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의 아킬레스건 하나님의 이미지

기독교의 하나님은 참으로 아킬레스건이다.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능하고 완전한 선임을 의심하지 않겠지만, 성서 및 신학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을 그저 냉정하게 살펴보면 무자비하고 변덕스럽고 권위주의적인 봉건군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 기독교의 하나님은 마치 남자 신인 것처럼 느껴지며 그로 인해 남성우월사상, 가부장주의 문화가 기독교 전통에 뿌리박고 성경으로 정당화된 사례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기독교인들도 일단 그걸 인정해야 기독교신앙을 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서가 쓰인 당시 가부장적 군주시대 스타일대로 기록되었고, 초대교회 이후 헬라 철학의 기본 틀을 가지고 기독교신학을 다시 정리하여, 지금껏 그 틀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기독교의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려면 성서가 정말 말하려고 했던 하나님과 불가피하게 채용했던 하나님의 이미지를 구분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성서는 대개 하나님의 굳센 주권과 인도하심을 표현하기 위해(신 5:15, 26:8) 남성적 이미지로 표현했으나(하나님 아버지도 그런 의미다), 구약은 세심하게 살피시고 배려하는 모성적 이미지의 하나님도 가르쳐 준다(사 44:2, 시 139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백성들의 고초에 대해 속을 끓이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 마음 또한 드러난다(예레미야 애가 2:11).

이 모두가 성서가 말하는 같은 하나님이다. 얼핏 보면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당연히 각기 다른 상황마다에 성실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세상에 울기만 하는 사람과 웃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 둘은 모두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같은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모습들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반응이 그 상황에서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으로 정리되면서 성서에 기록된 구체적인 상황은 사라졌다. 이젠 하나님을 정의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을 일반적 원리로 설명해야 했다. 그 때 헬라철학이 좋은 방편이 되었다. 그래서 무소불위한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변치 않는 하나님, 보편적인 하나님 등의 신학화 된 한 가지 이미지가 고정되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은 반대편의 하나님 이미지는 편의상(우리의 쉬운 이해를 위해서) 사장시켜 버렸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르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 성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보면 성서의 하나님은 오해투성이다. 가장 대표적인 견해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이다. 구약의 여호와(야훼)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은 끔찍하게 사랑했으나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씨를 말리라는 잔인한 신이며(신 7:1~4), 종교법을 어겼다고 돌로 쳐 죽이라는 편협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예수로 대변되는 신약의 하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며(마 18:22), 십자가의 자리에서까지도 “하나님이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던 사랑과 인애의 하나님으로 드러난다. 또한 신약에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우월감과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이를 벗어버리고 세상 만방의 백성들을 형제로 받아들일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러니 제 정신이라면 이 상반된 두 모습이 어떻게 같은 하나님의 모습이며, 같은 계시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①전쟁의 신, 여호와 하나님

구약시대, 특별히 가나안 정복 당시 그 땅 거민들을 철저히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수 6:21)은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주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게 한다. 정서적인 면에서는 나 역시 거부감이 심하다. 그러나 정서적인 거부감을 넘어서 진실을 찾아보자.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 인간 편에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집트에서 탈출한 오합지졸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이 거할 땅을 얻는 과정이지만, 한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한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결코 자기들이 정의롭고 도덕적이어서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님을 끝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신 9:4~6). 그러므로 앞의 관점에서만 이해한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편협하고 자기 민족의 복리만을 위해 타민족을 쫓아내는 호전적인 신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자의 관점을 이해하고 전체 그림을 살펴본다면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죄에 대한 심판을 행하시는 공의로운 법 집행이었다.

레위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들어가 거할 가나안 족속들의 풍속이나 법도, 규례 등 그 어떤 것도 흉내 내거나 본받지 말라고 서두를 꺼내고서는(3-5절), 6-23절까지 본받지 말아야할 가나안 족속들의 풍속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어머니, 아버지, 계모, 자매, 손주들, 고모, 이모, 며느리 등과의 근친상간, 자녀를 우상에 산 제물로 태우는 행위, 동물과의 수간(獸姦) 등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다 가나안 족속들의 풍속이었다고 지적한다. 창조주인 동시에 재판장인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들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 있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좇음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8:24, 25, 30)

역시 레위기 20장에서도 그러한 가나안 인들의 나쁜 풍습들을 설명하고서 22절, 23절에서 이렇게 당부한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 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그러므로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신에 불과한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들여앉히기 위해 멀쩡히 잘 사는 가나안 족속들을 억지로 쫓아낸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조차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가나안처럼 타락해 버린다면 그들 역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미리 예고되었다(신 28:15). 하나님은 이 경고처럼 남북 이스라엘도 후에 철저한 타락에 대한 심판으로 앗수르, 바벨론에 넘겨 멸망시켰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암 2:4~8). 구약에 나타난 성경의 표현들이 오해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을 이해해보면 이처럼 공의의 재판장으로서 하나님의 법 집행이라는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하나님의 심판일지라도 홍수(창 6:5, 6)나 불(창 18:20) 등 자연재해를 통한 심판은 비교적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판 같으나, 다른 민족을 통한 심판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매우 편향되고 편협한 것처럼 보이는 마음은 솔직히 어쩔 수 없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만든 창조주요, 옳고 그름의 참된 판단자로서의 인격적 하나님을 믿느냐의 여부다. 기독교신앙은 인간의 선행과 노력, 과학과 지식의 발전, 진보를 결코 무시하지 않지만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를 결코 대신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인 유대민족이 멸망하고,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그것을 대신한 후로는 더 이상 한 민족 집단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른 민족을 정복한다는 개념은 없다. 그런 면에서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을 비롯하여 기독교를 빙자하여 치른 전쟁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으로 합리화된 전쟁일 뿐 어떠한 경우도 정당화될 수 없다.

