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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 열매 / 부활 다섯 번째 주일(20090510)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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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5월 03일 (일) 23:12:37
최종편집 : 2009년 05월 05일 (화) 23:04:25 [조회수 : 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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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다섯 번째 주일(20090510)
성서일과/ 행 8:26-40; 시 22:25-31; 요일 4:7-21; 요 15:1-8
본문/ 요한복음 15:1-8
열매 
 
   
(요 15:1-8)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 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 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오늘 성서일과에 공통되게 등장하는 낱말은 열매입니다.
열매는 모든 일의 결과요 소득입니다.
열매를 바라고 나무를 심는데 만약 열매를 맺지 못하면 헛수고를 한 셈이 됩니다.
열매는 나무에만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결국이 있으니 그 끝에 열매가 풍성하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아름다울 수도 있고, 볼품이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결국에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길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자의 열매
오늘 주신 말씀들 가운데 등장하는 열매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들입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첫째, 전도의 열매입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 사도행전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로 구스 사람의 후예들이 사는 곳입니다.
구스 사람이라 함은 흑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빌립은 시종일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일러 준대로 광야 길을 가던 빌립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병거를 탄 채로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도와줄 것이 있을 듯한데 지체가 높은 사람의 곁에 함부로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행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빌립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가까이 다가가, 그가 읽던 이사야의 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그에게 전하였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내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빌립에게 세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빌립은 그에게 세례를 베풀고 난 후 다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성령이 인도하셨고, 빌립은 그에 순종하였습니다.
성령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도록 빌립을 이끌었고, 그에 순종한 빌립의 전도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열매가 어떤 열매입니까?
보통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빌립이 전도한 내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아프리카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세계선교의 첫 열매인 것입니다.
더구나 그의 신분이 어떻습니까?
에디오피아 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사람입니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프리카에 널리 복음을 전할 사람으로 그를 택하시고, 성령으로 빌립을 인도하여 전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 이삭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으뜸가는 목적은 씨를 퍼뜨리기 위함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바로 믿음의 씨앗을 세상에 남기는 일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요, 믿는 자들이 받은 사명이기도 하며, 또한 복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기억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평생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오직 약속의 아들 이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삭을 빼고는 아브라함을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이 그 평생에 전도의 열매 곧 믿음의 씨를 세상에 남기지 못하면 그의 일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갈 4:22-23)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는 자들도 육의 후손을 세상에 남깁니다.
그러나 그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후손이 아닙니다.
믿는 자의 후손은 약속으로 말미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속의 아들은 육이 아니라 성령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갈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전도는 믿음의 씨를 세상에 남기는 일입니다.
이 씨는 성령으로 잉태됩니다.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도들의 고백을 상기하게 됩니다.
또 히브리서에서는 말합니다.
(히 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방불하다는 것은 구별하기 힘들만큼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송장과 같으니 육의 힘으로는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육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낳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사도들의 고백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낳는 믿음의 씨, 전도의 열매는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능력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남. 여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라면 누구라도 그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또 맺어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씨, 생명의 열매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입합니다.
성령께서 길을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할 말을 가르치십니다.
성령께서 듣는 자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마침내 열매 맺게 하십니다.
   
믿음의 후손, 약속의 아들, 전도의 열매를 맺는 이 은혜가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둘째, 기도의 열매입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중 시 22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시편 가운데서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된 시입니다.
   
다윗은 큰 고난 가운데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당하는 고난은 어린 양이 사나운 짐승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시 22:12-13)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는 치료할 길이 없을 지경입니다.
(시 22:14-15) 『[14]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시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나 그는 중단치 않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달리 도울 분이 없기 때문이요, 그의 도움이 없이는 이 환란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 22: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여전히 응답이 없지만 계속해서 간구합니다.
(시 22:19)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그래도 응답이 없으니 그저 이런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의 탄식은 느닷없이 찬송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 22: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자기만 찬송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찬송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에게 닥친 그 지독한 환란이 끝났다는 말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찬송할 수가 있습니까?
그의 기도에 응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 22: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자세히 보면 다윗이 받은 응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전에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으니 이제 사자의 입에서도 구원하시리라는 믿음입니다.
이전에 기도할 때에 응답하셨으니 오늘의 기도에도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입니다.
   
