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10) - 사랑과 정의 
                                

첫째 마당: 사랑

1. 공동체의 관점에서 본 사랑/J. 바니에
     
    공동체 생활은 경이로운 모험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모험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모험의 끝은 결국 내적 해방,
    즉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동체란 끔찍한 장소도 된다.
    그곳은 우리의 한계와 인내심을 자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거듭남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 상처로부터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아무것도 돈주고 사는 일이 없지만
    자동차만은 반드시 산다고 들었다.
    자기 동족을 찾아가는 데 필요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오직 이 형제적 유대 뿐이다.
    그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 유대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죽어갈 경우
    그 사실을 감지할 정도인 것 같다.
    그들은 감각으로 그 사실을 느낀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인디언 아이들은
    질문을 해서 제일 먼저 답변하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면
    모두 함께 숙의하여 똑같이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그들은 어느 한 사람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는 패자로 물러서게 만드는
    그런 일은 견디지 못한다.
    승자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그는 상을 받지만 유대감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네 서구문명은 경쟁적인 문명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이기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이 학급에서 일등을 하면 부모들은 기뻐한다.
    이렇게 해서 인위적인 물질적 진보와
    최고가 되어 특혜를 얻으려는 욕망이
    동료 의식과 자비심과 공동체를 대신하게 된다.

    공동체란 모든 사람이
    자기 중심성이라는 그늘에서 빠져나와
    참된 사랑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사랑은 감상적인 것도 아니고
    스쳐 지나가는 무슨 감정 같은 것도 아니다.
    사랑은 점차 투신으로 화하는 타인과의 친화력이요
    계약, 즉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음을 승인하는 인준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
    사랑은 그들의 요구와 가장 절실한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들과 함께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들이 울 때 울고
    그들이 즐거워할 때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그곳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거기에 없을 때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의 마음 속에 살아 있으면서
    서로에게서 안식처를 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일치의 힘이다”(데니스 아레오파고스).
    사랑이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동일한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며
    동일한 일을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랑은 동일한 안목과 동일한 이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마음이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나를 위한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위한 나’
    다시 말해 하느님과 곤궁한 이들을 위한
    공동체로 이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시간과 대단한 정화 작업과
    새로운 부활을 낳는 부단한 죽음이 요구된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감정,
    자신의 안위를 끊임없이 포기해야 한다.
    사랑의 길은 희생으로 점철된 길이다....
    이러한 심오한 자기 정화는
    오직 하느님의 선물을 통해서만,
    성령께서 생활하고 계시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은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도록 해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에스겔 11:19)....
    사랑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우리 존재의 가장 내밀한 구석구석까지,
    공포감과 장벽과 질시가 자리잡고 있는 모든 곳까지
    두루 스며드셔야 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반갑게 맞이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공동체는 이룩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비판하는 그들의 과오는
    실상 우리 스스로 대면하기를 꺼리는
    우리 자신의 과오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를 비판하고
    또 다른 어떤 이상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들은
    흔히 그들 자신의 결점과 약점에서 도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이 빛과 어둠,
    긍정적인 자질과 결함,
    사랑과 증오심, 이타심과 이기심,
    성숙과 미숙의 혼합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세계를 끊임없이 적 곧 나쁜 사람과
    친구 곧 좋은 사람-으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부와 주변에
    장애물을 쌓고 편견을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J. 바니에, 성찬성 역,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 출판사, 10-22쪽.)

2. 사랑이란/J. 바니에

    사랑이란 특별한 일이나 영웅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온유한 마음으로
    평범한 일을 수행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예수님이 서른 해를
    당신 모친과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숨어 사셨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그분이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몰랐다.
    그분은 가정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참된 행복’에 입각하여 겸손하게 영위하셨다...
    내가 보기에
    자기가 실천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직접 실천해 보지 않은 탓으로 실현 가능성마저 모르면서
    ‘훌륭한 삶’에 대한 이론을 제기한다.
    예수님의 숨은 생활이야말로
    모든 공동체 생활의 귀감이 된다.
    (J. 바니에, 성찬성 역,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출판사, 242쪽.)

