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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당회장 제도'가 더 성경적이다변화가 필요한 목사 우위적 직분 제도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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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7월 09일 (월) 10:44:32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21:40 [조회수 : 7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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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부 교회들은 지금 내전 중입니다. 목회자가 욕설을 듣고, 장로가 밀려 넘어지고, 집사가 고함을 칩니다. 그 와중에 양들은 떨며 슬피 울고 있지만, 막상 위로받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일부 대형 교회들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커진 중소형 교회들에도 분규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17년 동안 한 교회에서 충성하시던 어느 권사님은 자신이 섬기던 교회에서 이런 기막힌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허탈해하십니다. 교인들은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파로 갈려 주먹질을 하고 서로 경찰에 고소까지 한 상태입니다.

내분의 일차적 원인은 목회 비리

문제의 발단은 개척 초기에 선한 목동이던 담임 목회자가 교회가 조금 성장하고 나면 사심이 생겨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거의 예외 없이 공금 횡령이나 성추행은 공통적인 단골 메뉴입니다. 그 수법과 핑계는 매우 다양합니다. 교회당 증축, 기도원, 수양관, 학교, 체육관, 교회 묘지, 언론 매체, 사회단체 그리고 기타 선교 지원 등을 빌미로 적당한 사업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은밀하게 공금을 횡령합니다.

그러다가 수십 년간이나 멀쩡히 사역하던 목회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망신을 당합니다. 더욱 심각한 점은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는 인사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큰돈을 챙겼기 때문인지 교회가 갈라지든 말든 양들이 상처를 받든 말든 끝까지 교권을 움켜쥐고 그 자리를 고수하거나, 그도 아니면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합니다.

필자가 잠시 출석했던 한 교회는 개척한 지 20년이 된 중형 교회인데 목회 비리 때문에 거의 5년 정도를 주기로 하여 신도들이 수차례 갈라져 나가 한때는 출석 교인이 900여 명에 달하던 교회가 지금은 불과 150여 명만이 남았습니다.

세상에 한국교회처럼 목회 비리가 많은 나라가 하늘 아래 또 어디에 있을까요. 신도들도 이젠 웬만한 비리에는 아예 면역이 된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교회 공금을 횡령한 목사는 감옥에 가서도 별로 자숙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성추행한 목사는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사과나 보상조차 없이 어느 서부영화의 돌아온 무법자처럼 오히려 강단에서 당당합니다.

더욱 실망스러운 행태는 비리 목회자들을 엄정하게 치리하여야 할 노회나 연회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래서 일부 비판자들은 노회가 아니라 목회자 친목회, 신학교 동문회, 또는 심한 경우 종교 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라고 혹평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교회 주의가 극에 달해 일부 교회들은 정당한 지적에 귀를 막고 자신들이 돼지를 삶든 개를 잡든 제발 상관하지 말라고 도리어 항변합니다. 그러나 발가락만 조금 다쳐도 온몸이 함께 아프고 고통을 받는 법입니다. 모든 교회가 한몸인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울러 분쟁이 발생한 많은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목사가 싫으면 스스로 나가라고 합니다. 그러다 그것이 잘 안되면 난데없이 웬 이단이라고 뒤집어씌우기가 일쑤입니다. 정통의 가면을 쓰고 실제로는 이단만큼 사이비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신도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고 예배당 문을 잠그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일 등은 이제 거의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도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교회법이 바르게 적용되지 않는 무기력한 현실 때문입니다. 장로나 집사가 횡령과 성추행을 하면 즉시 치리되어 해임되지만, 같은 비행을 저질러도 담임목사는 추종하는 맹신도들 뒤에 숨어 끄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세인들이 손가락질해도 자신은 의로운 척 아주 태연합니다. 소위 목사 가운을 걸치고 거룩한 직분을 맡았다는 일부 인사들이 오히려 타락한 세속 정치인들보다 더욱 철면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교회에서 드시는 것으론 많이 부족한지 그 영업 영역을 널리 확장하여 신학교나 선교 단체 그리고 교단 총회의 공금까지 횡령하며 그 쓸데없이 뛰어난 부끄러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슨 복잡한 신학이라도 논해야만 대안이 나올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신학이 아니라, 매우 기초적인 상식의 회복입니다.



과연 성경대로 하고 있나

한국의 보수 교단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성경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올바른 태도이며 좋은 전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과는 달리 일부 교회들은 상식 수준의 성경 원리마저 따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십일조 강요, 건물 중시 신앙, 기복주의 설교, 직분 계급화, 물질 숭배, 그리고 무분별한 은사주의 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입니다. 거기에 추가하여 한 가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목사가 교회의 당연직 당회장이 되는 불편한 관습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공동의회가 교회의 최고 의결 기관이라고 한다면, 당회는 교회의 사역과 행정을 총괄적으로 관장하는 최고 집행 기관입니다. 즉 당회는 다스리는 기관이지 결코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교육을 담당하는 목사가 다스리는 장로들을 제쳐 놓고 당회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매우 부당하고 엉뚱한 일입니다. 이는 마치 교육감이 지역 행정을 관할하는 시장의 업무를 수행하는 격입니다.

본래 장로는 구약시대부터 있었고 신약성경을 보면 '가르치는 장로'에 해당하는 목사의 주요 직무는 예배와 교육이고, 교회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일은 '다스리는 장로'들의 직무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만일 어느 사역자가 이 두 가지 직무를 모두 독점해도 좋았다면, 구태여 성경이 이 두 장로의 직분을 별도로 구분하여 서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장로교회는 다스리는 장로의 직분을 중시한 교회 정치 제도입니다. 회중이 선택한 장로들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한 가장 큰 이유는 중세 교회 부패를 이끈 수직적 직분 제도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는 그 계급적 경직성 때문에 심지어 명백히 드러난 고위 직분자들의 부정과 부패조차 막을 수 없었고 어떤 항명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교권에 조금이라도 대항하는 사람이 있다면 파문은 보통이고 심하면 그 악명 높던 '이단 심문'에 넘겨져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초기 종교 개혁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사항 중의 하나가 중세 교회의 '제왕적 성직자 제도'이었기에 교권의 적절한 분배와 균형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즉 현행 장로 제도의 기원은 역사적으로 '교권 독재 배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목사 왕국이 되어 가고 부패가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목사 당회장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사면 목사답게 소명에 따라 설교하고 가르치고 전도하면 충분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말로는 늘 목회가 너무 바쁘고 힘들다고 하면서 그 외에 다른 직분의 사역에 월권을 하고 한눈을 파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교단 헌법을 보니 "장로교란 교인들이 장로를 선출하여 당회를 조직하고 당회로 정치하는 민주적 제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당회로 정치하는 민주적 제도가 지금처럼 목회 독재에 적합한 비민주적 제도로 변질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연 무슨 근거로 가르치는 직분의 목사가 교회를 다스리는 기관인 당회의 수장이 되어야 하는지 성경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명확히 검증된 바가 없이 관습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신도 사이에 퍼져 있는 '목사가 장로보다 영적으로 우위에 있는 직분'이라고 생각하는 '직분 우월주의'는 매우 비성경적인 사상입니다. 신약 교회 내의 모든 직분은 대등하며 상하의 계급이 없이 단지 직무의 구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사 당회장 제도'는 목사에게 지나친 권한을 주어 교권 독재와 부패에 큰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그 외에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별다른 당위성이나 장점이 별로 없는 제도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장로 당회장 제도'는 교회 민주화의 불씨

교회의 사역은 예배와 교육만이 아닙니다. 전도와 구제 또한 매우 중요하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회봉사나 기타 문화 활동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사역은 전체 직분자들이 효과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여 합심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당회는 이런 사역을 적절히 총괄하고 관리하는 중추적 기관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직무에 따라 '장로는 다스리고, 집사는 구제하고, 그리고 목사는 가르치는 직분'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그대로 시행하면 무슨 특별한 문제라도 생기는지요. 왜 많은 교회에서 목사가 함부로 다스리는 장로의 직무를 날치기하여 월권하고 독주하는지 정말 자세한 해명을 좀 들어 보고 싶습니다.

