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16) - 교리

첫째 마당: 교리란 무엇인가?

1. 교리/니니안 스마트

      첫째, 교리는
      신화와 종교체험의 형태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자료들을
      일관성 있게 정리하는 기능을 한다.
      둘째, 교리는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표상하는
      종교 상징들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 준다.
      셋째, 교리는 전통을 현대 과학에 맞게 재해석한다.
      네째, 교리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교리들은 대부분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하나의 교리에 의해
      다른 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교리를 믿는다는 것이 반드시
      그 뒤에 생기는 또 다른 교리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리들은 오히려 여러 조각들이
      비체계적으로 어우러진 하나의 모자이크와 비슷하다.
      따라서 교리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여러 조각들의 모임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종교 전통 내의 지식인들(서구 전통에서는 신학자들)은
      바로 이런 특성을 가진 교리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체계화하고 일관성 있게 정리하려 애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신앙이 좀더 분명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교리들 사이의 관계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융통성, 즉 헐거움이 있다....
      교리 조직은 유기적이면서도 일종의 엉성한 유기체다.
      그리고 엉성하나마 유기적인 교리 조직을 이해하려면
      각 부분을 전체의 맥락에서 살피는 게 중요하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교리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관념이다....

      어느 종교가 진리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을 결정할 수 있는 첫째 기준은
      하나의 종교가 다른 종교와
      얼마만큼 창조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종교가 다른 종교들을
      거짓 종교나 우상숭배로 단정한다면,
      이 종교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는
      창조적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또 다른 기준은
      하나의 종교가 얼마만큼 과학과 조화를 이루면서
      창조적인 상호 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
      비판적 안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니안 스마트, 강돈구 역, 『현대종교학』, 청년사, 132-138, 149-150쪽.)

2.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오강남

     R형, 어떤 분들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좀더 신학적, 교리적인 면에서 이해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전통 교리를 믿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성, 신성, 성육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
     삼위일체, 동정녀 탄생, 고난, 십자가, 부활, 승천,
     중보, 재림 등에 관한 복잡한 교리를
     금과옥조처럼 외우고 따지고 해설하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표준이라고 역설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고백하면 그리스도인이요,
     그렇지 않으면 비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렇게 하더라도
     자기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친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단이라고 판정합니다....

     세례를 위한 문답 시간에
     목사님이 어느 할머니에게
     “예수님이 누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나요?”
     하고 물어 보았는데
     할머니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니까,
     옆에 있던 며느리가 할머니 옆구리를 찌르면서 작은 소리로
     “저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그러세요” 하고 일러주자
     그 할머니는 얼른 알아차렸다는 듯이
     “내 며느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는
     우스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령 자기 말을 고쳐서
     “내 며느리 죄가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고백하게 됐다손 치더라도
     그런 고백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내 죄를 위해 피 흘리심으로
     내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지금 내게 진정 의미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실로 큰 믿음의 은사입니다.
     이런 믿음을 통해 나의 삶이 바뀌고
     삶의 의미와 기쁨과 보람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R형,
     불행히도 형은 이런 교리들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고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도 지적했듯이
     로마 시대의 형법 사상에 기초해서 성립된
     이런 특수한 해석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기독교의 핵심 문제도 아니고,
     성경의 기본 메시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다는 교리,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셨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양성론(兩性論)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4세기 이후 8세기까지의 교회 공의회에서 제정, 공표된
     이와 같은 고전적 기독론은
     그 당시 서양 세계의 가장 보편적 세계관이었던
     희랍 철학의 도움으로 형성된 하나의 역사적 산물임은
     교리사를 바르게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교리들은 말하자면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에 관한 본래적 메시지를
     희랍적으로 번역한 것인데,
     큉 같은 신학자들은 그것이
     “빈약한 번역”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교리가 그 당시 제약된 철학적 바탕에서 형성된 것 중에
     그래도 가장 많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형식이었겠지만,
     이제 희랍 세계에 살지도 않고,
     희랍적 사고 양식이나 범주에 의존해 사고하지도 않는 현대인들이,
     이것을 그대로 이해하고 믿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역사적 조건에 의해 고정된
     예수님에 관한 특수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이런 교리들을 역사적 문맥과 상관없이 <덮어놓고> 받아들이면       
     이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어
     진정으로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R형,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그레이엄(Don Aelred Graham)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메시지에 관한 전통적 해석,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교회의 성찰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시각에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강남, 『길벗들의 대화 -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 열린책들, 178-181쪽.)
     
