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9)  -  믿음

                                     정연복 엮음(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첫째 마당: 예수의 믿음

1. 예수의 복음 - 믿음을 통한 행복/프란츠 알트
   
     예수는 우리가 좀더 깊은 믿음을 통해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복음을
     기쁨의 복음보다는 위협을 가하는 복음으로 이해해왔다면,
     2000년 동안 교회와 신학에 상당한 잘못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예수가 모범적으로 보여준 자세는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다.
     예수는 가장 명확하고 엄숙한 어조로
     ‘새로운 인간’을 위한 ‘새로운 생활’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 6:25-34).
     
     산상수훈은 결코 향토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한 고향에 가닿도록 하는 안내서다.
     이 부분을 묵상해 보면
     예수가 믿음 안에서 이해한 바를 느낄 수 있다.
     즉 일상적인 걱정과 시름에 잠기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를 앞서간 수십 억의 인간,
     그리고 우리를 뒤따를 수십 억의 인간 중에
     나를 유일한 생명체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너와 나를 생각해오셨으며
     영원히 너와 나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세상의 어떤 복음도
     영원한 사랑과 무한한 믿음이라는 복음보다
     더 본질적이며 가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심층 심리학과 정신 요법은
     믿음이 얼마나 건강에 좋으며,
     불신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믿는 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언은 
     내 삶의 경험에 비춰 보면 진실하다.
     (프란츠 알트, 구승희 역, 『멋진 남자! 예수』, 한얼, 202-205쪽.)

2. 믿음의 기적/프란츠 알트
   
     수많은 기적 이야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서로 일치하며,
     종교와 심리치료가 일치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예수가 행한 유일한 일은
     “너는 건강을 원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단지 ‘매개자’일 뿐이다.
     예수가 뭔가를 하고자 했다면 치료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적은 언제나 믿음을 되찾게 됨으로써
     병자들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는
     우주 전체와 모든 인간들 속에 흐르고 있다.
     불신 때문에 이런 생명 에너지가 차단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자유롭게 소통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우습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가르침은 모든 현실주의자들에게
     미래의 대헌장으로 제시되고 있다.
     미래는 예수처럼 인간의 정신적 변화 가능성을 믿는
     ‘새로운 인간’에게만 해당된다.
     (『멋진 남자 예수!』, 214쪽.)                                        

3. 믿음의 창시자 예수/앨버트 노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비슷하게 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태 17:20).
     예수에게 믿음이란 하나의 전능한 힘,
     불가능한 것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이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에 호소했던 반면
     예수는 신앙에 호소했다.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는,
     불가능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믿음의 힘이라고.
     
     그러므로 믿음과 반대되는 것은 숙명론이다.
     숙명론이란 한때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나 존재했던
     특수한 생(生)철학이 아니다.
     숙명론은 대부분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유력한 생활태도다.
     예수의 치유활동의 성공은
     숙명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승리로 보아야 한다.
     믿음이라는 삶의 태도는
     예수와의 접촉을 통해
     예수로부터 사람들에게로
     거의 일종의 전염병처럼 옮아갔다.
     그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옮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믿음의 창시자였다.
     숙명론의 분위기가 믿음의 분위기로 대체된 곳곳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과연 참으로 기적이었던가?.
     기적을 볼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계는 기적으로 가득하다.
     이른바 자연법칙이 깨뜨려질 때가 아니면
     더 이상 경이와 탄복을 경험할 수 없다면
     그야말로 가련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앨버트 노울런, 정한교 역,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분도출판사, 57-60, 64쪽.)

4.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앨버트 노울런

     예수는 그 나라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마가 1:15).
     믿음은 무슨 마력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맺고 자르는
     하나의 결단이다.
     예수가 호소한 ‘메타노이아’(metanoia) 즉 회개는
     정신과 마음의 변화, 충성의 변화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라,
     거기에 마음을 두라(마태 6:33).
     믿음은 자기 삶의 방향의 근본적 재정립이다.
     신앙은 결단이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어떤 타협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의 결여이며,
     그런 신앙은 아무 효험도 없다.
     그러나 믿음의 힘은
     그것이 굳은 결단이나 확신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믿고 바라는 바가 진리라는 데서 그 힘이 나온다.
     
     하나님 나라가 만일 하나의 환상이라면
     신앙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무기력한 것이리라.
     세상에는 강력하지만 환상적인,
     우리를 재앙의 낭떠러지로 이끄는 역할을 해왔을 뿐인
     믿음들이 많이 있다.
     예수가 설교한 나라가 만일 삶을 위해 참된 것이라면,
     그것이 만일 인간과 인간의 필요에 관한 진리라면,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나라를 믿는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불가능한 일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신앙의 힘은 진리의 힘이다.
     연민이 없이는 참된 믿음이 있을 수 없다.
     예수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던 나라는
     사랑과 봉사의 나라다.
     사람마다 사람이기에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간적 형제애의 나라다.
     같은 인간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나라를 믿고 바랄 수 없다.
     
