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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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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4월 26일 (일) 16:47:00
최종편집 : 2009년 04월 28일 (화) 13:09:53 [조회수 : 2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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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네 번째 주일(20090503)
성서일과/ 행 4:5-12; 시 23; 요일 3:16-24; 요 10:11-18
본문/ 요한복음 10:11-18


선한 목자

   
(요 10:11-18)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부활 네 번째 주일인 오늘은 예로부터 선한 목자주일이라고 합니다.
마침 오늘 우리 교회가 야외로 나와 주님 지으신 동산에서 예배하게 되니 선한 목자주일의 의미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살피심과 인도하심이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양은 어떤 동물입니까?

약한 동물입니다.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뿔도 없습니다.
이빨도 풀을 뜯어 먹는 부드러운 이빨입니다.
그렇다고 빠르게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멀리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거리가 기껏 10미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어리석습니다.
풀이나 물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위험한 곳도 모르고 함부로 다닙니다.

무리를 지어 삽니다.
약하고, 무능하며, 어리석기조차 한 까닭에 무리를 지어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를 짓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양의 옆에 있는 것도 양이요, 앞에 있는 것도 양이며, 뒤에 있는 것도 양이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는 자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할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6:39) 『...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그래서 양에게는 목자 그것도 선한 목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목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자의 손에는 언제나 방울이 달린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지팡이를 땅에 짚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납니다.
잘 보지 못하는 양들은 설혹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고 목자를 따라 갑니다.

그 지팡이의 끝은 둥글게 구부러져 있습니다.
양들을 인도하는 길은 좁고 험한 길이 많아서, 양들이 곧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구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목자는 그런 양들의 목에 지팡이의 둥근 부분을 걸어 끌어내는 것입니다.

먹을 만한 풀이 있거나, 마실 만한 물이 있으면 목자는 양들을 쉬게 합니다.
목자는 일일이 양들의 숫자를 세고, 상태를 살핍니다.
목자는 모든 양들의 이름을 알고, 형편을 압니다.
평소와 다른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양의 이름을 불러서 오게 하고, 품 안에 안고 일일이 털을 쓰다듬으며 살펴봅니다.
상처 난 곳을 치료해 주고, 먹지 못한 양이 있으면 먹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들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밤이 되면 목자는 양들을 한 곳에 모읍니다.
돌이 흔하기 때문에 돌로 대충 울을 두르고, 문을 하나 만듭니다.
목자는 그 문에 가로 눕습니다.
주님이 양의 문이라 하신 말씀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요 10:7, 9)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무리에서 떨어지는 양을 무리 속으로 이끌기 위해서 지팡이가 막대기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팡이가 참으로 막대기 노릇을 할 때는 늑대와 같은 약탈자가 양을 노리고 덤벼들 때입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무기로 삼아 늑대들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지팡이 하나로 양들을 보호하기는 어렵습니다.
목자들은 하나같이 물맷돌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멀리서 양을 노리는 늑대가 있으면 물맷돌을 날려서 쫓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은 그가 목자로 양을 돌보면서 쌓은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

목자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습니다.
선한 목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착한 목자라는 뜻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선한 목자와 비교되는 목자가 악한 목자가 아닌 삯군이라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삯을 받고서 남의 양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양을 돌보는 목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남의 부탁을 받고 삯을 받는 만큼 일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목자가 선한 목자입니다.
오늘의 시편에서도 노래합니다.
     (시 23:3) 『 [3]....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는 평상시에는 잘 분별이 되지 않지만 명확히 구별될 때가 있습니다.

첫째, 길이 너무 험해서 가기 어려울 때입니다.
혼자 가기도 어려운 길을 양을 인도해서 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푸른 초장, 잔잔한 물이 없는 곳이 이스라엘입니다.
시내산 꼭대기, 풀 몇 포기 듬성듬성 나있는 그곳까지 목자들이 양들을 인도하여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 양을 치는 목자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감내하고 올라가 풀을 먹게 하겠으나, 삯군 목자는 어떻겠습니까?
굶어도 자기가 굶는 것이 아니니 상관하지 않습니다.
양들이야 배가 고프던 말든, 하루를 보내고 자기 삯을 챙기면 그만입니다.

