적의 여건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목사직만이 목회직이 아닙니다. 유·초등부 교사도 목회자이고, 심방하시는 집사님도 목회자입니다. 물론 교회 주방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도 존경할 만한 목회자이십니다. 개혁 교회에서는 모든 신자가 다 성직자이고, 동시에 모든 신자가 다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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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121.134.176.111)
2011-12-01 10:01:12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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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들소리 (125.27.91.26)
2011-12-20 02:27:53
많은 것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한교회에 목회자가 교인수 많금 여러명이면 교회은 어떻게 될까요? 좀 혼란스러워 지지 않을 까요. 초신자들이 양들이고 불신자들은 우리 밖의 양들이라고생각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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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2
춘천중앙감리교회 (211.253.82.235)
2011-12-17 12:40:32
춘천중앙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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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
병신도 (222.64.4.60)
2011-12-10 16:13:50
최종천 목사가 복귀 하는것을 보니 우리 한국교회는 선과 악의 기준이 없다 ,자정능력도 없다
큰 시련을 당하여야 정신 차릴것이다
한기총처럼 우기고 밀어 부치는 한국교회는 북한의 교회처럼 큰 시련을 당할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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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2
rydls123 (121.168.246.42)
2011-12-03 12:50:16
참, 구구절절 아멘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지 않았나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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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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