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과 바람과 갈대가 들려주는 이야기>

한강과 낙동강 구간의 마지막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순례단은 오늘 부산 북구 구민운동장에서 시작하여 삼락둔지공원의 낙동대교까지 일정을 진행하였으며, 내일은 마지막 구간인 을숙도까지 순례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순례에 동참하였습니다. 멀리 서울에서부터 순례자들이 참여하였고, 순례 중에도 계속해서 순례단의 위치를 확인하는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부산북구주민운동장에서 “경부운하 구간 50일 순례 하루 전입니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잘 들으면 모든 게 해결 될 것’이며, 오늘 하루 내면의 소리를 잘 들으면서 걷기를 바랍니다”라는 홍현두 교무님의 아침 기도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출발지를 지나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보니 도로공사와 체육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하천변이 낮게 평탄화되어 있었으며, 파헤쳐진 곳에는 고운 모래 퇴적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강물이 강답게 흘러야 할 자연공간이 이체 체육공원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바뀐답니다.
 

남해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다리 인근의 ‘덕천’이라는 하천을 만났습니다. 분명히 하수처리장에서 처리가 되는 물이라는데 매우 심한 악취가 나며, 낙동강으로 바로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비단 ‘덕천’만이 아닙니다. 오늘 순례단이 만났던 몇 개의 하천 유입구에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썩은 물이 악취를 풍기며 낙동강으로 바로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은 지천들에서 나가는 폐수들을 정화시키지 않고 낙동강이 맑은 물로 바뀌는 것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검은색의 이 물은 바로 하류에 있는 수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으로 흘러갑니다.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일월에 걸쳐 있는 낙동강 하구의 철새보호구역은 천연기념물 제 179호 지정된 지역입니다. 철새보호구역인 이 지역은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약 2억 3235만 8458㎡입니다.
 

안내문을 보니 ‘낙동강 하구의 사구는 썰물 때는 나타났다가 밀물 때는 잠겨 버리기도 하며, 태풍이나 강물의 범람 등으로 그 변화가 무쌍하다. 철새는 이 하구를 중심으로 먹이가 풍부한 갯벌에 내려앉는다. 갈대밭이 우거진 미개간의 초습지(草濕地)는 물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넓기만 하던 천변의 습지는 모두 도로와 공원으로 바뀌고,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삼락 둔치 공원과 습지생태원’만 날아오는 철새들을 보호하는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삼락공원에서 인공 강변을 보았습니다. 군락지를 이루던 버드나무들은 잘려 나가고 어디서 온지 모르는 큰 돌덩이로 계단을 만들고, 바닥은 시멘트로 조성되어 있더군요. 지자체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이름 모를 작은 새만이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원래부터 자연이 이렇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오늘 오전 일정은 삼락공원에서 바람과 갈대가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종료되었습니다. 주변의 시끄러운 차량의 소음도 없고, 오직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갈대 소리만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강물과 바람과 갈대가 들려주는 소리는 참 행복했습니다.
 

한참의 시간을 길가에 앉아 바람소리와 갈대소리를 들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순례단이 강을 따라 오면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익숙해져, 도시의 소음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잠시나마 여기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지자체 계획도 있다는데,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리를 여기 도심지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순례단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리고 이름 없이 날아오르는 철새들도 이곳에서 안식과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낙동강 하구둑이 보입니다>

오늘 오후 일정은 삼락 체육공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봄기운속에서 생명의 꿈이 피어납니다. 어렵고 힘든 고통 속에서 따스한 마음이 함께하니 여정이 행복합니다”라는 김현길 교무님의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순례단은 길게 이어진 유채꽃밭을 걸으며 낙동대교까지 이어졌습니다. 점심시간에 순례단의 행렬에 함께하신 분들이 많아 약 150여명의 긴 대열이 이어졌습니다. 낙동대교에 이르니 멀리 하구둑이 보이더군요.
 

낙동대교 하단에서 이루어진 설명에서 물금 및 매리취수장과 부산시민의 생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낙동강네트워크의 대표이신 김상화 선생님은 ‘낙동강이 막히던 1987년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하구둑이 막힌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낙동강 물이 썩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비판하더군요. 낙동대교는 높이가 매우 낮아서 화물선을 띄우기 위해서는 다리를 높이거나 보수를 해야 합니다. 교통량이 그리도 많은 다리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더군요.

