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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타락과 담임목사 제도회중이 주체가 되는 교회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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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17일 (월) 17:21:02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56:44 [조회수 : 1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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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부정과 부패의 중심에는 언제나 담임목사들이 우뚝 서 있습니다. 6억 원의 연봉을 챙긴 이도, 상습적으로 신도들을 성추행한 이도, 자식에게 담임직을 세습한 이도, 거액의 교회 공금을 횡령한 이도, 그리고 법원 명령까지 불응하며 재정 장부 공개를 버티는 이도 모두 다 소위 '담임목사'라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행으로 인하여 교인들의 억장이 무너져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은 예배당을 우상화하여 '성전'이라고 열심히 주장하지만, 오히려 다른 비판자들은 성전이 아니라 '복마전'이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악의 소굴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부패와 비리의 온상지를 우리는 흔히 복마전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여러 대형 교회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며, 이들의 '공동의회'는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세습 승인, 성추행 감싸기, 공금 횡령 은폐, 예·결산 날치기 통과, 그리고 초대형 예배당 신축 등이 모두 이들 공동의회의 자랑스러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설교권과 무제한 발언권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가장 큰 취약점 중에 하나가 회중을 대표하는 공동의회에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공동의회가 담임목사의 '거수기' 노릇하는 것을 막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형 교회에서 공동의회는 담임목사의 입김대로 의사 진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안건에 대해 보통 90% 미만의 지지를 받으면, 오히려 그것이 이변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담임목사가 막강한 설교권을 갖고 있어, 평상시 특정 사안에 대한 신도들의 선입관과 여론을 거의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단에서든 일방적인 발언권이 무서운 이유는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특히 맹신적인 목사 숭배가 폭 넓게 일반화한 한국교회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소수파가 담임목사를 견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이단이나 사단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겨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수천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개인들에게 발언권을 골고루 주고, 충분히 토론할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을까요.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대형 교회는 강단에서 '무제한 발언권'을 지닌 담임목사가 자연스럽게 '수령'이 될 수밖에 없는 '허약 체질'이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한국교회 역사상 대형 교회 공동의회에서 담임목사가 추진하는 중요 안건이 부결된 사례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 덕분에 한국교회에는 대를 이어 충성하시는 세습 목회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본인들은 이런 세습에 대하여 얼마나 긍지를 느끼며 자랑스러워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는 전 세계 어느 나라 교회사에서도 보기 힘든 대단히 수치스러운 행위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무려 한국 대형 교회의 약 70%가 공동의회의 합법적인 승인을 받아 세습을 한다고 합니다.



어용화한 공동의회, 당회, 그리고 제직회

사실 모든 신도들이 교권주의자들의 간교함을 정확히 이해하고 불의한 안건에 대해서 소신껏 거부할 수만 있다면, 교회의 크기 자체가 문제가 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많은 신도들은 담임목사를 나머지 직분자들이나 일반 신도들과는 달리 다소 '성스러운 신분'으로 크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목사들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聖'스러워지지는 못하고, 도리어 갈수록 '性'스러워져서 큰 탈입니다.

하여튼 고용 측면에서만 본다면, 목사는 교회가 임명하고 고용한 '유급 직원'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고용주'인 회중이 '피고용인'인 목사를 상전처럼 떠받들고 오히려 그에게 휘둘리고 있으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이 못된 하인이 주인의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힘겹게 돈을 잘 바쳤더니, 이제는 몸까지 바치라고 합니다.

