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신성남 칼럼
빼앗긴 교회극에 이른 교회 사유화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1년 09월 28일 (수) 13:11:17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55:54 [조회수 : 89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담임목사가 거액의 교회 공금을 장로들도 모르게 은밀히 유용했습니다. 이에 일부 제직들이 반발하여 그 상세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목사는 자신을 추종하는 다른 제직들을 동원하여 이들을 교회에서 제명시키고 출교시킵니다. 교회에 덕이 안 되거나 교회를 해롭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그 명분이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 점차 빈발하고 있습니다. 양들이 교회를 빼앗기고 쫓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가 더 이상 교회답지 못하고 목사가 더 이상 목사답지 못해 이에 분노하거나 낙심하여 떠납니다.

지도자 복이 어지간히 없는 한국교회 성도들은 근자에 정말 못 볼 풍경을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사유화 문제가 갈수록 크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일부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성취에 취한 일부 목회자들은 담임목사라는 직분을 남용하고, '가르치는 장로'로서의 분수를 넘어 다른 장로들의 고유 책무인 '다스리고 관리하는 일'에 더욱 한눈을 팔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직제를 비성경적인 수직적 계급 구조로 왜곡시키고 다른 직분이나 신도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들의 실권을 꾸준히 강화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간 열심히 뿌려 온 '변질된 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이제 상당수의 교회에서 목회 독재가 거의 정착된 느낌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한국교회를 성장시키는 데에 가장 기여한 직분은 목사직입니다. 그 수고와 희생과 헌신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한국교회를 부패시킨 데에 제일 책임져야 할 직분도 목사직이라는 점입니다.



목자를 배신한 목동들

물신숭배가 만연한 요즘, 초기 한국교회의 그 순수했던 목동들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목동들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푸른 초장의 양들을 벌판으로 밀어내고 그 대신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염소를 늘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점차 밀려나고 털색만 비슷한 목사의 제자들이 교회 내에서 득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양털을 깎아 목장을 키운 후, 이제는 그 양들을 홀대합니다. 그리고 말 많고 탈 많은 양보다는 군소리 없이 잘 자라는 염소가 좋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목회가 목축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목동들이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애타게 수고하시던 그 목자의 마음을 배신했습니다. 그리하여 양들이 찢기고 상하고 다쳐도 모른 척 외면하고 오로지 털 깎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변절한 목동들이 교회 대형화와 교회 사유화를 경쟁적으로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들의 얼굴도 모르는 목회는 더 이상 목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축이나 사축일 뿐입니다. 목회란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양계장식 경제활동이 아닙니다. 한 마리 양을 기억하고 찾아 수고해야 하는 영적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목동들은 목장을 편법으로 운영합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교회 공금을 수억 또는 수십억 씩 함부로 쓰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또한 교회 사업이나 사회사업 등을 빙자해서 법인을 만들고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넘겨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또한 교회를 다른 목회자에게 팔아넘기고 은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왜 교회 장부는 그리 감추고 보여 주지 않나요.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요.

여기가 예배당입니까, 아니면 성황당인가요. 왜 한국의 많은 중대형 교회들을 보노라면 기복적 원시종교 같은 이질감이 깊이 느껴질까요. 한국교회에는 장엄한 예배가 있고 유창한 설교, 아름다운 찬양, 열성적인 봉사와 헌금, 그리고 세계 유일의 새벽 기도까지 있습니다. 또한 커다란 십자가도 도처에 높이 장식해 놓았건만 과연 무엇이 누락되어 있는지요.



극에 이른 교회 사유화

한국교회의 사유화는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요즘 부패한 목사들의 행태는 예수님 당시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던 종교 지도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에게 교인들의 돈주머니는 먼저 보는 목사가 임자입니다.

많은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이 부족한 생활비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비하여, 대부분의 중대형 교회 목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회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고 있습니다.

