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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 .부활 여섯째 주일(20090517) 믿음의 씨, 사랑의 열매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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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5월 11일 (월) 10:41:48
최종편집 : 2009년 05월 11일 (월) 15:42:35 [조회수 : 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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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여섯 번째 주일(20090517)
성서일과/ 행 10:44-48; 시 98; 요일 5:1-6; 요 15:9-17
본문/ 요한일서 5:1-5
믿음의 씨. 사랑의 열매

   
      (요일 5:1-5)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긍휼히 여기심이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주 주신 말씀의 요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열매가 있어야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가 많은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열매 세 가지는 성령의 열매, 기도의 열매, 사랑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성령을 따라 행하고, 믿음으로 구하며,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거기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 그 열매는 어떤 것인지를 다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믿음으로, 사랑으로 무장하여 승리하는 성도를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롭다는 것...

어떤 교회에 새 목사님이 부임해 왔습니다.
새로 오신 목사님은 설교를 아주 잘 하신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이 얼마나 설교를 잘 하실까 기대를 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설교 내용도 좋았고, 음성도 좋았습니다.
성도들은 다음 주에는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하실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도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 설교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 주일이 지나자 교인들 중에서 목사님의 설교가 매일 그 타령이라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 주가 지나자 거의 모든 교인들의 입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매주 새로운 것이 없고 매일 같은 말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목사님의 설교를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매주 같은 설교를 다시 듣기가 괴롭다는 불평이 공공연히 나돌았습니다.
개중에는 장로님들을 찾아가 목사님을 바꿔야 한다며, 장로님들이 책임을 지라며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인들을 달래기에 지친 장로님들이 마침내 감리사님을 찾아가게 되었고, 감리사님은 날짜를 정하여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감리사님과 목사님 그리고 교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감리사님이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매일 똑 같다고 하셨는데, 지난주에 하신 설교의 본문은 무엇입니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한 사람도 본문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같은 설교를 세 달이 넘게 들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 본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감리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설교하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거 뭐 서로 사랑하라... 그런 것이었는데...’
교인 중에 몇몇이 우물거리며 대답을 했지만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감리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며 사셨습니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감리사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늘 새로운 설교를 하고 계십니다. 기억되지 않고, 행해지지 않는 설교는 백번을 되풀이해도 여전히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설교를 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일과는 다릅니다.
소설은 새로운 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지만 설교는 다른 것입니다.
설교는 이미 주신 말씀을 다시 전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모든 말씀이 새로울 따름입니다.
아직 행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이 말씀처럼 자주 설교되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겹다 할 정도로 되풀이되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늘 새로운 것은 아직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해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만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듣는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늘 듣던 그 말씀이 항상 새로운 말씀으로 들릴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들을 때, 말씀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인하여 마음을 찢을 때, 늘 듣던 그 말씀, 익히 아는 것 같았던 그 말씀이 전혀 새로운 말씀이 되어, 내 안에서 능력 있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찌르고, 쪼개고, 감찰 하는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말씀의 힘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이 앞에, 다른 누가 아닌 나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 앞에 내가 쪼개지는 아픔이 있고, 내가 드러나는 부끄러움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 새로운 말씀이 되어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말씀대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짓과 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죽입니다.
말씀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불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낡은 것으로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 거짓과 교만과 불신에 가득 차서 말씀을 부인하고 있는 나를 말씀 앞에 마주 세워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되고, 믿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학문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사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몽매한 제자였습니다.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내뱉는 허풍이 심한 사람이었고, 혈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가장 외로울 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대답 하나로 예수님의 많은 제자 중 으뜸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믿음 외에 달리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힘도 지식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기도의 열매를 맺는 믿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이었습니까?
      (시 22: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나를 삼키려는 사나운 사자의 입에서, 나를 넘어뜨리려는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실 분은 주님 외에 달리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에게 피하며, 그에게 의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시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하나님은 곤경에 처한 자를 멸시하지 않는 분입니다.
귀찮다고 외면하는 분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자의 호소를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구원 얻었음을 잊지 말고, 마지막 때까지 이 믿음 지키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1] ....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면 억지로라도 그 명령에 복종하게 됩니다.
불복하였을 때의 진노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면 그 명령에 즐거이 순종하게 됩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마 22:37-40)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둘이라고 하시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난주 주신 말씀도 그랬습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함께 그에게서 난 자 곧 형제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어서 가장 속이 상하는 때가 언제입니까?
남 보다 공부를 못해서...
남 보다 키가 작아서...
남 보다 못 생겨서...
그런 것들도 속이 상하는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정작 참으로 속이 상하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른 부모들처럼 못 해줘서 속이 상합니다.
잘 먹이지 못해서, 잘 입히지 못해서, 뒷받침을 잘 해주지 못해서...
정말 속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부모의 탓이지 자식의 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자식들이 서로 싸울 때 속이 상합니다.
형제 사이에 의리가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여럿 가운데 하나라도 잘 되면 나머지 모든 자식들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사이에 의리가 없는 모습을 보면 정말 속이 상합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못 나서 속이 상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더욱 사랑해 주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당신이 부족하고, 무능해서 속이 상하는 법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고, 민물이 다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 10: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그러나 천사도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 자녀들이 화목치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당연히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 요한복음의 말씀도 그것입니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계명은 약속이 있는 계명입니다.
주님의 이 계명에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
     (요 15:16-17)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 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 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으로 주를 기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그 기뻐하시는 중에 주시는 은혜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서로 사랑하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 그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얻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이깁니다.
이기는 힘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믿는 주님은 이미 세상을 이기신 분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요 16: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아버지께로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원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을 이기었다고 함은 무엇입니까?
요한 계시록 6:1 이하에 보면 어린 양 예수가 일곱 봉인을 떼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째 인을 떼니 흰 말을 타고, 면류관을 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기는 자였습니다.
      (계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그가 이긴 것이 무엇입니까?
어린 양이 인을 떼는데 차례로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을 탄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붉은 말은 전쟁과 살육입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와 환란입니다.
      (계 6: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검은 말은 흉년이요, 기근입니다/ 곤궁함과 부족함입니다..
      (계 6:5-6)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 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청황색 말은 죽음입니다/ 피할 수 없는 죄인의 결국입니다.
      (계 6:7-8)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세상은 온통 붉고, 검고, 푸른 말을 탄 자들로 가득합니다.
곳곳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온갖 환란과 사고와 질병과 가난 그리고 사망입니다.
사자의 벌린 입, 치솟은 들소의 뿔과 같습니다.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이기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김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 사도가 되묻습니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믿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이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간추려 보십시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는 그가 자녀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를 사랑하는 자이며, 그 사랑은 함께 자녀 된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녀 된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대략입니다.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믿음이 씨앗이라면 사랑은 열매입니다.
그러나 씨와 열매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씨가 되고, 씨가 죽어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열매와 씨는 하나입니다.
믿음이 없이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결국 하나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하는 말은 흔히 듣는 것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얼핏 어려운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같은 말입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자는 결국 사랑으로 이기는 자입니다.
믿는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세상에 대하여 이기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사랑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자는 사랑함으로 이기는 자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된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세상에 대하여 승리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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