문제는 신도들이 목사의 월권과 독재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권주의에 깊이 중독된 신도들의 의식이 변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개신교는 전통적으로 목사직을 다른 직분에 비해 지나치게 존중하는 관습이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형 교회에서는, 당회나 제직회 역시 담임목사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당회원만 해도 수백 명이 되는데, 목사가 홀로 독주할 때에 무슨 수로 서로 의견을 모으고 견제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교회의 부서장과 기관장 등 중요한 요직에는 대부분 담임목사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기용하기 때문에, 당회나 제직회 역시 '목사의 시녀'로 전락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회중이 주체가 되는 교회

이런 목회 독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담임목사직을 다스리는 기능과 함께 폐지하고, 설교하며 가르치는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문화하는 것입니다. 명칭도 '전임 설교자'나 '시무 목사' 등으로 바꾸면 좋을 것입니다. 당회장은 다른 장로들이 임기에 따라 돌아가면서 교대로 수행하면 됩니다. 교회의 주요 사업 관리나 행정 등은 모두 공동의회에서 선출된 시무 장로들이 구성한 당회의 주관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집단 지도 체제'는 담임목사제보다 훨씬 투명하고 민주적인 교회 운영을 가능하게 합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회중 교회(Congregational Church)'가 이와 유사한 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장로제를 두지 않고 집사제만을 운용하며, 전체 교인 중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평의회'를 구성합니다. 그 안에는 필요에 따라 여러 '위원회'를 두어 예배, 교육, 재정, 전도 등을 맡아 봉사하게 합니다. 각 위원회 의장의 임기는 대개 일 년으로 하며 순수하게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회중 교회에서 시무 목사의 주요 직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그리고 성례전을 집례하는 것으로 제한됩니다. 목사는 오직 말씀 사역을 담당할 뿐, 제반 교회의 모든 사업과 행정은 전적으로 일반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결정하고 집행합니다. 그래서 목사직을 포함한 모든 직분들 간의 평등이 잘 실천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 전도자 무디 선생도 바로 이 회중 교회 출신입니다.

그런데 만일 현실적으로 담임목사직 폐지가 당장은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중대형 교회 담임목사와 시무 장로들의 연임을 적절히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목사 독재나 장로 독재를 제도적으로 사전에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한 교회에서 10~40년 이상 하는 장기 사역은 비교적 순수한 목회자들마저도 부정과 독재의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가톨릭의 경우, 주기적으로 여러 사제들이 각 지역을 순환하며 동역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역 교회에서 '구조적인 부패'가 발생하기 매우 힘듭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임을 제한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담임목사 재신임 투표 시에 너무나 많은 부작용이 표출되어서입니다. 부도덕한 담임목회자들은 재임 기간 중에 부지런히 자기 사람을 늘리고 세력을 확장하여, 재신임 투표 때마다 교회가 분쟁에 휩싸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여튼 한번 잡은 밥그릇은 절대로 놓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 교권주의 목사들의 본능적 전통입니다. 이를 잘 알고도 그들에게 제도적인 허점을 제공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직분자 임기제 역시 중대형 교회에서는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담임목사를 위시하여 시무하는 당회원 전체의 임기를 개교회의 여건에 따라 약 2~7년으로 정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교회 내에 세력을 형성하고 교권을 남용하는 일을 예방하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보다 모든 교회의 감사 기능을 크게 강화하여야 합니다. 감사 위원회는 장로나 집사들로 구성하면 좋을 것입니다. 아울러 감사 결과는 회중을 대표하는 공동의회에 매년 문서로 보고토록 합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사업, 재정, 인사, 행정, 그리고 기타 관리에 대한 중요 내용이 포함됩니다. 특히 재정 감사의 경우는 필요시 외부 전문가도 참여할 수 있게 하여 그 투명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교회 정관에 문서화하여, 사전에 불필요한 논쟁의 소지를 최대한 줄이고 늘 체계적이며 투명성이 있는 교회 운영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위에 전술한 대안처럼 교회를 개혁한다면, 아마 신학교 지원자가 급감할 것입니다. 목사가 부유해질 수 없는 것은 물론, 그나마 철밥통도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안정한 직업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교회도 평생 고용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그럼 누가 그런 피곤하고 배고픈 목회를 하겠느냐"고 따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발 목회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으면, 절대로 목회하지 마시고 부디 다른 직업을 찾아보십시오. 지원자가 너무 적어서 경쟁력이 없는 신학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교회들이 시무 목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져도 좋습니다. 또한 목사직이 너무 고생길이어서, 신랑감으로 기피하는 첫 번째 직업이 되어도 좋습니다. 오히려 필자는 그런 신선한 세상에서 한번 살아 보면 좋겠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지만, 담임목사직이 철밥통이 되는 한 한국교회의 갱신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런 가혹한 개혁만이 '목회자 저질화'와 '신학교 난립'을 해결하고, 동시에 세습을 뿌리 뽑고 거룩한 교회가 다시 새로워지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밥그릇'이 아니라, '소명'에 자신의 삶을 바친 목회자들만이 한국 사회에서 참된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식 담임목사 제도는 바리새인의 누룩