     그런 나라를 믿는 신앙이 널리 퍼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도래 자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적이리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선이 악보다, 참이 거짓보다 강함을 믿는 것이다.
     결국은 선과 참이 악과 거짓을 이기리라는,
     하나님이 사탄을 정복하시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세상에는 선을 지지하는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깊디깊은 욕구로 나타나서 활동하는 힘,
     결국에 가서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힘,
     그런 힘이 엄연히 존재한다.
     예수가 만일 그것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139-142쪽.)

둘째 마당: 우리의 믿음

1. 사랑의 씨앗/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닮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닮은 부모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관리자일 따름이다.
     우리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사업을 완성해야 한다.
     깊은 신앙을 가지고 우리는 사랑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진정한 사랑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기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살라고
     우리를 지으신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의 씨앗을 다시 심어 주고
     자라게 하려고 오셨다.
     우리가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머나먼 길에 들어서려면,
     그런 근원적인 낙관론이 필요하다.
     (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김수복 역, 『구원은 사랑』, 일과 놀이, 15-16쪽.)

2. 역사에 토대를 둔 신앙/구띠에레스

     성탄절에 즈음하여 교회에서는
     아기 예수가 모든 가정에, 그리고 모두의 마음속에
     태어나신다는 설교를 종종 한다.
     그러나 이런 태어나심의 “사건들”로 말미암아
     예수가 나사렛의 가난하고 순박한 여인 마리아의 자궁을 빌려
     한 힘없는 백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또한 그분이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은
     당대의 막강한 로마제국의 억압과 착취 아래 있었다는 
     근본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예수의 탄생은 일종의 환상이나 단순한 상징,
     혹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헛된 것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에 토대를 둔 신앙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계시된다.
     오직 이 점을 출발점으로 삼을 때에만
     하나님을 믿는 일이 가능해진다.
     믿는 이들은
     결코 역사의 어느 막다른 골목 한 귀퉁이로 피하여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바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우리의 삶의 갖가지 정황들 한복판에서
     믿는 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억압과 탄압, 신음과 절망, 슬픔과 희망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죽음을 심어 놓는 독재 세력들과
     가난한 이들의 요구와 꿈을 부당하게 대하는 불의한 세력 아래
     믿는 법을 익혀 나가야만 한다.

     하나님의 아드님은 죄 많은 이 땅의 역사 한가운데에
     천막을 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14).
     우리도 지금 여기
     우리의 역사 한가운데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써 우리의 이 삶의 자리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이 입증하고 있는 생명에의 의지를 토대로
     우리의 희망을 튼튼히 키워 나가야 한다.
     이때, 우리는 바로 우리의 몸 안에서
     생명의 왕국, 생명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말씀과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구스따보 구띠에레스, 황종렬 역, 『생명이신 하느님』, 분도출판사, 174-175쪽.)       
3. 내가 믿는 주님/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나는 고관들의 신을 믿지 않고
     장군들의 신도 믿지 않으며
     애국적 기도에 나오는 신도 믿지 않습니다.
     나는 부자들에게 행운을 안겨주는 신을 믿지 않고
     유복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신도 믿지 않으며
     민중을 약탈하여 쾌락을 누리는 자들의 신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권력자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신을 믿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고통을 쓰다듬어 가라앉히려고
     조작해낸 신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성벽 위에서 잠든 신을 믿지 않으며
     교회 금고 속에 숨어 있는 신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상업주의에 물든 성탄절의 신을 믿지 않으며
     형형색색으로 선전되는 신도 믿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유다인으로서
     이방인 왕에게 박해를 당하셨고
     팔레스틴을 떠돌아다니며 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민중과 어울리셨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고
     묶인 사람들을 풀어주셨으며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법률 위에 인간을 두셨으며
     옛 전통 대신에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머리 하나 편히 누울 자리가 없었으며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만이 당신 말씀을 한사코 의심하려드는
     율법학자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정죄하려고 벼르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부대끼셨습니다.
     그분은 마침내 군인에게 체포되셨으며
     통치자의 관저 안으로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온통 피에 젖었습니다.
     그분은 채찍을 마구 휘두르는 군인들에게 떠밀려
     골고다 길로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그분은 갈보리에서 두 강도 사이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신 나사렛 예수,
     바로 그분입니다.
     날마다 그분은 우리 이기심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고 계십니다.
     날마다 그분은 우리 사랑의 힘으로
     부활하고 계십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엮음, 『예수님과 함께』, 일과놀이, 34-37쪽.)

