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11) - 회개와 구원

                                                   정연복 엮음(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첫째 마당: 회개

1. 지나가는 사람이 형제로 보일 때/김수환 추기경

    밤의 어두움이 지나고 새 날이 밝아 온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동창이 밝아 오는 것을 보면,
    새 날이 온 것을 알 수 있는가?
    아니다.
    창문을 열어 보고 사물이 그 형체를 드러내어
    나무도 꽃도 보이기 시작하면,
    새 날이 온 것을 알 수 있는가?
    아니다.
    그대가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형제로 보이면,
    그 때 비로소 새 날이 밝아 온 것이다.

    그대의 마음의 눈이 열려서
    모든 사람이 그냥 사람으로만 보이지 않고
    형제로 보여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대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한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되어
    남을 형제와 같이 사랑할 줄 알고,
    남의 고통과 아픔을 그대의 형제의 고통과 아픔으로
    느낄 만큼 공감하게 될 때,
    새 날은 비로소 밝아 온다.
    (김수환·추기경)

2. 자기 중심주의의 극복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종교를 이렇게 규정했다:
    “종교란 자기 중심주의의 극복이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먼저 스스로를 잊어버려야 한다.
    자신을 의식하고 애착을 가지는 한,
    결코 하나님을 의식할 수가 없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나의 뜻,
    곧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를 버린다는 뜻이다.

    독일의 종교 사상가인 에크하르트는 말했다:
    “완전한 존재에 이른다는 것은
    나 중심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사랑 곧 아가페(agape)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존재한다.
    즉 하나님의 존재 양태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다.
    아가페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성령과 신앙은 이 “사랑”을 위해 자기를 버리게 만든다.
    “자기 축복”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타종교에도 아가페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은 타종교를 통해서도
    자기를 나타내고 계시하고 계신 게 틀림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습인 헌신적인 사랑을
    불교인이나 유교인, 비신자가 하고 있다고 해서 배척하는
    옹졸하고 파벌적인 신이 아닐 것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도우심과 그 역사하심이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십자가를 지는 희생적인 사랑을 하기란
    지극히 힘들다는 주장은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지 않고는 구원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가능할 것이다. 

3. 회개/최종수

    기독교는 회개, 회심의 종교다.
    우리는 흔히 
    불신자가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중생 체험을 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서 신자가 되는 것을
    회개, 회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내 자신의 구원, 즉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이웃에 대한 관심, 즉 사회구원으로 회심해야 한다.
    종교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신앙으로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높은 곳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서야 한다.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세상에 오셨다(빌 2:6-8).
    주기도문을 입이 닳도록 외우면서도,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만 이루어지기를 바랐지
    진정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곳은
    바로 이 낮고 천한 세상이다.
    역사 밖으로만 치닫던 신앙을 회개해야 한다.
    역사 안의 신앙으로 돌아와야 한다.
    교회 건물 안에 안주하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힘차게 교회 문을 열고 “성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히브 13:13).
     
    이뿐만이 아니다.
    큰 것을 숭배하던 신앙으로부터
    작은 것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회심해야 한다.
    강한 것에 아부하고 약한 것을 멸시하던 신앙에서 돌이켜
    약한 것, 보잘것없는 것을 귀히 여기는 신앙으로
    한시 바삐 회심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많은 숫자와 크기를 가지고
    우리 신앙의 힘과 양을 평가하려 했던가!
    크기와 양과 숫자의 증가를 신앙의 성장으로 여기는 것은
    개인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병폐와 정치적 제국주의가 가르쳐준
    교세 확장의 허망한 신앙이요 착각이다.
    성경은 99보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1을 더 중요시한다(눅 15:3-7).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귀한 줄 아는
    신앙으로 회심해야 한다(마태 13:31-32).
    (최종수, 『예수와 인간해방』, 현대신학연구회, 23-24쪽.)

4. 개인적인 회개를 넘어서/카라비아스
   
    흔히 우리는 예수님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다는 식의
    암시와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인 오류다.
    이 오류는 일정한 선입견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예수님의 요구는 결코 개인적인 회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은 각 개인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그러나 개인들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꾸는 이유와 목적은
    모든 인간이 한 혈육과 한 형제자매로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섬기는 사회와 세계,
    곧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다.
    만일 사랑이 예수님이 하신 설교의 핵심이라면,
    형제 자매의 사랑이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사회-정치구조를 바꾸어 놓으려고
    예수께서 노력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김수복 역, 『구원은 사랑』, 일과 놀이, 92쪽.)