사실 종교개혁 전까지는 교회 내에 '목사'라는 직분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제'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터, 칼뱅, 그리고 츠빙글리 등의 종교 개혁자들은 이 사제라는 직제를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마치 구약의 제사장처럼 일반 신도들과는 다른 계급적 역할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에 대해 처음에는 '설교자'나 '사역자' 등의 명칭을 쓰다가, 결국에는 신약성경에 단 한 번 언급된 '목사'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한국교회 담임목사들은 과거 종교 개혁자들이 극히 싫어했던 중세 교회 사제들의 역할을 추구하며 도리어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목사직의 성직화, 귀족화, 그리고 교권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히려 일부 중대형 교회 담임목사들은 과거 중세 교회의 사제들보다 더 큰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니 한국교회는 개혁 교회가 아니라, 차라리 '개악 교회'라고 불러야 할 판입니다.

물론 시무 목사가 당회장이 되는 담임목사직에도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교회 성장 초기에는 일원화한 지도력으로 인하여 효율적인 면이 많습니다. 또한 모든 교인들의 직접 의사소통이 손쉬운 작은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독주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개척 교회에 무슨 대단한 이권이 있겠습니까. 다만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부터는, 담임목사에게 집중된 지나친 교권으로 인해 득보다는 실이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장로'로서의 목사직 자체는 신약성경에 근거한 중요한 직분입니다. 다만 이 '담임'이라는 명칭은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직제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한국교회에서 언제부터 누가 이런 명칭을 목사직 앞에 붙였는지 확실치도 않습니다.

더욱이 담임목사가 자동적으로 당회장이 되어 교회 모든 일을 주관하고 관여하는 이유를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교회를 대표하고 다스리고 돌보는 일은 목사의 업무가 아니라, 본래 장로나 감독들의 주요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더라도, 이 담임목사라는 직책은 '바리새인의 누룩'처럼 사람이 임의로 만든 지극히 교권주의적 '유전'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당회장들은 아예 '왕회장' 행세까지 하여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혹자는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초대교회에서 지녔던 특별한 지위를 이유로, 목사직의 우월성을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약 교회에서 목사직은 사도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직분보다 우월할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사도들조차도 말씀 사역에 몰두하기 위해, 다른 사역들은 집사들에게 위임하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론은 사실 단순합니다. 성경의 원리대로 장로는 다스리고, 목사는 가르치고, 그리고 집사는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각자 제 자리를 지키면 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교회 문제는 목사들이 자기 분수를 넘어 다스리려고 월권하며 사욕을 부려서 생깁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교회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누구일까요. 바로 이들 담임목사들입니다.


모든 교권은 회중으로부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회중을 대표하는 공동의회가 변질된 담임목사들에 의해 기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신학은 교권의 시녀가 되고, 개혁 신앙은 기복 신앙의 시녀가 되고, 십일조는 맘몬의 시녀가 되고, 그리고 직분자들은 담임목사의 시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직 극소수의 교회만이 예외일 뿐입니다.

도대체 한국교회에 더 이상 보여 줄 순수한 그 무엇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입으로는 늘 복음을 말하지만, 행동은 크게 사이비한 교회가 한국교회입니다. 겉과 속이 극단적으로 다른 가증된 교회가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이르게 된 데에는 '담임목사 제도'라는 비성경적인 교권 남용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특정 개인이나 직분이 회중 위에 군림하며 교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한 바가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지체입니다. 또한 각 지체들 간에 계급적 우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진리이며, 아울러 개혁 교회의 신조입니다.

