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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얼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소수 목사의 교회내 비리와 반사회적인 범죄로 인해 교회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신뢰도가 추락했다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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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1월 30일 (금) 07:57:58 [조회수 : 3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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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를 바르게 선포하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려보면 복음의 메시지는 희소하고 성공의 메시지 즉 웰빙의 메시지만 선포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했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가 자본주의 경제 원리로 작동되는 것과 내부적으로는 성경보다 우선적으로 교회헌법으로 교회조직이 작동되며 회석화한 신학, 교리를 이데올로기화하여 강요하는데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속에 살고 있으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어떻게 적용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인지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여야지 그 속에서 목회성공하고 알콩 달콩 목회하는 재미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목사도 성직자이기 이전에 감정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희로애락(喜怒哀樂)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지 때에 따라서 그 감정을 조율하고 자제하는 것뿐이지요. 성도도 감정을 조율하고 자제를 하여야 하겠지만 목사는 더 고차원적인 감정관리를 하여야 하는 당위성이 있습니다. 한사람으로 인해서 다수의 성도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가능한 예수그리스도의 품성을 발현하도록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감정을 강단에서도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빤스발언, 특정지지 후보 발언, 부흥사들의 저질발언, 권면의 차원을 넘어서 죽는다 라고 협박까지도 합니다.

목사가 이왕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전하는 전문가로 밀알이 되어 자신이 썩어 죽어야 하는 길로, 아골 골짜기에 들어선 길이라면 진정으로 십자가아래 꺼꾸러지고, 복음의 바탕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영성을 닮아야 하고 그렇다면 빛이 나는 얼굴과 온유한 말씨가 저절로 나와야 함은 당연하겠지요. 특정한 시간에 연출하는 연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얼굴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경직된 얼굴, 사기치는 얼굴, 화난 얼굴, 범죄형의 얼굴은 목사로서의 기본적인 하드위에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모든 사물에는 파장이 있습니다. 생긴대로의 고유파장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바위에는 바위가 지닌 차가운 성질이 나오고, 나무 역시 그러하고 물과 불에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각각 고유의 생김새대로 용도가 달라지고 한약재도 생김새에 따라 약성분류가 달라지게 되거든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사물은 성질이 같은 것끼리 반응을 하고 다른 것은 밀쳐냅니다.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동종의 식물들끼리 군락을 이루어 자랍니다. 동물도 군집을 이룹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요. 자연계가 그렇듯이 사회도 가만히 보면 주파수끼리 서로 반응하는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 옆에 가면 훈훈한 바람이 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찬바람이 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도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허지만 같은 것끼리만 어울리고 있어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성격이 똑같은 부부는 한편으로는 의견일치가 되어 좋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파경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의 상반되는 부분도 있어야 가정의 조화로움이 있습니다. 한약의 배합원리도 여러 가지 약이 조화롭게 조제하여야 약성이 효과가 있습니다. 교회도 여러부류의 사람과 의견이 조화롭게 되도록 목회를 하는 것이 생태적인 목회라고 여겨집니다. 당회나 제직회시 목사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식의 진행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스런 모습입니다.

음악에 있어서도 전체의 음이 화성음으로만 작곡이 되면 유치한 음악이 되어버립니다. 작품으로서의 곡이 되려면 회성음과 비화성음이 골고루 배합이 되어야 합니다. 곡의 중간중간에 꾸밈음과 같은 애드립과, 비화성음이 첨가되어야만 비로소 하나의 음악작품이 되는 것처럼 자연계나 사회에서는 동종의 파장이 같은 것끼리만 구성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라는 환경을 보더라도 획일적인 신앙정서를 공유하도록 강요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양성의 원리를 모르고서 복음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외치는 인간의 복음입니다. 성경66권이 모두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복음을 다양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리 해야 합니다.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생각이 맞는 사람끼리 , 또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화성음으로 이루어진 동요처럼 유치한 노래가 되어버리고 말지요. 그렇게 된 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유치원교회로 머무는 모습이지요.

밥퍼로 잘 알려진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다일공동체 나눔의 집에 목사님 두 분과, 서울시경에 근무하는 두 명의 형사와 두 명의 목사가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잘 모르는 자원봉사자들은 형사들을 가리키며 "이 분들은 어느 교회 목사님이신가요?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하고 다른 일행 목사님 두 분을 향해서는 "이 분들은 어느 경찰서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하고 묻더랍니다. 목사 같은 형사와 형사 같은 목사가 교차되는 상황이 한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경험적으로 그 사람의 하는 일 즉 직업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미지를 받게 되도록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얼굴은 내면의 상태를 나타내는 화면이니까요. 특히 목사들은 내면은 가꾸지 않고 말로만 기교로 외적으로 설교한다면 형사 같은 얼굴과 사기꾼 같은 얼굴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지도자의 역사입니다. 한사람의 지도자를 잘 만나게 되면 그가 속한 국가나 조직은 복이고 그렇지 않게 되면 불행의 역사를 장식하게 됩니다. 북한의 역사와 남한의 역사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도 목사의 영향력은 큽니다. 따라서 교회역사는 결국 목사의 역사가 됩니다.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목사의 헌신과 복음의 열정의 결과입니다. 허지만 그림자는 항상 있는 법입니다. 그와 반대로 되먹지 못한 목사로 인해 한국교회의 부패와 비리는 병행해 왔습니다. 한 마리 미꾸라지가 온 도랑의 물을 흐려놓듯이 소수 목사의 교회내 비리와 반사회적인 범죄로 인해 교회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신뢰도가 추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소문난 잔지집이 되기보다는 내부적인 질적  향상과 내면적으로 조용하게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모습이 변모되고 목사의 얼굴이 변모되는 그런 노력들 말입니다. 남은 숙제는 장사로 말하면 현재 본전을 까 먹지는  말자는 것이지요.  마치 일확천금을 노리고 한탕을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나 증권투기 ,펀드투기와 같은 교회성장과 목회성공의의 패러다임을 포기하고 복음에 충실하여  누룩과 같은 성장, 식물이 자라고 아이가 자라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느릿느릿한 성장이 정상적인 창조질서의 성장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성장의 모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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