목사에게 지급되는 돈을, 기본 봉급 외에도 자녀 교육비, 광열비, 통신비, 차량 유지비, 심방 지원, 사택 관리비, 선교비, 해외 출장비, 판공비 등 기타 다양한 항목으로 은닉하여 분산시켜 놓고 추가로 가져갑니다. 그래도 말로는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현재 중대형 교회 중에서 교인들에게 재정 내역을 문서로 상세히 공개하고 예·결산을 정상적으로 엄정하게 시행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 흔한 교회 홈페이지에 예·결산서를 당당하게 공개하면 안 될 그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왜 대부분 그저 두루뭉술한 자료로 눈가림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인가요.

이처럼 교회가 헌금을 거둘 때에는 하나님께 바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막상 그 헌금을 사용할 때에는 엉뚱한 인간들이 제멋대로 가져다 쓰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대형 교회의 비리 의혹에 대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장로들이 교회 재정 지출 내역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담임목사와 극소수의 측근만이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례로 보면 이번에도 그냥 잠시 시끄럽다가 또 다시 슬그머니 덮고 감출 확률이 높습니다. 그나마 오랜 전통의 대형 교회가 저런 정도이니 나머지 교회들은 오죽할까요.

교인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소중한 헌금이 회중의 별다른 간섭이 없이 일부 목사들의 속주머니로 과도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본래 개신교에 별도의 성직자란 없습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모든 신자가 다 성직자이고 동시에 모든 목사와 장로도 다 평신도입니다. 그런데 소위 성직이라는 기만적 명분으로 목사직이 특권화되고 세속적 부정도 묵인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목사가 교황이 된 교회들은 더욱 계급화하고 있습니다. 변질된 복음이 교회를 기업화하고 담임목사를 회장으로 그리고 장로나 집사 등 나머지 직분들을 모두 부하 직원으로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종이 주인이 된 망측한 상황입니다. 어린 주일학교 학생에게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우리 목사님이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볍게 웃어넘길 자격이 있을까요.

한국교회 사유화의 극치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바로 '교회 세습'입니다. 그 도가 지나쳐서 요즘은 '세습을 안 하면 바보, 못 하면 등신'이라는 말도 나돕니다. 정말 전 세계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늘 아래 이런 기막힌 교회가 있었던가요.

그리고 '죄 짓고는 못 살겠다'는 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처럼 보입니다. 한국교회의 상당수 목회자들은 공적인 죄를 짓고도 아주 의연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교회 공금을 유용한 혐의가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여전히 계속 목회를 합니다. 뇌물을 주고받고 성추행이나 세습을 한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수준이 극히 의심스러운 막말 목사들이 주제 파악을 상실하고 기름진 얼굴로 정치판을 기웃거려도 아무도 못 말립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지나치게 교권을 독점하고 악용하는 이들의 범죄는 결코 일회성이거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된 많은 교회들은 목회자들의 공적인 비리에 대하여 공의 없는 사랑과 이해하기 힘든 관용을 남발하며 개신교 역사에 유래가 없는 '비성경적인 교회'가 된 것입니다.



과도한 교권 집중과 목회 독재

여기서 왜 유독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교회 사유화가 극심한지에 대하여 간단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목사직에 대한 지나친 교권 집중이라고 봅니다. 교회 사유화가 일어나고 있는 교회에는 거의 예외 없이 목회 독재가 존재합니다.

더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개신교는 이런 목회 독재가 일반화하여 신도들이 이를 암묵적으로 수용할 정도로 세뇌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하는 일을 적절한 분별없이 쉽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목회자를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크게 금기시합니다.

목사는 사도가 아닙니다. 물론 제사장 직분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신도들은 목사를 단순히 설교자나 장로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도나 제사장급에 준하는 예우를 합니다.

이런 현실은 한국 개신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장로교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간판은 장로교라고 하지만 그 명칭을 목사교로 바꾸어야 할 정도로 그 정체성이 의심스럽습니다. 장로교는 본시 교회의 운영과 관리를 회중에 의해 선출된 장로들이 중심이 되어 담당하는 교회입니다. 따라서 외국의 장로교회에서는 일차적으로 당회가 목사의 사역을 관리하고 감독합니다. 목사를 임명하거나 해임하는 일도 당회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의 장로교는 어떤가요. 당회나 제직회가 목사의 시녀 역할을 하기에 급급한 교회를 어찌 장로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많은 교회에서 예배와 설교 그리고 교육에 집중해야 할 목사가 교회 사업, 행정, 관리, 인사 및 재정에 깊숙이 관여하여 비상식적이며 초직분적인 월권을 해도 그저 입을 다문 채 아무도 정당한 교정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태여 모두가 잘 아는 이런 사실을 너무 반복해서 거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한 결론도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분수를 지키고 과도한 교권과 불의한 이권에서 스스로 물러서야 합니다.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스리려 월권하지 말고 '가르치는 장로'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세워야 할 교회