단지 가르치는 직분의 목사가 무슨 근거로 교회의 사업, 운영, 관리, 행정, 재정, 드리고 인사 등에 깊숙이 관여하며 분수에 넘는 월권을 하는 것일까요. 특히 설교를 담당하는 목사가 마치 개인 회사 사장처럼 교회 재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무지하게 보입니다.

아울러 여러 교단에서 장로가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는 것은 허용하면서 유독 당회장은 안 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논리입니다. 더구나 필요할 때 목사의 비리를 직접 치리해야 할 당회의 수장이 담임목사이다 보니 치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필자는 단순히 개혁 교회의 발생지인 스코틀랜드 교회나 기타 유럽의 교회에서 장로가 당회장이 되는 사례가 있으니 우리도 이 '장로 당회장 제도'를 따라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어떤 역사적 사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 신약성경은 과도하게 교권이 집중된 현행 '목사 당회장 제도'를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장로 당회장 제도'는 교회 정치에 있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장로들이 임기에 따라 당회장이 되는 교회들이 많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지역 노회나 연회는 이런 선한 결단을 내리는 교회들에 대해 과거처럼 또다시 부당한 간섭이나 방해를 하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만, 특수한 여건에 있는 일부 미자립 교회는 목사가 일시적으로 임시당회장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직분자는 당회의 관리를 받아야

그러나 이런 꿈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려면 무엇보다도 신도들은 직분자들을 신중히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거짓된 직분자들이 교회에 기생하여 성직자 행세를 하며 주의 영광을 가리고, 기복 신앙으로 신도들을 오도하며 금전을 수탈하는 악순환을 일거에 종식해야 합니다.

결론을 요약하면 가르치는 직무의 목사직은 다스리는 직무인 당회장을 독점해야 하는 직분이 결코 아니며, 개혁 교회에서는 목사가 당회를 주관하는 관습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당회가 목사를 관리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역사적으로 청교도의 정신을 이은 '회중 교회'는 이미 이런 일을 모범적으로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예배와 교육에만 집중하고, 교회 운영과 관리는 교인들이 선출한 임기직 대표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골적인 부정이나 부패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왜 우리라고 이렇게 할 수 없겠습니까.

거룩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또한,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을 일으키는 법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직분자 임기제'와 '장로 당회장 제도'가 한국교회 갱신을 이끄는 소중한 불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비록 제도 자체가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도 개혁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도 무용론'으로 제도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단지 반개혁 세력의 상투적인 전술일 뿐입니다. 만일 제도를 경시하려면 차라리 중세 가톨릭교회에 그대로 남을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구태여 개혁 교회를 만들었습니까.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 장로님의 낡은 성경책, 은퇴하신 목사님의 허름한 양복, 양화진에 있는 무명인 선교사의 묘비, 그리고 테레사 수녀의 거친 손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들 또한 바르게 세워져서 지역사회에 따뜻한 위로와 소망을 주는 그런 아름다운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샬롬!

"말썽을 일으켜 떠드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일'이나 '다스리는 일'을 경솔하게 맡지 못하게 하려고 소명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교회의 공적 직분을 맡지 못하도록 특별히 주의했다." - 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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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222.64.1.50)
2012-07-17 21:03:26
미국한인교회 목사
언젠가 고국 방문을 하여 동료 목사들이 서로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
어리둥절하여 물었더니 '당회장이라고 길게 부를 것 없이 줄여서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부르기도 편하고 남들도 회장님 대우를 해 주니 좋다'는 설명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속이 썩 개운치가 않았다.

'회장'이란 대 기업체 최고 대표를 부르는 호칭인데 이를 교묘하게 교회의 담임 목사의호칭으로 둔갑시켜 부르니 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이화여대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설문을 낸 적이 있었다.
바라는 남편감의 직업을 써 내라고 했는데 최고 대통령에서 부터 시작하여 목사라는 직업은 맨 아래쪽에 이발사 다음의 서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그 양상이 달라져 목사라는 직업이 고위직과 거의 맞 먹는 서열에 까지 올라 갔다. 이유가 뭘까?
교회 신도수가 증가하면서 대형 교회가 생겨 나고 따라서 교회 재정 형편이 좋아지면서 담임 목사의 파워가 상승한 것이다.

그래서 일이 있건 없건 해외 여행을 연례 행사 처럼 할 뿐만 아니라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을 마치 사유 재산인 것 처럼 맘대로 쓰면서 그야말로 대기업체 회장님 행세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있을수 없는 일이다.
교회 재정이란 신도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정성껏 하나님께 바친 예물인데 그것을 어찌 담임 목사가 맘대로 쓸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부흥회 강사로 왔던 목사가 이민 목회하는 목사들에게 금일봉을 하사(?) 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도대체 그돈의 출처가 어디란 말인가?
누구의 돈인데 해외에 나와서 마구잡이로 돈을 뿌린단 말인가?
이건 회장 행세가 아니라 졸부의 행세라 하겠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회장'의 환상에서 깨어나 당회장 직책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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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8 13:33:11
미국 한인교회 목사들은 좀 낳은가요?
제가 보기에는 더하면 더 했지 나을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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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경 (39.7.54.119)
2014-08-04 01:03:41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부끄러울 게 없으므로 실명 썼습니다)
이 글은 마치 장로 직분이 하나님이 성경에 명하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성경은 권위가 있고 거기에 순복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목사님에게 영적인 권위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잘못된 목회자도 있는 게 문제겠지요. 우리는 지금 민주화시대에 살아서 마치 "민주적인 것이 성경적이다" 라고 착각합니다만, 성경은 하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써 선하게 다스리시고, 그 아래에 권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13:1은 어떻게 볼 겁니까?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고 하는데요. 성경에 나오는 장로, 감독, 목자는 다 목사를 지칭하는 여러 단어들입니다. 사사기 마지막에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십니다. 목회자가 잘못가면 하나님이 친히 치실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어쩔 겁니까? 장로들이 짜고 목회자 쫓아내는 일들이 작은 시골교회에는 일어납니다.그렇기에 집사를 잘 훈련시켜서 세우며, 이건 제 개인적인 사견인데, (전 평신도라 제 생각이 맞다고 보진 않지만) 목회자가 실수하면 그 징계는 하나님 뜻에 맡기는 게 맞는듯 합니다. 예컨대, 그 문제를 두고 전 교인이 기도하면서 주의 뜻 구하며 징계 수위를 제비뽑기로 한다던지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제비뽑기를 많이 했습니다) 거짓으로 누명씌운 경우도 제비통해서 판단한다면 인간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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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경 (39.7.54.119)
2014-08-04 01:06:00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런 논쟁보다는 누군가 잘못했다면 조용히 기도하는 편이 옳은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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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65.49.14.54)
2012-07-19 05:42:22
본질을 호도하는 회의주의자들
덧글에 엉뚱한 사람들이 보인다.