4. 그릇된 예수상의 해방/레오나르도 보프

     신앙은 예수를 가두는 일체의 족쇄로부터
     그분의 상(像)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예수를 메시아, 주님,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따위로 선포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이미 신앙을 갖고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가 이 이름들이
     우리의 삶을 위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은 그러하다.
     유대인들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메시아”, “다윗의 아들”, “유다 지파의 용사” 등의 명칭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
     
     그리스도론이
     성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칭호들의
     역사적 상대성에 대해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이 칭호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위험이 있다....
     사실상 교황들과 왕들이
     자기네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스도 왕”이라는 칭호에서
     어떤 이데올로기적 기초와 토대를 찾았다.
     (레오나르도 보프, 황종렬 역, 『해방자 예수』, 분도출판사, 298-299쪽.)

5. 예수를 믿음/앨버트 노울런

     예수는 어떤 제도를 창설하지 않았다.
     하나의 운동을 고취했다.
     놀랍게도 예수의 운동에 있어서는
     예수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여전히 지도자로 머물러
     추종자들을 감화하고 있었다.
     예수는 분명히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의 영에 의해
     사로잡혀 있으며 인도되고 있다고 느꼈다.
     예수에 대한 찬탄과 숭배는 한계를 몰랐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를 하나님 오른편으로 받들어 올렸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에 있었다.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예수의 감정은 하나님의 감정이었다.
     예수에게 해당하는 것은
     꼭 그대로 하나님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예수 자신의 언행이 ‘하나님’의 내용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예수로 하여금
     우리의 신상(神像)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며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선택하는 것은
     예수를 신성에 관한 인식의 원천으로 삼으며
     자신의 신관을 예수에게 덮어씌우기를 삼가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통적인 가르침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예수를 계시하는 게 아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이지
     하나님이 예수의 말씀은 아니다.
     우리의 신관(神觀)들이 예수의 생애에 빛을 던질 수는 없다.
     예수에서 출발하여 신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고
     신에서 출발하여 예수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실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시도를 해왔다.

     지금 우리가 예수의 신성을 말한다고 해서
     예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때 달라지는 것은 신성에 관한 우리의 이해다.
     예수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그분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란
     우리에게서 봉사를 받기 원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봉사하기 원하는 분이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우리 사회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와 신분을 원하는 분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려 하며
     지위와 신분 따위는 아예 바라지도 않는 분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고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바라는 분이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자기를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분이다.
     지존하게 무관심하고 초연한 분이 아니라,
     연대의식과 연민의 정(情)으로
     만인과 하나 되기를 스스로 선택하여
     인류 해방에 단호히 몸바친 분이다.
     이것이 만일 하나님의 참모습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예수는 신성이 없다.
     이것이 만일 하나님의 참모습이라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인간보다도 더 참으로 인간다운 분이며
     더 철저히 인정(人情)이 넘치는 분이다.
     최고로 ‘인간다운 하나님’(Deus humanissimus)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신성은
     그의 인간성과 전혀 다른,
     그의 인간성에 부가되는 그런 게 아니다.
     예수의 신성은 그의 인간성의 초월적 깊이다.
     예수는 다른 누구보다 한량없이 더 인간다운 분이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예수의 신성을 인정할 때,
     예수를 우리의 주님이요 하나님이라고 알아모실 때
     무엇보다도 중요시해야 할 점이다.
     예수는 삶의 모든 진실, 모든 실재와
     유일무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분이었다.
     사람들을 보고 저절로 일어나는 예수의 연민의 정은
     애초에 어떠한 소외나 꾸밈도 용납할 여지가 없었다.
     선과 진리의 힘에 대한 예수의 자발적인 믿음은
     거짓 없고 환상 없는 삶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예수는 진리에 흠뻑 젖은 분이었다.
     아니, 자기 안에 진리가 살(肉)이 되어 있는
     진리의 화신이었다.
     예수 자신은 이것을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치로 체험하고 있었으리라.
     하나님이 생각하며 느끼는 그대로
     자기가 생각하며 느끼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으리라.
     따라서 자신의 체험 이외의 어떤 권위나 힘에도
     의존하거나 호소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나 신에 관한 이론이 아니다.
     말과 이론이란 늘 모자라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필경 믿음이란
     하나의 표현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라 생활방식이며
     실천으로만 제대로 표출될 수 있다.
     예수를 우리의 주님이며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은
     예수가 살았던 대로 예수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예수에 관한 이론을 수립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수를 우리의 시대와 환경 속에서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자기 시대의 표징을 읽었듯이
     우리가 우리 시대의 표징을 읽으려는 데서 출발한다.
     예수가 그랬듯이 우리는 연민의 정을 갖고 출발해야 한다.
     “신을 드높이기 위해 인간을 훼손하는
     그런 것이 그리스도교 복음은 아니다.
     인간의 영광을 희생시킴으로써만
     자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신이라면
     너무도 옹졸한 신이다”(Paul Verghese).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이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다(고전 13:1-2; 야고 2:14-26).
     예수와 연대하는 것은 만인과 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정신으로 시대의 표징을 탐지하는 것은
     인간을 거슬러 악의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든 세력을 식별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 질서는
     인간의 적인 사탄의 지배 아래 있지 않은가.
     체제란 사탄의 나라의 현대적 동의어가 아닌가.
     악의 권세들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지상의 지옥으로 끌어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세계 속에 얽힌 악의 구조를
     오늘날의 그 모습 그대로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돈, 재산, 위신, 신분, 특권, 권력 따위의 세상적 가치와
     가문, 인종, 계급, 당파, 종교, 민족주의 따위의 파당 연대성에
     우리는 얼마나 크게 의존해왔던가.
     이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은
     예수와 공유하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뜻한다.
     