양들이 빈들에서 마른 풀만 바라보며 울고 있습니다. 양들이 쉴 곳이 없습니다. 선한 목동들을 찾아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려 보지만,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극히 일부의 교회들만이 예외입니다. 늘 푸르던 초장은 거의 다 살찐 염소들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처에 있던 쉴 만한 물가에는 오히려 대형 축사들이 증축되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양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 민족은 많은 고난을 이겨 온 온유한 민족입니다. 늘 빼앗기기만 했습니다. 땅을 빼앗기고, 사람을 빼앗기고, 자원을 빼앗기고, 그리고 심지어는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슬픈 역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과 순결한 삶입니다.

한국교회의 종교 업자들이 일시적으로 교회를 차지하고 간판을 빼앗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판이 교회는 아닙니다. 예배당 건물이 교회도 아닙니다. 우리 신자들 자신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 됨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거룩한 교회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과거 바빌론에 의해 나라와 고향을 빼앗기고 낯선 땅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백성들은 그 외지에서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해 슬피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깊은 회개와 자성 후에야 비로소 거룩한 성전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회개하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새로 세워져야 할 교회는 결코 건물이 아닙니다. 성직을 빙자하여 사람이 위세를 부리는 곳도 아닙니다. 모든 직분자들이 서로 대등하게 동역하며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과 약자가 존중을 받으며 신분의 구별이 없이 십자가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울러 인위적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교회가 아니라, 자발적인 무기명 연보를 격려하고 이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소수가 모이더라도 예배와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고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그리고 사도들이 전해 준 순수한 복음을 우리의 이웃과 기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한국교회는 더 이상 목축이 아닌 참된 목회로 세워지고 바른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렘 42:11)."

샬롬!

[관련기사]

십일조 강요로 무너지는 한국교회
개혁을 거부하는 개혁 교회들
교회밖에 모르는 예수쟁이들
한국교회의 타락과 담임목사 제도
부흥회의 변질과 목회자들의 돈 잔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목사를 동역자로 세우는 교회
한국교회 십일조의 비밀
돈을 바치면 복 받는다는 목사님들
목사의 월권 중앙선을 넘었다
교회는 이 땅의 마지막 선지자
목사님들의 변절과 교권주의
담임목사님의 외부 집회 수입, 이대로 좋은가
헌금 채, 세상보다도 더 세속적인 악습
신성남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9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27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아전인수 (211.253.98.18)
2011-09-28 18:41:10
그들의 특징은 설교할 때
먼저 구약성경을 인용한 설교로 교권구축의 수단으로 삼고
신약성경을 간간이 인용하여 교인들의 맹종적인 헌신을 요구하지요
(말라기 2장에 이미 정리되었음에도 레위의 제사장 직을 고집함)


재무장부 공개를 요구하면 종교자산에 대한 세금징수당할 우려가 있다고 속이고 감추며, 퇴직금은 2중3중으로 받아가면서 은퇴하지 않고 자리만 돌려 앉으며, 특하면 옆에 새로운 교회 세운다고 협박하고......

