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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신앙 터놓고 말하기(6)“가장 좋은 번역판 성경은 가장 읽기 쉬운 성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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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0월 22일 (월) 17:20:10 [조회수 : 3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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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동적인 성경번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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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교형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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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의 역사는 교회를 바로 잡고 참된 신앙을 되찾고자 노력했던 교회개혁의 역사였다. 근대의 시작인 종교개혁은 사실상 성경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종교개혁자들의 파격적 성경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9세기 초부터 성경을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배타적인 성경 해석권을 주장하였고, 1080년 경 부터는 평신도들이 성경을 볼 수 있는 자격조차 박탈했다. 그리고 신부 등 사제들만이 라틴어 성경을 갖고서 일반인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강론을 고집하였다. 그 결과 성경으로부터 소외된 대다수 백성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사제들의 지시와 명령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제들이 라틴어 성경에 목을 매는 한 백성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대중언어였던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다. 에라스무스도 이러한 노력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바로 평범한 대중들이 아니었습니까?…저는 농사꾼들은 물론이고 대장장이와 석공들, 심지어 창녀나 포주, 터키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2천년 동안의 정신Ⅱ, 폴 존슨, 349쪽)
기독교(특히 개신교)를 왜 말씀의 종교라고 하는가? 종교개혁이 전례와 권위에 가려져있던 당시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전통에 저항하고(protest), 모든 백성들이 성경을 통해 직접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도록 하려는 해방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중세시대 가톨릭교회처럼 입으로는 하나님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아주 역설적이게도 감히 평신도 따위는 성경을 읽지도, 이해하지도, 해석하지도 못할 것 같은 불문화된 전통을 뿌리내려 놓았다.
4. 민중들의 일상 언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유진 피터슨이 저술한 “이 책을 먹으라”(IVP)는 책을 보면 성경에 관한 참으로 감동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내용인즉 이렇다. 우리가 잘 알듯이 성경은 구약이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약간의 아람어 포함)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의 헬라어는 사용하는 층에 따라 두 등급으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당시 고대 그리스 문화의 품격을 대표하는 철학과 시, 역사 등의 기록언어인 고전헬라어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고대 그리이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헬라철학이 활짝 피어난 시대였고, 멋진 서사시와 역사와 과학 등의 지성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운 문명의 전성기였는데, 그 모든 기록들이 바로 이 고상한 고전헬라어로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오직 이 고전헬라어로 기록된 고상한 기록들만이 헬라시대의 공식문서로 인정받아 보존되어 왔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헬라어는 그러한 품위 있고 고상한 문화인들이 애용하던 고전 헬라어와는 대체로 거리가 멀었다. 신약 성경에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약 5,000개 정도인데, 그 대부분은 일상적인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5,000개 정도 가운데서도 500개 정도 단어는 어느 자료 층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것이었단다.
그런데 1897년 4월 이집트 나일강변 옥시린쿠스 라는 마을의 쓰레기장에서 여러 가지 고대문서로 보이는 종이뭉치들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의 확인 결과 그 종이들은 그 당시 개인들 간 사사로운 감정을 담은 편지들, 청구서와 영수증, 유언장 등의 뭉치로 영구보관 할 하등의 가치가 없는 그야말로 그렇고 그런, 잡동사니 종이쪽지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시시껄렁한 서민들의 시원찮은 기록에 쓰였던 단어들이 놀랍게도 신약성경에서 당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남은 500단어의 자료층과 같았던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우리 신약성경은 당시 고귀하고 점잖은 학자와 관료들이 사용하는 고상한 고전 헬라어와는 전혀 거리가 먼, 시장 뒷골목쯤에서 흔히 쓰이거나 서민들의 개인적 감정 정도나 표현하곤 했던 하찮은 생활용어를 택해서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성경을 이렇게 철저히 평범한 서민들의 정서와 생각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일상적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된 후 우리 후손들은 오히려 이러한 성육신 정신을 망각하고, 고상하고 왕실에서나 쓸 만한 점잖은 말투를 성경에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영어 성경번역자 윌리엄 틴데일은 앞서 말한 서민적 헬라어 성경의 기록정신처럼 아주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어투로 영어번역본을 내놓았다. 그러나 1611년 영국 왕 제임스는 47명의 학자들에게 명하여 틴데일의 번역본을 기초로 하되 틴데일 성경의 서민적 말투 대신, 왕실의 위엄 있고 웅장한 어투로 바꿔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을 만들어 내었다. 그 이후 흠정역은 가장 원문에 가깝고 완전한 영어번역성경이라는 찬사를 들어왔으나 사실 그것은 경건한(?) 오역에 가깝다는 것이다.
