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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부활 일곱번째 주일(20090524) 빈 자리를 채울 사람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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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5월 18일 (월) 11:06:19
최종편집 : 2009년 05월 19일 (화) 18:32:16 [조회수 : 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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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일곱 번째 주일(20090524)
성서일과/ 시 1:; 1:15-17, 21-26; 요일 5:9-13; 요 17:6-19
사도행전 1:21-26
빈 자리를 채울 사람

   
(행 1:21-26)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채우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비우는 일과 채우는 일

오늘 주신 성서일과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제자 됨에 관한 것입니다.
그중에 오늘 봉독한 사도행전의 말씀은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비게 된 열두 제자의 한 자리를 채울 사람을 택하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읽다가 문득 빈 배(虛舟)에 관한 장자의 우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 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 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 그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소리치고 욕하는 일은 그 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배에 사람이 없다면, 소리 치고 욕할 일이 있겠는가?

흔히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의 시비에 말려 고민하거나 괴로워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도 우리를 향하여 비울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엡 4:22-23)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오늘 모여 있는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사람들입니다.
(눅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주를 우해 버린 자들을 비어 있는 채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막 10:28-30) 『[28] ...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마르지 않고, 다하지 않는 은혜를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 은혜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곧 비우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준비하는 일이 비우고 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다함이 없고, 마르지 않는 은혜로 넘치도록 채우심을 받는 길입니다.
모든 것을 버렸으나 땅에서 백배로 받고, 하늘에서 영생을 얻은 제자들처럼, 나를 버리고 주를 쫓는 자가 되어 넘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채우는 일입니다.
비워야 할 일도 있지만 채워야 할 것도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 열둘을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염두에 두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 하나라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구원하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열두 자리는 사람이 만든 자리가 아니요, 주님이 만든 자리입니다.
비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주님이 만드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은 자들로 채워졌습니다.
비어서는 안 될 이 자리가 비게 된 까닭은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유다가 자기 배를 채우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행 1:17-18) [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것으로 채운 것은 끝내 터져서 흘러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까?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자기를 위하여 채우는 자가 되지 말고, 주를 위해 채우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의 자리를 채우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이 주님이 마련한 자리를 채울 수 있으며, 그가 할 일이 무엇이며, 그런 사람이 어떻게 택해지는지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는 2,000년 전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여기 참여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모두 주님이 마련하신 자리입니다.
내가 주를 택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택하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 자리는 주님이 마련해 주신 자리입니다.
비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마련하신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깨닫고, 나를 버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 되셔서 하늘에 속한 새 것,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은혜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빈 자리를 채울 사람의 자격을 말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사람, 한결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올리워 가신 날까지라고 했으니, 주님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동안 줄곧 함께 예수를 따랐던 사람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부름을 받은 후부터는 항상 함께 있었던 자만이 빈 자리를 채울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없습니다.
일곱 집사를 뽑을 때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는 일에는 그런 조건조차 없습니다.
오로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함께 주를 따른 사람이면 족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만드신 자리, 주님이 마련해 주신 자리를 채우는 자들은 한결같음이 제일가는 덕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결코 우리가 만든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이 만들어주신 자리를 비우는 것은 멸망의 자식들뿐입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에서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요 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 가룟 유다가 멸망했는데 지금 비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인 것입니다.
그는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지, 주님이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자들은 그렇게 뛰어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 남다른 자가 있었다면 바로 유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일행의 돈궤를 맡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가 멸망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리석음과 믿음 없음을 인하여 책망을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단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때에 잠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 때문에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노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책망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한결같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尾生抱柱信이라는 이백의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尾生,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으나 꼬리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가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미생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렸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자는 오지를 않고, 갑자기 큰 비가 내려 강이 범람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리가 물에 잠기는데 미생은 다리 기둥을 부여잡고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끝내 오지 않았고, 미생은 다리를 안고,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미생이 어리석다고 하기보다 약속을 지킨 믿음의 사람이라 기렸고, 시성 이백은 그의 시 가운데 이 이야기를 되새겨 넣었습니다.
어리석을 정도로 신의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날, 주께로 들림 받는 그날까지 미련스럽도록 주님이 마련해 주신 그 자리를 지키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둘째는, 자리를 차지한 자가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22] ...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다른 일이 아닙니다.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일 곧 전도하는 일입니다.
누가,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봉사와 사도의 일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것이 주님이 만드신 자리를 채운 자가 할 일입니다.