3. 한국교회의 교리적 성서해석/안병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 교회에는 ‘성서’에 앞서 ‘교리’가 전제되어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있는 교리를 전제하고
      이 교리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성서를 읽는 자세이지요.
      그러니까 텍스트(text)는 신앙고백서이고
      성서 자체는 컨텍스트(context)인 셈이지요.
      성서는 이미 아는 것을 재확인하는 도구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놀라울 정도로
      교리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절대 군림하고
      성서마저도 거기에 종속되어 버렸어요.
      그 결과 어떤 위험이 있는가 하면,
      “성서만”을 강조하면서도
      실은 성서의 권위를 빌어 어떤 특정 교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한갓 편리한 도구로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에 여러 종파가 난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어요.
      일단 어떤 교리 체계에만 승복하면 거기에 맞도록
      성서를 얼마든지 이리저리 뜯어 맞출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되면, 놀랍게도 성서지상주의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성서는 버림받고 무시당합니다.... 

      예컨대 한국 교회는 성서의 기준을 바울에게 두고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 로마서를 성서의 골격으로 삼아
      공관복음서마저 그 눈을 통해 읽으라고 했어요.
      교리적으로 형성된 그리스도론을 복음서를 통해 재확인했을 뿐
      그 이상 더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공관복음서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봐도 문제가 생기죠.
      공관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서로 맞지 않는 점이 쉽게 눈에 띄는데,
      이것을 들추어내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니까
      아예 뚜껑을 덮어두어야 하고,
      그래서 특별히 축자영감설을 더 강조하게 되지요.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48-50쪽.) 

4. 교리의 감옥/지성수

     자기가 믿고 있는 교리와 성경이 똑같은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철석같이 진리로 믿고 있는 교리가
     성서의 다른 구절에 의해,
     혹은 다른 해석 방법에 따라서는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성서에 담겨 있는 풍부한 내용들과 고백들을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듯이
     하나의 교리에 끼워 맞추기란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인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다니는 교파를 믿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같은 공장에서 나온 제품처럼 기도하는 것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하는 짓도 비슷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출기에서 나온 플라스틱 제품들처럼
     틀에 박힌 기독교인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교리가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이런 현상은
     인간을 교회라는 구조의 필요한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는 개종자 하나를 얻기 위해
     온 천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를 얻으면
     자기보다 더 편견과 완고함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일단 어떤 진리도 교리로 한번 정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그 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해석에 대해 방어적이 되기 때문이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두어 놓은 곳을 감옥이라고 한다면,
     생각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곳도 감옥일 수 있다.
     중세기에 유대인들에게 일정한 지역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경계를 제한해서 살게 하는 게토라는 게 있어서
     유대인들은 일생 동안 그 안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사람을 도무지 다르게는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의 교리라고 하는 것이다.

     어느 종교이든 단순히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나 전통, 제도나 조직 혹은 예식 속에
     진리가 있는 양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서를 보면 예수도 당시 종교의 제도나 조직,
     교리나 예식 속에 생명이 있는 게 아님을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알 수 있다.
     (지성수, 『뒤집어 보는 성서이야기』, 예루살렘, 76-78쪽.)

5. 정통교리와 정통실천/함세웅

    기존교회와 신학은 늘 정통교회(orthodox)라는
    이론적 측면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교회와 이론이 참으로 정통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언행일치란 바로 이를 일컫는 말이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야고보 2:17),
    정의를 실천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참된 구원임에도 불구하고(마태 5:21-27)
    현실에서 체험되는 교회와 그 가르침은
    다분히 성속(聖俗) 이원론에 입각한 현실 경시와 내세주의,
    그리고 개인 신심주의와 초월주의를 강조했을 뿐
    정의 실천과 연대적 삶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소홀히 했던 것이다.
    더구나 교회가 구조적 불의에 편승하여
    억압자의 입장에 서 있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사실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실천적 정의의 삶을 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고발이며 꾸중이다....
    불의를 거부하는 정의로운 실천만이
    참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 척도이며 기준이다....
    정통교리는
    정통실천(orthopraxis)을 통해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함세웅, 『멍에와 십자가 - 교회의 사회비판적 기능』, 빛두레, 99쪽.)