5. 밑바닥을 준비하는 삶/한희철 열사의 일기(82년 4월)

    인간은 왜 신앙으로도
    자신의 계급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 외롭다!
    왜 몇몇 친구들과 신앙인들만이
    미친 애들, 몰지각한 애들로 대접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 부모들은 마음이 굳어 있는 분들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을
    따뜻한 정으로 막아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들은 우리가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그것을 우리는 핑계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배를 곯으며 살아가길 싫어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밑바닥으로 가는 삶,
    밑바닥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중산층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앞에
    우리의 신앙을 뜯어 고쳐달라고 모두들 갈구해야 한다.
    수백 번 괴로워 눈물을 흘려보고 극복해야 한다.
    헐벗고 찢긴 몸이 되어 ‘주님, 주님’하며
    형제들의 어깨를 걸고 간구하며 걸어야 할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의 부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몰랐다. 나는 모른다’며 살아가고 있다.
    신음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할 일은
    ‘신음소리가 어디서 들리는가’
    ‘어디가 아플까’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알아야 한다.
    (서울대 민주열사 추모사업위원회 편, 『산 자여 따르라』, 거름, 181-183쪽.)

6.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들을 위한 기도/혼 소브리노
     
    주님,
    우리는 로마인이나 유대인들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까닭을 생각해 보면서도,
    오늘날 굶주림과 가난으로 일그러진 육체,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살해,
    더 좋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고문,
    우리 예언자들을 죽이는 살해,
    우리 자신이 바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임을
    직시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오 주여,
    우리가 이 세상의 불의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음을
    용서하십시오.
    가장 깊은 곳의 실재를 비춰주는 거울로서
    십자가를 보고 싶어하지 않음을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깔끔하고 질서정연하며 경건한
    성금요일을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늘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들을 죽이는
    장본인으로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껴
    참회하도록 허락하십시오.
    우리가 변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바로 지금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해주십시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세계를 멸망에서 구하고
    파괴를 일삼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는
    동력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하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생명의 도구가 되고,
    결코 죽음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헨리 나웬 외, 심정순 역, 『예수 수난 묵상-십자가의 길』, 일과놀이, 270-271쪽.) 
         

둘째 마당: 구원

1. 구원은 사랑/호세 미란다 외

    하나님의 이름이나 종교가 구원을 주는 게 아니다.
    구원을 주는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유일한 종교는
    남을 사랑하는 일이다(솔렌티나메 농어민들의 복음대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1요한 4:20).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은 멀리하면서
    하나님께는 가까이 가려 할 때,
    그런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호세 미란다).

    수백 만의 아벨의 피가 흘러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이 땅에서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코스타스)

    그 계명은 자비로 불리웠고,
    그 다음으로는 사랑으로,
    그 다음으로는 참여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연대성으로 불리운다.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자에게 옷을,
    집없는 자에게 은신처를,
    그리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행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그러한 행위들에 비추어서
    앙갚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칠레 주교들의 성명서).

2. 구원의 은총/코스타스

    예수는 “성문 밖에서”, 종교적 울타리 밖에서,
    구원받은 공동체의 안락과 안전 밖에서 죽으셨다.
    예수는 구원의 전체적 개념을 명백히 바꾸어 놓으셨다.
    은혜와 특권의 개념이
    헌신과 봉사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분이 세상을 위해 죽고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그곳으로
    예수를 따라 나서는 것이다.
    그분의 십자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때,
    그분과 그분의 꿈에 우리 자신을 동일화시킬 때,
    성문 밖에서 그리고 성문 밖의 사람들을 위한
    그분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할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진정한 증거자라 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개인적 은전이나 특권적 소유,
    혹은 나의 약점을 달래주고
    나의 죄의식을 씻어줌으로써
    내가 편안한 감정을 느끼고 옛 생활방식을 유지하게 하는
    종교적 표백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구원은
    종교적 도성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속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빚진 자”(롬 1:14) 의식을 갖고
    이 세계의 가장 별볼일없는 사람들,
    즉 가난한 자, 힘없는 자, 억눌린 자를 섬김으로써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O.E. 코스타스, 김승환 역, 『성문 밖의 그리스도』, 한국신학연구소, 323-329쪽.) 

3. 한 번에 한 사람/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류시화 엮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열림원, 51쪽.)       