3. 테레사 수녀의 사랑 이야기/최종수

    1979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나는 이 상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상금 19만 불을 가난하고 문둥병 걸린 사람을 위한
    가정을 만드는 데 쓰겠습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면,
    사랑은 점점 더 퍼져 나갈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호화스러운 잔치도
    그녀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잔치에 드는 6천불 이상의 돈을 절약하여
    가정을 만드는 데 썼다.
    노르웨이 여기저기에서 모금된 돈이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녀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루터교 아이들이 정성껏 모아 보내준 175불이었다.
    감격한 나머지 그녀는 말했다: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의 값어치를 더하게 하려면
    우리는 그것에 사랑을 양념 치듯 쳐야 합니다.
    그러면 마치 부메랑처럼 사랑은
    그 근원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위대한 사랑은 항상 가장 평범한 법이다.
    그녀는 가장 평범한 철학을 갖고 산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라.”
    이것이 그녀의 삶의 일관된 철학이다.
    그녀는 어느 면에서도
    남보다 가진 것이 많은 분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던 비결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글쎄요,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물론 그녀에게는 돈이 없었다.
    어떤 명확한 계획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굶주린 이들에게는 양식이 되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거처가 되었다.
    나병환자들에게는 치료가 되었다.
    고아들에게는 어머니가 되었다.
    몸은 비록 한 몸, 연약한 여자의 몸이었지만,
    그 자신을 비워 내줌으로써
    모든 경우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다.
    (최종수, 『예수와 인간해방』, 선교신학연구회, 120-121쪽.)

4. 예수는 사랑의 설교자가 아니다/田川建三 

    예수는 사랑의 설교자가 아니다....
    예수 자신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본시 ‘예수의 종교’ 따위는 없으며,
    예수는 종교지배의 사회에 반항한 사나이였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마태 5:39)는 말에 담긴 뜻은
    박애 정신이나 사랑의 윤리 따위가 아니다.
    “만일 여기서 관용을 찾으려 한다면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관용이 아니라
    심사 사나운 인종의 표현이다”(요시모또 류우메이)....
    우리는 인간이 실제로 맞고 있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그리면서 이 말을 이해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얻어맞지 않는 위치에 있는 사람,
    요컨대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어쩌다가 얻어맞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웃으며 참는 것은 기껏해야
    도덕적 우월성을 표현하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깔보는 식이다.
    그에 반해 어차피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거기에는 아주 복잡한 뭔가가 있다....
    굴종을 강요당하는 민중의 신음을
    가시 돋친 풍자로 표백하여 표현했던 예수의 말은
    어느 샌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리스도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지배자의 군대가 노동을 강요하여
    강제로 짐을 지고 십리를 가라고 하면
    이십리를 가주도록 하라”는 구절 역시 그렇다....
    당시 어쩌다 혼자 길을 가고 있을 때,
    몇몇의 힘센 로마 군인에게 붙들려 강제 징용되는 일은 흔했다.
    “이봐! 이것을 메고 가도록 해”라고 윽박지르면
    잠자코 메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십리라는 말을 들으면,
    그 다음의 십리는 명령을 받기 전에 얌전히 메고 가는 편이
    또 다시 심하게 윽박지름을 당하지 않고 무사했을 것이다.
    저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것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의 분노를 아는 것이지,
    이런 말을 진리로 고정시키는 게 아니다....   
    (田川建三, 김명식 역, 『예수라는 사나이 - 역설적 반앙아의 삶과 죽음』, 한울림)

5. 새 계명/카라비아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날 밤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5:12).
    이 계명은 죽어 가는 사람의 유언이다.
    마지막 소원이다.
    예수님의 인생 전체의 요약이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에게는
    이 유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 편지에서 거의 사랑에 대해서만 말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오직 하나의 계명만을 주셨다.
    구약에서 사랑의 척도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레위 19:18)였다.
    그러나 새로운 형제자매들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척도는 그와 다르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극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다(요 13:1).
    예수님은 벗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다(요 15:13).
    인간을 위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믿어지지 않는 사랑이다(엡 3:17-19).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타인을 사랑하는 사랑은
    그저 타인에게 호의와 호감을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우리의 시간을 조금 할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선을 베풀거나 조언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랑은 소위 ‘자선사업’ 정도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타인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려면,
    우리의 재산과 명성과 직업과 생명까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점차 혹은 당장 우리 생명을 형제자매인 타인을 위해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은 너무도 엄청나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를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타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심 없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랑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김수복 역, 『구원은 사랑』, 일과 놀이, 115-117쪽.)   

6. 진정한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카라비아스

    그리스도교 형제자매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확실히 불가능하게 보인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지 않다.
    우리는 우리 노력만으로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통하여
    타인,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신다.
    형제자매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우리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요 15:1-8).