6. 진리는 상대적이다/존 쉘비 스퐁

     성경이나 교회의 신조들이
     모두 영원한 진리를 가리키고는 있겠지만,
     그 진리를 마침내 포착하지는 못한다.
     성경이나 전통을 전혀 오류 없는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교회의 권력과 통제를 떠받치려는 시도일 뿐,
     결코 진리를 보전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실제로 진리를 어떤 단어들, 개념들, 혹은 신조들 속에
     동결시키려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진리를 왜곡시켜
     마침내는 멸절시키고야 말 것이다.
     시간과 언어의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상대주의의 바다에 자유롭게 떠돌도록 허락된 진리만이
     주관주의의 유린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어제의 경험을 오늘의 사고방식에 맞게 들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불러내는 진리만이
     마침내 살아남을 것이다.
     (존 쉘비 스퐁, 한성수 역, 『성경을 해방시켜라』, 한국기독교연구소, 238-239쪽.)  

7. 교리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존 쉘비 스퐁

      나는 성육신 교리를 보전하는 데는 별 흥미가 없다.
      그러나 나는 성육신 교리가 지향하는
      진리를 이해하는 데는 매우 흥미를 느낀다....
      마찬가지로 나는
      삼위일체 교리를 보전하는 데는 별 흥미가 없다.
      나는 하나님의 궁극적 진리가 삼위일체 공식만을 통해
      보존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내가 매우 깊은 정열을 갖고 알고 싶은 것은,
      왜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던가 하는 것이다.
      나는 삼위일체 교리를 낳은 경험과
      그 교리가 지향한 진리를 포용하고 싶다.
      그러나 이전 세대가
      그들의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언어들이
      내게도 영원히 거룩한 것은 아니다....

      성경이나 신조는 진리를 향한 창문일 뿐이지,
      그것들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신앙의 여정에서 작성한 귀중한 문서들이다.
      그것들은 진리를 위한 매개변수를 제시하고,
      우리가 그 매개변수를 진지하게 다룰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성경이나 신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어찌 어찌하여 객관적 진리가
      인간의 언어들 속에 잡혀 있는 것처럼 대해선 안 된다.
      (『성경을 해방시켜라』, 318-320쪽.)  

8. 대중적 교리주의는 역사적 예수와 무관하다/로버트 펑크

     대중적 신조주의는
     예수의 기적적인 출생, 공인된 기적들,
     피의 제물로 이해되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 몸의 부활,
     그리고 우주적 재판을 위한 예수의 재림 등을 주장했다.
     이런 교리들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역사적 예수로부터 유래된 것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을 예수가 정당하다고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 교리들은 예수의 처음 숭배자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범주들을 동원하고,
     다른 종교 전통들로부터 차용하여 만들어낸
     신화적 덧칠의 일부인가?
     이 교리들은 현대의 전도의 요구에 맞도록
     골라내어 만들어진 것인가?
     고대의 신조들의 그리스도와 신정통주의의 그리스도는
     도대체 나사렛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선 살펴볼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즉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대중적 형태는
     자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예수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사실상 예수를 허락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리주의는 예수의 죽음만을 예외로 하고
     전혀 예수의 말씀들과 행적들과는 상관없는 신화들로
     예수를 대체시킨 종교, 예수를 폐기처분한 종교다....

     나는 나의 신앙이 중고품 신앙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신앙의 기원을
     (베드로나 바울 등의) 그 처음 신자들에게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는 신앙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진정한 신앙, 근본적 신앙은 어떤 식으로든
     나사렛 예수에게까지 직접 연관되어야 한다....

