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5) - 교회

                                              정연복 엮음(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 교회의 탄생/문익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의 부활 기록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탄생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교회는 오순절 날 120명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데서 시작되지요.
     언제 뒷덜미를 잡힐지 몰라서
     숯불에 올라앉은 새처럼 오들오들 떨던 제자들,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숨을 죽이고 숨어있던 것들,
     그 가운데는 스승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던
     겁쟁이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몇몇 여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뿔뿔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던
     하나같이 겁쟁이들이었습니다. 
     그 겁쟁이들이 하루 아침 잠갔던 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는 죽지 않았다”고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성서는 그것을 예수의 부활과 성령강림이라고 하지요.
     이 둘은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그들 몸 밖에서 일어났던 예수의 부활이
     그들 속에서 그들의 부활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사신 예수의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이란 바로 예수의 뜨거운 마음인 거죠.
     그래서 교회를
     “다시 사신 예수의 몸”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죽었던 제자들,
     죽었던 갈릴리 어중이떠중이 민중이
     예수의 뜨거운 마음을 받아 다시 살아나는 데서
     교회가 탄생했다는 말입니다.
     교회란 예수의 부활이 민중의 부활이 되는 데서
     시작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란 예수의 뜨거운 마음, 뜨거운 가슴,
     뜨거운 정의감, 뜨거운 사랑으로
     다시 살아난 민중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란 예수와 함께 죽어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난 민중이라는 말이죠.
     민중과 함께 죽어
     민중과 함께 다시 산 예수의 몸인 거죠.
     예수로 다시 살아난 민중이요,
     민중으로 다시 살아난 예수인 겁니다.
     별볼일 없는 갈릴리 어중이떠중이,
     힘없는 사회의 밑바닥 천덕구니들이
     대로마 제국 속으로
     누룩처럼 무섭게 퍼져 들어갈 수 있는 데는
     바로 그런 비밀이 있었던 것입니다.              
     (문익환,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학민사, 68-69쪽.)             

2. 초대교회 공동체

     예수님은 살아 계실 적에 목수로서 일하면서
     가난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오순도순 단란한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류의 해방과 구원을
     도모하시고자 나서신 다음에도
     어부나 세리 따위의 꼴찌 인생들을
     당신 제자랍시고 데리고 다니시고
     그들과 잠자리와 밥상을 같이 하시면서
     가정다운 공동체생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부유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누가 6:20 이하)고
     선포하시다가 신성 모독죄와 반란죄로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받은 예수 추종자들은 생존시의 예수님을 잊지 못하고
     예수님의 표양을 따라 살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놓고
     쓸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입니다(행전 4:32-35).

     초기 예수 추종자들의 공동체 생활은
     크고 작은 온갖 공동체,
     나아가 민족공동체와 국가연합공동체, 전체 인류공동체가
     그대로 본받고 따라야 할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추종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처럼
     혹은 초기 예수 추종자들의 공동체처럼
     아무도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동체만이
     교회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도 단체도 민족도 국가도 세계인류도
     하느님의 소유인 만물과 개인의 능력을
     하느님의 의도에 따라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면서
     오순도순 따뜻한 정을 나누어야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의 공동체,
     예수 추종자들의 공동체,
     곧 진정한 교회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신앙생활연구분과위원회, 『함께사는 세상』, 일과놀이, 151쪽.)

3. 초대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마틴 루터 킹 목사

     교회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교회는 여론의 광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 풍습의 척도이기도 했다.
     그 당시 교인들이 한 마을로 들어가면,
     그곳의 권력자들은 몹시 당황해 하면서
     “평화의 교란자”나 “외부의 선동자”로 몰아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곤 했다.
     그러나 이들 교인들은 인간보다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하늘의 백성”이라는 굳은 신념을 잃지 않았다.
     숫자는 적었지만 맡은 바 역할은 컸다.
     그들은 하나님에 너무도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영아살해나 검투경기 등 고대의 사악들이 사라진 것은
     이 같은 교인들의 끈질긴 노력과 모범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의 교회는 허약해지고 권위가 없어졌다.
     오히려 현상유지를 위한 방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 때문에 성가신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권력구조는
     현상을 수긍해 주는 교회의 침묵 내지 동조 발언에
     격려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님은 교회에 대해 전례 없는 벌을 내리실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초대교회의 희생정신을 회복하지 못하면,
     교회의 권위는 떨어지고
     수백만의 독실한 신자들을 잃게 될 것이며
     조만간 무의미한 비사회적인 모임으로 추방당할 것이다.
     (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사, 177-178쪽.)

4. 그리스도의 교회/돔 헬더 까마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연약한 인간의 손에 위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걸음마를 배우는 갓난아기처럼,
     교회는 늘 비틀거립니다.
     죄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때로 그리스도를 배반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로 머물려고 애쓰면서
     신앙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교회에 속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우리가 몰아 넣었던 모든 잘못된 것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충분한 용기와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느님의 영 자체가
     교회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비록 온갖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지만,
     전보다 더 아름답게 됩니다.
     (손규태 편저, 『혁명적 신앙인들』, 한국신학연구소, 120쪽.)