②인정사정없는 교조주의자 하나님?

우리는 흔히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이라는 잣대 하나만 갖고 사람을 재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무자비한 심판을 행하는 몰인정한 재판장과 같은 이미지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사랑(돌봄)과 공의(심판)가 얼핏 모순된 태도처럼 보이지만 그 진심이 이해된다면 한 인격 안에서 얼마든지 하나의 일관된 태도로 이해될 수 있듯이 성서의 하나님도 그렇다. 구약의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짐승 한 마리의 생존까지도 세세히 살피시는 세심한 분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욥38:39~41), 다른 한편으로는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고 엄격히 책망하고 심판하는 까다롭고 두려운 하나님으로도 나타난다(아모스 1, 2장).

우리의 문제는 이 두 모습 가운데 하나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불균형에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심판관으로서 하나님의 공의실현마저도 “자비하심에 위배되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방임과 방종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엄격한 율법을 주고서 “순종하면 복, 불순종하면 저주”의 식으로 인간을 묶어놓는 율법주의 신관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새로 태어난 이스라엘 민족을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로 보시고 그 수준으로 대우하셨다. 어린아이에게는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가 많다. 2살짜리 유아가 엄마의 부엌일을 보고서 흥미를 느껴 칼과 도마를 달라고 떼를 쓰면 엄마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청을 들어주거나 칼을 잘 사용하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가?

아니다. 아직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2살짜리 유아에게는 “이거 만지면 아야 해. 그러니까 만지면 맴매야”라고 혼을 내는 것이 옳다. 율법을 글자대로 엄격히 지켜야했던 이스라엘의 수준은 바로 2살짜리 어린아이 수준이었지만, 신약시대 예수님은 성서의 문자주의가 아니라 그 정신과 의미를 요구하셨다(마 12:1~13, 19:3~8).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을 어기는 사람은 언제나 법대로 심판과 징벌만을 내리는 엄한 재판장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구약 성서 여러 곳에서 뜻하지 않게 어기게 되는 율법과 규례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하게 넘어가는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역대하 30장은 보면 히스기야 왕 시대에 상당수의 백성들이 너무 오랜 세월동안 율법을 폐지한 습관에 젖어있어 유월절 절기의 세세한 규례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제대로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히스기야 왕은 부득불 규례를 어긴 백성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18, 19절) 그 결과,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20절)라고 한다.

정당한 물음, 공의로운 따짐을 좋아하는 하나님

오직 충성만 요구할 뿐 말대꾸를 용서치 않는 율법주의 하나님이라면 세상의 온갖 모순들을 바라보면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감히 하나님께 따져 묻던 선지자들의 말대꾸(시 73:1~13, 합 1:13)를 어찌 용납할까?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우니 나는 이제 원통함을 참지 않고 다 털어놓고 내 영혼의 괴로움을 다 말하겠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겠다.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로 나 같은 자와 다투시는지 알려 주십시오. 주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은 학대하고 멸시하시면서도 악인이 세운 계획은 잘만 되게 하시니 그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라도 됩니까?”(욥 10:1-3)

이러한 욥의 신성모독적 말을 듣고 있던 그의 친구들은 분노하여 하나님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한다.

“네가 하는 헛소리를 듣고서 어느 누가 잠잠할 수 있겠느냐?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너는, 하나님이 네게 내리시는 벌이, 네 죄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아낼 수 있느냐?…”(욥 11:2, 6, 7)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마치 당신을 악의 후원자처럼 비판했던 욥에게 불벼락을 내리시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찬양해 마지않았던 친구들의 말보다 욥의 솔직하고 진실한 분노와 반발이 더 옳은 태도라고 판결하신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 42:7)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은 자기 앞에서 낯간지럽게 찬양을 해댄다고 히죽히죽 좋아하는 귀 막고 눈 가린 독재자와 다른 분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율법 조항에 매어 법전만 읽고 있는 그런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을 따지고 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라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폭력이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합 1:2, 3)

그러므로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지은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법대로 살려는 솔직한 몸부림과 성실함이었던 것이다(믹 6:6~8, 약 1:27). 사실 성서의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흔히 그러한 것보다 훨씬 더 표용적이다.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와 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요나 4:10,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하나님 이미지는 참으로 제한적이요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이 오셨다.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진심)을 읽게 되었다(빌 2:5~8/비교-렘 29:11~13, 애 3:33, 겔 18:21~23, 33:10, 11).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도 맞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