     예수에 의해 일깨워진 신앙의 진정한 대상은
     예수가 신뢰한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예수에 관한 주장들에는 일차적인 관심이 없고,
     예수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예수를 사로잡았던 진리에 관심이 있다....
     나는 예수가 본 것, 혹은 그가 들은 것, 혹은 그가 느낀 것,
     즉 너무 매혹적이고 그토록 홀리게 만들고 그처럼 도전적이어서
     예수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그것을 발견하고 싶다.
     또한 나는 그의 추종자들처럼
     길을 잘못 들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즉 예수의 헌신적인 추종자들은
     예수가 본 것을 바라보는 대신에,
     단지 그의 손가락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예수 자신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처음 신자들의 우상숭배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로버트 펑크, 김준우 역,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462-463쪽.) 

둘째 마당: 전통 교리·신조들의 재해석의 몇 가지 실례

1. 사도신경/존 쉘비 스퐁

     사도신경의 단어들과
     그 후에 확대된 니케아 신조는
     하나의 세계관에 맞도록 표현된 것인데
     그 세계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신경은 서두에서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 두 단어 모두 내 귀에 몹시 거슬린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특별히 인간의 언어이며,
     매우 남성적이고 낡은 언어다.
     아버지라는 말은 전통적인 하나님 상(image),
     즉 하늘 저편에 사는 노인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생각,
     즉 수천 년 동안 종교 기관들이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한 개념을 외쳐댄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이런 질문을 묻지 않은 채로
     단순히 사도신경을 암송할 수는 없게 되었다.
     사도신경의 언어는 다른 시대의 산물이다.
     그 표현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생각들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모든 신조의 목적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명백히 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맞부딪치는 견해를 배제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신조들은 교회 공의회에서 열렬한 논쟁들과
     정치적 동기에 의한 타협들 속에 채택되고 확대되었다.
     나는 당시 교회 공의회들에 참석한 사람들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보다 더 총명하고 통찰력이 있으며
     지식이 많았다고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통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의 견해가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그 견해가 고대의 논쟁에서 이겼음을 뜻할 뿐이다.
     나는 기독교 신앙의 미래가
     고대의 표현을 계속 주장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기독교가 오늘날 이해될 수 있도록 그 상징들을 재구성할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존 쉘비 스퐁, 김준우 역,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32-33, 46-48쪽.)

2.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로버트 펑크

     복음서 기자들은 마가, 마태, 누가, 요한복음 같은
     이야기 복음서들 속에서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합쳐버렸다....
     이야기 복음서들이 합쳐 놓은 것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신앙의 그리스도가 결국 역사의 예수를 능가하게 되었다....

     사도신경이 신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예수에 관해 고백하도록 하는 것이
     단지 그 생애 시작의 동정녀 출생과
     그 생애 마지막의 수난, 처형, 부활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도신경은 (예수 생애의) 가운데 알맹이가 빠진 신조다....
     더 나아가 여기서 예수는 그 사건들,
     즉 출생과 수난, 부활에서 수동적인 역할만을 한다.
     즉 그에게 사건들이 일어났을 뿐이지,
     그가 스스로 자신의 결심에 따라 능동적으로 한 일은 없다는 말이다.
     그는 구원자로서 하나님의 계획에 사로잡힌 인질일 따름이다....
     이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으로 처형되었다는 사실만 빼놓고는
     성격상 신화적 존재다.
     신화란 신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사도신경은 예수의 수난, 죽음, 매장과 관련된 단 두 줄을 빼고는
     신의 활동들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즉 기적적으로 잉태되었으며,
     죽은 자들의 영역으로 내려갔고,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에 오르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고, 다시 오실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신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는 신앙의 그리스도는
     역사의 예수를 철저히 제거해 버렸다.
     (로버트 펑크, 김준우 역,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77, 79-80쪽.)

3. 역사적 예수와 신조들의 그리스도/로버트 펑크

     진짜 예수를 찾는 데 있어서
     이 세상의 모든 신조들과 신앙고백들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역사적 정보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즉 믿음은 단 하나의 사실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신앙은 수많은 개별적 사실들을
     상상력을 통해 전체 윤곽을 잡는 것을 암시할 수는 있지만,
     신앙이 그 건물의 기초를 마련해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실질적이며 잘 검증된,
     비평적으로 걸러진 역사적 증거가 요구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는 처녀(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예수는 이 세상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피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예수는 무덤에서부터 육체로 다시 살아났다,
     예수는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교회에 다니든 다니지 않든
     많은 사람들은 이런 교리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정한다.
     이 교리들은 아무런 의문이나 이해 없이
     사회학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다시 말해 이런 교리들을 고백하면 기독교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기독교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그 주범은 바울의 복음을 엉터리로 이해하고,
     가운데 알맹이가 빠진 신조를 잘못 이해한 때문이다.

