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구교형칼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신앙 터놓고 말하기(1)기독교인들이 믿는 바는 이제 사회적 진술로 이야기 되어야 한다.
구교형  |  ku6699@freecha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9월 05일 (수) 11:36:13 [조회수 : 330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신앙 터놓고 말하기(1)

샘물교회 청년 19명이 무사히 귀환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사태는 진정되기는커녕 앞으로도 상당기간 더욱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여파의 중심에는 기독교의 자기 확신과 선교방식에 대한 논란이 놓여 있다. 한 사람에게 있어 신앙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표출될 때는 이미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사태는 한 개인의 신앙이 사회화될 때 반드시 고려해야할 문제들을 간과한 탓으로 생기는 혼란들이다.

이번 샘물교회 사태의 근저에도 기독교인들이 자기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과정에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와 기본적 상식을 지키지 않는다는 반복된 경험들이 있다. 그러므로 샘물교회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제공자로서의 원죄적 잘못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상세한 잘 잘못을 넘어서 한국교회가 받아야할 그동안의 비난들을 한 번에 온통 뒤집어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 단순히 기독교인 행동의 옳고 그름을 넘어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낳게 되는 신념, 다시 말하면 기독교신앙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무슨 말인가?


* 십계명의 첫 번째인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출 20:3)는 성경의 가르침이 결국 다른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증오심, 공격성을 낳는 것이 아닌가?

* 가나안 정복전쟁 등에서 보이는 전투적이고, 정복적인 태도(수 8:24~29)가 결국 문화제국주의, 선교제국주의로 나타나고 그것은 한국교회와 부시 미 대통령의 신앙관의 근거가 아닌가?

* ‘그런 말씀들은 문자대로 해석할 일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이며 교훈일 뿐이다’라고 얼버무릴 수도 없는 건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문화, 상황변화를 초월해서 변치 않는 영원한 진리’라고 말해왔던 우리의 기독교적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기독교의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 왔다. 도올 김용옥 씨나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소설 ‘다빈치코드’, 류상태 씨나 정강길 씨 등의 문제제기도 결국은 교회에 대한 그러한 의문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내 자신, 그러한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지만, 그 문제제기는 상당부분 정당한 것이고 기독교가 건강하게 개혁되는 데에는 매우 절실한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책임 있는 답변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태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스스로도 그 대답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이러한 정당한 의문들이 쉽게 무시되고 위험시되어 거의 이야기되지 않으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대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이 성령에 감동받은 오류 없는 말씀이라 하니, 완결된 형태로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았다가 편집이니 자료니 하는 말을 들으면 몹시 혼란스러워진다. 뜻하지 않게 성경들 사이에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면 신뢰가 흔들린다. 언제나 변치 않는 진리라고만 들어오다가 현대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을 발견하게 되면 불신은 더욱 커진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의문들이 생겨도 감히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계속되면 의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불신과 부정으로까지 발전해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을 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위한 성실한 답변 이전에 기독교인들 스스로가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을 분명히 확인해야한다. 또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사회의 정당한 요구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 그 답변이 정당하고 성실하다면 그 자체가 이미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정당한 변증이 될 것이다. 신앙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신앙적 근거는 최대한 이성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태들이 사회적 지탄거리가 되고, 교회가 신뢰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성경이 온통 난도질당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은 존재하는가? 나 자신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기고백으로만 그쳐서는 안되고, 사회적 언어로 성실하게 변증되어야 한다.

나는 전문적인 신학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오래 전부터 절감하여 왔다. 그러므로 내가 이해하는 정도의 범위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히 설명해 보려고 한다. 앞으로 나는 주로 아래와 같은 이야기들을 전개해 가려고 한다.


*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 성경은 정말 오류가 전혀 없는가? 그러므로 문자대로 해석해야 하나?

*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가?

* 성경(특히 구약)이 말하는 타종교 및 타문화에 대한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표현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종교다원주의와 다원화 사회에서 예수 믿기는 어떻게 다른가?

*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인가?

* 복음, 신조 및 교리, 기독교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을 믿을 근거들은 있는가?


이것이 계기가 되어 좀 더 지혜로운 분들의 책임 있는 논쟁들이 계속 이어지기 진심으로 바란다.

[관련기사]

구교형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21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