인격도 문제고 제도도 문제다.

만약에 제도보다 사람 인격이 문제라면서 제도개혁을 방관하거나 냉소한다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 인격이 중요하다면...세상은 왜 그렇게 법과 제도를 끊임없이 바꾸는가? 그것은 법과 제도는 사람의 포악한 본성을 다스리고 제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유다. 하나님이 국가와 제도를 주신 이유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제도를 통해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교회법과 교회제도도 사람의 독재적 본능을 다스리고 제어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졌는데 한국교회는 목사에게 권한이 집중되어있다. 목사가 독재하기 딱 좋다.

성경의 정신대로 목사는 설교와 가르침에 전념하고, 장로들이 재정과 기타 행정잡무를 처리하는 것이 옳다. 혹~ 이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재정관리와 집행권은 오직 장로들에게만 주고, 재정감사권은 장로들과 담임목사가 함께 모여서 하는 것이다. 이러면 목사가 재정에 눈독 들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장로들이 짜고 재정을 유용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견제하는 것이다.

담임목사 한명이 교회 모든 일을 전권행사하려는 한국 개신교는 중세의 썩어빠진 교황제, 사제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런 건 개신교 정신이 아니다.

하나님이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를 교회에 복수로 두신 이유는 독재와 부패에 빠지는 인간의 죄성을 제어하고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한이 주어지면 그는 반드시 독재에 빠진다고 보면 틀림없다.

한국 정치도 독재를 넘어서 권한을 나누는 분립정신에 다가서고 있는데 한국 개신교는 시대착오적인 제왕적 담임목사제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모든 교회 문제는 장로들의 잘못이 20%라면 나머지 80%는 대개 담임목사의 탐욕과 독주에서 비롯된다.

헌금은 성도들의 피와 땀이다. 교회재정이 헛되이 쓰이고 있다면 교회에는 아주 조금만 헌금해라. 애초에 헌금하려던 돈은 신뢰할만한 봉사단체에 기부하든지 어려운 농어촌 교회에 송금해는 것이 현명하다. 부패한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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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9 08:28:40
무슨 근거로...
교회에 장로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는 이유가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라고요?

웃기지 마세요. 구약에는 장로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럼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제도적 장치에 의하여 인품의 다스림이라는 목적을 상실한 시대인가요?

제도가 죄성을 다스리기 위함인가요?

인류의 역사에 작은 사회조직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제도는 끊이지 않았는데 그래서 인간의 죄성이 달라졌나요?

제도가 허술했던 고대사람보다 제도가 발달한 이 시대 사람의 범죄율이 더 적은가요?

제도라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사회에서도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불가결한 통일성을 지키게 위함입니다.

성경도 그것을 원칙으로한 제도를 구약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지는 모르지만...

님의 주장은 오류가 분명한 유추에 의한 주장만 있고 성경적 논리적 근거는 전혀 없는 그런 식의 궤변으로 들리니 목사들이 흔히 보여주는 것처럼 누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 받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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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222.64.1.50)
2012-07-17 21:03:26
미국한인교회 목사
언젠가 고국 방문을 하여 동료 목사들이 서로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
어리둥절하여 물었더니 '당회장이라고 길게 부를 것 없이 줄여서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부르기도 편하고 남들도 회장님 대우를 해 주니 좋다'는 설명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속이 썩 개운치가 않았다.

'회장'이란 대 기업체 최고 대표를 부르는 호칭인데 이를 교묘하게 교회의 담임 목사의호칭으로 둔갑시켜 부르니 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이화여대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설문을 낸 적이 있었다.
바라는 남편감의 직업을 써 내라고 했는데 최고 대통령에서 부터 시작하여 목사라는 직업은 맨 아래쪽에 이발사 다음의 서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그 양상이 달라져 목사라는 직업이 고위직과 거의 맞 먹는 서열에 까지 올라 갔다. 이유가 뭘까?
교회 신도수가 증가하면서 대형 교회가 생겨 나고 따라서 교회 재정 형편이 좋아지면서 담임 목사의 파워가 상승한 것이다.

그래서 일이 있건 없건 해외 여행을 연례 행사 처럼 할 뿐만 아니라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을 마치 사유 재산인 것 처럼 맘대로 쓰면서 그야말로 대기업체 회장님 행세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있을수 없는 일이다.
교회 재정이란 신도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정성껏 하나님께 바친 예물인데 그것을 어찌 담임 목사가 맘대로 쓸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부흥회 강사로 왔던 목사가 이민 목회하는 목사들에게 금일봉을 하사(?) 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도대체 그돈의 출처가 어디란 말인가?
누구의 돈인데 해외에 나와서 마구잡이로 돈을 뿌린단 말인가?
이건 회장 행세가 아니라 졸부의 행세라 하겠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회장'의 환상에서 깨어나 당회장 직책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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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8 13:33:11
미국 한인교회 목사들은 좀 낳은가요?
제가 보기에는 더하면 더 했지 나을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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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5 02:02:01
개혁...
예수 없는 교회에서 개혁을 하든 아니면 쿠테타를 일으키든 인간들의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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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dls123 (222.98.132.163)
2012-07-18 09:38:16
댓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각자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세상의 현상에 흔들리지 마시고 사도 바울처럼 참된 그 분을 알아가시기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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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8 13:37:26
사도 바울이 참된 그 분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많은 것을 잘 못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바울의 글을 정경화하는데 이용한 당시의 교부들이 많은 것을 왜곡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예수에 대하여 완벽하게 알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한 얘기죠. 그 후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점점 더 예수의 정신에서 멀어져 갔고요.

인류의 역사 가운데 유일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자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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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7-24 01:48:04
"인류의 역사 가운데 유일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자신뿐입니다"
하시는 선생님의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불가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고 말하지요.
오늘날 모순적 교회의 모습이 예수가르침의 현실적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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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7-17 02:33:16
제가 끼어들 곳이 아닌 것같으나
주제넘게 몇자 남깁니다.
글을 통해서 두분께 많은 것을 빚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미 예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의 재림을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제 부족한 생각으로는 두분이 서로를
보완해 주는 좋은 벗같습니다.
한사람은 개혁파이고, 한사람은 혁명파이고,
한사람은 교종파이고, 한사람은 선종파이고,
현실세계는 둘 다를 필요로 하지요.
하늘도 필요하고, 땅도 필요하고,
빵도 필요하고, 하나님 말씀도 필요하고.
그것이 예수님 가르침이 아닙니까?
저는 그리 믿고 있습니다.
좋은 글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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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7 12:53:35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작은 일이나...
'화평'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입니다. 박선생님, 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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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5 07:41:02
예수 없는 교회, 물론 일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아직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계신 교회들이 더 많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제도권 비제도권과 관계없이 교회 갱신과 자기 개혁은 우리 신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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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6 14:40:04
이사야 49:15 ???
이사야 49:15 의 구절이 지금 여기에 적절한 구절입니까? 성경에 하나님이 백성을 사랑한다는 구절을 가지고 모두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착각하는 기독교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네요.