따라서 과도한 교권을 독점한 한국식 담임목사직은 개혁 교회에 합당한 직분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는 그 어떤 직분도 다른 직분보다 우월하지 않고, 그 어떤 직분도 다른 직분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바로 서려면, 먼저 담임목사가 과소유한 교권을 회중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권은 회중을 대표하는 공동의회로부터 위임을 받아 정당하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회중이 교회 운영의 주체가 되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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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69.14.44.203)
2011-01-22 13:50:22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것은 신약 성경에 한 번 나온다고 쓰신 목사 라는 단어 입니다. 에베소서에 한 번 나오는 목사는 사실 천주교 성경을 보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목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원어가 동일해서 이겠지요. 그렇다면 목사라는 단어는 어찌보면 성경에 없는 단어? 많이 웃었었습니다. 천주교와 함께한 공동 번역에서는 그 한번 뿐인 "목사"를 주장 못하고 개신교 끼리만 번역을 할 때 다시 "목사"로 번역을 한것이라는 느낌때문에... 그리고 성서 비평학에서 밝힌대로 디모데 전후서는 바울과 관계없이 후대에 교부들 스스로를 위해 덧붙여진 서신이라고 보면 이제는 교회의 조직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듯 합니다.
그러나 맘 한 구석이 다시 답답해지는 것은 이런 좋은 글이 결국 교회 조직을 생각하고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그 맹신적인 교인들에게 읽혀져야 하는데 그런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 하나님같은 목사들에게 들은 또는 배운 이야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화부터 내는 그 교인들이 결국 목사들과 거의 동등한 무게인 채로 변화나 개혁을 가로 막는 존재인듯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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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신성남 (121.73.198.255)
2011-01-22 19:13:04
'미시간'님! 좋은 지적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저도 사실 한글 성경에서 왜 원어 그대로 '목자' 또는 '양치는자'가 아닌 '목사'로 번역을 하였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엡 4:11에는 그 '목사(목자)'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단어의 뜻으로 보아 그 직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에베소서에 언급된 '목사'직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담임목사직처럼 '과도한 교권'을 독점한 직분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입니다.

매우 유익한 댓글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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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목자 (112.166.18.86)
2011-01-24 00:03:13
장로에게 맡기면 장로도 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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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
(112.166.18.86)
2011-01-24 00:09:56
헌금집계 하면서 빼돌리는 장로 교회차기름을 자가차에넣는장로 교회시설비를 부플려청구하여 횡령하는장로 이루헤아릴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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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
달 그림자 (175.117.199.60)
2012-07-15 20:58:08
좋은 글을 인제서 보앗습니다
개교회 문제의 소굴에서 몸으로 부딧치며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던
장로로써 글을 읽고 동감하며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합니다
1)평신도 교회를 만드는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2), 기존교회의 제도를 바꾸는것은 더욱 좋은 방법입니다.
내용의 요점을 간략하게 하여 전달할수있는 메일 형태로 만들어 교파를 초월하여 목사, 장로는,모두 꼭읽어볼수 있게 하여 하여야 할것임니다.

감리교단에서는 뜻있는장로들이 대안을 찾느라고 고심중에 있습니다.
입법총회에서 장정법을 통과시키면 됨니다.
물론 기득권자들이 반대하겠지만 시대의요구를 거스릴수는 없습니다.
제도개혁으로 부정한 목사들이 강단에 설수 없게 만들어야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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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
holyna1 (121.139.234.29)
2011-01-24 12:17:04
공감가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몇십년 외국에서는 몇백년동안 고정화된 현재의 이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답하군요.
일반 성도들도 앉아서 듣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서 바꿀수 있는 주체가 누굴까라는 의구심도 들구요.
저도 같은 마음(신성남님과)을 가진 일반 성도이기에 기존교회에서 몇몇 친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 의견을 피력할 뿐 그 이상의 변화의 주체로서의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답답한 마음만 갖게 될 수 밖에 없네요.
이런 교회 개혁의 실천적인 방법이 모색되었으면 좋겠네요.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세우는 이 일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실천적인 방안은 전혀 거론되지 않아 한쪽가슴에 답답함이 자리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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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
신성남 (121.73.205.183)
2011-01-24 20:33:26
먼저 가능하다면,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 뜻을 같이 하는 직분자들(장로, 권사, 집사 등)과 의견을 모으고 그분들을 한분씩 설득하여 '점진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대형 교회라면 당장은 어려운 방법입니다.