     체제에 저항하여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이익이라는 것을 대신하여
     그보다 더 힘찬 것이 될 수 있는 동기가 존재한다.
     ‘가진 자들’로 하여금 생활수준을 낮추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세계의 부와 인구를 재분배하도록
     세상을 자극할 수 있는 충동이 존재한다.
     그것은 예수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과 똑같은
     충동이며 자극인 연민과 신앙이다.
     이런 모양으로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에 접근하는 사람은
     임박한 파국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둘도 없이 좋은 기회임을 인식하게 될 게 틀림없다.
     오늘날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시대의 사건들과 문제들 속에서.
     예수는 우리가 진리 자체의 소리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지만,
     필경 결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223-234쪽.)      

6. 우리의 신앙은 예수의 신앙과 같아져야 한다/존 호기

     예수는 믿음의 근원자요 완성자다(히브 12:2).
     우리의 신앙은 예수의 신앙과 같아져야 한다.
     예수의 신비체의 지체로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과업을
     각 세대에게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성실을 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앙의 남은 몫을
     채우기에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골로 1:24 참조).
     신앙으로 우리는 예수의 사명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이다.

     평화와 정의의 나라는
     그저 우리가 동경하기만 할 머나먼 이상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역사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그 나라는 이미 작용하고 있으며
     비록 새싹과 같지만 엄연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변혁시키고 있다.
     신앙이란 그리스도 신자가 그 나라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는 한,
     하느님 나라는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 안에서 세력을 뻗친다.
     신앙을 통해 우리도
     부서진 세계를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뜻이다.
     정의의 행동대원이자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유한 인물들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지적(知的) 동의 그 이상이요,
     하느님이 우리 없이도 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희망 그 이상이다.
     하느님이 행하고 계신 일에
     ‘지금 여기에서’ 참여하는 것이 신앙이다.
     다시 말해 뭇 민족에게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신앙이다(이사 42:1-4 참조).
     (존 호기 편, 성염 역, 『정의를 실천하는 신앙』, 분도출판사, 54-55쪽.)

7. 참된 신앙은 해방의 실천을 포함한다/보프 형제

     신앙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과 인생과 죽음을 하느님의 손에 맡긴다.
     신앙의 빛을 받아 우리는 하느님의 실재가
     역사 및 세계 안의 온갖 차원 속에 침투해 있음을 간파한다.
     구원을 받으려면 진정한 신앙이 절대로 필요하다.
     성서적 전통에 따르자면,
     신앙이 그 표현의 개념들에서
     참된 것(정통교리)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신앙은 사랑, 연대,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충만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신앙이 되고 또 진정한 신앙으로 판명된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약 2:20).
     “실천이 없는 순수한 믿음,
     그런 믿음은 마귀들도 가지고 있다”(약 2:19). 
     그러므로 정통교리는 반드시 정통실천과 결합되어야 한다.
     살아 있는 진정한 신학은 우리로 하여금
     억압받는 사람들의 신음과 울부짖음 속에서
     종말론적 심판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궁핍한 사람을 형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또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요한1서 3:17).
     (보프 형제, 김수복 역, 『해방신학 입문』, 한마당, 75-76쪽.)

8. 그리스도교 즉 그리스도는 아니다/이현주

     나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믿는 만큼
     인간의 유한함을 믿는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한다.
     나는 나의 주장이 그 어떠한 것이든
     본질상 상대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나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나의 주장과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때에 비로소 나는 구원받는다.
     