하기야 욥기에서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구절이 하나님이 한 말인지 아니면 종교적 교만과 위선만 가득한 욥의 친구가 한 말인지 구분도 못하고 벽에다 써서 붙여놓는 교인이 한 둘이 아니니 이사야의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요.

네 얼굴을 가진 생물이 나타나는 이샤아의 도입부조차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게 대부분의 신학자들인데 평교인이 어찌 이사야의 구절을 토막내어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하며 사용하십니까?

교회에서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나 잘못된 해석인지 배우시지 않으셨는지요?

성경에 대한 이해도 바르지 못한데 어떻게 성경적이라는 말을 써 가며 교회의 개혁을 말하실 수 있는지요?

그래서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님이 지니고 있는 성경에 대한 이해도 기독교의 교회를 지금처럼 썩은 내가 진동하는 시장터로 만들어버린 목사들에 의해 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썩은 우물은 단물을 낼 수 없는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부패한 기미가 보이면 그 우물은 단아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정결법도 모두 이런 이치에 따라 조금이라도 부정한 기미가 보이는 자면 온전히 정결케한 후에 유대인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율법의 정결법은 단지 육적인 규례를 말하면서 그 이면에는 영적인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기초적인 해석학과 조직신학만이라도 공부를 하시고 성경적인 개혁 운운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반교인들이 신학을 언급하면 툭하면 하는 말이 신앙과 신학은 다르다는 말인데 신학을 공부하고 나서 그런 말이라도 하여야 하는 것이고 목사들이 기득권을 틀어잡고 있는 현 개신교를 개혁하려면 최소한 목사들보다 성경에 대하여 두 세배는 많이 알고 있어야 그들에게 말빨이라도 서는 것입니다.

목사들 모인 자리에 가서 개혁을 주장하며 성경적이니 뭐니 말하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목사들은 아마도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입니다.

님같은 정도의 생각과 열정만 가지고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부패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종교로 지금까지 수명을 이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구요.

제발 좀 목사들이 교인들을 멍청이 바보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그 위치에서 벗어나란 말입니다.

더 이상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할복자살을 하면서 개혁을 외친다고 할지라도 개혁은 커녕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머리에 담긴 생각이 목사들의 수준을 넘지 못하니까요.

도대체 성경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제대로 보시라구요.

목사들이 거룩한 모습을 하고 수년간 신학교에서 열심히 배우고 사람들 앞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들을 믿지 마세요. 인간이란 다 똑같습니다.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동내 건달처럼 보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님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신앙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입니다.

또 기독교라는 종교가 이천년을 이어져 왔다고 해서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부터 바꾸십시요. 유대교도 그랬습니다. 출애굽을 경험한 자들이 얼마 못가서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기족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자들도 얼마 가지 않아서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조 열왕기 시대에 왕들은 끊임없이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고작 교회 몇 년 다녔다고 하나님은 항상 당신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는 자기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믿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요?

님은 예외라고요?

그런데 님 생각에 성경적인 것이 정말 성경적인 것일까요?

앞으로 30년이 지나기도 전에 우리의 후손은 또 다시 개혁을 운운하며 성경적인 제도가 무엇인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죠.

인간이 만든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제도적 교회는 세상을 본받은 것이어서 세상이 변할 때마다 항상 함께 변하였으니까요.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나서 천주교가 무너졌나요? 아니죠.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렇다면 개혁은 실패한 것 아닌가요? 기독교의 원조인 천주교에 아무러 변화도 주지 못하였는데 그것이 어떻게 개혁이죠? 반역이자 분리일 뿐이죠.

그런 개신교의 교회를 개혁해봤자 달라지는게 뭐가 있죠? 아무것도 없습니다.

개혁? ㅎㅎㅎ

당회장을 바꿔?

치리하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

웃음만 나옵니다.

성경 구절에 이런 내용이 있지요.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성한데가 하나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교회가 그 모양입니다.

그걸 개혁해요? 그런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토록 무너질 것이니 거기서 뛰쳐 나오는 게지요.

교회에서 목사들이 이런 내용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과거의 일로만 가르쳤기에 현재에 일어나는 현실을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겠죠. 따라서 자신에게 적용하며 가르치지 않았으니 뛰쳐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도망나와서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게 살 길이니까요.

지붕위로 도망하고 산위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이게 뭔 말인지도 모르실 것입니다. 하기야 목사들이 문자적 해석만 가지고 교인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놓았으니 예수의 비유를 어떻게 알 리가 있겠는지요. 자기들도 그렇게 배웠으니 그들만을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비유는 비유로 풀어야 하거늘....

그래서 예수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한 것이고 예수 자신이 비유로 말한 이유가 알아듣지 못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는데 무식한 목사들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가르쳐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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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6 18:14:33
역시 또 비약이 심하시군요...
인용된 성경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극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고 인내하시며...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아무리 심하게 부패했어도, 예수님께서 그리 쉽게 떠나시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무엇이 그리 부적절한 인용인지요?

그리고 우리가 '성경적이니 비성경적'을 구분할 수 없고 또한 따질 필요도 없다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성경을 주셨나요. 그냥 하늘에서 직접 천사를 보내 알려주실 것이지...

또한 타인에게 '자의적 해석'이란 말을 하셨는데, 그럼 님의 해석과 주장은 무슨 근거로 자의적이 아닌가요?

하여튼 갈수록 실망을 주시는 논리에 안타까움만 더하는군요. 남의 글을 읽고 개혁을 하라 말라 충고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글에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더 이상의 답글이 없더라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하실 말씀은 거의 다 하신 것 같고... 저나 Picky님이나 피차 분주한 생활 속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길게 확대하고 싶지는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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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170.20.186.188)
2012-07-17 01:22:33
예수님께서 그리 쉽게 떠나시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원래부터 교회에는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패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있었다면 이런 부패가 일어났다는 사실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그 시작부터 제사를 지내려고 성전에 나오는 백성들을 놓고 여호와는 '성전의 앞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사는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가 다시 찾고 회복시키는 사람들은 유대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서들을 통해서 여호와가 회복하는 여호와의 백성들은 부패한 유대교 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란 사실을 님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이런 사실을 전체를 통하여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썩은 우물은 닫아 버려야 하는 것이고 우물이 쓴물과 단물을 동시에 내지 못한다고 가르치는 것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바벨론 유수 기간동안 포로된 자들을 통해서 회복하는 과정자도 마찬가지이고 여호와가 사용하는 서지자들 모두가 하나같이 당시의 유대교의 중심에서 멀리 벗어났거나 뽕밭 주인 아모스처럼 종교적 중심과는 아예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님과 같이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의 당위성을 열정 하나에 의존하면서 그 열정을 성경 구절을 가지고 정당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하지만 그 작업조차 자의적인 성경의 해석일 뿐입니다.

