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앙발달단계론

종교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모든 종교는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인식(신앙)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학자 제임스 파울러는 그것을 신앙발달단계론으로 설명하였다. 그것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사람이 종교(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조금씩 자라 성인으로서의 완전한 인격으로 자라는 것과 같이 신앙도 유치한 단계를 거쳐, 성인으로서의 장성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한다. 아기가 엄마에게 안겨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때 그를 엄마의 모든 것을 절대 신뢰하듯이 신앙도 초자연적인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무조건 자기 삶을 맡겨버리는 유아의 시기가 있는가 하면, 조금씩 자라면서 이제 그 믿음의 내용을 조금씩 스스로 판단하며 말을 알아듣는 문자적 이해시기를 지나게 된다. 신앙이 더 자라면 어른이나 성숙한 사람들을 본받으며 그들의 삶을 그대로 흉내 내려는 모습을 거친 후, 청 장년기가 되면 비로소 자기가 믿고 있는 신앙과 전통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되씹어보게 되고, 그 때 (내가 믿고 있는 게 정말 진실인가 하는 고민 때문에) 상당기간 회의와 방황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언어나 표현방식 등 겉껍데기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진리는 하나요,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그 껍데기를 뚫고 본질로 파고들면 결국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2. 계속 자라가야 할 신앙인의 수준

그것은 참으로 일리가 있다.

세상 모든 깨달음(진리, 가르침)에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 우리는 그저 생존본능만 존재하는 아기들을 대할 때와, 조금 컸지만 여전히 철없는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 그리고 초등학생과 중 고등학생, 나아가 청년의 시절과 완전히 성장한 장년과 중년, 그리고 모든 인생의 경험을 다 겪고 완숙의 경지에 이른 노년을 대할 때의 각각 다르게 대한다. 그리고 당연히 달라야 한다. 그것은 결코 차별이 아니다.

아이들을 대할 때일수록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지시하게 되고, 때로는 상과 벌을 통하여 행동을 유도하며, 원칙적인 규범을 강조한다. 그것은 어릴수록 아직 폭넓은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많다는 말이다. 바로 율법적, 문자적 적용단계이다.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건너지 말아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떠들지 말아라.” 아이들로서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많기 때문에 이리저리 따지기 전에 일단 순종해야 하는 단계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을 때 때로 매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경험과 체험의 세계가 넓어지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면 자율성의 범위가 늘어난다. 이전처럼 무조건 “해라” 또는 “하지 말라”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문제들이 있을 수 있으니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지만 결정은 네가 해라.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식이다. 여전히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건너지 않아야 하지만, 그것은 빨간색 불이 나쁘거나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는 차가 달려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호등이 망가져서 빨간불만 들어올 때는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만큼 폭넓은 사태판단을 할 수 있을 나이가 된 것이다.

당연히 성서도 이러한 인간의 발전과정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선택되었을 때,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은 아주 단순하게 “온 마음으로 잘 섬기면 생명을 얻고 복을 받으나,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고 멸망당할 것이다”라고 지시한다(신 4, 6, 28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에 아주 단순하게 순종해야만 했다. 때로는 그 명령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그저 따라야 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과의 영적 경험과 세상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해 유아나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11)고 명령하면 그대로 지켜야 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관계도 폭넓어 가고, 상황에 대한 경험도 늘어가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간다. 하나님은 이제 그렇게 커져있는, 어느 정도의 분별력과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로 자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만난다. 이미 상당히 커진 백성들을 그 성장함의 수준에 따라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다. 예수를 언뜻 보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분이고, 전혀 다른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유아기를 넘어선 당신의 백성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 일 뿐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대변하는 예수는 거침없이 구약시대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분명한 실체를 드러내었다. 율법에 의하면 당연히 때려 죽여야 할 간음한 여인을 “너희 중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하며 놓아주었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안식일에 일부러 사람을 고치고서는, “안식일에 (멍청히 앉아 있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게 아니라)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게 옳다”(눅 6:9)고 말씀한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이고, 도전적인 언행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오해했다. ‘저가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맞는가, 그런데 어떻게 전통과는 어긋나는 저런 엄청난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가?’(요 7:12) 예수는 답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그것은 율법의 조문에 담긴 하나님의 진심(렘 29:11)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바로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처럼 시대적(역사적)인 것일 뿐 아니라, 우리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여정에도 마찬가지다. 유아에게는 유아에 맞게, 초등학생에게는 초등학생 수준에 맞게, 그리고 다 자란 사람은 그 사람의 생각과 수준에 맞게 만나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런 면에서 신앙발달단계론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원리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단번에 진리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복음에 대한 이해도 결코 완전하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개방성을 갖고 그 시대마다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계시)에 민감해야 한다(고전 13:11, 12). 그것이 ‘계시의 점진성’이다.

3. 신앙발달론이 곧 종교다원주의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신앙발달단계론은 자주 종교다원주의의 출발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신앙발달단계론을 종교발전과정으로 바로 대입하면 이와 같다.