     교리나 교회의 교의(dogma) 가운데
     아무것도 문제삼지 않는 학자들은 사이비 탐구자들이다.
     근본주의자들과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사이비 탐구자들 집단에 속한다.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하려 하지 않으며,
     그 구별을 어떻게 해서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탐구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신조(信條)의 그리스도로 만들어 버리고,
     이 둘이 똑같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탐구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복음서들의 예수와 신조들의 그리스도로부터 구분한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검토의 대상이다.
     기독교의 주장 가운데
     검토와 수정에서 면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 솔직히』, 62-63, 86-87, 111-112쪽.)

4. 처녀 탄생 이야기/존 쉘비 스퐁

    처녀 탄생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는 참이 아니다.
    별들이 여행하지는 않으며,
    천사들이 노래하지도 않고,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는 없으며,
    동방의 현자들이 먼 거리를 여행하여
    어린 아기에게 예물을 드리지 않고,
    목자들이 새로 태어난 구세주를 찾아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신약성서의 처녀 탄생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는 참이 아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실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을
    표현한 한 방식이었으니,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고 경험한 것들은
    인간의 삶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는다.
    그분은 하나님과 같다.
    만일 예수가 어른이 된 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껴안을 수 있다면,
    이런 예수 안에 하나님이 계셨던 게 틀림없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면 항상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는 예수를 보지 않고는
    하나님을 마음에 그려볼 수 없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경험이었으며,
    기독교 신앙의 근본 원리다.   
    (『성경을 해방시켜라』,296-298쪽.) 
   
5. 희망의 언어/김진호

     하나님 나라, 죽은 사람의 부활, 메시아 대망 등은
     한가로운 종교인들의 지적 호기심에 이끌린
     사변의 놀이거리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절망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이
     하나님의 신실성에 근거해서
     좌절하지 않고 미래에 거는 희망의 언어다.
     (김진호 편, 『예수 르네상스 - 역사적 예수연구의 새로운 지평』, 한국신학연구소, 66쪽.)

6. 나의 부활신앙/존 도미닉 크로산

      제게 있어 부활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에게 현존했고,
      한 때는 예수와 접촉을 가졌던
      갈릴리와 유대 사람들에게 제한되었던 바,
      인간을 힘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이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이면
      이 세상 어느 누구, 어느 곳에서라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에 관한 한, 부활은
      문자적으로 몸이 무덤 밖으로 나온다든지,
      혹은 빈 무덤이나 환상, 혹은 그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신앙을 표현하는 극적인 방법들입니다.
      제게 있어 부활의 핵심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예수를 통해
      그를 믿고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발생한 것은,
      십자가 처형 이전에 예수를 믿어왔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새로운 신앙의 시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옛 신앙의 초지일관(初志一貫)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살아 있었고,
      현존했고, 계속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신비이고 유일한 기적이었으며,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이것은 그러한 모든 것들 이상입니다.
      물론 환상도 있고 황홀경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든 종교에 항상 있어왔고,
      그러므로 바울만이 이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실재는,
      예수가 힘을 불어넣어 치유자들이 되게 했고
      개방된 밥상에 초대했던 사람들은
      예수의 비전과 계획을 계속 살아냈고,
      그러한 비전과 계획 속에서
      그의 현존을 계속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있어서의 부활절입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 한인철 역, 『예수는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연구소, 208-209, 212-213        쪽.)