개혁의 주체 대상이 되는 기득권층도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성경을 근거로 당위성을 내세웁니다.

조용기나 김홍도나 전병욱이나 성경을 몰라서 그런 부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일말의 양심이 있고 그들만의 신앙적 열정이 있습니다.

목사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그들이 위치한 곳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그들의 생각을 검증하려고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하며 그 해석에 자신의 생각을 비추어 당위성을 점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과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틀렸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도 님이 인용한 이사야의 구절 같은 것을 가지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보호하는 백성의 일부를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님도 마찬가지로 님을 그런 백성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로 돌아가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패와 패역의 중심에 있던 왕과 제사장들도 모세 오경과 같은 성경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이 보는 내용 가운데 여호와의 백성을 보호하는 여호와의 모습을 자신에게도 적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그들 자신이 여호와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님이 말하는 비약은 님의 기준일뿐입니다. 님이 말하는 성경적 제도를 기득권층의 목사들에게 말해도 그들은 비약이 심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은 자기만의 해석이 있습니다. 누구의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없습니다.

정통을 주장하는 한국의 개신교가 성경적이며 옳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그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적인 흐름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처럼 당시 사회의 주류적 흐름을 가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극소수입니다.

님이 다니는 교회에서 교인 하나 하나를 대상으로 성경에 대하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다른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집단의 무리 가운데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이니 비성경적이니를 구분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다면 하나님이 왜 성경을 주었느냐고요?

거꾸로 반문을 해 보지요.

구약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구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패했지요? 누가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지요?

율법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가르침을 저버리고 종교적 형식주의로 유대교를 만들어간 것이 누구지요? 그리고 결국은 누구에 의해 회복이 되나요?

선지자들을 봅시다. 그들이 구약을 읽고서 다시 유대교의 부패에 대하여 개혁을 이루려고 하였나요?

그들 모두가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 여호와가 가서 전하라는 말만 했을뿐입니다.

역사서에 나타나는 왕 가운데 누가 성경을 통해 성경적이니 비성경적이니를 따지면 개혁을 하려했나요?

'그럼 님의 해석과 주장은 무슨 근거로 자의적이 아닌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님 스스로 찾으십시요. 한국의 썩어빠진 개신교의 우물을 벗어나 느다른 지역과 나라의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며 해석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흐를 추구하는지 비교하면서 님의 해석이 어느 정도로 자의로적인 해석으로 치우쳐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개신교가 얼마나 형편없는 종교의 모습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시란 말입니다.

무너져가는 유대교에 안주하고 잇던 예수 당시의 사람들이도 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민이라는 이유 하나때문에 여호와는 끝까지 자신들을 잊지 않고 비록 부패하였지만 언젠가는 회복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님이 인용한 이사야서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안위하고 위로하였지만 결국에 유대교는 쓸쓸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님은 그들과 비교했을 때에 무엇이 그리 다른가요? 여호와가 님을 그들보다 더 사랑하시나요?

구약시대의 사람들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여호와가 볼 때에 무엇이 그리 다른가요?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진노가 가득하였던 여호와가 이제는 은혜의 모드로 전환하여서 누구나 예수 믿는다고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하던가요?

그게 공의의 하나님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의 글을 읽으면서 논쟁을 하려고 글을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그런 의도로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거의 대부분의 기성 기독교인들은 저의 글에 대하여 심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속하여 글을 쓰는 이유는 가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저의 글을 읽고 자신이 지니고 잇있던 기존의 신앙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님에게 무례한 듯한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제가 쓰는 글의 핵심은 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기성 기독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회의의를 품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영감설이나 무오설 때문에 성경에 대하여 의문조차 감히 입 밖으로 꺼내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사고와 역사적 진실의 문을 열려는 시도가 결코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뿐입니다.

님도 자시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질문해 보십시요. 님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지금까지 모든 것을 수용했습니까?

때로는 목사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넘어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닐 것이고 기성 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도 그냥 넘어갔을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개념에 대하여 이성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당연한 논리로 고정시켜버렸을 것이며 교회의 전통에 대하여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도 그냥 넘어 간 것이 하나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당회장직에 관련하여 현재의 제도에 대하여 반기를 든 이유는 반기를 들어도 그리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만한 문제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기존 기독교의 기초적 교리에 대하여는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님 자신을 바라보란 말입니다. 님과는 달리 기존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 평상시 의문을 지니고 있던 기독교인 가운데 님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들은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을 각오하면서 반기를 들고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표명합니다.

지난 시대에는 이런 용기는 죽음을 부를 수도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하였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동의할 수 없는 기존존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하는 발언들을 용기있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 목사 가운데 롭 벨이 지옥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프랭크 바이올라가 기존 교회의 여러가지 제도에 대한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기술하며 책을 발간하고 스퐁주교가 예수의 대속교리가 잘못된 교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런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이 시대에 발견할 수 있는 있다는 현실이 무엇을 시사하고 있나요?

한국의 복음주의에서는 거부하고 있는 현대신학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모두 다 거짓인가요?

다수의 사본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성경에 대한 사실을 님과 같이 한국의 개신교에 의해 세뇌당한 사람들은 아마도 들어 본 적도 없을 것입니다.

디도서와 디모데서는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라 위조된 편지이고 마가복음의 맨 나중의 십여절은 원본에는 없던 것으로 추후에 삽입된 구절이란 사실에 대하여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베드로 후서도 베드로가 쓴 것이 아니라 위조된 것이라는 것, 요한복음에 간음한 여인을 죄없는 자는 돌로 치라고 말하는 사건은 원래의 요한복음에는 없던 것으로 나중에 누군가가 삽입한 내용이라는 것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창세기에서 아담을 지을 때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는 구절에서 '우리'라고 쓴 이유가 삼위일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히브리어의 특성상 그렇게 쓰인 것이라는 설명을 들어 본 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모세오경 모세가 썼다고요? 님이 인용한 이사야서를 이사야가 썼다고요?

여호수아서는 가나안의 정복을 마치고 열두지파에게 가나안의 땅을 분배하고는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마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사사기에서는 다시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런 내용을 주의깊에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약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담긴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정통주의 유대인들 외에는 모두가 신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 십여년전에 이스라엘의 정부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아스라엘 사람은 아직은 구약이 신화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서이것이 무엇을 뜻하죠?

지금까지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에 의해 주도되던 성서고고학이 주장하던 고고학적 증거에 의문을 던지는 많은 연구들이 1990년 중반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단지 오류이거나 우연일까요?

이스랑레 역사 가운데 가장 강성하며 위대하다고 성경이 말하는 솔로몬의 성전은 그 주춧돌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잇으면 성경 이외의 그 어떤 고대의 문헌에서도 솔로몬이란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시에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어린 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던 기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조사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성경은 말하지만 당시에 그런 기록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이집트를 떠났던 기록은 이집트의 어떤 문헌에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자면 끝이 없지만 님은 아무리 긴 내용을 열거하면서 지금까지 기성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을 보여준다고 해도 한 마디로 거부할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하여도 에큰 문제가 나발생하지 않는 시대란 말입니다.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왜곡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줄 종교적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미화하고 정당화하였던 역사가 그 던진실을 드러내는 시대란 말입니다.