5. 교회는 어디에 존재하는가?/호켄다이크

     만일 누군가가 교회가 어디에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리라:
     "자기 자신을 비우고 자기 자신을 무(無)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종된 메시아’를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섬기는 그 곳에,
     그리고 이 봉사 속에서 타인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그리고 동료 인간들과의 유대가
     설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구현되는 그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

     교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과 참모습을 입증해야 한다.
     교회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또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확실하다.
     이것은 메시아가 스스로, 또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교회는 남을 위한 존재, 곧 세계를 위한 존재다.
     남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주는 것이 교회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을 태세가 갖추어져 있을 때에만
     교회는 구원받을 수 있다.
     교회가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 애쓸 때,
     그런 교회는 벌써 자기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J. C. 호켄다이크, 이계준 역, 『흩어지는 교회』, 대한기독교서회, 77-78쪽.)             
6. 교회의 사명/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인간의 생명과 자유와 존엄성이 능욕을 당하는 일은
     교회에 진정한 고통을 안겨 줍니다.
     세상의 행복을 위임 맡고 있는 교회는
     각 사람 안에 조물주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형상을 짓밟는 자는 누구든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범하는 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이 비록
     믿음을 갖지 않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이면 모두
     자기 얼굴에 뱉어진 침이요
     자기 등에 뿌려진 재요
     자신이 겪는 수난의 십자가로 여깁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하느님의 형상으로서 당하는 고통입니다.
     인간과 하느님의 형상은
     별개의 것으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 인간을 고문하는 자
     누구든 인간을 학대하는 자
     누구든 인간을 능욕하는 자는
     곧 하느님의 형상을 능욕하는 자이며,
     교회는 그로 인한 피해를 자신의 십자가요
     자신의 순교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33쪽.)   

7. 하느님의 백성(민중)인 교회

     교회는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고
     모든 인간을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백성(민중)이다.
     어떤 사람은 경리를 보고
     어떤 사람은 공동체의 모임을 위하여 집을 내놓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 단체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어떤 사람은 축일과 축제를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병자들을 방문하여 돌보고
     어떤 사람은 성서 모임을 추진하고
     어떤 사람은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등
     각자 일을 분담한다.
     신부와 목사는 설계자와 같다.
     신부와 목사는 공동체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방향을 잡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설계자격인 신부와 목사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일꾼은 물건을 만들 줄 안다.
     교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물건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일반신자, 수도자, 신부, 주교 모두가
     공동 책임을 가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을 수 없고,
     모두가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라는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주교, 신부, 일반신자, 수도자를 막론하고
     우리 각자는 집을 이루고 있는 벽돌 한 장일 따름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엮음, 『하느님 나라의 일꾼』, 일과놀이, 57-58쪽.)

8. 부를 좇는 교회/한용상

     어떤 사람이 강남의 모 아파트 12층 한 자리에 서서
     교회 십자가 탑 40개를 세었다고 한다.
     한 건물 속에도 교회가 서너 개씩 들어서서
     서로 교인을 유치하는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옆 교회의 시끄러운 찬송 소리 때문에
     기도조차 드릴 수 없는 교회도 있다. 
     강남의 부자 동네에 촘촘히 들어선
     교회의 십자가를 훑어보노라면
     참으로 슬픈 생각이 든다.
     마치 낚시터에 던져 놓은 떡밥을 보고 몰려든
     고기떼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강남에 교회가 많이 몰려든 것은
     뭐라 변명을 한다 해도
     돈의 흐름을 따라 모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소외된 민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지역은 번창한다는 약삭빠른 계산을 갖고
     모여든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장사하는 사람이 시장 조사를 하여
     좋은 목을 택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이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실의나 고통 속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교회는 예수님이 향하신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부(富)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강남의 모 대형교회 목사는
     “우리 교회가 강남으로 이전한 것은
     가나안 복지를 향한 출애굽”이라고 장한 듯이 말했다.
     성경 말씀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하는 식으로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잘도 이용해 먹는다.  
     (한용상, 『서울예수』, 동광출판사, 179-180쪽.)     
      
