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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월권 중앙선을 넘었다목사의 직무를 제한해야 하는 이유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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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8월 03일 (화) 19:14:39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59:17 [조회수 : 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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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목사가 '교주'가 되고, 교회는 '목사 왕국'이라는 가슴 아픈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물론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회 내에서 담임목사가 반대하는데 이를 거스려 제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고, 반대로 담임목사가 열심으로 추진하는 일이 부결되는 경우도 매우 드믄 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물론 당회니 제직회니 하는 주요 의사 결정 기관들도 맥없이 어용화해 그 본연의 기능을 망각하고 목사의 시녀처럼 거수기로 전락해서 오히려 목사의 독주와 월권을 돕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담임목사에게 집중된 유형, 무형의 과도한 권한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이처럼 개혁 교회 내에서 상식을 넘어서는 지나친 '교권력 집중'이 앞으로도 이대로 계속 허용되어야 하는지 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를 빰치는 일부 목사들

여러 교단들 중에서 특히 장로교단의 경우, 이 교권 집중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초기 개혁자들이 처음 장로 중심의 교회 정치 체제를 세울 때, 가장 경계한 것이 중세 교황 제도와 성직자 제도이었습니다. 이 가톨릭 성직자 제도는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사제가 나서서 중간자 역활을 하는 것으로, 신자들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성경과 개혁의 정신에 크게 어긋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장로제는 근본적으로 모든 신자는 '직분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며 따라서 신도들 사이, 교회들 사이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교회 내의 계층적 또는 계급적 구조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직분자에게 절대적 권위를 두지 않고, 회중이 선출한 장로들이 교회의 치리를 담당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장로제 자체도 '목사 직분을 매우 중시하는 전통' 때문에 중세적인 계급화로 빠져들 수 있는 위험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장로'나 '감독'은 사도 시대부터 있던 성경적 근거가 분명한 직분들입니다. 다만 감독 역시 장로이며, 단지 장로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가 감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여튼 역사적으로 보면 개신교의 장로제나 회중제가 교황제나 감독제 이후에 나온 제도임을 알 수 있고, 전자는 후자의 문제점인 교권적, 계급적 제도에 대한 거부감과 이를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채택된 제도임을 추측케 해 줍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시대착오적인 한국 개신교의 교권주의자들은 중세 주교들처럼 신도들 위에 군림하며 상전처럼 행세를 하고, 권위주의적인 목회를 고집하려 합니다. 특히 중대형 교회로 갈수록 그 행태가 더욱 가관입니다.

교권과 기득권의 단맛에 길들여진 이분들에게서 갈수록 사치, 위선, 오만, 탐욕 등은 쉽게 볼 수 있으나, 겸손과 온유와 절제를 찾아보기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제자된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그저 높아지고 대우받고 누리려고만 하지, 스스로 낮아지고 나누고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적지 않은 목사님들의 연속적인 추태로 인하여, 목사의 권위가 진창에 떨어지고 세인들의 비웃음과 조롱도 이미 차고 넘치도록 받고 있건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분수를 모르는 처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잠시만 들여다보아도 각 지역 교회의 목사님들이 얼마나 원색적인 비난을 다양하게 받고 있는지 생생히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거룩하신 이들 목사님들께서는 백성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세인들의 이유 있는 비판마저 못 들은 척 무시하며, 교회라는 거룩한 울타리 속에서 충직한 신도들을 거느리며 이미 넉넉히 챙겨 놓으신 재물과 함께 독야청청 풍족한 삶을 누리고 계십니다. 물론 이분들의 이런 철면피한 행동들은 지각 있는 신자들의 주름살을 늘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요즘 세상에 한국교회만큼 어처구니 없게 억지로 웃겨 주는 곳도 아주 드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에게 잘 길들여진 많은 신도들은 목사의 독주를 별로 개의치 않고 당연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도리어 매사에 담임목사님을 찾으며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예배, 교육, 선교, 구제, 각종 행사, 사업 계획, 행정, 관리 등 도대체 약방의 감초처럼 목사가 간여하지 않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현상 역시 목사직에 더욱 큰 힘을 실어 주게 하고, 동시에 목사가 다른 사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담임목사제' 폐지도 고려해야

그런데 목사가 초인도 아니고 또한 만능 연기자도 아닐진대 어찌 이런 다재다능한 역활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때로는 점차 능력에 넘치는 무리수를 자주 두게 되고, 그러다가 자꾸 반발이 생기면 결국 자신에게 맹종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교회가 서서히 독재화해 가는 것입니다. 드디어 중앙선을 넘어서는 것이지요. 이때부터 목사는 황색선을 무시하고 월선하는 매우 위험한 재미에 빠지게 됩니다.