그것을 가부하는 사람들은 딱 하나의 이유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신앙이라는 것이 그대로 허물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은 님이나 님이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말입니다.

양쪽이 다른 것은 딱 하나 - 지배세력의 중심에 있느냐 아니면 외곽에 있느냐일 뿐입니다.

님이 논쟁을 하기를 원치 않는 이유는 바로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생각때문이고 시시비비를 가려서 만일 자신의 틀린 점이 발견이 되면 그것을 바꾸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태도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죠.

님이 부패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님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합니다.

이미 목사들에 의한 주도권이 개신교 교회에 자리 잡은 지가 수백년인데 굳이 그것에 대하여 논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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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203.142.217.231)
2012-07-31 18:05:32
"아주 드문" 저 같은 사람을 두고 하신 글이네요.(드문지 어느정도 있는지 모르지만) 신앙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정독해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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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dls123 (222.98.132.163)
2012-07-17 07:32:04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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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112.163.44.49)
2012-07-14 20:02:53
신성남선생님의 교회를 향한 의의지팡이 너무감동입니다.
위글의 내용이 교회와 너무나 유사합니다.
우리교회는 2천명이 나오는 교회입니다.
재정보고도 수요일 재직회때 소수가 모일때 3-4개월마다
서류로 간단히 보고해버리고
어느구누도 이의를 달지 못하도록
목사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말을자주 씁니다.

이때 까지 재정회개 감사를 받아본적이 없고
목사와 아주 가까운 장로에게
수십억의 재정을 주무르고 있는 우리교회입니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재정을 수년간 보다가 안타까워
상처 받아 지금은 침묵속에 신앙생활합니다.

참으로 저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다니고 있으며
이웃을 섬긴다는 목적으로 땅사고 교회당 넓히고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지
요즘 목사님들은 왜모르는지 모르게어요
그토록 언론과 신문지상을 통하여
지탄을 받아도
교회는 꿈쩍도 않습니다.

다른교회로 옮길려고 하여도 다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맘이 괴롭습니다.

얼마전 TV에 보니까
탈랜트 목사님이신 임동진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열린문교회는 매달헌금을 성도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성도들과 함께 어디어 어떻게 쓸것인지 서로 의논하고
세상을 구제하고 이웃에게 영향력이 있어 전도하는교회
가고 싶어도 여기는 지방이라 갈수도 없고
이지역에는 이런교회없어요 있으면
당장 옮기게습니다.
이런교회 있으면 연락부탁합니다.
물론 없겠지요.............
주여
신성남 선생님에게 하나님이 크게쓰시는
자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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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5 07:45:50
위로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저 또한 과거 어느 지방에 있을 때 교회 선택의 문제로 잠시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힘 내시기 바랍니다. 진실한 목회자와 좋은 교회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아울러 과분한 격려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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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112.163.44.49)
2012-07-15 13:31:26
위로의 마음 감사합니다.
전 항상 의문스러운것은 왜 목사님은 개척초기에는
겸손과 낮아짐을 실천하는데
교회가 성장하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면 교만하고
성도들을 군림하고 제왕적으로 변화하는지....

과거 개척했는 우리부모님은 평생 교회 돈받치고, 시간내어 헌신하였는데
이제 늙고 돈없으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교회로 가라고 하는 말을 함부로하는지
정말로 의문스럽고
그렇다고 우리부모님이 교회의
기득권을 행사하는것도 아닌데
이 불편한 진실 왜그럴까요?

고급차타고
돈많고 학식많고, 사회적지휘가 있는 사람이 교회
등록하면 있는것 없는것없이 간도 쓸게도 빼주는지목회자들
보면 참의문 스럽습니다.

모든성도들이 다알고 있는데
정작 목회자는 모른다는 사실
강대상에서 고함을 치며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라고
왜치는데 정작자신은 하나님의 두려움을 모른다는것입니다.
이런불편한 진실 영원한 숙제일까요
혹 목사님들의 솔직한 답변 부탁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데
왜 목회자는 모를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두렵지 않는지
참으로 이상합니다.

인간이니까? 누구나 잘못을하지만
왜교회는 목사를 위임한다고하는
성경에도없는 위임제도는 왜생겼는지
이 불편한 진실
답변 해줄 사람 없나요.

저는 교회를 욕하고 목회자를 비난하고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지금이시간에도 진실된 교회와 목회자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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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
슬픔 (65.49.14.54)
2012-07-19 05:25:52
마음이 아프군요
버드나무님을 위로합니다.

삯군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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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데이빗 (175.204.95.2)
2012-07-13 17:44:42
어리석게 섣부른 판단을 하시네요
여러 교단에서 장로가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는 것은 허용하면서 유독 당회장은 안 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논리입니다. 더구나 필요할 때 목사의 비리를 직접 치리해야 할 당회의 수장이 담임목사이다 보니 치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어느교단에서 장로가 노회장 총회장을 하는 지 알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일부교단에서 그것도 아주 일부교단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총회 재정을 부담하라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면 목사안수식때 장로가 목사안수를 주게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는데 그게 가당한 일이라고 봅니까? 그리고 그 장로가 목사가 될려면 또 안수를 받아야 되는데 결국 이상한 원리가 되는 데요.
어떻게 보면 장로자신이 목사 안수를 준 사람에게 다시 목사 안수를 받게되는 이상한 원리인 것을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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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dls123 (222.98.132.163)
2012-07-14 07:01:51
글쎄요 말씀대로 라면 오직 목사만이 안수를 줄 수 있다? 이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 같습니다 우린 지금까지 " 이상한 원리" 라고 생각할 만큼 전혀 아무렇지 않게 그냥 받아 들여왔습니다 그러나 위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금과 같은 교회현상이 이런 형식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것도 좀 개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하고 깨어가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무튼 흥미있는 논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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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3 19:42:01
장로가 안수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안수를 너무 신비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안수 자체가 특정인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다스리는 직분'의 장로가 다스리는 직무인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못 될 이유가 없지요... 주신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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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3 19:50:59
그리고 의견이 다르면 어리석은 것인가요?
적어도 공적인 공간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 주시면 좋겠군요. 교단법을 그리 잘 아시는 교양있는 분이 타인의 주장에 대해 함부러 '어리석게'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은 성도로서 조금 과하지 않을까요?

거친 말보다는 그냥 '논리에는 논리로' 차분하게 토론하면 안 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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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3 08:09:26
정말 답답하네.
신약도 없던 시대에 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성경적이고 뭐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했는가?

신성남씨가 교회의 개혁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 것은 칭찬할만 한데 거기에 성경적이니 아니니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꼴이 우습다구요. 교회를 말아먹는 자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모두 제각각의 해석대로, 자기 좋을대로 하고 있는거라구요.

성경을 보세요. 자기 생각대로 하면서 유대교를 말아먹은 작자들이 누군가. 제사장과 왕들이라구요. 종교적으로 지도자나 종교적 열정이 있다는 양반들이 다 말아먹은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교회 헌법,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들먹일려면 성경적이라는 말은 당연히 빼야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성경을 쓴 사람들은 민주주의니 뭐니하는 것은 모르는 시대의 사람들이라구요.