교인들은 주님이 보실 때는 어린 양이지만 교회의 정체성으로 볼때 법률적으로는 교회의 소유자입니다(사단의 구성원)
그러나 소유자가 재산관리를 등한시 하면 도둑이 훔쳐가는 것은 당연한것을......
리플달기
14 0
mtsman (112.155.219.70)
2011-10-17 07:32:32
참! 저는 실제로 사회생활을 감행했습니다.(목회경력 22년 차 이지만...) 해보니까 사회생활과 목회. 병행이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직업을 가진 목사가 5-10명이 한 팀이 되어서 꾸려나간다면 내실있게(현재 교우들의 요구를 거의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역을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리플달기
6 0
rydls123 (121.168.246.42)
2011-10-17 09:19:54
아멘~~ 뭔가 개선하고 바꾸어 보겠다는 용기에 감사할 따름니다 사도 바울도 천막장사(지금의 건축업)를 하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행18:3)
리플달기
5 0
mtsman (112.155.219.70)
2011-10-17 07:28:54
제가 생각하는 것은 목사가 교회에서 합당한(?) 사례를 받고 성실하게 사역하면 다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이 오늘날 문제를 한 치도 풀 수 없는 자물쇠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리플달기
2 0
mtsman (112.155.219.70)
2011-10-17 07:26:53
이제 목회의 페러다임이 확연히 바뀔 때가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음.... 초대교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죠. 목사도 직업을 가지고 사례비는 받지 않고(모르겠습니다. 최소한의 경비-목회 활동에 드는-는... 받아도 되는지...) 십일조를 낸다면 전적으로 구제에 쓰고(초대교회의 십일조는 선교 중심이 아니라 구제를 위해서 였지요) 암튼 두서없었지만 물질과 권력(?)에서 해방되면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90%이상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플달기
4 0
요나 (123.111.27.191)
2011-10-04 03:50:5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렘 42:11)."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도 두렵고 세상 권력도 두렵고
장차 미래도 두렵고, 자식들 보전이나 미래 일들도 두렵고
두려운것 천지입니다,
그런데 더 두려운것은
이 번주에도 교회에 출석해서
주님에게 노래 불러드려야 한다는것
이게 더 두렵습니다.
주님에게 노래도 불러드려야하고 목사님 눈에도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더더욱
개인이나 가정에 조금이라도 좋지 않는 일들이 생기면
혹시라도
주님이 날 징계치 않으시나
주님이 날 무관심하게 버려두어서 방치하는 대상이 된건 아닐까하는
그 두려움은 더크답니다.
자유케해주신댔는데
교회가기가 너무도 두렵습니다.
전도도 해야하고 선교도 해야하고 헌금도 해야하고
사회 사람들에게 정직해야하지만 능력도 보여줘야하고
돈이 없어도 그들보다 잘해야하니
이게 온통 두려움 뿐입니다.

교회다니는데 두려움이 더 커지고 두려움이 더 많아지는건지요
리플달기
5 0
ekdtlsRpeh wnsladml dmsgPrk2 (121.168.246.42)
2011-10-04 08:32:15
샬롬~~ ㅎㅎㅎ 말씀대로 전도도 선교도 헌금도 모두 내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란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내면에는 나를 나타내고 또 무언가 남에게 보여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전도도 선교도 헌금 조차도 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가 부모일 못했다고 너무 자책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지 본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가면 자식과 부모의 역할이 바뀐 설교를 합니다 그 중간에 약삭 빠른 목사가 대접을 받으려합니다 한마디로 삯꾼입니다 지금까지 우린 그런 삯꾼들에게 신앙생활을 잘못 배워왔습니다 교회 직분에 얽매이게 하고 본교회에 얽매이게 하고..마치 교회를 안가면 죄인이 되는 것처럼...천만에 전혀 아닙니다 이제 교인들도 깨어야합니다 바르게 신앙생활하십시오 참교회는 바로 당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속에 와 계신 보혜사 성령님과 대화 해보십시오 평안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대화하시면 정말 말씀도 주시고 찬송도 절로 나오고 너무 하루가 즐겁습니다 세상적인 교회에 얽매어 그런 엉터리 신앙생활을 그만하십시오 요나님께도 저와 같은 주님의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람니다 아멘
리플달기
5 0
요나 (123.111.27.191)
2011-10-08 18:54:29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0 0
김정택목사 (222.100.131.218)
2011-10-02 17:05:02
정말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내용도 평이하고 쉽습니다.
리플달기
2 0
박평일 (72.205.29.125)
2011-10-01 21:42:09
어떠한 조직도 커지고 비대해 지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조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말씀으로 돌아가자" 고 종교개혁을 했던
루터가 간과했던 점이 바로 이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나 기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직이 커지고
비대해 지면 딱딱해지고 부패되어 결국 붕괴되고 맙니다.
이런 조직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끊임없는 개혁(INNOVATION) 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는 조직내에서
자유로운 비판과 자성을 통해서 얻어 질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중국역사를 연구하면서
"변방문화가 중심문화를 지배한다 " 라는 일관된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위대한 왕조도 역사가 오래되면
자체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중병을 앓게 되고,
결국 그 해결책을 외부문화, 즉 변망문화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이지요.