더구나 변변한 제동 장치 하나 제대로 없이 월권하고 독주하는 담임목사를 따라 마냥 달리다 보니, 한국교회는 내실 있게 제대로 되는 일도 별로 없고 반대로 외견상 안 되는 일도 별로 없는 이상한 교회로 변질되게 된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그만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 형국입니다. 예로부터 머리가 이상해지면, 발도 고생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제 발에 병이 생겼으니 더 이상 과거처럼 마구 달리기도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무당 굿하듯 안하무인으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목회는 이제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신자들이 지체가 되어 각자의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사역을 나누고 함께 '동등하게' 동역하는 목회 풍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내에서 직분 간의 계급이나 우열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만 목회자가 아니라, 교회 학교 교사도 목회자이고 구제하고 심방하시는 집사님과 다른 봉사를 하는 여러 신도들도 모두 목회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목회는 신자들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되어, 모두가 참여하고 합심하여 동역하는 '공동 목회'를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담임목사직'을 폐지하고, '전임설교자'나 '시무목사' 또는 '교육목사' 등의 직제로 바꾸는 방안도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 '담임'이라는 용어가 '담임교사'나 '담임교수'처럼 다분히 수직적이며 권위주의적인데다가, 또한 전문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주요 책무인 목사직이 구태여 교회나 당회를 대표하는 직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직의 월권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고려해 볼 때, 이를 폐지하거나 대체하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구더기가 더럽다고 장독을 깨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설교나 교육이 주업무인 목사직이 구태여 교회의 수장이 되거나, '담임'이라는 명판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교회에 왜 이 '담임'이라는 역활이 필요한지도 큰 의문이 가지만, 설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도리어 시무장로들에게 적합한 직책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필자의 부족한 소견을 감히 추가하자면, 특히 교회 공금 횡령, 치부, 간통, 세습, 교권 남용 등 그 도덕적 결함으로 인하여,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종교 귀족'이라고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부 대형 교회들의 담임목사직부터 시범적으로 폐지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설교권은 그 자체로 큰 권력

여기서 '설교권'에 대해 또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설교는 축복이며 보약이 되지만, 나쁜 설교는 저주이며 동시에 독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가장 우려스러운 문제 중의 하나는 매 주일 강단에서 일방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설교권을 가진 담임목사가 신도들을 맹신화하며 독주하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1960년대 한창 학생 운동이 미국 대학가를 휩쓸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버드 법대의 한 학생이 졸업식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가는 반란과 난동을 부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은 이 나라를 파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들끓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이 나라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것은 한참이나 그칠 줄 몰랐습니다. 마침 시국이 어수선하던 차에 하버드 법대 졸업생의 소신에 찬 뜨거운 졸업사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수가 가라앉을 무렵, 이 학생은 조용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방금 한 말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한 연설 내용입니다."

설교권이 악용될 때의 상황은 마치 과거에 독일 국민들이 무더기로 독재자 히틀러의 화려하고 달콤한 말에 세뇌당하고 기만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또한 오늘날의 간교한 정치 독재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기도 합니다. 비록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작금의 한국 사회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절실한 내용이며, 동시에 '일방적인 발언권'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 권력인지를 잘 보여 주는 일화이기에 여기에서 다시 인용하였습니다.

많은 독재자들은 히틀러처럼 자신의 욕망과 치부를 가리기 위해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경찰력으로 반발하는 국민을 누르고, 뒤에서는 스스로 초법적인 부정을 은밀히 자행합니다. 자신들은 정작 더욱 중요한 '법의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문자적 '법규'를 강요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한국의 교권주의자들과 매우 닮은꼴입니다.

부패한 목사들도 마찬가지로 설교 시 교묘한 말로써 신도들을 오도하거나 미혹하고 협박하여 순종을 요구하며, 스스로는 비성경적인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일방적인 말의 힘이 주는 부작용을 우리는 이미 세속 언론에서조차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하고 큰 권력도 부족해서 추가로 교회의 입법권,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까지 담임목사의 영향력 아래에 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목사라는 직함으로 위장한 종교업자들이 교권을 흔들며 교회를 사유화할 수 있게 된 이면에는 이런 제도적 결함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 거룩한 교회에서만은 예외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역시 어쩔 수 없는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들 뿐만이 아니라 교수나 기업인 또는 정치인 등 하여튼 모든 허탄한 인생들은 체질상 틈만 나면 끝없이 권력을 탐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권력 추구 습성은 역사가 가르쳐 준 진실이며, 부패한 인간의 죄성에 기인합니다. 오죽해야 '권력은 부자 간에도 서로 나눌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이 점을 경계하고 교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회가 직임자들의 권한과 직무와 임기를 명확히 분배하고 제한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직분'으로 전문화해야

한국교회의 극심한 부패는 우선적으로 현행 목사 제도의 약점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계추처럼 분주하고, 만능 탤런트처럼 잘나야 하는 기존 목사의 역활을 깊히 생각해 보고 본연의 자리로 돌려 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급한 권위주의적 목회도 제거해야 합니다. 목사가 교회를 섬겨야지, 교회가 목사를 섬겨서야 되겠습니까.