오래전 어느 방송에서 운하를 주장하던 전문가라는 분이 ‘다리 높이가 부족한 교량은 높이면 된다’고 주장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좋아져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흙무더기를 운동장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삽질하면서 움직인다고 세상이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은 그러한 어리석음에 기초하지 않을 것입니다.

순례단은 낙동대교 밑에서 죽어있는 생명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낙동강과 낙동강에 터전을 잡고 깃들어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실 아름답기만 하던 낙동강은  우리 사회의 욕심과 오만에 물든 폐수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잘못된 욕망을 너그럽게 품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이 아무리 우리 사회의 욕망의 흔적을 받아 준다 하여도, 강 자체의 생명의 근원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던 하루 순례길 여정은 “생명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모시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자연, 사람이 한 몸이라는 것을 강을 걸으며 깨달았습니다. 순례단과 많은 참여자들의 행보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우리의 뜻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양재성 목사님의 기도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자연이 자연답지 못하면 사람도 사람답지 못하다>

부산 북구 주민운동장에서 둔치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많은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명↔양산간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이 공사 뒤편에서는 둔치에 체육공원을 만드는 공사들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축구장, 야구장, 테니스장 등이 화려한 계획 속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낙동강의 둔치에 만들어지는 체육공원은 지역민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공사일 것입니다. 특히나 도심지 내 자연녹지의 비율이 낮거나 도심공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이렇게 강변에 체육공원이나 천변 휴식공간을 만들면서 지역민이 호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강을 위한 공간이 부재합니다. 흐르는 강물을 강물답게, 생명의 강 답게 만드는 것은 비단 강물뿐만이 아닙니다. 주변의 생태계와 수변구역을 보전하여야 강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미 도심지의 강은 자연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넓은 하천변의 체육공원이라 하여도 고라니가 뛰어노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간혹 서식지를 빼앗긴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인간이 만든 하천변으로 왔다가 변을 당할 뿐입니다. 강이 강답게 흐르도록 만드는 공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강물이 강물로 흘러야 할 공간은 비닐하우스와 체육시설, 도로에 모두 빼앗기고 있으며, 여름철 호우만 나면 사람들은 또 강에 무수한 장비를 동원하여 제방을 쌓고 강변을 파헤치는 공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여기 부산뿐만이 아니라 서울 등 대부분의 도시의 강은 이렇듯이 사람만을 위한 공간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천변의 일부 지역을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기는 것은, 우리도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핑계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자신을 위한 공간이 침해받을 때는 민감하지만, 자연이 숨을 쉬고 자연으로서 지켜야 할 공간은 내버려두지 않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의 수많은 아파트 군락들. 자생식물도 아닌 것들이 괴물처럼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점차 자생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입니다.

자연이 자연답지 못하면 사람도 사람답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인공적이며 조형적인 모습을 보고 자랄 것인지, 태양과 달과 바람이 만들어 준 이 자연생태계를 보고 자랄 것인지는 우리 세대의 결정일 것입니다. 하루 순례길에서 그렇게 마음의 짐이 늘어가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제 순례단이 숙박 장소로 사용한 ‘징검다리를 놓는 방과후 학교’는 대천천 옆에 있습니다. 이 대천천은 부산의 대표적인 1급수 생태하천으로 금정산 북문습지가 밝원지로 맑은 물이 내려옵니다.

대천천 앞에서 10년을 살았다는 부산 화영고의 공민기 학생은 “저는 여름마다 대천천에서 물놀이와 물고기를 잡으며 여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대천천이 포크레인 작업으로 바닥이 드러난 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하시며 강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또 “경제적 타당성과 가능성도 없는 운하 사업 때문에 어릴 적 물놀이와 물고기를 잡던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을 잃지 않고 싶다”고 하면서 운하가 백지화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문제보다 돈 문제에 민감한 위정자들이 생각을 바꾸어서 경제성보다 도덕성을 먼저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말씀하셨습니다. 공민기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운하에 대해 아는 학생들은 반대가 우세하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우리가 나중에 크면 살아갈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한 사람의 기성세대로서 더욱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의 주역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뭇 생명이 평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봅니다.