선한 목자는 어떻겠습니까?
양의 생명이 곧 자기 생명입니다.
양이 있어야 자기가 있고, 자기가 아니면 양이 꼴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양의 배고픔이 목자의 배고픔이요, 양의 목마름이 목자의 목마름입니다.
양과 목자가 하나인 것입니다.

둘째, 들에서 밤을 지새울 때입니다.
늑대들은 밤을 노립니다.
목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고, 양들도 이리저리 날 뛸 수가 있으니 아무리 강한 늑대라 한들 쉽게 덮칠 수가 없습니다.
양들이 잠들고, 목자도 피곤한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을 때가 늑대들에게는 기회입니다.

늑대들도 양과 같이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습니다.
낮에는 어쩌다 한두 마리가 움직이는 수가 있어도 밤이 되면 늑대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게 됩니다.
늑대들이 이렇게 습격해 오면 삯군은 양을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아예 처음부터 대적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힘이 다할 때까지 늑대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지팡이를 휘두릅니다.
늑대가 양을 덮치면 그 늑대를 향해 몸을 던집니다.
늑대가 한두 마리가 아니기에 사방에서 양들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선한 목자는 이리 저리 몸을 날려 보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온 몸의 힘을 다 쏟은 목자는 마침내 늑대들에게 물려 숨을 거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늑대들이 처음에 노린 것은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과 함께 늑대에 의해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호와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과 같이 여기십니다.
그가 친히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살피십니다.
     (사 40: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오늘의 시 23편은 바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다윗에게 주신 은혜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첫째는, 풍성한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부족함이 없게 하심입니다.
     (시 23:1-2)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모자란 것도, 아쉬운 것도 없습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없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임하는 평안의 안식이 있을 따름입니다.
넘치게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풍성히 주시는 목자, 여호와의 은혜가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사울도, 블레셋도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굴속에서도 평안했고, 싸움터에서도 안연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주님이 지켜 주지시 아니하시면 풍성함이 무슨 소용이며, 평안함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권세인 사망의 권세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주의 은혜를 믿고, 두려움 없이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는, 영광으로 덧입혀 주셨습니다.
부끄러움이 없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람이 양을 키우는 목적은 한결같습니다.
털과 고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양의 영광은커녕 그 생명조차 도무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는 당신의 영광을 우리의 영광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선한 목자들도 간혹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를 잃고 버려진 양들의 형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끈 떨어진 조롱박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막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참으로 선한 이는 여호와 밖에 없으니 선한 목자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에게 영광으로 덧입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참으로 선한 목자는 죽어도 양들을 버리지 않는 목자입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은 깊은 밤, 들판에 버려진 양들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목자의 부활은 양들의 안전이요, 영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의 다시 살게 하시고, 영원히 살게 하시는 영광을 소망하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그러나 그의 모습은 세상이 생각하는 목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양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신 목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를 증거합니다.
(요 1:29) 『...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어린 양의 모습으로 양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의 모습은 목자 없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다른 양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에게는 여느 양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강함이나 아름다움,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흠이 없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것이 다른 양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입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옛날 이스라엘은 양을 택하여 제물로 삼았습니다.
흠이 없어야 했기에 어린 양이 제격이었습니다.
그 양이 죽음으로 다른 모든 양은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 양이 흘린 피로 백성의 죄를 씻었습니다.

세상의 목자들이 설혹 양들을 위하여 그 목숨을 버린다 할지라도 그가 죽음으로 다른 양들이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단지 양들과 함께 죽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의 죽음은 곧 양의 죽음, 모두의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어린 양으로 우리에게 오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사 53:5-8)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의 고난은 우리의 평안을 위함입니다.
그가 수치를 당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흠이 없는 어린 양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한 목자로 살았고 또 죽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 양들을 사랑하시는 선한 목자, 여호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그때에는 목자의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가 다시 오시면 이제는 당신의 양 무리와 당신의 것이 아닌 양 무리를 구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양 무리를 하늘로 올리시고, 영원히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계 7:16-17)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은혜, 두려움 없이 평안한 은혜, 부끄러움 없는 영광의 은혜로 덧입히실 것입니다.
다윗의 노래가 우리의 찬송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가 베푸시는 이 은혜가 하늘에서는 물론이요, 땅에서도 당신의 사랑하는 양들에게 풍성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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