9. 베드로의 배신/엔리끄 듀셀

     베드로는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으신 분,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메시아라고 고백했던 사람이다.
     처음부터 제자가 되었으며
     예수께서 변모하시는 것을 목격했던 사람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베드로가 결국에 가서는
     “난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난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다.
     예수와 가장 친한 친구 베드로,
     그 베드로가 예수의 배반자가 된다.
     초기 제자들의 소공동체를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첫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의
     우두머리로 임명된 베드로의 비겁함을 전해 주는
     이 구절(마 14:66-72)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20세기 전에 일어났던 이 사건에서
     오늘날 우리와 관련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관련성을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세상에서 고통받고 교회에서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베드로에 대해 초점을 맞춘 이 본문은
     베드로처럼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볼 책임이 있는(요 21:15-17)
     교회 내의 모든 지도자들에 대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호소를 들으려 하지 않고
     그리하여 바로 그들의 존재를 부인할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배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몸소 가난한 사람들 안에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한 채
     오히려 교회의 부나 권력을 우선할 때,
     목사나 신부가 되는 필수조건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해방에 대한 책임보다는
     그저 교회 권위에 복종하는 것일 때,
     교회가 자기 나라와 온 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기보다는
     자기네 종교의식과 교회살림을 잘해야
     더욱 충실한 교회라고 생각할 때,
     교회가 정의와 평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세상 권력자들이나 부자들과의 원만한 관계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때,
     신학이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과 아픔을 외면한 채
     세상 권력층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를 정통교회라고 뒷받침해 줄 때,
     교회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이 세상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과 동일시하셨기 때문이다.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 25:45).

     예수께서 반란범으로 취급당하고 계실 때,
     로마 제국의 병사와 이스라엘 지도자, 신학자,
     대사제의 손아귀에 놀아날 때,
     예수와 자기가 한 패임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오늘날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 일은 정말 어렵다!
     오늘날 '이 세계의 통치자'의 권력이 판치는 가운데,
     자기 나라와 온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속에 계시는
     예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 주위의 고통에 눈을 뜨는 것,
     우리 주위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죄 없는 사람들의 고통 속에 계시는 예수를 보는 것,
     이 세상에서 불의를 겪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예수의 십자가 길을 따라가는 것, 
     하느님 나라 건설의 충실한 일꾼이 되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새롭게 하여
     우리의 결점이나 과실을 뉘우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명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 또한 안겨줄 것이다.
     (레오나르도 보프 외, 심정순 옮김, 『예수 수난 묵상-십자가의 길』, 일과놀이, 166-169쪽.)    

10. 오늘의 교회 모습/지성수 

     그러나 현실 교회는 어떤가?
     신앙이 철저히 개인주의화되었기 때문에
     교회에 공동체적인 의식이 없어지고
     형식만 남았다.
     신앙을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면적인 현상으로만 강조하다보니
     어느덧 ‘이웃’에는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자가 되었고,
     그것이 지나쳐
     내가 속한 민족, 국가, 사회라는 공동체의 문제에는
     전혀 무관심한 존재가 된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인류 공동체, 민족 공동체,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없고
     오직 개교회 공동체에만 관심이 있다.
     말이야 그렇게 안 하지만
     교회 밖으로 신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될 수 있으면 막으려고 하는 것이
     교역자들의 생리이다.
     비육우를 키우는 농부가
     소가 될 수 있으면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도록
     움직이지 못하고 겨우 서 있을 정도로
     공간을 좁게 만들어 놓고 키우는 것을 보았다.
     신자들이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여
     오로지 교회를 키우는 데만 에너지를 쏟도록 하는 것은
     비육우 사육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예수 당시의 늙은 유대교는
     전통과 인습으로 굳어져 있을 대로 굳어져 있었다.
     이러한 유대교와 달리
     새로이 태어난 기독교는 강력한 생명력을 지녔다.
     그 이유는 만인제사장 원리에 있었다.
     성전에 나가 제물을 바치려면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야만 하는 유대교에 비해서
     초대교회에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었다.
     물론 기독교 안에도 장로와 집사 등의 구별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직능상의 구별이지
     직위상의 구별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러 세기를 내려오는 동안
     교회의 기초인 만인제사장의 원리가
     무섭게 변모되어 갔다.
     오늘날처럼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확정된 것이
     바로 3세기 이후의 일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어 교회가 커지자
     교회 일만 전담하는 전문직 직종인
     성직자란 계급이 등장하게 되어
     소수 특권층 제사장과 다수의 평신도로 나뉘어지다 보니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개념은
     점차 상실되고 만 것이다.
     성직이 하나의 권력이 되자
     모든 권력은 한군데로 집중되고 부패되기 마련이듯이
     기독교도 필연적으로 부패를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종교개혁을 해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종교개혁에 의해 다시 만인제사장에 기초하여
     개신교회가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모든 제도와 조직이 세월이 흐르면 굳어지게 되어 있듯이
     또다시 만인제사론은 퇴색하기 시작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개신교가
     점차 가톨릭을 닮아 가는 경향이 짙어져 갔다.

     전문가란 언제나 자기들 편의 위주로
     항상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많이 만들어 놓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교회 안에도 성직자란 전문가가 생겨나면서부터
     교회의 여러 가지 예식과 제도가
     단순 소박한 것을 벗어나 복잡하고 까다롭게 되어
     점차 신앙생활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가서 성직자들의 지도에 따르는
     것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에너지는 점차 교회로 집중되고
     일상생활에서는 몇 가지 계율만
     지키면 되는 것으로 되었다.
     (지성수, 『교회야 교회야 뭐하니?』, 예루살렘, 112-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