부산 사직동에 살고 계시며 현재 교사이신 최성희님은 운하계획이 발표된 후 운하를 저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순례단의 소식을 접하고 순례에 참여하게 되었다 합니다. “경제성을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운하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결국 사람의 돌아갈 회귀처는 사람이다. 사람의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부와 명예는 한때이다.  결국 당신이 위안을 얻을 곳도 사람과 자연” 이라며 운하계획을 재고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셨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에 계시는 숙현 울리엣다,  마리 아녜스,  정우 베로니카 수녀님들께서 “일전에 삼척에서도 물길을 돌린 적이 있지만, 태풍의 피해는 오히려 컸다고 한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 했을 때 큰 재앙이 올 것”이라며 경고합니다. 또 “자신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생명의 가치도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국정을 운영할 것과, 몇몇 사람의 이익보다 항상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며 현 정부에 바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부산 좋은나무교회의 박철 목사님은 “성서는 기독교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가 4000년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연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훨씬 오래된 경전을 한 사람이 마음대로 훼손, 파괴할 계획에 나는 분괴한다”고 먼저 심정을 밝히셨습니다. 또 “강은 생명의 젓줄이다. 노자 도덕경에 보면 上善若水(상선약수)라 하여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순하고 부드럽고 약하지만 잘못 건드리면 사나워진다. 물이 존재하는 개울, 바다, 강은 모두 물을 담는 물그릇이다. 운하는 물그릇을 인위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엄청난 재앙을 초래 할 것”이라며 성인의 글을 인용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게도 “성서 보다 오래된 하나님 경전인 자연을 무슨 자격으로 훼손하고 파괴하려는지 각성하고 회개할 것과, 먼저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잘 다스리는 대통령이 될 것” 촉구하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오늘 순례단에는 단장이신 이필완 목사 / 김민해 목사 /양재성 목사 / 김규봉 신부 / 최종수 신부 / 문규현 신부 / 최상석 신부 / 김경일 신부 / 홍현두 교무 / 김현길 교무 / 수경스님 / 도법스님 / 연관 스님 / 지관 스님 / 박남준 시인 / 이원규 시인이 참여하였습니다.

하루 순례길 동참자로는 김상아(하천연구센터 부산) /  최아나다시아 수녀(마산 교구) / 이필수, 이여경(제천) / 공민기(부산 화영고) / 김홍술(복음교회) / 박철 목사, 김주숙(부산 좋은나무교회) / 최대현(낙동강 네트워크) / 서강진 신부, 권석현 비오 외 4명(대천성당) / 권경열 신부(부산 교구 정평위) / 박은실(서울) / 송형철(마산 열린사회희망연대) / 문정현 신부님과 오두희(평화바람) / 숙현 울리엣다 수녀, 마리 아녜스 수녀, 정우 베로니카 수녀 등(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 여호수아 수녀, 마리호세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또 수녀회) / 함명은, 임숙자 등 (부산) / 맹주형 / 박성희, 박채영 등 (천주교창조보전모임) / 안미순(천주교여성공동체) / 기독교환경연대 15명 / 예수살기 목사 8명 / 박봉규 목사, 손경락 목사, 이승 권사 등 (기독교 대한 감리회 부산 청년관)이 참석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여러분이 참여하셨는데, 미처기록하지 못한분들이 많습니다. 참가하신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일정 안내>

* 4월 2일(수) 일정 : 영산강 지역으로 이동

* 4월 3일(목) - 4일(금) : 휴식 및 정비

* 4월 5일(토) 일정 : 영산강 출발 행사(영산강 하구언 요트 경기장), 이후 순례 진행

* 정확한 출발 장소 및 시간은 도보순례단에게 전화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정토회 해운대지부 및 동례지부에서 점심식사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부산지역 종교인평화회의(대표 정각스님)에서 저녁식사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강살리기네트워크 최대현 사무국장께서 길안내와 지역 설명을 후원해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1일 참가 일정과 수칙은 www.saveriver.org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08. 3. 31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