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신앙 터놓고 말하기’라는 큰 제목의 연재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벌써 4~5년이 넘었다. 우리는 이미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초기 이스라엘 왕국시대처럼 마치 단일종교, 단일문화, 단일민족 사회에서 살고 있는 듯 오해하여 주변사회와 갈등을 빚어왔다. 또한 우리는 그런 잘못된 이해와 처신으로부터 오는 갈등을 진리수호에 따른 핍박으로(마 5:10~12) 착각하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가 다원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자’고 말하면 기독교인들은 그걸 그저 종교다원주의라고 쉽게 비난한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든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자리가 수많은 사상과 종교, 이데올로기들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산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내가 무슨 종교를 믿고 있든지 나와 다른 입장과 원칙을 갖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가 아무리 통일교를 나쁜 이단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들이 국법과 사회질서를 어기는 불법을 행하지 않는 이상 강제수단을 써서 제재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엡 6:12).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사회 속에서 비기독교인들과 자주 갈등을 빚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것을 오해하는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신앙 터놓고 말하기'라는 큰 제목을 달았듯이 단지 전통적 교회 울타리 안에서 안 그래도 이미 잘 믿고 있는 분들의 신념을 더 강화시키려는 목적보다는, 기독교 경계 밖에 있거나 경계선 쯤 서 있는 분들과 함께 기독교신앙이라는 게, 흔히 공격받듯이 그렇게 맹목적이거나 무조건적 신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이고 싶은 간절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더 이상 우리 기독교인들끼리 교회 안에서만 익숙한 정서와 분위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미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효과적인 복음을 변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세상을 그대로 닮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여 복음의 통로로 삼기 위해서는 세상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들 스스로 한국장로교의 장자요, 정통 보수신학의 대변자라고 자부하는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자 과정을 공부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공부한 3년 내내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많은 교수들은 흔히 말하는 정통보수(?)의 안전한 방패막 속에서 하나마나한 기초지식만 맴돌고 있었고, 이에 화답이나 하듯이 목사 후보생들도 변화된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진지한 고민보다는 이미 뻔히 들어왔던 박제된 토막지식들을 암기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현장목회자가 되면 성도들이 실생활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실제적 고민들에 대답할 진정성은 없이, 이미 뻔히 알려져 있는 교리만을 반복하며 교회확장에만 열정을 쏟곤 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누가누가 더 정통신앙고백을 더 많이 쏟아내는가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 품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마 9:35, 36)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열정에만 충만한 기독교인들은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어버렸던 사사시대의 기드온(삿 7:28-32)을 기억하면서 우리나라의 다종교 문화를 도무지 참아내지 못하고 단군상이고, 불상이고, 장승이고 모두 뽑아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드온 당시의 이스라엘은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기초로 세워진 단일이념 사회다. 다시 말해 여호와 신앙은 그들 스스로가 결의한(신 27:8~26, 수 24:14~27) 국교일 뿐 아니라 그들의 법이었고, 사회질서였다. 그 유일신 사상이 미디안의 반식민지 상태가 되면서 훼손될 위기에 처했을 때 기드온은 자기 국가 이념을 다시 환기시키면서 그 상징으로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문화권 이스라엘과는 다른 다종교 로마사회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은 우상을 찍어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헬라철학과 비교해 가면서 복음의 독특성을 전했다(행 17:16-31). 다원화된 사회를 인정한다는 말은 이런 시대에서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런 시대는 이스라엘 왕국시대처럼 무조건 상종하지 않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사상, 심지어는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을 힘으로 쳐부수려 해서는 안된다. 사도 바울이 헬라사회에서 복음을 변증하며 전파했듯이 ‘복음은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 논리적으로나 실력(영력, 실천력, 삶의 진실성 등)으로 보여줌으로써 감화시켜야하는 것이다(벧전 3:15, 16). 이 시대의 다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비느하스의 열정만 가지고 단군상을 부수고, 법당을 파괴하고, 일화축구단을 몰아내는 방식은 복음이 전해지기는커녕 사회 안에서 더 매장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열정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더 좋은 기독교, 더 좋은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훨씬 복음전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형태를 그대로 따라해서만은 안되는 이유가 또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 위치에서 신앙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족장시대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훨씬 앞선 토착인 가나안 족속들에 비해 자기 방어조차 하기 힘든 외지인의 처지였다(창 26:1~31). 이집트 안에서 이스라엘은 비참한 노예에 불과했고(출 1:8~22),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끊임없는 주변민족들의 압제에 시달려야하는 처지였다. 바알의 우상을 깨뜨렸던 기드온의 이야기는 바로 미디안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의 독립의지의 표현이나 마찬가지였다(삿 7:1~33). 예수시대나 초대교회 때도 복음을 믿는 신앙인들은 사회의 소수요, 약자였다(요 9:22, 12:42, 16:2, 행 4:1~3).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상당히 많은 경우 기독교회는 서구의 힘을 바탕으로 이미 시대의 강자가 되어 기득권을 유지 또는 확장하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사회의 강자요, 다수가 되어 있는 입장변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의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조차 강자의 횡포처럼 느껴지게 된다.

올해 여름 샘물교회 청년들이 당한 아프간 사태 와중에서 기독교에 대한 정도 이상의 비판 세례를 받으며 한국교회는 그걸 이해했어야 했다. 서구문명과 동일시되어 찾아온 기독교가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이미 우리 민족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와중에 서 있는 지금까지도 이방인의 외피를 벗지 못하는 기독교는 반감을 예고하고 있었다. 더구나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 단일패권을 주도하면서 제국주의적 이미지를 물씬 풍기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점차 커져가고 있는 이 와중에도 한국기독교는 미국의 영원한 짝사랑인 것 같은 이미지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여전한 힘을 바탕으로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 종교인 소득세 납부 거부 등 사회적 희생과는 동떨어진 교회적 관심사를 극단적으로 밀어부쳤다.

안티기독교 현상은 바로 그 와중에서 탄생한 것이다. 한국교회로서는 자업자득인 면이 크다. 한국현대사 속에서 한국교회의 주류는 (독재)정권과 밀착하며 급성장하였고, 1980년 혼란정국에서는 피 묻힌 전두환 장군의 정당화를 위해 국가조찬기도회를 열어주었다. 그러나 바로 그해 10월 27일 전두환 신임대통령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은 군홧발로 짓밟히며 정화대상자로 숙정되었다.

그렇게 성장했던 한국교회가 이제 그 거품이 서서히 빠져가고 있다. 이걸 그저 좌파정권의 탄압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에 일부러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이 어려움은 통일시대 준비를 위한 하나님의 기회임을 생각하자.

그리스도인에게는 열정이 필요하지만 지혜가 또한 필요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복음을 어떻게 전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정말 이 시대 기독교회의 현실적인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더 이상의 종교전쟁은 지지할 수 없다. 십자군전쟁식 선교주의, 제국주의적 선교정책, 정치권력을 통한 교회입장 강화 등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아프지만 한국교회가 이 고민을 바로 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소망의 기회를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