신성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오늘날 신교의 모습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 참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다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중이 절이 싫으면 절간을 떠난다 " 는 옛속담이 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케토릭교회를 떠남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참고해야
할 귀한 역사적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루터의 "성경을 통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자" 라는
주장은 처음부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인 제사장론은 성경의 해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반신도들에게 성경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던 그시대에
우선 성경부터 사제들로 부터 찾아 주인인 신도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그런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겠지요.

신교는 이런 문제르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성경해석에 대한 권위를 케토릭의 교황대신
목사들로 대체해 왔습니다. 이름만 바뀐 셈이지요.
그결과 목사들은 교회와 목사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의 진리안에서 자유함의 가르침보다는
구약의 문자적해석에 입각한 율법, 축복론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성경해석면에서
신교는 오히려 케토릭보다
자유함과 유연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많은 개혁의 목소리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대부분, 기존교회들로 부터
이단이나 교회를 파괴하는 사탄들의 행위로
정죄를 받고 물거픔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성령으로 돌아가자" " 초대교회 모습으로 돌아가자 " 하는
운동들도 그렇습니다.
성령운동은 감정이나 미신적 축복론으로 변질되어
버렸고, 초대교회운동은 목회자들의 절대적 권위를
세우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케토릭이 2천동안 축적해 온 수행을 통한 영성을
이단이라는 몀목으로 전수 받지 못했던 신교에
그런 영적전통이 남아 있을 턱이 없지요.

"영성으로 돌아가자" 며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퀘이커의 신도들 숫자가 현재 세계적으로
30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빛이 밝으면 어둠은 스스로 사라진다 " 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개혁은 그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빛처럼
강하게 존재함으로써 언젠가는 이루어 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루터처럼 부패한 기존교회조직을 떠나서 이상적인
새로운 교회들을 세우는 것 입니다.
일종의 대안교회들이 되겠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교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면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들은 어둠처럼,
하나하나 꼬리를 내리고 자취를 감추게 될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남아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 또한 조직이 커지고 비대해지면
결국 부패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부족한 소견으로 이해하여 주십시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리플달기
8 0
한가한 (211.246.71.44)
2011-10-01 00:17:10
맞습니다. 아래 진한물님 같은 글을 쓰시면 매 맞습니다.

물론 진한물님이 쓰신 것처럼 장로의 영향력이 큰 교회도 있습니다. 이미 교회가 인적, 물적으로 갖추어진 상태에서 목사를 초빙하여 온 경우에는 기존 장로들의 영향력이 크고 목사가 교회 운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에 주력하고 교회의 구체적인 운영은 평신도 대표인 장로들이 하는 형국이니까요.

학교도 교수들은 강의만 하고 학교 행정은 행정을 맡은 사람들이 합니다. 물론 교수가 행정직을 겸임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병원도 의사들은 진료만 하고 병원 운영은 병원장을 정점으로 하여 원무 행정을 맡은 사람들이 합니다. 이처럼 교회도 목사는 설교만 하고 장로들이 교회 운영을 맡아서 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가 교회 운영까지 도맡아 하게 되면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복음을 왜곡할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교회건축을 하는 데도 목사는 가급적이면 한 발짝 떨어져 있고 건축을 위한 헌금의 필요성 등은 장로가 광고를 하고 독려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목사가 나서서 헌금을 독려하는 순간 복음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장로들의 횡포를 말씀하시는데 장로들이 교회 운영권을 대대손손 물려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장로가 교회세습을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목사가 자신의 아들을 담임목사로 앉히고 자신은 원로목사가 되어 교회에 계속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여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신성남님의 이글은 이 부분을 지적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목사들, 특히 교회를 개척하여 나름대로 성장을 이루신 목사들은 스스로 절제를 하여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의지합니다. 5년, 10년, 20년을 목사를 영적으로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목사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표면적으로 교인들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목사가 마음대로 교회를 운영하고 아들에게 세습을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는 정말로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나의 세습에 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입니다.