    타인을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버리고
    타인을 형제자매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구약 시대 하느님 백성의 역사는 오랜 과정을 통해
    법률과 처벌만으로는 인간이 타인을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데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실패는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다.
    우리가 타인을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데 성공하려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힘을 받아야 한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서로 형제자매로서 사랑하도록 만드셨다.
    이제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게 하신다.
    예언자들이 예고한 대로 예수님은
    돌로 된 우리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바꾸어 주신다.
    우리의 첫째 의무는
    “나는 내 이웃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이미 타인을 형제자매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도록 창조하셨고
    새롭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롬 5:5).
    바울은 자기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 사랑의 힘을 느꼈다.
    자기의 옛 사람 곧 자기의 이기심이 죽었고,
    자기 안에 살고 계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심을 느꼈다(갈 2:20).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빌 1:21).
    예수님의 힘이 바울에게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데
    자기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릴 만큼
    자기 자신을 바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우리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신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 신앙에 의해 살아가는 일이다(갈 5:5-6).
   
    우리가 신앙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힘과 사랑을 받으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1요한 4:18).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롬 8:31-37).
    첫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들이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이 표현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불지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구원은 사랑』, 119-122쪽.)             
             
7. 사랑의 기적/박재순

    예수는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살았다.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고쳐준 것은
    무슨 신통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기보다
    예수가 몸과 마음으로 병자들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랑의 기적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온전히 비웠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예수는 자신을 비우기 위해 자주
    밤늦게 또는 이른 새벽에 기도했다.
    그리고 어린이들, 여인들과 병자들을 가까이 한 것은
    그의 겸손과 사랑을 말해 준다.
    이런 예수의 모습이 부와 권세를 좇는 인간에게는
    무한히 약해 보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약함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바침으로써
    남의 고난을 자기의 고난으로 삼고 살았고
    남과 하나되는 삶을 살았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남을 위해 살고 남과 하나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고 기적이다.
    죄 속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을 넘어
    남에게 이르는 것이 참된 기적이고 구원이다.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적 삶의 초석이다.
    이 마음이 없으면
    가족공동체로부터 국가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동체의 토대가 무너진다.
    더불어 사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회개하지 않고는 이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박재순, 『예수의 눈길』, 나눔사, 84쪽.)

   
둘째 마당: 정의

1. 정의의 실천으로 사랑을 풀이해야/존 호기

    그리스도교 신앙은
    세계의 정의를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심지어는 지상의 비참한 사람들로 하여금
    후세에 풍성한 보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갖고서
    자기네 참상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함으로써
    불의를 조장했다는 공격까지 받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관계를 규정짓는 데
    세다카(정의, 의로움)라는 개념보다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 또 없다"(폰 라드).
    "전체로 본 성서는 단 하나의 주제,
    즉 하느님의 의로우심이 계시되는 역사라고 단언할 수 있으며,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슈라이).
    정의에 대한 신약성서의 가르침은
    구약성서만큼 풍부하지도, 직설적이지도 못하다.
    그렇지만 정의는 신약성서의 중심사상이다(마태 6:33; 23:23)...
    초대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를
    ‘의로운 분’이라고 주장했다(행전 3:13 이하; 7:52).
    바울은 하느님의 정의,
    믿음을 통하여 세상에 주시는 정의를 몹시 강조한다.
    요한계시록은 정의를
    성실한 이에게 내리시는 종말의 보상으로 생각하는
    사상 노선을 따르고(묵시 19,11),
    야고보서와 요한1서는
    사회의 고통받는 구성원들을 보살피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대에 와서 신앙과 정의의 연관성에 관한 토론이 많다.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신학을 정립함에 있어서
    구약성서와 예수의 가르침이 자주 거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믿음)으로써 살리라”(합 2:4)는
    구약성경을 인용하고(롬 1:17 참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신앙과 정의의 관계에 대해
    오랜 투쟁을 전개한 바울의 가르침이
    이 분야에 거의 인용되지 않음은 역설적 현상이라 하겠다.
    바울이 관심을 끌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 시대 이래로,
    하느님의 정의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은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의로우신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느냐는
    어려운 문제를 중심으로 고찰되었다....
    바울에 관한 개인주의적이고 실존적인 연구의 대부분이
    바울의 정의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다.
    최근의 성서 주석학은 바울의 사상을
    바리새파의 의인관을 배경으로 논하지 않고,
    하느님의 의에 관한 구약성서와 묵시문학의 사상을 배경으로 논한다.
    바울이 주장한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義認)이
    지금까지 개인적 의미로만 해석되어 왔는데
    사실 그것은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개인의 구원과 의인(義認)에 관한 바울의 주장은
    세상의 구원과 정의를 배경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또 바울이 말하는 복음 선교는
    단지 케리그마의 설교가 아니고
    화해의 직무이자 정의의 봉사,
    공동체 내의 고통받는 지체들을 염려하는 관심에서 이루어진다.
    바울이 사용한 구원의 유비 개념들은
    모두 하느님의 정의를 묘사하는 개념들이다.