“흠정역 성경은 성경이 처음 말해지고 들려지고 기록된 언어 형태를 가장 잘못 대변하는 영어 번역인데도 말이다.…그들은 틴데일이 사용한 언어의 어조를 바꾸어, 쟁기질 하는 소년의 거친 말투를 기술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왕실의 매끄러운 말투로 만들어 놓았다.”(이 책을 먹으라, 유진 피터슨, 268쪽)
그런데 우리 개역성경은 바로 이러한 영어 흠정역성경의 경건한 오역정신을 그대로 본받고 있는 것 같다.
5. 예수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을까?
나는 외국어 실력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조금 공부하다보니 이제야 비로소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것 같다. 정말 한 문화권의 언어를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바꾼다는 것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코 살려낼 수 없는 허망함이 있는 게 분명하다. 가령 ‘푸른’ ‘푸르스름한’ ‘푸릇푸릇한’ ‘푸르른’ 등 우리말의 엄청난 표현방식들이 있지만 영어로는 그저 ‘blue'라고만 번역해야할 때 원문느낌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다.
반면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닥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반말과 존댓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우리문화의 관례대로 자기와 비슷하거나 아랫사람에게는 반말로, 자기보다 윗사람이나 연장자에게는 존댓말로 번역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글성경은 이 점에서 매우 신학적 판단으로 어색하게 번역하고 있다. 예수는 당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예수 보다 연장자들도 꽤 많았지만 그들과의 대화기록이 한글 성경들에는 한결같이 예수가 반말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5장 5절~8절을 보자.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개역개정판)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 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공동번역)
이 구절이 눈에 띄는 것은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앓고 있던 병자라면 당시 30대 초반이었을 예수보다 최소한 열 살 이상은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도 한글성경들은 예외 없이 예수가 그 병자에게 하대하고 있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이는 ‘표준새번역’과 ‘우리말성경’도 마찬가지다. 다만 ‘쉬운 성경’만은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낫기를 원하시오?’…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당신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시오.’”(쉬운성경)
물론 히브리어, 헬라어에는 존댓말이 없으므로 어차피 절대적인 원칙은 없고, 상황에 따라 우리 문화에 맞춰 번역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글성경들이 예수가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한 것으로 번역한 것은 예수를 높이려는 가상한 마음이 있겠지만, 반면 예수님의 삶과 당시의 배경을 비추어 보면 너무 어색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정말 예수께서 한반도에서 살았다면 그는 성육신 정신(빌 2:5~8)으로 살면서 연장자에게 존대했을 것이다. 유명한 김기창 화백의 ‘예수의 생애’ 그림들을 보아도 예수는 큰 갓을 쓰고 흰 두루마리를 깔끔하게 다려 입은 전형적인 선비로 그려지는데, 이는 성경적 예수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는 유교적 전통 속에서 예수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 같다. 이처럼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유교적 전통은 작용하고 있다. 예수에게서 귀족주의를 찾는 것은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스스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섬김의 본을 보이신 성육신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이다.
6. 한국교회여! 이해하기 쉬운 성경을 널리 보급하자.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긴 면을 할애해 번역 한글성경 문제에 대해 썼다. 나는 그만큼 이 문제가 한국교회의 올바른 신앙회복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결론을 다시 말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성경을 잘 번역하여 최대한 많이 읽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번역 성경은 이해하기 쉬워야할 뿐 아니라 최대한 원문에 맞춰 정확하게 번역해야 한다. 쉽게 번역한 성경들 가운데는 정확성을 소홀히 한 채 너무 우리 식 표현에만 치중한 것들도 있는 줄 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책임 있는 번역과 감수 작업이 전제된다면, 한국교회는 충분히 쉬우면서도 최대한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까지의 어려움은 번역할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정치적, 신학적 이해관계 충돌이 더 큰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은 더 이상 성경의 정확성을 핑계 삼아, 모든 사람들에 말씀을 듣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하지 말아야한다. 원문의 정확성에 그토록 사무친 소망을 갖고 있다면, 차라리 평신도들에게도 히브리어, 헬라어를 가르쳐 원어성경을 읽도록 해라. 정말 최대한 원문에 가까운 해석에 고민해야 할 사람들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목회자들 스스로는 본문을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더 쉽게 많이 읽어야 할 일반 성도들에게 ‘완전한 성경’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성경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무지이거나 불순한 이데올로기다. 신학자, 목회자가 할 일을 평신도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앞서 살펴보았듯이 개역성경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분들은 ‘골짜기에…포도 한 송이 달린’(민 13:23/개역판)을 ‘골짜기에…포도송이가 달린’(개역개정판)으로 잘못 오역해서 개역개정판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모세시대 골짜기에 달린 포도가 한 송이였는지 아니면 여러 송이였는지 보다, 한글세대가 최대한 쉬운 성경으로 성경을 많이 읽고 바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성도들이 성경본문의 대의만이라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번역한다면 한국교회는 훨씬 더 예수의 심정으로 바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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