     나는 나의 한계성을 인정한다.
     단 한 분 절대자이신 그분을 믿는 그만큼,
     나는 나의 상대성을 믿는다.
     내가 부단히 상대화시키는 것들 가운데는
     물론 나의 이 “신앙고백”도 들어 있다.
     달라진다는 것에 관하여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고백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두렵지는 않다.
     두려운 것은 어쩌다가 진실을 등지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두려운 게 또 하나 있다.
     지금 하는 이 고백이
     무슨 고정 관념처럼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의 신앙이 굳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내 신앙의 부고장(訃告狀)이나 마찬가지이겠기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내가 두려운 일은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낡은 가죽 부대”가 되는 거나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는 끝이다.
     욕심인지는 모르나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성서 지식,
     또는 자기가 고백하는 하나님 신앙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음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 삶의 길
     곧 구원받는 길이 되심을 믿는다.
     나의 이 믿음은 다른 무엇으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고백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 절대적인 신앙 고백 자체가
     상대적인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교”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분명한 사실을 왜들 그렇게
     억지로 외면하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스도교는 이제 나이 2천 살이 되어 가는
     하나의 종교일 뿐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라는 울타리와
     상관없는 분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만든 자궁도 아니요
     그 속에 그리스도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도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그리스도교”의 “그” 자(字)도 모르신 분이다.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도 “그리스도교”가
     곧 사람을 구원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이른바 진리 수호의 이름으로,
     얼마나 참혹한 일을 인류에게 감행했는지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런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지니고 있는 유일한 가치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역사는 그리스도교가 언제나 모자람 없이
     이 유일한 가치를 발휘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현주 목사 신앙고백,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종로서적, 46-49쪽.)

9. “믿음이 좋다”는 뜻은?/지성수

     흔히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 의미가 뭘까?

     세상을 산다는 것은
     자고 깨어나면 싸움을 하는 일이다.
     갈등과 경쟁 속에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런데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교회에서는 오로지
     평안과 화해와 사랑과 용서만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늘 세상의 사건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도,
     교회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와
     덜컥 문제가 생기고 나면
     어떻게 할 줄을 몰라 당황하기 시작한다.
     세상살이에서도
     싸우다가도 화해해야 할 때가 있고
     화해했다가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신앙인들은 어떤 때 화해할 것이며,
     어떤 때 싸워야 할 것인지를 잘 모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신앙이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현실적인 삶을 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갇힌 자들은
     세상의 모순과 혼돈 앞에서
     쉽사리 무기력해지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폐쇄 회로와 같은 사고방식이
     그들을 더욱 나약하게 만든 탓이다.

     신앙인들은 의식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해서
     복잡다단한 세상 만사에 대하여
     시험, 환난, 인내, 순종, 기도, 축복 정도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풍에 돛단 듯이
     제대로 될 때는 감사를 하겠지만
     세상이 어찌 그리 단순하랴?
     시험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결국은 접시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일인데,
     일단 문제가 생기면
     시험 혹은 환난이 왔으니
     인내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면 축복이 온다는
     단순 논리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추는
     신앙을 갖고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회는 엄연히
     양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인데,
     흔히 기독교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가 아니고
     천국의 질서 속에 살고 있는 듯 착각하기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낭패를 당할 때가 있다.
     (지성수, 『교회야 교회야 뭐하니?』. 예루살렘, 148-149쪽.)

셋째 마당: 부활신앙

1. 부활신앙/헨리 나웬

     세상의 가난한 이들은 마음에 부활신앙을,
     창조된 모든 것이 쓸데없이 소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지구의 모든 나라들에서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미소는
     부활이라는 실재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주는 미소다.
     이 미소는 참되고 영원한 사랑을 아는 마음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미소다.

     한 주간 첫째 날 새벽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텅 빈 무덤을 발견하고
     곧이어 흰 옷을 걸친 젊은이에게서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가
     수의가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도 발견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며,
     클레오파스와 그의 친구는
     엠마오에서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았다.
     같은 날 저녁 그분은 제자들을 찾아와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시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새로운 말들이
     성(聖) 토요일의 침묵을 깨고 흘러나와
     예수를 알고 사랑했던 남녀들의 마음과 정신을
     부풀어오르게 했다.
     이 말은 “그분이 부활하셨다, 정말로 부활하셨다”였다.
     이 말은 지붕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쳐지지도,
     커다란 벽보에 적혀 대도시 곳곳에 붙지도 않았다.
     이 말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열망하고
     나사렛 사람의 말과 행실에서
     그 최초의 표지들을 감지한 그런 사람들만이
     마음으로부터 귀담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은밀한 메시지로서,
     귀에서 귀로 소근거린 말이었다.