또한 목사는 물론 장로나 감독 그 누구라도 교회 내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인 태도도 반드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초기 교회에는 베드로나 바울은 물론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지도자 사도 요한마저 죽고 없었지만, 여러 신도들이 합심하여 무려 3세기에 걸친 10여 차례의 혹독한 박해를 받고도 믿음의 순결을 잘 지켰던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각 교단의 노회나 연회, 그리고 총회에서 소란을 피우는 정치 목사님들은 깊은 자성이 필요합니다. 목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가르치는 것이지, 다스리고 정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몰려다니며 패싸움이나 하는 것일까요. 더구나 왜 자신이 아니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교만을 떠시는지요. 정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목사만이 성직자라거나, 목사직만이 다른 직분에 비해 특별히 높은 자리는 절대 아닙니다. 목사직도 당연히 권사직이나 집사직처럼 그저 교회의 여러 소중한 직분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그 해법과 진실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목사님들은 이제 자신의 직분이 아닌 '다스리는 위치'에서 내려와 성경의 원리에 걸맞는 설교자의 위치로, 전도자의 위치로, 교사의 위치로, 그리고 '가르치는 장로의 위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직분들이 해야 할 여러 직무들과 함께 당회장직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회중을 다스리고 관리하고 봉사하는 일은 시무장로들과 제직들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칼뱅은 일찍이 "교회의 행정 체계나 제도가 영원히 우리의 양심을 묶어 둘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과연 무슨 근거로 목사가 삼권을 흔들며 교회 위에 군림하는 것인가요. 교회가 목사의 개인 기업입니까. 그리고 교회 개혁이 자꾸 겉도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목사 자신들이 사욕을 못 이겨 개혁을 거부하고 이권을 챙기며, 맹신도들이 이를 추종하기 때문이 아닌지요.

앞으로 목사직은 본분을 벗어나 월권하며 교회 정치나 행정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당회의 관리를 받게 하고, 주로 설교하고 전도하고 가르치는 고유의 직분으로 전문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권주의자들이 월권하고 독주할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목사의 방만한 직무와 권한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명확히 규정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목사직 전문화'는 모두에게 유익한 길