봉사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남을 위해 쓰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쓰는 것 곧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봉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희생하는 사람을 통해 땅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이 그 모든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는 자의 자리가 비면 하나님의 일은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욥바라고 하는 곳에 다비다, 다른 말로 도르가라는 이름의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죽었습니다.
욥바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녀의 죽음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죽을 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는 안 될 자가 죽은 것입니다.
교인들은 급히 룻다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를 불러왔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9:39) ...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다비다의 봉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다비다는 결국 다시 살아났습니다.
봉사하는 자의 자리는 비워 둘 수가 없습니다.
그가 아니면 안 된다면,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라도 그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봉사하는 일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봉사하는 자를 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워 둘 수 없는 자리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입니다.

사도의 직무는 무엇입니까?
우선 사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도인 요한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사도는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모습을 보고, 그 몸을 만진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본문 말씀대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주님이 하늘로 올리워 가실 때까지 함께 한 사람들 곧 주님이 불러 세우신 열두 제자 외에 달리 없습니다.

사도의 직무는 참으로 특별한 것입니다.
듣고, 보고, 만진 자만이 사도의 직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들은 소문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고 만져 본, 곧 몸으로 겪어 본 자들이 받는 직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를 따른 자들이 아니면 감당 못할 직분입니다.
그래서 사도의 직무는 초대교회 때에 단 한 번 있었던 직무인 것입니다.

유일한 예외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그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듣고, 그를 본 자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5:7-9)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이렇게 볼 때 사도의 직분은 봉사의 직분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미룰 수 없는 것이요, 비울 수 없는 것이며.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가 하는 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가 말했습니다.
(갈 1:11) 『형제들아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말은 쉽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좋게 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5:40)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한 것이니라』

진정한 사도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하는 방식은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비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과부들, 작은 자들에게 좋게 한 사람 곧 하나님께 좋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비다의 자리는 누구로도 대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비다를 다시 살려 그 자리를 채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사도의 직분은 다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의 일, 봉사의 일은 멈추어져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 일입니다.
부디 그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는, 빈 자리를 채울 사람을 택하는 방법입니다.
제자들은 빈 자리를 채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골랐습니다.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으로 압축되었습니다.
한 사람밖에 없었으면 별 문제가 아닌데 두 사람이 되니 난처했습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습니다.
[24]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주시도록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나님이 직접 누구의 손을 들어 주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26]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누가 될지 모르니 우연히 뽑은 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우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아시는 하나님이시오, 그 하나님께 맡기고 뽑았으니 하나님이 뽑아 주신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결코 우연히 얻은 자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아무나 다 택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나님은 만민을 청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리입니다.
높고 낮은 구별이 없습니다.
귀하고 천한 차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자리가 되었든지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자리이니 귀하고 높은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를 귀하게 중하게 여기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룟 유다는 어땠습니까?
[25]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자리가 아닌 제 곳, 제가 정한 곳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를 스스로 정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 물어 자기의 자리를 찾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교회는 빈 자리를 채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누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처음부터 두 권의 책을 쓰리라고 계획했던 일입니다.

누가복음은 복음의 시작과 완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으로 시작을 해서 예수님의 부활로 끝이 납니다.
다른 것이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시작과 확장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간략히 복음서에 대해 말한 다음 열한 제자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제자들 중 비게 된 유다의 자리를 채우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 이야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복음의 시작이듯이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교회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이 교회가 아니라 빈자리를 채워 나가는 것 곧 제자들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사도행전 9:31에는 느닷없다 싶을 정도로 독립된 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빼도 전후를 연결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그리하여’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1장부터 9장까지의 모든 일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누가는 사도들 그리고 일꾼들이 세워지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곱 집사를 택한 이야기도 거기에 속합니다.
일곱 중 하나인 스데반이 순교하는 이야기도 포함됩니다.
스데반이 죽는 자리에 바울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이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주를 만났습니다.
스데반이 죽어 비게 된 자리를 대신한 것이 바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 인정을 받고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자리가 채워지니...' 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택함을 받은 바울이 제가 택한 길을 버리고, 주님이 정하신 자리로 돌아오니, 온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그 수가 많아지는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내가 정한 자리, 내가 계획한 자리, 내가 만든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이 계획하시고, 만들어 정하신 자리가 내 자리입니다.
주님이 마련하신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채움으로 교회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채워짐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고,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일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남이 차지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배를 채우려 하고, 섬김을 받으려하는 자가 차지하면 그것이 곧 멸망의 자식이 되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떠나고 마침내 교회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정하신 자리를 차지하는 자가 되었으니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굳게 지켜 흔들림이 없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온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부흥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중 하나도 빠짐없이 이 일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명을 다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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