목사와 하나님 간에는 따로 정산이 이루어질 테니 교인들이 나서서 간섭하지 말라는 것도 올바르지 못합니다. 시비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목사들의 행태로 인하여 많은 교인들이 시험에 들고,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기나 한 것인지, 세상의 것을 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의 길인지에 대하여 번민하게 하는 것은 크나큰 죄악입니다.

목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분들은 스스로 강단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예수님이 설파하신 진리의 말씀보다 세상의 것이 더 좋으신 분들은 스스로 다른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림자 같은 인생이라고, 우리는 하늘나라의 것을 쫓으며 살아야 한다고, 세상의 부귀․영화․명예를 쫒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백날 설교를 해 본들, 막상 목사 본인이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좋은 차를 타며 대형교회 목사 되기 원하고 억대 연봉 가져가기를 원하며 감독이니 회장이니 명예와 권력을 쫒으며 산다면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인 것입니다.

여기에 무당을 의지하는 마음 약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사람은 무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당의 말 한 마디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무당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습니다. 자기를 찾아온 사람을 저주하면 안 됩니다.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새로운 힘을 얻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착취하거나 노예처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섬기는 신으로부터 벌을 받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모 종교단체가 집회를 한 후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가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으로 짐작되는 아주머니가 인도에 서서 그들을 향하여 손을 흔듭니다. 위 아주머니를 빙 둘러선 사람들 역시 그들을 향하여 손을 흔듭니다. 차에 탄 사람들도 하나같이 위 아주머니를 향하여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 분이 그저 평범한 아주머니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섬기며 의지하는 분들은 그 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분이 마음대로 행동을 하셔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스로 절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의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치 사랑의 하나님처럼...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여야 합니다. 자신으로 인하여 교회에 약간의 분란만이 생기더라도 가방 하나 들고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것을 못하나요? 성추행이니 공금횡령이니 문제가 되면 시시비비를 가릴 것 없이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을 왜 보이지 못하는 것인가요? 목사 자신으로 인하여 교회가 난장판이 되는데도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마음은 사탄의 역사다’고 강변하면서 언제까지 강단을 지키실 작정인가요?

목사는 교회에서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교인들에게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설파하여 그들이 참 평안을 얻게 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세상적인 것을 탐하는 것으로 비춰져서는 안 됩니다. 무리하게 교회 건축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을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여서도 안 됩니다.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원로목사가 되어 계속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도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적인 것을 탐하는 것입니다.

