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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닉네임 : 쓴소리  2024-03-09 13:52:33   조회: 3286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솔로몬왕은 말하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지는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하였다.
속언(俗諺)에 “밤새 안녕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내일에 대한 희망(希望)은 가질 수 있으나 내일을 장담(壯談)할 수는 없다. 그동안 자신이 타던 자가용(自家用) 자동차가 오래되어 성능이 떨어지고 고장이 잦아서 새 차로 교체(交替)하였다.

그리하여 차주(車主)는 너무나도 즐겁고 기뻐서 그 차로 첫 출근을 하였다.

즐거움과 앞으로 희망과 기대와는 달리 현실(現實)은 비극적(悲劇的)으로 생을 마쳤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하는 말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세상살이는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앞으로 100년은 더 산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음은 예고(豫告)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槪念)으로 살아야 죽을 준비와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상살이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개념으로 산다면 문제가 많다. 내일 죽을 사람이 일은 해서 무엇해 아니 사업은 해서 무엇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면 장래에 대한 의욕(意欲)이나 희망(希望)이 없기. 때문에. 절망적(絶望的)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일이 없는 사람이 가장 한심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막가파가 되어 오늘을 자기의 생각대로 욕망(慾望)대로 살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내일을 장담(壯談)도 할 수 없지만, 내일의 희망(希望)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마지막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을 향하여 긍정적(肯定的)인 사고(思考)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民謠)에 “인생이 살면 몇백 년을 사느냐? 놋그릇 부셔서 엿이나 사 먹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는 내일이 없는 막가파 인생론 자들의 말이다.

아침 인사에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는 밤사이에 별고(別故)가 없었느냐는 물음의 인사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지난밤 12시간 동안에 변고(變故)가 없었느냐는 말이다.

성경에서 12시간이 아니고 순간적인 사고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바다의 물고기가 동서남북으로 활개 치며 다니다가도 순간적으로 사람이 그물을 던져 그 그물에 걸리는 일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날아다니던 새가 언제 어디서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이는 물고기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 생사(生死)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연세가 많으신 분이 저녁 잘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는데 아침에 일어나지 아니하여 자녀들이 깨우려고 방문을 열었더니 밤사이에 돌아가셨다.

그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인생은 허무(虛無)한 인생이라는 말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들은 자신은 몇백 년이나 몇천 년이나 살 것과같이 교만(驕慢)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는 상대편에서 그를 생각하기를 가소롭다는. 말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어느 분은 친구가 세상을 떠나서 친구의 장례식(葬禮式)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밤에 도적(盜賊)이 들어오는 것은. 예고(豫告)하지 않고 들어오듯이 죽음도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에 항상 죽을 준비는 해놓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윗왕은 말하기를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다. 그 길은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이다.

죽음에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자살(自殺)도 있고 타살(他殺)도 있으며 병사(病死)도 있고 자연사(自然死)도 있고 죽음도 여러형태의 죽음이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전쟁으로 죽고 정치적(政治的)인 정적(政敵) 탓에 죽기도 하며 죽음의 형태는 무수하다. 정몽주(鄭夢周)는 이방원의 정치적인 협조를 거절하여 선죽교에서 타살(他殺)당하였다.

그리고 현재도 러시아 반정부 체제 인사가 타살(他殺)당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래서 인생을 가르쳐서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풀잎에 이슬과 같이 똑 하고 떨어지면 그만이다. 그런가 하면 운무인생(雲霧人生)이라고 한다. 이는 안개와 구름을 말하는 데 안개는 해만 뜨면 없어진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의 목숨은 풀잎의 이슬과 같고 아침에 끼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정치인으로 대통령을 꿈꾸던 신익희 선생도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口號)를 외치고 호남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세상을 떠났으니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가 무색하게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이 밤사이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하는 것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를 우리는 알 것이다.

그렇다면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는 과거의 그들만의 것인가? 아니면 현재형으로 오늘 우리들의 것인가? 과거형으로 완료된 것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는 밤새 안녕하십니까? 의미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되는가? 역사는 그들의 형태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욕망이 앞서 그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막가파와 같은 사고(思考)는 버리고 이제라도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철학(哲學)을 가지고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은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세상에서 죽으면 그만이라는 공산주의 사상(共産主義思想)을 버리고 기독교적(基督敎的)인 사상(思想)을 정립하여 현재(現在)의 삶이 사후(死後)의 심판(審判)과 관계가 있음을 기억하고 사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죽음까지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후(死後)의 영생복락(永生福樂)을 기대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는 대신에 죽기를 원하는 죽음을 초월한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꿈에라도 험한 일을 당한 후에 깨고 나면 후유 다행이다. 꿈이라서 다행이다. 정말 현실이었다면 어찌하였을까? 하는 생각으로 미래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현재의 삶이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당신 편도 아니다. 그리고 사건과 죽음은 타인의 전용물도 아니고 밤새 안녕하십니까? 내일을 일을 알지 못하는 나와 여러분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혀서 이성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이성적인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인면수심(人面獸心) 생활을 당장 접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2024-03-09 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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