그런데 목사님들의 책임만 지적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교회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회나 제직들이 목사가 온전히 말씀을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온갖 교회 일에 목사를 찾고 개입시키니 무슨 여유가 있어 전문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몸이 두 개라도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목사직의 전문화'는 교회의 유익은 물론이고 목사님들 자신의 은사를 극대화하고, 또한 깊이 있고 효과적인 목회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아울러 이는 사도들이 전도와 교육에 전념하기 위하여 구제와 관리 및 행정을 집사들에게 맡겼던 것처럼, 초대 교회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는 목사직 월권을 해소하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 민심을 외면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교회 교권주의자들은 과도한 교권력을 쥐고 독주하며, 차라리 담임목사직이 없는 것보다도 못한 역기능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만일 이를 시급히 시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담임목사직이 없는 '가정 교회'나 '평신도 교회'가 일반화할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이제는 평신도들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러 금이 가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당만 크고 화려하게 지어 놓고, 몰락한 유럽의 교회들이 보여 주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한국교회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이 세대가 가기 전에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실망하고 분노하며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개혁 교회가 지금이라도 교권주의의 오류를 겸허히 인정하고, 바른 목사직의 정립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 5:21)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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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전도 (125.178.137.170)
2010-08-17 09:45:46
교회개혁을 누구보다도 갈망하는 한사람으로서 매우 올바르게 잘 보셨습니다.누구든지 <들을 귀>와 <보는 눈>이 영육간에 발달된다면 지헤로운 사람이 될 수잇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목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글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 입장에서는 교회와 영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글로 주님의 심판을 받을 비판이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신앙양심이 괴로워 <교회개혁>을 주님께 울부짖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 각 기독교단들이 경쟁하되, <한국교회 개혁> 에 실천을 위한 선의적 경쟁을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이크만 들고 말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테레오 두귀를 쫑긋 세워서 <한국교회 개혁> 에 앞장서는 자들이 많이 나와 그런 사람들이 교단에 들어가 교단법 <인사,상벌,감사,재정회계,등급별*경력별 교역자 표준은급 규정등..> 을 만들어서 천주교단 처럼이라도 하면 안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천주교의 복음이 혼합된 것은 본받을 필요 없고요. 일반상식으로..각교단이 교회를 직접 관리*운영하면 <한국교회> 들이 통제되지 않겠습니까? 교단들은 협회 역할만 하면서 교단비만 받는 뭐 그런 식 같아요. 교단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개교회들이 하는대로 내버려두니 개교회들 끼리 제멋대로 아닌가요. (교회개혁안을 접수 시킬데가 없어서 한숨!!) 신앙칼럼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 칼럼을 받아들여주는 <개혁적인 교단>이 부디 나오길 바랍니다. 정부나 교육계도 비록 사건후에 뒷북행정이지만 그래도 개혁은 하지 않습니까? 개혁은 리모델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66권을 기초로 하여..이미 지어진지 오래되어 낡아서 너덜거리는 교단*노회*개교회의 내외부를 뜯어내고 마감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개혁은 재건축이 아니라..신축이 아니라..분명, 리모델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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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218.52.137.8)
2010-08-07 21:33:22
참으로 좋은 말씀을 써주셨네요...저도 몹시 공감하는지라 덧글을 여러곳에 달아놨습니다.,.. 목회자분들은 성도님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놓고 스스로 교주가 되고 종이라 가르치고 상전이되고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장정과 교리도 너무나 목회자 중심으로 엉터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 교리와 장정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목회자 중심으로 권위가 이루어져 장로님들도 전혀 권위가 없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장로님들도 깨어나셔야 하고 목사님들도 설교와 교육에만 전념해야만 합니다..
교회에서도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월급여를 주고 목회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례비를 받으면서도 또 교회는 교회에 맞는 목회자를 교회에 초빙을 하면서도 후에는 목사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회가 목회자들의 시녀로 들어가는것을 많이 봅니다... 교회는 월급을 주는쪽이고 목회자는 월여를 받는 고용된(하나님께 고용된) 사람입니다..
장로님으로 부터 모든 성도님들은 교회의 주체이고 목회자분들은 그에게 고용된 것임을 깨닫고 목회자는 고용된이의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시고 교회를 섬기시고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님들을 섬겨야만합니다... 성도님들이 목히자님을 섬기는게 아닙니다..목회자가 예수님을 주인의 자녀를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여러가지 할말이 많지만 지금은 교회의 모습들이 목회자가 제왕이 되어 있고 참으로 기가 막힌 혀실입니다... 마치 목회자가 월급을 성도에게 주는 것처럼 횡포를 부리고 마구 인사를 하고 (자르고)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렇게 상처를 주는 것 다식금 예수님께 창으로 찌르고 침을 뱉고 참으로 까무러치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목회를 하니 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현재 교단의 모습이고 교회들의 모습입니다...예수님을 보지못하고 몰라보는 것은 안보이기때문입니다... 바로 소경이라는 말ㅆ슴이지요..교단도 이렇게 보지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 보지못하고 마구 사우잖아요 예수님을 보는 눈이 있다면 이럴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볼수있는 영안이 활짝 열려지기를 기원합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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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207.10)
2010-08-06 05:57:46
먼저 많이 미흡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방현섭님, 물론 '담임목사의 권한을 제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저도 깊히 동의합니다. 장로님과 교인들의 횡포 역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장로, 권사, 집사 등 모든 직분자들의 피택과 임명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또한 그 임기를 정하여 회중의 재심을 받게 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설교권을 가진 목사님이 평소에 잘 가르치시고, 또한 '가르치는 장로'의 신분으로서 항상 교회의 좋은 '고문' 역활을 해주신다면 현재보다는 나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큰 도움이 되는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멋쟁이님, 참으로 순수한 마음을 지니셨군요. 소중한 댓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요담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자주 격려까지 주시니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 제도의 변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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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섭 (121.160.86.184)
2010-08-05 14:45:21
많은 부분 공감하나 담임목사의 권한을 제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중의 횡포는 더 위험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다중이 민주적일 수는 있겠지만 정의로울 것이라는 낙관은 금물이겠지요.
어쨌건 많은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큰일입니다. 한 30년만 지나면 한국교회 위상이 땅바닥을 치지 않을까 걱정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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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221.145.155.212)
2010-08-04 11:32:43
순수한 성도들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을 목사님들께서 이용(악용) 하시므로 시작 되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도 우리 평신도들은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뿐 입니다
목사님 말씀은 곧 주님의 말씀으로 믿으니까요
그래도 그대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이 보고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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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 (121.130.231.154)
2010-08-04 11:17:50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도시사회구조와 그에 발맞추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아하는 교회분위기에서, 제도변화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그마저 하지 않은것 보다야 낫겠지 스스로 위안삼으면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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