아래 어느 분은 신성남님의 이글을 보고 ‘카더라 통신’이라고 폄훼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국 감리교회는 더욱 심각합니다. 시간과 돈이 되시는 분은 한번 조사를 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현재 한국에 입교인 300인 이상 되는 감리교회가 몇 개나 되고 그 중 이런저런 모습으로 세습을 한 교회가 몇 개나 되며 세습을 하려다가 실패를 한 교회가 몇 개나 되는지에 대하여... ‘세습을 안 하면 바보, 못하면 등신’이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리플달기
4 0
rydls123 (121.168.246.42)
2011-10-01 18:00:46
아멘입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이론과 현실은 다르니 세상적으로 살겠다고 버티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지금도 구설수에 오른 목사가 적반하장으로 떡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사랑? 그의 귀에는 웃끼는 말입니다 방법은 교인들이 나서서 그런 교회를 철저히 외면해야 하는데.. 꾸역 꾸역 찾아갑니다 그러니 저렇게 똥뱃짱을 부리며 버티는 겁니다 잘못된 교회를 바르게 개선하자는데 교인들은 전혀 나서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꿍시렁 꿍시렁 거립니다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그런 교회 교인들이 나서서 50%만 3개월만 예배에 참석 안하면 금방 고쳐질텐데 그 3개월을 못참고 40년 광야생활을 해야하니 아니 400년 광야생활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누굴 탓 할 것이 못됩니다 바로 교인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무지와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인들이 똑똑하면 절대 목사가 교인들을 기만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투명해집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집니다 진정 그런 교회를 희망하신다면 3개월 아니라 1년을 참고라도 예배에 참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들의 현명한 판단과 실천만이 교회가 올바르게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아 멘
리플달기
4 0
진한물 (121.185.154.13)
2011-09-30 18:30:03
이런 교회는 오늘의 현실이겠죠.
몇 몇 대형 교회나 일부 교회에서 충분이 있을 수 있는 일들로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교회들을 보면, 이와 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던데요. 위의 내용과 상충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같지 않을까요.
(이 글을 쓰고 매 맞을까나...)
교회 주인의 실세(보통 장로..)인 교인 중 일부?가, 목사는 품꾼정도로 생각하는지, 있을 동안 설교나 하다 다른 데로 가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한 일?을 목사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곧 "목사는 얼마 있다가 가면 끝나지만, 우리는 계속 교회에 남아서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자신의 아성을 건드리면 안색이 달라지면서 들고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이유를 달아서 내 몰 궁리를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이동이 빈번해지고, 교회와 교인들은 피해자로 남아 교회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거기에서 목사가 교회를 바로 잡겠다고 정의?를 부르짖을 때 여러 가지 불협(장로와)이 일어나게 되더군요...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 장로는 장로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 될 것 같은데.... ^^
누구를 비난하기 보단... 다 같은 부류들이지 않을까...
목사도, 장로도, 교인도....
교회의 영성은 어디갔는지..
마라나타!!!
주님 언제 오십니까????
그때야 끝나려나....
리플달기
0 2
정치장로들 (14.35.137.1)
2011-10-04 11:12:48
교회 주인은 교인들이 교인드이 아닐까요?
장로들도 재신임을 받아야 될것 같군요.
정치 장로들 먹사와 뭐가 다를까요?
리플달기
1 0
엘리야 (14.43.7.225)
2011-09-29 16:21:54
진정어린 마음의 글
너무나 마음에 와닫고 감동적입니다.
남한의 아래쪽에 있는 저희가 다니는 교회가 그렀습니다.
목사님의 제왕적인 횡포, 헌금을 자기돈인양
영수증 없이 사용하는 교회 성직자, 재정의 공개는 투명하지않으며
하나님께 받치면 교회에서 알아서 한다는는 엄포 공개를 요구하면
주의종 대적한다고 하는 아집, 개척당시는 상당히 겸손하였으나 성도수가 늘어나고 중형교회가 되면서 지식인과 똑똑한 사람에게
귀와 눈을 가리고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려고 간청하였으나 묵살되며
맹목적인 성도은 우리목사님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등 하나님보다 목사를 높이는 안타까운 우리교회 어찌할꼬,
자기가 개척했다고
성도수가 많아지니 자기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도에게 공개적으로
나가라고 말하며 마치 교회의 주인이 목사인것 처럼군립하는목사,
형이상학적인 헌금강요, 엄청난 교회건축, 각종감투
이로인한 스트레스로 건강하지 못하는 우리교회목사님
이것이 우리나라 교회들의 한 단편적인 모습입니다.
리플달기
8 0
daehan (222.113.252.54)
2011-09-29 15:16:49
정말심각해요 불쌍한건 미자립교회 목회자들 지난날의 제대로믿음가진 평신도들은 이미 지처버렸구요 기사읽어보고 대답은 사실입니다
리플달기
5 0
김개똥 (124.28.108.242)
2011-09-29 05:49:40
다 먹고 많이 싸라
리플달기
2 0
두르뭉실/카더라 통신 (218.152.82.108)
2011-09-28 19:25:30
글은 진솔하게/사실을 써야 합니다.
보통/6하 원칙에 의해 쓴다고 하지요.
증거를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문서나 녹취)

누가/언제/어디서/왜/무엇을/어떻게입니다.

선생님의 글은 "카더라 통신이군요"
구체적으로 써 주세요./시인 우이산
리플달기
1 14
김우철 (114.203.237.213)
2011-09-28 20:55:08
우선생님
이산은 저산보고 뭐라하지 않습니다요.
그저 침묵하며 제 자리를 지키죠.

한마디로,
이름값좀 하셔야 겠어요.
애써 써놓은 글을 비판만하지 말고 이 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이해 하셔야죠.