     세세대대로 속삭임을 통해
     세상 끝에서 끝까지 전달되고 있는 이 소식에
     “그렇지!”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똑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다르기도 하다.
     나무는 여전히 나무요, 강은 여전히 강이며,
     산은 산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과 두려움 중에서 택일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통해
     높이 들어올려져 하나님의 오른편에 놓이게 되었다.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 어린 품에 안기고,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팔에 안기고,
     진정한 상속자가 가장 좋은 옷에 귀한 반지를 수여받고,
     형제들과 자매들이 한 식탁에 초대받는다.
     모든 것이 동일하면서도
     모든 것이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삶을 영위할 때,
     영원으로부터 하나님의 소유인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의 마음속에서
     휴식을 발견한 셈이기에,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고
     우리의 멍에는 달콤한 것이 된다.

     지금은 또다시
     조용하면서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때다.
     침묵으로부터 새로운 말들이 출현하는 때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억류된 사람들이 해방되고,
     소경들이 보고,
     억눌린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
     주님의 은총이 선포되는 때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미소와 하나님의 백성의 미소가
     어둠을 비추는 영원 불멸의 빛 속에서
     서로 맞닿아 하나로 합일하는 때다.
     (헨리 나웬 외, 심정순 역, 『예수수난묵상 - 십자가의 길』, 일과놀이, 107-109쪽.)

2. 부활신앙/안병무

     예수는 권력에 의해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보다 강한 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수난당하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수난당함으로써
     마침내 권력의 횡포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죄의식이 아니라,
     이렇게 얻어맞는 자신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의식을 가진 무리가
     바로 예수의 민중이었다.
     예수의 민중은
     예수의 죽음이 비참한 패배라고 보지 않았다.
     “예수는 전세계를 위해서 죽었다.
     세계를 변혁시킨다.
     하느님의 종말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믿었다.
     종말사건은 세상의 완전한 변혁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예수의 민중은 
     예수가 이미 종말을 가져왔다고 믿었다.
     바로 이런 신념이 부활경험이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념 가운데
     권력체제를 모방하지 않고
     끝끝내 섬기는 자의 자세를 지니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로마를 굴복시킨 것이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99-102쪽.)

3. 죽어서 사는 믿음/문익환

     부활의 영광으로 빛나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십자가라야 십자가다.
     십자가는 끝까지 아픔이요, 절망이요, 치욕이다.
     온갖 아픔과 절망과 치욕에 주어진 생명 한 점씩
     떼어주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사는 일이다.
     생명을 한 점씩 저며 주는 일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죽는 일이 아니겠는가?
     죽지 않으면 사는 길은 없다.
     죽지 않으려고, 살려고 나의 일부분을, 아니 상당 부분을,
     아니 몽땅 유보해 놓고,
     남의 것만으로 살려는 사람은
     자기의 생을 한껏 살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보해 둔 생명은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매 순간을 진실과 사랑으로 불태우며 뜨겁게 살아가는 사람을
     죽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 부활의 공동체다.
     그것이 바로 “교회”다.

     십자가는 교회라는 무덤 위에 세워진 비석이 아니다.
     십자가는 두렵고 떨리는 사랑의 명령이며,
     정의와 자유는 결코 무덤 속에서 썩어버리지 않는다는
     부활의 약속이다. 
           
4. 부활신앙의 역사/김경호

     기독교의 가장 큰 신앙,
     가장 기본적인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구약성서는 부활을 모른다.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들이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도,
     구약은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왜 그럴까?

     야훼신앙의 핵심 구성원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을 쌓고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하층민이었다.
     현대의 한 과학자가 그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피라미드 하나를 건설하는 데 드는 노동력을 계산해 보았더니,
     20만 명이 동원되어 20년 동안 부역을 해야 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20만 명의 젊고 힘있는 꽃다운 생애를
     송두리째 바쳐야 했던 것이다.
     이런 세계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사는 세계였고,
     이들의 종교는 죽음을 위한 종교였다.
     이집트의 이런 반민중적 종교에 대한
     뼈저린 체험과 각성과 반대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은,
     의인들은 이 땅에서 장수하며 복을 누리고
     악인들은 반대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앙에 시련이 찾아왔다.
     이스라엘이 희랍의 식민 지배 아래 있을 무렵,
     안티오쿠스(에피파네스) 4세란 폭군이
     야훼신앙을 능멸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돼지를 잡아
     그 피를 성전에 뿌리게 했다.
     성전에서 야훼를 배반하고 욕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을 끝내 거부하는 사람들을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가차없이 죽였다.
     이런 현실 앞에서
     “의인은 이 땅에서 장수하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신앙은 교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을 배반하고 외국에 빌붙는 사람들은 잘 살고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참되게 살려는 사람은
     오히려 순교를 당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신앙이 싹트게 되었다.
     “아냐! 이대로 세상이 불공평하게 끝날 수는 없어.
     악인은 흥하고 의인들은 요절하는 이 불의한 현실이
     우리들의 신앙의 끝일 수는 없어.
     죽음 후에 의인들은 반드시 다시 살게 될 거야!”
     