    성서는 인간 생활에서
    무엇이 정의이며 불의인지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성서를 번역하는 이들의 사명은
    성서 기자들의 삶을 이루었던 정의관을
    이 시대에 생생하게 옮겨 놓는 것이다.
    성서 해석은
    반드시 해석자의 사회적 배경에 좌우되게 마련이다.
    마틴 루터는
    의로우신 하느님과 죄 많은 피조물의 관계라는
    중세 말기의 문제와 씨름한 끝에
    정의의 하느님을 사랑의 하느님으로 풀이했다.
    우리 시대의 과업은 그 역이 되어야 하리라고, 
    즉 하느님의 사랑을 정의의 실천으로 풀이해야 한다고 본다.
    (존 호기 편, 성염 역, 『정의를 실천하는 신앙』, 분도출판사, 13-109쪽.)             

2. 정의/도로테 죌레 외

    사실 성서에서 하나님은 정의로 이해되며
    죄는 다름이 아닌 불의다.
    본질적으로 유대 민족이 인류 전체에 준 선물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의를 촉구한 것이라 하겠다.
    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은
    정의를 외면하는 종교를 끊임없이 비판한다.
    우리는 성서를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정의의 책으로 읽는다(도로테 죌레).

    이스라엘의 정체성,
    혹은 히브리 백성에 속한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행하는 것에,
    그리고 그들의 짓밟힌 권리를 회복시키는 데 놓여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행하지 않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참된 정체성에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사는 땅에서
    정의가 주도하도록 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채
    민족의 일원임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기다.
    실제로 한 민족이
    정의와 공동선의 견지에서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것 이외에
    그 무슨 다른 목표를 가질 수 있겠는가?(구띠에레스).

    빈곤은 인간의 존엄성에 적대되는 수치스런 조건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결점이나
    운명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다.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사람을 길에서 밀쳐내는”(암 2:7)
    억압자들의 불의로 말미암아 가난한 것이다.
    성서 전체를 통해서 이런 가난과
    이 가난을 야기시킨 모든 사회적 조건이 비난받고 있다.
    궁핍한 개인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은
    불의에 대한 반응이기는 하지만,
    불의의 원인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로버트 브라운).     

    정의의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강탈한 것을 되돌려주는 일이다.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은
    자선행위가 아니라 정의의 실천일 뿐이다.
    즉 당연히 가난한 이들의 것이지만
    부당하게 빼앗겼던 것을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일이다(미란다).
     
    그리스도인들은 집단화된 자선,
    즉 불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제도에 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에르네스또 까르디날).
     
    우리 시대에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는 행위란
    정치적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노동의 가치를 전유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구띠에레스).

    오늘 우리 나라는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있는가?
    우리의 형제 자매들 중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가?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는가?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있는가?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가?
    국가란 어느 시대 어떤 문명에 있어서도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강한 신이다.
    진정한 애국심은
    조국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정의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입각하여
    조국이 정의의 길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심일 것이다(로버트 브라운). 

3.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카라비아스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단죄한다.
    누구나 손수 노동해서 먹고 살 의무가 있다.
    그 누구도 재물을 축적할 권리가 없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할 권리가 없다.
    축적과 독점, 억압과 착취는
    모든 사람과 모든 나라가 한 혈육 한 형제자매로
    살아야 한다는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타인을 불행하게 함으로써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직도 세상에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맏지 않고 부유하게 살면서
    타인과 타국을 착취하는 것을 자기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과 나라들이 있다.

    하느님은 지구를
    모든 사람과 모든 나라를 위하여 만드셨다.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우리가 가진 능력과 생명의 주인도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그 관리자일 따름이다.
    우리는 자연자원과 과학기술을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사용할 의무가 있다.
    극소수 사람들과 나라들이 사치를 구가하고 있는 동안
    절대다수 사람들과 나라들이 굶주리고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어 가는 상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상태다.
     
    재산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나라들의 ‘정의’는
    가난한 사람들과 나라들을 죽이는 정의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신성 불가침의 ‘제한 없는 사유재산권’이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무수한 사람들을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게 하고 있으며
    침략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속일 수 없다.
    하느님의 정의와 부자들 및 부강국들의 ‘정의’는
    전혀 딴판이다.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로 불리는 사람들과 나라들이
    하느님 눈에는 도둑으로 보인다.
    (『구원은 사랑』, 50-51쪽.)