그냥 그대로 놔두세요. 종교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도태되는 집단과 제도가 발생하는 법입니다. 사라질 것은 그냥 놔둬도 사라져요.

어차피 썩을 우물이고 이미 썩기 시작했으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르고 비틀러져서 아무도 찾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개혁은 무슨 개혁? 그냥 싹쓸이 무너져 버려야 하는거지. 예루살렘 성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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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3 09:55:39
Picky님의 논리대로 하면...
어차피 망할 나라이었으니, 예레미아의 사역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너질 것은 무너지더라도, 세울 것은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적'이라는 용어에 예민하게 반응하신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반대로 성경 외에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논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비성경적으로 하자'고 말해야 옳은가요.

차라리 제 글의 논리에 '성경적'이지 못한 내용이 있다면, 그 것을 바르게 지적해 주시고 비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비록 근자에 '성경적'이라는 용어가 자주 남용된다고 해서, '성경적' 원리를 따르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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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3 14:29:03
계속해서 답답한 말씀만 하시네요
역사 가운데 부패했던 종교나 사회가 개혁이 된 것이 얼마나 되나요? 특히 기독교는 부패의 길만 걸어왔지요.

예레미야 이후에 이스라엘이 개혁이 되었나요? 성경 좀 제대로 보시기를. 끝 없이 반복이 되는 이스라엘의 패역과 반역의 역사가 결국은 예수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성경을 통해 보이지 않나요?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부패한 유대교를 놓고 예수가 개혁을 했나요? 완전히 유대교를 배반한 자가 예수입니다.

예레미야가 무슨 사역을 했다고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등 아무리 선지서를 읽어봐도 선지자의 출현 이후에 회복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기미가 나아지나 싶다가는 또 다시 부패합니다.

역사서에 나오는 왕중에 여호와의 보기에 착한 행실을 한 왕이 얼마나 되나요?

성경은 이렇게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같은 인간들의 부패함을 고발하는 책이지 성경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를 개혁하라는 책이 아닙니다.

개혁이요? 루터가 개혁 한번 했다고 하니까 너도 나도 툭하면 개혁 운운하는데 종교가 일단 부패하면 개혁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구요. 모든 것은 태어나면 부패와 소멸의 길을 걷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원래 종교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대중에게 다가가는 법이고 순수한 종교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들은 대중에게서 멀어져 가는 법입니다.

지금 대중화된 기독교의 교회가 흔히들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치리하시는 교회라고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참 순진하십니다.

기독교 초기부터 이미 교회는 예수와 관계가 없는 종교 단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의 교회에서는 이런 말은 하지 않죠. 목사들 밥줄이 끊어지니까. 그런데 역사를 보세요. 사도시대 이후에는 완전히 돗대기 시장에다가 개나 소나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서 몰려든 시정잡재들의 집합소가 된 것이 기독교의 교회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순수성을 지키려던 교회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불행히도 조금이나마 순수성을 지키려던 교회들은 다 사라지고 온갖 잡동사니들만 모아놓은 교회가 지금의 교회의 터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후예들이 개혁을 해요? 그것도 그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성경의 해석을 가지고 성경적으로 개혁을 한다고요? 하면 뭐합니까? 어차피 고쳐봤자 개집인데.

그리고 개혁에 대해서 한 마디 더.

루터가 한 일은 개혁도 아니고 원래부터 루터는 개혁이란 단어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자신들의 조상격인 루터를 숭상하느라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사건은 개혁이 아니라 분리입니다. 영어로도 reformation이라고 부르면서 형태를 바꾸었다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구교 측의 입장에서 보면 반역이교 배교죠. 개신교도 사실 구교의 종교적 제도를 그 형태만 바꾼 것일뿐 그 기본적인 틀이나 교리는 큰 차이가 없어요.

자꾸 성경적이라는 부분에 미련을 두시는데 정말 성경적이라면 민주주의 방식의 투표부터가 반성경적인 것입니다. 비성경적도 아니요 반성경적인 것입니다. 성경적인 선출 방식은 제비뽑기 입니다. 제비뽑기를 하는 그 이면에 영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제비뽑기가 왜 영적인 이치와 부합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님께서 말씀하시는 수준을 보니 그것을 자세히 설명할 공간이 없을 것 같아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오래 오래 사시면서 한국의 교회가 개혁이 되는지 아니면 이전투구식으로 싸우다가 교인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 성경에서 말하는대로 외롭고 쓸쓸한 성읍처럼 될지 지켜 보세요.

대중에게 더 친숙한 교회가 되는데 성공한다면 비록 예수를 되찾지는 못할 망정 회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날이 오고 또 그런식으로라도 회생한다면야 눈먼 사람들이 지금처럼 꾸역꾸역 모여들면서 장사가 좀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메뚜기 한 철이라고 또 시끄러워져서 님처럼 개혁 운운하는 사람들이 또 나타날 것입니다.

그게 역사고 그게 성경이 보여주는 인간 사회입니다.

헛되고 헛된 게 세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대로라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가야지요. 교회라고 다를 바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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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3 14:54:23
결국은 '개혁 무용론'을 펼치시는군요... 유감입니다.
예, 맞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부패를 반복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 변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과거의 개혁이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개혁이 불필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신자들이 바르게 살아야 함을 명령하셨고, 교회는 어두움 속에서도 세상의 소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를 바르게 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저의 말 몇마디로 님의 생각이 바뀔 리는 없지만, 님의 논리대로 말한다면 청소를 해도 다시 더러워지니... 집안 청소를 하지 말자는 말과 같지 않은지요? 이점이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글에 대해 '답답하다'는 식의 무례한 표현은 가급적 삼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군요. 반대로 제가 님의 글에 더욱 큰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마지막으로 교회는 흙에서 흙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순결한 신부가 되어 예수님께로 가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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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4 06:15:27
답답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례라고요?
글쎄요. 아무런 기준조차도 없는 성경의 해석을 가지고 성경적이니 비성경적이니 말하며 자신의 생각이 마치 성경의 의미와 완전히 부합하는듯이 말하는 것이 더 무례한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개혁무용론을 펼친다고 보시는 그 시각이 벌써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개혁은 그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도 분명히 유대교의 부패를 보면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단 한번도 잘못된 것을 고쳐 세우라고 한 적이 없었고 교회를 말할 때에도 제도적인 교회의 의미를 상기시킬만한 그 어떤 내용도 입에담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제도화 시키고 그 안에 직분을 만들고 그 직분에 권위를 주장하면서 그 권위를 가지고 종교적 세력을 키워나간 것은 모두 예수와 사도들의 사후 한참 뒤의 일입니다.
이렇게 제도화된 종교로 기독교를 만들어 나간 뒤에 그 제도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성경을 뒤져가며 어거지 해석을 가지고 자신들이 윰켜쥐고 있는 위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며 합리화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회라는 단어뿐 아니라 그런 개념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목사라는 직분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서리집사니 권사니 성경에는 없습니다. 교단이나 교단 총회 노회와 같은 것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들이 종교를 제도화하면서 세속의 제도를 그대로 본따서 만든 것일 뿐입니다.