     이렇듯 부활신앙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 잉태된 신앙이다.
     한(恨)을 가진 사람들의 신앙이다.
     그래서 부활신앙은 민중들의 희망, 민중들의 신앙이었다.
     예수 때에도 예수를 비롯한 이스라엘 민중은
     부활신앙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상류 계층인 사두개파는 부활을 부정했다.
     현실에서 이미 만족할 만큼 얻고 누리며 사는 그들이
     기존 질서의 틀을 깨고 새 것을 희구하는
     천지 개벽의 부활신앙을 좋아할 리 없었고,
     더군다나 율법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학자요 권위자인 그들이
     전통에도 없는 사이비 신앙, 하층 떨거지들의 신앙을
     받아들일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경호, 『해방을 위한 사랑의 선한 싸움』, 나단, 95-96쪽.)

5. 부활신앙, 부활사건/김경호

     부활은 이 세상에서 복받고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복받는 것이라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활신앙을 오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 이기심을 종교로 포장한 것이지
     부활신앙이 결코 아니다.
     부활은 진정한 죽음과 자기 희생의 각오에서 출발한다.
     죽음과 희생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부활은 없다.
     부활은 나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미래를 나의 현실로 앞당겨 사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으면서 산다”(사도 바울).
     우리 주님은 실제로 죽으심으로,
     몸소 죽음의 영역에 들어가심으로,
     생을 파괴하는 세력에 몸을 맡기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실 수 있었다.

     로마 권력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민중들이 되받아 일어난 사건이 부활사건이다.
     압제자가 죽이고 가둘 때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를 죽이면 열이 일어나고
     열을 죽이면 백이 다시 떨쳐 일어나는 사건이
     부활사건이다.
     하나를 가두면 열이 외치고
     열을 가두면 또다시 백이 떠드는 사건이
     부활사건이다.
     이것을 믿는 부활신앙은
     교회나 성서 안에만 갇혀 있는 신앙이 아니다.
     부활신앙은 역사의 한복판에
     사건으로 일어나고 있는 신앙이다.
     금남로에서, 망월동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장에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판자촌에서, 민중의 현장에서
     사건으로 벌어지고 있는 신앙이다.
     부활신앙은 거리의 신앙이다.
     고난받는 현장의 신앙이다.                               
     (『해방을 위한 사랑의 선한 싸움』, 99-100쪽.)
     
6. 영원히 사는 것/에르네스또 까르데날 신부

     예수님은 ‘의인들’이 부활할 때라고 하셨지
     착취자들을 포함한 만인이
     부활할 때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성서에서 ‘의인’이 무엇을 뜻하지는 우리도 이미 압니다.
     성서에서 정의는 사회정의고 해방입니다.
     불의한 사람은 압제자요, 의로운 사람은 해방자입니다.
     하느님은 절대 정의이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칭호는 ‘의로운 분’입니다.
     불의를 징계하시는 분,
     피압박자들을 찾아오시고
     가난한 이들의 비명을 들어주시는 분,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의인들이란 지상에 정의를 세우고자
     투쟁하는 인물들을 일컫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부활할 것입니다....

     맑스주의 무신론자들이 품고 있는 부활신앙은
     크리스천들의 부활신앙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부활에 관한 한 크리스천과 그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혁명 투사들이 살아 있음을
     노래한 시와 노래와 그림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민중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민중 ‘속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지만
     전체 인류의 생명과 더불어
     그는 인격적으로 살아 있습니다.
     “고향이든 죽음이든 우리는 다 초극하리라”는 말은
     혁명가가 죽어서도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발언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민중을 위해 죽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초극할 것입니다.
     “그는 죽었을지라도 살아날 것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사회정의임을 깨닫는 것,
     이 사랑에 가담하는 것이 곧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에르네스또 까르데날, 성염 역, 『말씀이 우리와 함께 - 솔렌띠나메 농어민들의 복음대화』, 분도출판사, 320-321쪽.)
      