7. 교리에 대하여/이현주

     그리스도교의 교리(dogma)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교리를 곧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과 그 속에 담겨진 음식을
     동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착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음식이다.
     물론 그릇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릇의 중요성이
     음식의 중요성을 능가하는 법은 없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셨다는 교리는,
     그분의 죽음이 우리와 상관없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우리에게 있어 궁극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그분의 삶과 죽음이지
     그것을 설명하는 해설이나 교리가 아니다.
     해설과 교리란 그릇과 같다.
     그릇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내용물을 대신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창을 통해 뜰의 꽃을 본다.
     보아야 할 것은 꽃이다.
     창은 뜰을 내다보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다.
     시선을 창에 두면 꽃은 희미해진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뿌옇게 먼지가 묻은 창유리다.
     창을 가장 잘 보는 방법은 창을 보지 않는 것이다.
     교리가 이와 같다.
     교리를 가장 잘 대하는 길은
     그 교리가 담고 있는 내용인 진리에 몰두함으로써
     교리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무시당하기 위해 있는 것이
     창이요 교리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엘 다녔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라는 노래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목이 찢어지도록 부르고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교리를 노래하는 찬송이었다.
     그분이 내가 죽어야 할 것을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상당히 놀랐다.
     우선 내가 죽었어야만 했는데
     지금 살아 있다는 말이 납득되지 않았다.
     죽었어야만 했다면
     지금 죽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그분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되는 건가?
     사람이 남을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는 걸까?
     어린 마음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하고 뭐가 뭔지 모르면서,
     그래도 어머니가 교회엘 나가라고 하시니까 나가서는
     목이 찢어지도록 “속죄함, 속죄함”을 외쳐댔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되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나의 잘못을
     (선생님들은 나의 죄값이라고 했지!)
     그분이 대신 갚으셔야 했을까?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해 달라고 빌어 본 적도 없는데
     그분이 왜 자기 마음대로 내 죄를 대신 지셨단 말인가?
     그것도 나의 것만이 아니라
     교회에 나오는 모든 아이들의 죄를 대신 지셨고
     나아가서는 온 인류의 죄를 모두 자기 몸으로 지셨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수수께끼를 풀 수가 없었다.
     뒤에 그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히브리적 해석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 수수께끼의 답답함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도대체 자기 죄를 갚기 위해
     양은커녕 생쥐 한 마리 희생시킬 줄 모르던
     이 한민족의 핏줄에서 태어난 내가
     어찌 그들의 “희생제물” 논리를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당연한 일이다.
     목사가 된 지 6년이 된 지금에도 나는
     이 대속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와 끊을 수 없는 연관이 있다는 진리”가 중요하지
     그것을 설명한 “대속의 교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죄를 갚으려고
     죄 없는 양과 비둘기와 황소 따위를
     다반사로 대신 잡아 바치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더없이 알맞은 설명이었으리라.
     (대속의 교리를 말한 바울도 예수도
     결국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나 대신 누가 종아리만 한 대 맞아도
     견디지 못하는 이 한민족의 아들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었다.
     어째서 그분의 죽음이 
     시(時)와 공(空)의 장벽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 끊어질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는지,
     나는 그 까닭을 알아야 했다....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를 무시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다시 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분의 죽음이 나의 죽음과 연결되는 죽음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그분의 죽음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리,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할 수 있으면 되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분이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만민에게 상관되는 분이라면
     그분의 죽음은 유대인들의 해석을 넘어서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내 죄를 대속하신 분이라기보다는
     나의 삶을 바꿔놓으시는 분이다.
     성서에서 내가 만나는 예수님은
     바로 나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듯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으신 분이다.
     베드로는 그분을 만나
     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뀌었다.
     바울은 그분을 만나
     율법을 위해 사람을 때려잡던 삶이 바뀌어
     사람을 위해 율법주의자들의 박해를 받게 되었다.
     창녀 마리아는 성녀 마리아가 되었고
     자기만 알던 삭개오는 자기집 문 밖의
     가난한 자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자기의 삶에 자신만만하던 젊은 부자는
     그분을 만난 후 슬픈 얼굴로 돌아갔다.
     그분은 서 있는 자는 넘어뜨리고
     넘어진 자는 일으키셨다.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을 만난다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분에 관한 옛 사람들의 설명에만 매달려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초호화판 호텔에서 성찬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모임을 갖는 분들이 있는 모양인데
     도대체 “여우도 참새도 있는 보금자리가 나에게는 없다”던
     그분을 어떻게 믿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까닭은
     그리스도교에 갇혀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고 나의 생명이 성숙하여 그리스도교를 깨뜨리고
     참된 하늘의 아들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나의 생명을 보호하는 그릇이요 옷이다.
     그러나 언제고 이 그릇은 비워져야 한다.
     언제고 이 옷은 벗어야 한다....
     강을 건넌 다음
     나룻배를 등에 지고 가는 자가 어디 있는가?
     (이현주, 『한송이 이름없는 들꽃으로』, 종로서적, 196-201쪽.)