노후가 평안하실려면 말입니다.
삼가 평안을 빕니다.
리플달기
11 0
엘리야 (14.43.7.225)
2011-09-29 15:49:58
우이산 선생님
카더라가 아니고 이것이 저희교회의 현실이며
윗글의 신선생님의 고귀함을 읽고
그렇케 깨달음이 없으니
참으로 한심하군요.
현실적인 예를 그리많이 들었는데도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한단니 참으로 안타깝군요.
그래가지고 시한편의 글쓰겠어요.
그래도 자신이 시인이라고 하니
참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부디 신성생님의 글에 자신을 한돌아보세요.
한국교회의 비판이아닌 마음의 글입니다.
리플달기
4 0
눈먼목자 (58.234.110.23)
2011-09-30 16:11:38
어디 멀리서 증거를 찾겠습니까? 바로 저희 교회 이야긴걸요, 돌아보면 너무도 많은 교회가 너무도 당연한 듯이 저지르고 있는 추악함인걸요. 그렇다고 그 현실을 뒤바꾸기에 성도들의 의식도 목회자의 의식도 버거움이 있어 보입니다.
리플달기
6 13
신선생님글은 맞습니다. (218.152.82.108)
2011-09-29 17:27:59
저희 교회의 현실입니다.
고귀한 글도 맞습니다.

그러나 "꾕과리가 되지 않도록
구체화/신학/개혁"시키는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참으로 "한심하군요"

시는 1985년 이전에 "시집두권"냈고 "천료 시인이니"
돈주고 등단하는 "가짜 시인도 아니고 중진/자유문학 추천작가니
그 감투도 실증나 안쓰고 "시인 심사도 중단"한 사람입니다.
가짜 엘리아가 한심하군요.

신성생님 글은 한국교회를 날카롭게 비판(비교 판단)한거 맞습니다.
우이산


시는 상징입니다.우철씨
리플달기
8 13
엘리야 (112.163.44.49)
2011-09-30 19:46:33
우선생님
시를 놓은지 오래되셨군요.
글을 남기지 않으니 알수 없지요.
그리하여 가짜 엘리야가 한심하다고 하셨군요.
무지함을 용서하소서.....
리플달기
6 14
저산/우이산 (218.152.82.108)
2011-09-29 12:28:59
저산은 우이산입니다.

중국 남평시에 있고 중국어 "무이산"이라고 하지요.
양산에 육상산(양명/심학)
음산에 주자(꽁생원/유학)이 태어 났지요.

감리교회는 음산한 "땅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영성의 세계로 가지요"

우이/이계/홀량호/한국 심상학의 원조.

김우철(우/어리석음)철선생
우이산은 "이름값?" "누구"

사는게 브끄러워/숨어 살고 있습니다.
이글 무얼 말하는지 "누가 모르나"

노후 평안 하실려면(?)
김우철씨로 인해 내 노후가 평안치 않아 지나요(?)
껍데기(육신/허물/죄)를 버리면 영의 세계서 영생한답디다.

이후 댓글 쓰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노후 평안을 위해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노후가 평안하려면(협박성 댓글에 대한 대답)

김우철선생/삼가 영면 하소서
리플달기
5 16
글 바로쓰세요/우이산 (218.152.82.108)
2011-09-29 11:11:31
글은 6하 원칙에 의해서 "실증(진실)이 되야 합니다.
성경과 오딧세이 방식 "즉"

에피소드(예화/구체적으로 누가/스토리의 주인공)가

8가지 에피소드(제의/문제)
8가지 에피소드(제시/해법)이 되야 합니다.

이런 글은 유언비어로 "읽는 사람으로 공분/광기"를 유발 합니다.

3단 논법,-
어느교회 누구다.
이건 잘못됐다.
이렇게 고처야 한다.

가 나와야 합니다.
리플달기
6 16
참고 자료 (49.50.206.22)
2011-09-29 17:26:13
제자교회: 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5916
리플달기
11 13
참고자료가 있군요/미안합니다. (218.152.82.108)
2011-09-29 17:31:19
신선생님!
미안 합니다/우이산
리플달기
9 13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