위의 방법이 불가능할 경우, 같은 뜻을 지닌 소수(3~4가정)라도 따로 모여서 우선은 '평신도 중심의 공동체'를 시작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예배당을 짓거나 유급 사역자를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가 구태여 '고비용'을 요구하는 공동체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굴에서 '가정 교회' 또는 '평신도 교회'를 입력하시고 검색을 해보십시요. 참고가 되실 것입니다.

우선은 형편에 맞게 가정이나 개인 사무실 등을 빌려서 공동체를 시작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프로그램을 중시하지 말고 부담 없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가능하다면 작은 일이라도 지역에 소외되는 분들을 도우면 좋겠습니다. 물론 헌금은 무기명으로 하는 자발적인 헌금만 거두고, 공동체의 재정적 능력에 적합한 수준의 일만 하면 될 것입니다.

제 경우 과거 가까운 믿음의 친구들(7명)과 매주 한번씩 작은 봉사를 하는 모임을 수년간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재정적인 능력에 맞게 매우 유익한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 선교, 독거 노인 돕기,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 지역 내에서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이 몇 가정만 모여도 훌륭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얼마든지 건강한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라면 점차로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입니다. 나중에 공동체가 성장한 후, 유급 사역자를 세우는 문제는 그때 가서 차차 논의하면 될 것입니다.

아마 다른 많은 분들은 오히려 이보다 더 좋은 대안들을 충분히 제시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상의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다양하고 구체적 길로 이끄시리라 확신합니다. 주신 의견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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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수민아빠 (121.139.234.29)
2011-01-24 12:24:24
요즘 아나뱁티스트의 외길영성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많은 부분 공감이 갑니다. 공동체의 나아갈 길이 이와 같은 길이 아닌지...
올바른 공동체에 대한 해법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고 신성남님의 의견과도 비슷한 면이 많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한국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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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신성남 (121.73.205.183)
2011-01-24 20:42:17
'수민아빠'님 좋은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오늘날 한국교회는 특히 아나벱티스트의 그 '순수함'을 배워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에 반대를 누르시는 분은 어떤 이유이신지 정말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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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
미시간 (69.14.44.203)
2011-01-22 13:50:22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것은 신약 성경에 한 번 나온다고 쓰신 목사 라는 단어 입니다. 에베소서에 한 번 나오는 목사는 사실 천주교 성경을 보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목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원어가 동일해서 이겠지요. 그렇다면 목사라는 단어는 어찌보면 성경에 없는 단어? 많이 웃었었습니다. 천주교와 함께한 공동 번역에서는 그 한번 뿐인 "목사"를 주장 못하고 개신교 끼리만 번역을 할 때 다시 "목사"로 번역을 한것이라는 느낌때문에... 그리고 성서 비평학에서 밝힌대로 디모데 전후서는 바울과 관계없이 후대에 교부들 스스로를 위해 덧붙여진 서신이라고 보면 이제는 교회의 조직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듯 합니다.
그러나 맘 한 구석이 다시 답답해지는 것은 이런 좋은 글이 결국 교회 조직을 생각하고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그 맹신적인 교인들에게 읽혀져야 하는데 그런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 하나님같은 목사들에게 들은 또는 배운 이야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화부터 내는 그 교인들이 결국 목사들과 거의 동등한 무게인 채로 변화나 개혁을 가로 막는 존재인듯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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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8.255)
2011-01-22 19:13:04
'미시간'님! 좋은 지적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저도 사실 한글 성경에서 왜 원어 그대로 '목자' 또는 '양치는자'가 아닌 '목사'로 번역을 하였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엡 4:11에는 그 '목사(목자)'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단어의 뜻으로 보아 그 직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에베소서에 언급된 '목사'직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담임목사직처럼 '과도한 교권'을 독점한 직분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입니다.

