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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랭이골의 추억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떤 말이 바른 말이냐를 잘 구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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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3월 16일 (월) 00:48:49
최종편집 : 2009년 03월 16일 (월) 01:00:38 [조회수 : 3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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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랭이골의 추억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의 일입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제5교시가 시작되기 전, 갑자기 급우 한 명이 “우리 치랭이골로 가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치랭이골이란 저희 고향 상동 골짜기에서 태백산을 향하고 있는 깊은 골짜기입니다. 지금은 태백으로 가는 길이 나 있어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때에는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차가 갈 수 없는 막다른 골짜기였습니다. 흐르는 물의 수량도 풍부하고 맑기도 하여서 항상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봄.가을 있는 소풍장소는 거의 치랭이골이었습니다. 여름철에 마구잡이 헤엄을 배우는 곳도, 친구들과 함께 물고기나 가재를 잡아먹으며 놀던 곳도 치랭이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치랭이골은 그 상동골자기에서 자란 사람들의 추억이 아름답게 서린 곳입니다. 그런데 1973년 어느 날의 ‘치랭이골 추억’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마음 아픈 추억입니다.
“우리 치랭이골로 가자!”고 선동한 친구는 그냥 장난삼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곳 저 곳에서 “그래, 가자! 가자!”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 하고 몰려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 이건 뭐야?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저도 같이 몰려나갔습니다. 다 나가는데 저만 남았다가는 그 후에 돌아올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0여명 급우들은 교문을 나서서 1km쯤 떨어진 치랭이골 골짜기의 한 넓은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웃기는 일 아닙니까? 곧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오실 것이고 “너희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집단 뺑소니를 친 것에 대하여 합당한 핑계를 댈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난감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한 친구가 “야, 체육선생 말이야, 여학생들 엉덩이도 만지고 00도 만지더라. 쫒아내야 돼!”... 그러고 있는 데 교감선생님과 또 한 분의 선생님이 당황한 얼굴로 도착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이유가 무언가?”
“체육선생님한테 배울 수 없습니다. 다른 학교로 보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체육선생님이 어쩌구 저쩌구...”
어럽쇼? 거의 모든 학생들이 체육선생님을 규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000(체육선생님) 물러가라!”는 구호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한참 동안 우리들을 달랬지만, 우리들은 더욱 소리 높여 체육선생님을 규탄하였습니다. 두어 시간 그렇게 농성을 하다가 못이기는 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체육선생님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결국 그 선생님은 며칠 후에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습니다.
36년이 지난 오늘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우리 치랭이골로 가자!!”며 장난삼아 뱉은 한 친구의 말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전혀 엉뚱하게도 한 젊은 선생님을 쫓아내는 죄를 저지르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건대 체육선생님은 우리들이 말한 것 같이 그렇게 저질스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깐깐하다고 할까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조금 인기가 덜한 선생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여학생 농구부가 있었는데, 이 선생님이 매일 그 여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학생들과 어울려 장난을 치시기도 했지만 요즘 말로 해서 성희롱이나 그런 데에까지 이른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학생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체육선생님에 대하여 남학생들이 조금은 질투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공부하기 싫어 집단 뺑소니 친 학생들의 규탄에 의해 학교를 떠나시게 된 것이지요. 아마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받으셨는지 모릅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빠져나갈 구실을 찾기 위해 엉뚱하게도 체육선생님을 희생제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 때 저는 그 규탄에 적극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공범이 되었습니다. 핑계이지만, 그 때 “이러지 말자”고 누군가가 말했다면 틀림없이 몰매를 맞았을 것입니다.
36년이 지난 오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며 더욱 뉘우칩니다. 어쨌거나 잘못된 일에 동참한 것이 되었으니 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변을 둘러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의에 항거하거나 잘못된 일을 규탄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과하다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가 잘못해 놓고 그것을 엉뚱한 곳에다 뒤집어씌우는 일입니다.
“법대로 해야지!”
“법은 무슨 법? 내가 이겼는데.”
“그래도 법적으로는 안 되는 거잖아?”
“안 되긴 뭐가 안 돼? 내가 표 많이 받았는데?”
“아무리 표가 많아도 그것은 무효표지. 그리고 본부 점령하고 있는 거 잘못된 거다. 빨리 철수해라.”
“본부를 개혁하자! 본부 직원들 연봉이 5천-1억2천이다!”.....
36년 전,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처신했던 자신을 되돌아볼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 “바른 말을 하면서 살자!”는 각오를 스스로 다집니다.
감리교게시판에 자꾸 글을 올리는 것이 마냥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제가 글을 여러 번 올리는 것에 대하여 좋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고 계신 분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리곤 하는 것은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 때문입니다. 더 이상 비겁하게 처신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저의 부끄러운 기억 속에 있는 철없는 60여명 고등학생과는 다른 공동체입니다. 누군가가 장난친다고 따라가고, 누군가가 선동한다고 “와 와!”하며 부화뇌동하는 집단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떤 말이 바른 말이냐를 잘 구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이 있는 자가 가자고 해도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양심과 용기를 소유한 사람을 주님이 찾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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