8. 속죄론/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는 분명하다.
     즉 예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 처형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즉 그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것이다.
     한편 신학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의 희망에 끔찍스런 충격을 주었다.
     수치스러운 죽음은
     개방된 밥상과 나눔의 치유 속에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여명을 경험하게 했던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었던 운명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의미 있는 죽음으로 설명해야만 했다.
     신앙은 역사 속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우리는 20세기 인도의 힌두교인 불가촉천민(untouchable)들이
     간디의 암살 사건을 놓고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멤피스의 흑인 넝마주이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두고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비전이 그를
     권력층과의 갈등으로 몰고 갔다는 인식 아래,
     “그가 나를 위해 죽었다”고 말하는 갈릴리 농민들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신앙을
     그들 자신의 종교적 전승의 언어로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 중에 보다 배운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 바로 직후 그들의 히브리 성서에서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레위기 16장에서 속죄를 위한 제의를 발견했는데,
     거기에서 대제사장은
     염소를 제물로 해서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후,
     염소를 광야로 내보냄으로써 상징적으로 백성의 죄를 씻어냈다.
     물론 이것은 피의 희생제사를 강조하는
     종교 전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상징이다....
     피의 희생이라는 표상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을 
     고대 성전 예배의 일부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적절했겠지만,
     우리의 세계에는 전혀 이질적이다....
     더욱이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그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켰다고 말하는 속죄(贖罪)의 신학은,
     일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사랑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부도덕한 모습이다.
     그것은 거의 하늘에서 일어난 아동학대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상상력에도 나쁜 영향을 줄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하기 위해
     피의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식의 신학으로써
     나의 신앙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190).
     (존 도미닉 크로산, 한인철 역, 『예수는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연구소, 188-190쪽.)

9. 생활 원리로서의 삼위일체론/함세웅

      “삼위일체론에서 오류인 것이 교회론에서 진리일 수 없다”(보프)....
      삼위일체를 수없이 고백하고 가르쳐 왔건만
      나는 그것을 교리 이상의 생활 원리로 이끌어내지도 못했고,
      실천 원리로 삼아 살지도 못했다.
      그저 희뿌연 관념의 성삼위 고백이었다.
      어려서부터 고백하고 배웠던 삼위일체 교리,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먼저 계심도 후에 계심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고,
      도무지 같으신 한 분 하나님임을 우리는 고백했다.
      그것은 사랑의 친교, 평등의 친교, 동등의 친교다.
      성삼위론에서는 어떤 유형의 종속론이든 모두 이단으로 배격된다.
      그런데 교회 안의 위계 질서와 교계 제도에서는
      상명 하달의 순명과 통제만 강조될 뿐
      사랑, 친교, 평등 등이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현실임을 보프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함세웅, 『칼을 주러 오신 예수』, 빛두레, 76쪽.)

10. 삼위일체의 사회적 의미/보프

      그리스도 신자들의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이시다.
      성삼위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상호 절대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맺고 영원히 함께 살아간다....
      이 신비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원형이 된다.
      우리 인간들도 성삼위를 본받아
      개별 인격들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친교와 협동 안에 살아감으로써
      동등한 형제 자매들로 이루어진 일치된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
      온갖 종류의 분열과 대립과 인간 차별이 난무하는 오늘 같은 사회는
      성삼위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체험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 사회를
      성삼위의 친교를 닮은 표상이 될 수 있도록 변형시켜야 한다.
      (L. 보프·C. 보프, 김수복 역, 『해방신학입문』, 한마당, 77-78쪽.)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는 신앙의 그리스도는
     역사의 예수를 철저히 제거해 버렸다.
     (로버트 펑크, 김준우 역,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77, 79-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