매우 유익한 댓글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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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112.166.18.86)
2011-01-24 00:03:13
장로에게 맡기면 장로도 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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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66.18.86)
2011-01-24 00:09:56
헌금집계 하면서 빼돌리는 장로 교회차기름을 자가차에넣는장로 교회시설비를 부플려청구하여 횡령하는장로 이루헤아릴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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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205.29.125)
2011-01-18 21:02:05
개혁을 위해서 사람이 먼저냐 조직이 먼저냐를 두고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문제는 개혁이 어디에서 부터 시작됬든 조직이 커지게 되면
기필코 부패했던 것이 지난역사의 교훈입니다. 케토릭에서 개혁을 외치며 뛰쳐나온 신교가 겪어오고 있는 문제들도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닙니까 ? 아무리 이상적인 조직이라도 커지면 경직되고, 누군가가 권력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다시 타락과 부패를 계속하는 것이 조직의 본질적인 생리입니다. 조직은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변해야 썩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고함석헌 선생이 간디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 씨알운동을 펼친적이 있었습니다. 간디와 같은 생각과 사상으로 시작한 운동이 한국에서는 인도처럼 크게 성과를 걷우지 못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그중에서 나는 두가지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함선생님께서는 간디와 같은 민중을 동원하고 조직할 수 있는 카르스마가 부족했습니다. 둘째는 새술을 새푸대에 담으려고 하지 않고 기존조직 내에서 개혁을 시도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지요. 루터가 종교개혁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케토릭에서 축출당해 새로운 조직으로 시작 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 합니다. 그것이 한국인들과 다른 서구인들의 기질이라고 생각 합니다. 종교는 개혁이 아니라 혁명을 해야 합니다. "죽으면 살리라" 는 각오로 새땅에서 새조직, 새생각 새피로 시작해야 성공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준 십자가 죽음이고 부활의 참의미라고 나는 생각 합니다. 예수는 유태교를 개혁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새푸대에 담았지요. 제가 한국인들은 정신적으로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은 바로 그런점 입니다. 서구인들처럼 왕의 목을 치고, 왕을 단두대로 보낼 수 있는 기질이 부족 합니다. 한마디로 공자의 온고지신을 믿고 숭상하는 사람들이지요. 예수같은 혁명정신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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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205.29.125)
2011-01-18 23:50:11
중요한 결론 부분을 빠뜨린 것 같애서 몇자 더 적습니다.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분들이 모여서 새로운 모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굳이 교회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둠은 몰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밝아오면 스스로 자취를 감추는 것이 어둠의 속성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빛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빛처럼 스스로 존재합니다. 빛처럼 주위를 변화시킵니다. 생각이나 말은 세상을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작을 출발, 작은 행동은 최소한 그만큼이라도 사회를 바꾸고 변화시켜 나갑니다. 나는 기존교회, 목사들에게 실망하고 계시는 크리찬들에게 감히, 예수님께서 2천년전에 제자들을 험한 세상에 전도여행을 보내시면서 명하셨던 말씀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갖지말고, 소유하지도 말고 하나님만 믿고 떠나라."
신앙은 목사도, 교회도, 교회봉사도, 성경공부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일 뿐 입니다. 그 어느것도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구속할 수가 없습니다. 주저하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길을 떠나십시요. 새로운 시작을 하십시요. 한두 사람이면 족합니다. 건물이 없는 조용한 숲속, 초라한 거리의 한모퉁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외로운 광야의 한복판, 그리고 물이 말라번린 개울가라도 좋습니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명상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느 때 어느 곳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마음 속에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는 딱딱한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늘을 비상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신앙은 이처럼 진리안에 하늘을 비상는 자유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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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20 06:57:41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저도 참된 복음은 속박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진리 안에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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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21.185.203.37)
2011-01-18 18:01:06
전적으로 내용에 동의합니다만, 한 가지는요...
<감리회> 교회에서는 감독권이 '감독으로서의 목사'에게 있는 게 당연하고요
<장로회> 교회에서는 감독권이 '장로들(설교하는 장로(목사) + 치리만 하는 장로)'에게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은 <회중교회>를 선호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시대적 변화 추세이기도 하고요... 어느 시대나 그랬지만 교회 내에서 권력을 훔켜쥔 자들이 생기는 바람에, 아마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말입니다.