「모든 종교들도 자라간다. 아직 신앙인들의 수준이 성숙하지 못할 때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오던 모든 것들을 액면 그대로 다 하나님의 진리로 알고 있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가 이성이 발달하고 경험과 분별력이 생기면 마침내 서로 모순되어 보이던 다른 종교나 철학의 가르침들조차도 내가 믿는 하나님의 진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같은 세계를 추구하는 조금씩 다른 모양의 동반자들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결국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와 힌두교든, 그리고 유교든 도교든 그 모습과 가르침, 표현방식은 조금씩 달라 보일지라도 결국 추구하는 목표가 같고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되며,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성숙한(완성된) 신앙인의 경지다.」

이것 역시 일리가 있다. 단순하게 살펴보면 불교의 ‘공(空)’의 개념은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정신과 맥이 같아 보이며, 노장사상의 자연친화 정신은 피조물을 귀히 여기는 성경의 사상과 뜻이 통해 보인다. 주자학의 경전 태극도설에 나오는 “무극이 태극이며, 태극이 무극”이라는 명제나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역설변증의 패턴 또한 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명제인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으니라”(마 6:21)라는 말씀을 연상케 한다. 또 나는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걸고 단식했던 지율 스님이야말로 그 어떤 목회자들보다 예수의 십자가와 성육신의 의미를 잘 이해한 분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똑같이 태양 빛을 받아 살아가며, 때를 따라 내리는 비를 만나며, 공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듯이 마찬가지로 창조질서의 다양한 법칙들과 보편원리들을 발견하는데 어떤 종교인이냐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부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듯이 기독교와 성서만이 모든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은 잘못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차이는 있다. 일반적인 종교나 철학들은 본래 그러그러한 세상의 이치나 일반적인 법칙을 스스로 터득하는데 그 수행(연구, 실천)의 근본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기독교는 어떤 원리(보편법칙)를 터득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격인 하나님을 만나 그 뜻에 순종하는 게 인생의 최고의 목적임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다르다.

내가 이해하는 기독교와 다른 여타 종교 및 철학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국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이름이야 무엇이든)을 세상의 근원으로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물론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 사이의 차이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장로교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를 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존재목적이 놀랍게도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성적으로만 보면 이건 인간 존엄성을 송두리째 말살하는 것이며, 자존심을 뒤엎는 엽기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고백을 전제로 하여 살아가며 그걸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 인간적으로만 보면 상당히 엉뚱해 보이고 비상식적인 말이지만 이게 기독교다. 다른 종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주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하나님 안에서의 존재”라는 기초로부터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이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였으니 목숨 얻은 대가로 좋든 싫든 그의 노예로 살라’고 하는 구차한 항복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창조한 그 본뜻에 순종하며 살 때 가장 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가는 존재라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이라는 것이다.

법전 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면서 낸 법어에서 “아미타불이 만든 극락도 원치 않고, 하느님이 만든 천당도 원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만드는 극락을 원한다.…다른 게 부처가 아니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부처다.”라는 말씀을 했다. 인간의 주체성을 한껏 높여준 말씀이다. 그러나 기독교(성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요, 죽었다 깨나도 인간은 피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성서는 인간에 대해서 결코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대단한 의인 같지만 인간실존의 문제에서는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허무한 인생일 뿐임을 말한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 철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우주만물이 스스로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본질과 능력을 충실히 발휘할 때 가장 자유롭고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서는 그 모든 본질과 원칙이 자기 안에 본래부터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현주소와 사명을 깨달을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갓난아이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제 생명의 원리에 따라가는 게 옳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보호자(부모든 아니든)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이런 원리를 이해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에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은 조금도 비굴한 말이 아니다.

4. 모든 종교가 다 같아져야만 평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 글은 종교 간의 대화를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불편한 주장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누가 옳고 그르냐’,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하냐’를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나는 기독교가 성서의 가르침과 꼭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기독교가 고정불변의 실체로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러나 다만 분명히 존재하는 각 종교들 사이의 다른 점을 너무 쉽게, 서둘러 똑같다고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서로 꼭 같다고 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는 평화는 억지요, 획일화요, 파시즘이다.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 분명 (한국)기독교는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예의 없음으로 많은 근심을 끼쳤다. 그러나 서둘러 종교평화를 이루고 싶은 마음에 각 종교의 특이성을 없애고 결국 하나라고 말하려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면에서 2006년 각 종교 여성수행자들의 모임인 삼소회에서 티벳 불교 최고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방문해서 나눈 대화는 좋은 교훈이 된다.

「삼소회원: 종교간 대립과 분쟁 세계에서 그런 대립을 종식시킬 말씀을 주신다면?

달라이 라마: 모든 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태도를 권합니다. ‘자기 종교에 대해서는 존경을,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예의를 가져주십시오.’」

나는 정말 존경의 마음을 갖고 다른 종교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다른 종교를 배우려는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이 내가 믿는 성서신앙(복음)을 보다 바로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나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금껏 적지 않은 사회의 근심꺼리가 된 것도 다른 종교를 많이 알지 못해서 생긴 것보다는(그 면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신앙 자체도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바로 믿는다면(안다면), 기독교는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향기를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