7. ‘십자가-부활’의 현실화/서남동

     나사렛 예수가 역사상의 실재 인물이 아니라면
     기독교도인 우리의 믿음도 말짱 헛것이 될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도
     그의 생애의 역사선상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와 부활은
     거의 비역사화된 듯한 인상을 준다.
     현실 교회에서는 십자가의 속죄의 효험과
     부활의 기적적인 능력만이 강조되는 나머지
     그 역사적 실재성은 잊혀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이 본래 발생한 대로의
     정치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교회에서는 그 사건이 비정치화되어
     다만 종교적 상징으로만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예수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은 다시 현실화되어
     그 정치적 함축과 위력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cross)는 종교적 상징이 되기에 앞서
     혹은 종교적 상징이 되는 전제로서
     십자가형(crucifixion)이라는 로마제국 형법상의 처형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그가 정치범으로 고소되고 그렇게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死, death)은 단순한 죽음 곧 자연사가 아니고
     의로운 자가 살해(murder)당한 경우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이 역사적 사실, 정치적 사건, 곧 예수의 살해당하심이
     그 사실 그 사건이 가진 본구적(本具的) 능력으로써
     우리의 속죄와 해방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의 십자가’다....
     
     현실 교회가,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죽음에 관한 신학과 종교적 명복에만 그치고
     죽임(살해, murder)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고찰하려고 하지 아니하는 것은
     기독교가 그 본래의 역사적 발생학적인 핵인
     예수의 십자가형(crucifixion)을 상실하고
     종교적인 상징인 십자가(cross)만으로
     현실을 떠나서 구름같이 떠버렸기 때문이다.
     그를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약속된 종말론적 일반적 부활의 ‘시작’인
     예수의 부활은 ‘죽임을 당한 자의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은 살해된 예수의 부활이다.
     부활은 살해된 자의 항변이며 한풀이며
     침해된 신의 공의의 회복이다....
     은폐된 진실, 억압된 정의, 살해된 생명이
     한으로 남아서 성수(星수)의 저 세상으로 가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서 유령과 같이, 유언비어와 같이,
     관계된 자들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한이다.
     죽임의 부정, 은폐된 사실의 나타남,
     진리와 생명의 승리,
     이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한풀이다....
     묵시록은 죽임을 당한 자의 부활 이외에는 모른다.
     중간시대의 유대교 사상에서도
     예수의 경우도 묵시록의 약속도 다같이
     ‘죽임을 당한 자의 부활’이다.
     부활에 관해서 씌어진 신약성서의 다른 경우에도
     예수의 재림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곧 ‘첫째 부활’도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한 자들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부활을 너무 안이하게 헐값으로
     생각해온 것이 아니었던가....

     독일어에서는 부활(auferstehung)과 봉기,
     저항(aufstand)이 같은 어원(aufstehen)이고,
     영어에서는 부활(resurrection)과 봉기(insurrection)가
     같은 어간(라틴어 surugere : 일어난다)을 가졌다....
     (마가복음 16장 8절에서)
     부활하신 예수, 처형된 예수의 부활은
     그 민중들이 사는 갈릴리 지방에서 만나게 된다는
     '흰옷을 입은 웬 젊은이'의 말이다(백의민족의 한
     청년이라고 상상해 보자).
     이 젊은이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의 변화된 몸이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민중 사이에 오셔서
     그들을 새 역사 시작의 주격으로 의식화시키고
     그 주역 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박차고 나서는 민중봉기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부활하신 예수를 갈릴리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은
     수난과 속죄와 새 역사 시작을 위해서 일어나는
     그 민중의 봉기(부활, egeiro)의 뜻이 아닐까.
     그렇다고 이것이
     갈릴리가 새 예루살렘이 되고
     예루살렘이 갈릴리(변방)가 되는
     ‘악순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권력과 부와 종교적 권위의
     중심점(centering)인 데 대해서
     갈릴리는 그러한 집중된 한의 분산,
     곧 비중심화(decentering)를 의미한다.
     지배가 아니라 봉사를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는
     눌려 있던 갈릴리 민중이 일어나는(egeiro) 데서
     만나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3.1운동, 4.19의거,
     그리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가난한 자, 눌린 자, 소외된 자와 함께 서는
     사회선교활동에서 계속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늘의 부활현장’이 없는 부활신학, 부활신앙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은
     한갓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태일 군의 모친 이소선 여사는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태일이가 죽은 후
     사랑하는 많은 형제들이 태일이의 정신으로
     노동운동에 참가하고
     그로 인해 고난도 받는 것을 볼 때
     나는 태일이의 부활을 그들에게서 보는 것 같다.
     노동자의 힘찬 운동 속에
     태일이는 활활 불타오를 것이다.
     나는 노동자의 확고한 권리의식과 강렬한 정신 속에서
     태일이의 부활을 보고 싶다."
     (서남동, 『民衆神學의 探究』, 한길사, 317-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