사사시대처럼 하나님의 친정체제가 이상일 텐데, 그렇게 되면 결국 또 무지한?회중은 왕을 요구하지요... 아마 그래서 소위 대형교회들이 생겨나고 그들의 교주들이 북한 김씨 집안 처럼 대물림을 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회중이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일평생 제가 책임질 교회도 아니면서, 죽자 사자? 불량식품설교 구분하기... 등등 열심히 하는데, 결국 교우들은요 '순볶음'식으로 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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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20 06:53:40
물론 감리 교회에서 감독은 '다스리는 장로'의 역활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초기 교회의 여러 교부들은 감독으로서 목사의 기능도 동시에 수행을 했습니다.

다만 시무 감독도 임기제로 하는 것은 필요할 듯합니다.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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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121.134.176.179)
2011-01-18 12:02:41
음~ 그렇군요.

사실 목사??? 우리에겐 참다운 목자 는 필요합니다.

전문적으로 교회를 관리하고 교회조직을 관리하고 발발이뛰면서 전도하여 주님의 사업을 전문적으로 확장 시켜줄...

근데 어느덧 목사라는 직업으로 자리잡은 성직자들...
안된 얘기이지만 감리교본부? 그런것들부터 다시 재조명 해야합니다.

지방회 체계, 각교회 당회체계 다 뜯어고치고 정말 본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할수 있고 말씀으로 인도할수있는 "목자" 만 필요합니다.

아무튼 이런글을 대하니 반갑습니다.
윗글보니까 보수적이라 개혁이 힘들다???
요즘 젊은세대 대단합니다. 같이 힘을 합하여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아니면 지금 중년이상들의 새명이 다하면 각교회의 생명도 힘겨울수
있습니다. 왜? 믿으려는 젊은이들이 없기때문입니다 요즘....

그래서 우린 깨어서 근신하고 다시오실 예수님 준비 해야하고...

정말이지 뭡니까!!! 목사들!!!(참다운 목자 빼고~)
이런 신학적인 제도 개혁도 앞으로 우리 평신도들이 고려해봄직 합니다.

감리교사태 이거 다 목사들 짓 아닙니까!!!