4.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6)/카라비아스

    성서에서 정의란 모든 것을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질서지움을 의미한다.
    인간과 인류를 위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계획은
    모든 인간이 당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형제자매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
    사회에서 형제자매 사랑이 결핍된 결과로 말미암아
    밤낮없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이상으로
    형제자매 사랑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의에 빠져 좌절한 사람들,
    비참한 생활을 벗어나는 일을 포기한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의 사회를 건설하는 사명을 떠맡을 수 없다.
    사랑과 정의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형제자매들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정의를 목말라하는 사람만이
    형제자매들의 나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정의에 주리는 사람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구현을 위한 투쟁에 뛰어든다.
    그런 사람은 이 전쟁이 하느님의 전쟁임을 잘 알고 있다.
    이 전쟁에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당신 사랑의 힘을 주면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으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곡해할 수밖에 없다.
    정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로지 영신적 차원으로만 해석하려든다.
    이런 짓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짓이다.
    이 세상에서 영리하다는 자들과 똑똑하다는 자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하되
    자기네 기득권과 안락한 생활을 조금도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해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영신화하고 공허하게 만들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들이 형제자매의 사랑이 넘치는 세계
    곧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동참하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말씀하신다(누가 18:24-25).
    이기심과 욕심의 씨앗이 부자들의 마음속에서
    싹터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말해서, 하느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는
    부자들은 자기네 마음과 태도와 행동을 바꿀 수가 없다(누가 18:27).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과 위안과 쾌락과
    남이 자기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서로 나누고 섬기고 사랑하는 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뛰어들기가 불가능하다(누가 6:24-26).
    정신과 마음속에 오로지 돈밖에 들어 있지 않고
    먹을 것이 없는 라자로를 외면한 채
    호사스런 생활과 쾌락을 마음껏 누리는 부자들은
    그리스도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누가 16:19-31).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누가 16:13).
    부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 걱정과 재물욕과
    명예욕과 현세의 쾌락에 눌려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누가 8:14).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싶으면서도
    재산을 버리기가 아까워 슬픈 얼굴로 떠나가는
    부자 청년의 예를 가지고 있다(누가 18:23-30).

    그렇다고 예수님이 부자들에게는
    문을 닫아걸고 계신다는 뜻이 아니다.
    부자들도 부자이기를 포기하고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에 동참하면,
    어느 때라도 예수님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
    삭개오의 예를 들 수 있다(누가 19:1-10).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자마자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과거에 남을 속인 것에 대해 네 갑절로 갚아 주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해진다.
    (『구원은 사랑』, 97-98, 102-103쪽.)                     
     
5. 다시 쓰는 마리아 찬가/어느 노동자

    주님의 선하심은 사건들 속에서 나타나고,
    정의로운 행위에서 빛난다.
    주님은 강력한 당신 손을 펴시어
    거만한 자들의 계획을 깨뜨리신다.
    마치 죽이겠다는 위협을 비웃는 사람처럼.
    주님은 독재자의 권력을 무너뜨리시고,
    민중계급들을 들어높이며,
    악당들의 손에서 역사를 해방시키신다.
    주님은 생산하는 자에게 땅의 축복을 베푸시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한 것처럼,
    부자들을 경멸하신다.
    주님은 모든 사람 위에
    그분의 심판의 추를 내려뜨리고 계신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 주신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신다.
    주님은 그분의 민중 및 그분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신다.
    주님은 그분의 나라의 길을 따라 연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신다.
    주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오늘날까지
    희망이 없을 때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충실함을 증거해 보이신다.

6. 민중의 의식화/김수환 추기경

    이른바 ‘민중’에 속하는 사람들,
    노동자나 농민, 도시빈민 등의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우리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깨달음으로서의 의식화는 매우 뜻이 깊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 나라 전체, 민족 전체를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국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그들이
    국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을 가진다는 것,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회복과 사회정의를 위하여
    떨쳐 일어선다는 것,
    그것은 이 땅 이 사회의 올바른 역사 발전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단지 자신만의 권력 획득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권리 주장을 목표로 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인간성 회복과
    민족 공동체 전체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민중의 주체적 의식화의 길,
    그 길은 인간화의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그 길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신치구 엮음,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 김수환 추기경의 세상 사는 이야기』, 사람과사람, 131-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