다윗이 믿고 구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곤경에 처한 자를 멸시하지 않는 분입니다.
귀찮다고 외면하는 분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자의 호소를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믿는 자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열매는 믿음으로만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받은 응답은 그의 믿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멸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귀찮다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맺는 기도의 열매는 나를 극한 환란에서 구할 뿐만 아니라 열방이 주를 찬미하고, 만민이 그 앞에 절하게 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 22:27-29)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믿는 자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하는 자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사랑의 열매입니다.
   
요한일서 4장이 이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모름지기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곧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요일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께로 난 자는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자식이 아비를 알듯이 그렇게 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식이 아비를 닮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그 자녀도 사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고,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한 일의 밀알 곧 씨앗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썩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가 십자가에서 죽어 맺힌 것이 믿는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믿는 자가 반드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사랑의 열매는 믿음으로 형제 된 자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약속의 아들은 성령으로 낳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약속의 자녀들로서 성령으로 낳은 자들입니다.
요한이 말합니다.
(요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형제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육의 자녀들에게도 당연히 요구되는 일입니다.
하물며 한 분이신 아버지 안에서 성령으로 낳아 형제 된 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육의 자녀가 후손이 아니요, 약속의 자녀가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육으로 맺어진 혈연의 사랑보다 더 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난 자들 곧 성령으로 맺어진 형제들 사이의 사랑이 되어야 함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 일입니다.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오늘날 전도의 열매를 맺는 사람도 많고, 기도의 열매를 맛보는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 육의 형제보다 영의 형제를 사랑하는 열매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자욱하게 낀 안개와 같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오해와 미움은 발목을 해할 기회를 노리며 도사리고 있는 서리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니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가족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서로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수 안에서만 열매가 열립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하고,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만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전도의 열매, 기도의 열매, 사랑의 열매 그 어떤 열매라도 예수를 떠나서는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살펴본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 맺게 하는 성령, 기도의 열매 맺게 하는 믿음, 사랑의 열매 맺게 하는 사랑이 아니면 열매 맺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만, 믿음으로만, 사랑으로만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과 함께 시작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약속하심으로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육으로 오셨던 예수는 이제 그의 영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니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는 예수 안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
   
믿음은 육의 후손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열매, 곧 하나님의 도우심은 믿음으로 사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가 믿을 때에 육에 속한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나기 때문입니다.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참으로 아름답게 고백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랑도 그렇습니다.
두 말할 일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뿌린 사랑의 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과실의 구체적인 뜻도 사랑입니다.
오늘 봉독한 부분에는 없지만 그 뒤 요한복음 15장 9절입니다.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장 12절과 17절입니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곧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거하면 사랑의 열매 맺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가장 흔하게 쓴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라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초능력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는 헛된 수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는 일, 그것이 산 위에 배를 짓는 것과 같이 어처구니없게 보여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주 안에 있을 때 기쁨이 있습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이 옥중에서 한 말입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누구도 기뻐할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라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라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면 모든 것이 자랑거리입니다.
주안에 살았던 바울이 말합니다.
(고후 6:9-10)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로다
   
그래서 말합니다.
(고후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주 안에서라면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든 주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안에 있어 열매 맺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헛되이 수고하는 법이 없습니다.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자랑거리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 맺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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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98.207.94.224)
2009-05-09 12:09:39
설교비평
본문과는 무관한 설교입니다. 선택하신 본문 요한복음 15장 내용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오늘의 상황에서 어떤 멧시지를 주는지를 전달하려하려는 노력이 보이질 않습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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