이젠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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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20 06:47:32
동의합니다. 만일 지금처럼 교회 부패가 계속된다면,
다음 세대에는 정말 교회가 텅 비게 될 것입니다.
이미 실망한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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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175.210.90.188)
2011-01-18 11:07:47
다많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활성화되고 오해을 해소하기위하여 파송제가
부활하여야 할것으로 사료됩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겠지만 기독교 발전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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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20 06:44:12
파송제! 교단별로 여건만 허락된다면 저도 대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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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21.168.246.71)
2011-01-18 07:59:52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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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18 09:42:07
<목사의 길>이라는 표현이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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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77.98.32.244)
2011-01-18 04:01:23
작금의 문제들이 담임 목사제 때문이라구요?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잘못을 가지고 담임 목사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입니다. 몇 몇 대통령이 독재 한다고 해서 대통령제를 없애고 그 권한을 전 국민에게 나누어주자는 논리와 같아 보이거든요. 담임 목사제가 회중 목회제도로 바뀐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비리들이 없어질까요? 타락한 목사들 보다 더 타락한 신자들이 개 교회마다 난립해서 더 심각한 부패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글은 좀 더 심사숙고해서 쓰셔야 합니다. 평신도들이 이런 글을 읽다 보면 기존 교회나 담임 목사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관만 가질 수 있습니다.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데 있지 시스템을 바꾸는데 있지 않습니다. 루터나 칼빈같은 종교개혁자도 애초부터 특정 종파나 교권 시스템을 만들려고했던 것도 아니구요. 만약 시스템을 통해 개혁이 가능했다면 예수님께서도 그런 것에 대해 자세히 풀어 주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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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 (122.47.100.44)
2011-01-18 10:28:16
해결책은 모르겠지만 담임목사제가 문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가르치는 장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도 임기제로 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신성남님의 글이 이 문제를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글인 것도 분명합니다.
담임목사들이 풀지 않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 문제들을 알면서도 모르쇠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담임목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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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18 09:35:52
물론 타락한 목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신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목사님들은 교회에서 거금을 챙겨 가시지만, 비록 타락한 신도들이라도 교회에서 돈을 챙겨 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신도들 개인이 교회에서 얼마나 큰 교권을 가지고 있어 무리한 부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문제의 대부분은 물질적 또는 교권적 기득권을 지닌 목사님들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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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6
신성남 (121.73.195.208)
2011-01-18 09:22:43
화성에서 오신 분들을 제외하면, 오늘날 '중대형 교회'의 구조적 부패가 얼마나 극심한지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회의 모든 담임목사님들이 부패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작은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제가 일원화한 지도력으로 인하여 장점도 많습니다. 또한 작은 교회에서 순수하게 헌신하시는 목사님들의 수고를 모르는 바도 아닙니다. 오히려 강력한 지도력으로 인해 초기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교인들 간의 직법 의사소통이 용이해서 목회 독재를 하기도 힘들고, 또한 별다른 이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자립 교회를 세습한다고 비난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전 교인들 간의 직접 의사소통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약 500명 이상의 '중대형 교회'들은 구조적 부패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제는 기득권과 이권이 큰 중대형 교회에서부터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권 집중과 교권 남용을 견제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데 있지 시스템을 바꾸는데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시스템도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일 시스템이 상관이 없었다면, 이제라도 차라리 '가톨릭 사제' 제도로 돌아가지, 무엇 때문에 개혁 교회를 만들었겠습니까?

주신 의견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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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205.29.125)
2011-01-18 02:59:19
저는 미국에 살고있는 교포 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국인남 선생님을 알게되었고그 덕분에 당당뉴스를 통해서 귀한 글들을 읽게 됬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서 살면서 비교적 객관적인 눈으로 한국사람들의 우수성과 부족한 점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합니다. 그러나 사상적, 종교적, 정신적인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아주 느린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개혁이 어려운 분야가 종교가 아닙니까. 정치적 혁명처럼 총칼로도 할 수가 없지요.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개혁은 루터의 종교개혁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나마 한국은 지난 역사상에서 정치적 개혁의 성공사례가 거의 전무한 정신적으로 보수적인 나라 입니다. 그런 한국에서 종교개혁이 가능하겠습니까 ? 루터처럼 순교의 각오로 임해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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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121.73.195.208)
2011-01-18 09:40:05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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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2
솔로몬 (218.52.137.9)
2011-01-18 00:32:22
필자가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도 잘 짖적을 하시고 말씀해 주셧ㅅㅅㅅㅅ습니다...교회가 너무 썩어 기가 막힐 정도로 썩어 있습니다...교단내고가제든 순회 파송 목회가 이루어져야 하고 교회도 너무 무질서하게 지어져 있는데 규모있게 인구수에 따르든 환경에 맞게 교회를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로서는 썩은 누룩목회 밖에 이루어질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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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6
신성남 (121.73.195.208)
2011-01-18 09:37:31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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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3
ㅁㅁ (61.106.119.141)
2011-01-17 21:30:00
ㅁㄴ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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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
ㅁㅁ (121.168.246.71)
2011-01-18 04:26:20
ㅁㄴㅁㅇ...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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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8
7 (107.212.212.52)
2015-02-12 09:01:07
문제와 상황과 현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 보다
주님과 성경에 초점을 맞추어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옳지 않을 까요.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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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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