4. 타자에의 개방성/레오나르도 보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존재에 개방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고
    그만큼 더 인간다워지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참된 깊이와 그 신비를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함과
    우리 자신이 타자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허락함으로써이다.
    우리가 무한자와 타자를 향하여 정향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인간화된 존재에 가까워진다.
     
    타자에의 개방성은
    인간 존재들의 구원과 절대적인 좌절이 여기에 달려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요건이 된다.
    소위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비유(마태 25:31-46)에 따르면
    심판관은 모든 인간 존재들을
    타자들을 사랑하는 그들의 능력에 의하여 헤아리실 것이다.
    사랑과 개방성 안에서 이루는
    한 인간 “너”에 대한 결합/일치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신적이며 절대적인 “너”에게 개방함을 의미한다.
    인간적인 사랑과 연대, 일치,
    그리고 참된 인간적 성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하느님이 현존해 계신다.
    구원받을 사람은
    단지 그리스도교의 어느 한 파에 속한 사람도 아니고
    “주님! 주님!” 하고 말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스도적 구조를 삶 속에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보프, 황종렬 역,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328-330쪽.)

5. 구원은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최종수

    우리는 항상 비범하고 특출한 것을 찾기 좋아한다.
    그래서 평범한 것, 간단한 것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찾아 깨닫기가 어렵다.
    사실 비범한 진리는 언제나 평범한 것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볼 눈을 가진 자는 보라”고 했다.

    누군가가 수녀에게 물었다.
    “우리 모두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으니까,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웃은 언제나 볼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바로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빈민가에서, 상처 입은 몸에서, 또는 어린이들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습니다.”
    (최종수, 『예수와 인간해방』, 선교신학연구회, 125-126쪽.)     

6.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김수환 추기경

    우리는 모두 한 겨레 한 핏줄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
    운명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 이 겨레의 영광과 기쁨도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하겠지만,
    우리들 가운데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아픔과 고통도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 자체가
    자기희생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개인주의적 가치관,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판치고 있습니다.
    지역들, 도시와 농촌 사이의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계급과 계층 사이의 불화와 불신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으나,
    마음과 마음으로 유대를 맺는
    진정한 민족공동체는 형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왜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해 던져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본성에 있어 남과의 유대를 찾는 법입니다.
    인간들 사이의 이 유대와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공기와 같습니다.
    인간은 이웃과 어울려 삶으로써만
    참 인간으로 완성되어 갈 수 있습니다.
    공동체적 인간성의 회복,
    그것은 인간 본성 깊은 곳으로부터의 요구이며
    인간성 회복의 유일한 통로입니다.
    민족구원의 길이요, 개인구원의 길입니다.
    (김수환·추기경)

7. 형제와 자매의 성사 없이는/레오나르도 보프

    한 가난한 인격을 가난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저 가난한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각 사람의 얼굴 뒤에 숨기신다.
    이에 그분은 드러나게 알려지지 않으신다.
    신앙은 우리가 우리 형제들과 자매들의 얼굴을
    깊이 들여다보기를 요구한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옥에 갇힌 그들을 찾아볼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행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맞아 대접하고 섬기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계 속에 부활해 계신 그리스도 역시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그분들의 현현체다(창 9:6; 마 25:42-43)....
    형제와 자매의 성사가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의
    동일시가 분명해진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285쪽.)

8.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

      복음 메시지의 살아 있는 표징이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인간을 억압하는 일에 지금까지
      기여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교회는 사회적 변화를 촉진시키기보다는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데 더욱 기여해 왔다.
      도에 지나친 불의를 완화시키고자 노력할 때에도,
      교회는 그 질서가 안고 있는 죄의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교회는 예언자적 신앙 안에서
      개인의 회심과
      기존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해야 한다.
      만일 교회가 자신의 활동을 개인의 회심에만 한정하고
      회심한 개인이 늘어나면서 결국에 가서는
      구조적 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교회는 사회구조가 개개인의 행동을
      제약하며 조건짓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억눌린 자들의 해방이
      집권자들의 참회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역사가 보여주는 바는,
      그리고 “고난받는 야훼의 종”의 성서적 표상이 보여주는 것은
      억압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바로 피억압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억눌린 자들과 하나가 된다면
      세상은 교회를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거부는 교회가 갖는 그리스도교적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교회가 예언자들과 예수가 걸었던
      역사적 발자취를 좇는다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권력을 쥔 자들과
      어쩔 수 없이 맞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 고재식 역, 『해방과 선교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43-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