선교회니 운영위원회니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민주주의가 기반을 잡고 난 후에 제도장치에 스며 들어온 모습을 그대로 교회내에 수입한 것 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가 지금 교회에서 말하는 장로는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단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직분의 명칭에 가져다가 쓴 것 뿐입니다.

목사라는 단어는 성경에는 존재하지도 않고, 목사가 신학교 나와서 교회를 개척하는 지금의 방법은 성경에는 찾아볼 수 없는 얘기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이미 성경과는 전혀 무관한 것인데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성경적이니 아니니를 따지며 개혁을 운운합니까?

진정한 개혁이란 이렇게 완전히 변질된 기독교의 본질을 되찾자는 노력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썩어질 우물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뜻과 생각이 맞는 사람이 모여서 기독교 역사의 뿌리를 찾아 초기에 교회를 세워나간 사람들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나 역사의 기록등을 연구하며 잃어버린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장로가 당회장을 한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개교회는 교단이라는 상부조직의 하위 조직단체가 되어버려서 목사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교단이 없는 교회는 어떤 영향력을 지니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는데요.

장로가 당회장을 하면 뭔가 좀 나아질 것 같습니까? 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장로입니다. 주위에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있고 그들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에 장로들의 인격과 신앙적 수준이 목사의 반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 자들이 당회장이 되면 목사들 살아남기 힘듭니다. 그나마 목사를 시작할 때에 목숨을 걸고 그 길을 가려했던 각오라도 남아있는 목사들이 낫다는 말입니다.

이런 각오를 가지고 목사가 되어도 결국에는 권력과 명예욕과 돈에 눈이 머는 게 인간인데 세상의 찌든 때를 가지고 살아가는 장로들이요? 게다가 성경 구절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두룩한 장로들을 놓고 교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라고요?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란 이미 그 교회에서 그의 인격과 신앙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다 인정할 수 있는 경륜을 지닌 자를 말합니다. 그냥 투표해서 되는 게 아니라구요.

베드로도 자신을 장로라고 소개할만큼 장로가 되는 것은 열두 제자의 경륜과 맞먹는 신앙적 경륜과 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나 소나 되는 게 장로가 아니라구요.

결국 성경적 장로란 책임과 의무만 주어질뿐 어떤 권위도 주어지지 않는 직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개뿔도 없는 인간들이 교회 오래 다니고 남들의 눈에 보이기에 좀 거룩한 척 한다고 해서 해먹는 이 시대의 장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아내를 거느리고 자식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바울의 말은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가정을 이루어 제대로 제자로서의 길을 바로 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개혁은 다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론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세상에서 툭하면 말하는 그런 개혁이란 단어의 개념을 가지고 개혁 운운하는 것은 틀렸다는 말이지 개혁이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바르고 성경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잘못된 교회론부터 고쳐야 하는 것이지 당회장이 목사여야 하느냐 아니면 장로여야 하느냐는 무늬만 바꾸고 색깔만 바꾸는 일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진보적인 신학자들이 초기 기독교의 형성사와 사본학을 연구하는 사본학자들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무엇을 연구하며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지 보십시요.

그들이 말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회관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경의 해석은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도 차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 겁니까? 개혁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들이 모두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원래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교회, 바울이 생각하고 이해하였던 교회 그리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하수인이 되기 이전의 교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님은 교회가 예수의 신부가 되어서 예수가 다시 올 때에 예수께로 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된 종말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의 신부가 된다는 내용은 성경에는 없고 또 예수가 육신을 입고 다시 이 세상에 오는 종말 또한 성경에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지금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런 지옥을 연상케할 개념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나보고 이단이니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는데 벌써 신학자들과 보수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던 목사들도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꼴통 보수주의자들은 아니지만요.

지금 한국의 보수교파에서 말하는 교리들도 세상에 나온 지가 오래 된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교리도 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사회가 변하면 교리도 변한단 말입니다. 교리사를 공부해 보면 기독교에 대한 교리가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초기의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들은 왜 모두 사라졌죠? 그들도 지금의 기독교인들처럼 예수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을까요? 천만에요. 그들은 예수의 재림을 육적재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교회가 필요없죠. 예수가 다시 오리라고 말하였고 속히 오리라고 했는데 목사, 장로, 집사 따위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들은 예수의 재림은 육적 재림이 아니라 영적 재림이란 것을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왔으니 다시 그 육신이 말씀으로 온다고 생각했죠.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성령의 체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신비주의적인 생각이 그들에게 있었지만 우리가 말하는 신비주의란 그 당시의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죠.

그래서 예수가 승천하고 나서 제자들이 예수가 속히 오리라는 말을 기억하며 예수가 금방 다시 올줄 알고 하늘을 보고 있을 때에 옆에 있던 천사들이 하늘을 왜 쳐다보느냐고 한심스러운 듯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는 육으로 오는게 아니라 영으로, 말씀으로 다시 오는 것을 말하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는 속히 온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 지 이 천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속히 온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예수가 아직도 오지 않는 이유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뻥칩니다. 웃기지 마세요. 성경에는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예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의 재림을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 부흥회하면서 두 손들고 '예수여 오소서!'하며 울고 불고 하는 인간들은 평생 예수만 기다리다가 죽는 것이죠.

개혁하세요. 그럼 얼마 있지 않 또 개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솔로몬이 말한 것이죠. 되풀이 되는 인간의 역사를 놓고 그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좀 곰곰히 생각하시란 말입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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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4 07:32:13
Picky님, 매우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긴 글 고맙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제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군요. 님의 의견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하여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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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
Picky (24.60.52.23)
2012-07-14 08:18:59
그렇죠?
님과 의견이 다르면 그냥 넘어가는 겁니다.님이 개혁하고자 하는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님은 님의 생각대로 그리고 님이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교회의 중심세력들은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기 좋을대로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님은 지금 기득권의 테두리 밖에 있으므로 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님의 개혁이 성공하면 새로운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자들에 의해 님은 개혁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개혁일지라도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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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22.98.132.163)
2012-07-14 11:11:33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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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4 10:33:10
좋은 말씀이십니다...
개혁의 대상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신자들과 교회가 늘 깨어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개혁해야 할 대상이구요.

다만, Picky님은 개혁이 항상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 것으로 보고 계시는 듯 하군요. 그러나 그런 식의 '어리석은 개혁'은 바른 개혁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따르는 삶은 속된 이권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런 바른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의미'이니까요. 저 역시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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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4 16:19:49
말이 나온 김에 말 좀 합시다.
신성남님의 얘기를 듣다 보면 교회에서 흔히 하는 말들, 개혁을 주창하는 자들이 흔히 하는 말들을 쉽게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말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공염불 같은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만 가지고 얘기해 보지요.

님은 개혁의 대상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님은 구구절절 성경적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가 비난하던 대상 그리고 구약에서 여호와가 진노를 발하던 대상 그리고 선지자들이 패역한 자들이라고 말하며 정죄하던 대상이 누구입니까? 모두 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요 당시의 종교적 세력의 중심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백성들이나 지금으로 치자면 아무것도 잘 모르는 평범한 교인도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요? 그들은 문제의 근본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에 어떤 내용이 쓰여있는지 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고 교리가 뭔지 종말론이 뭔지 제대로 모르고 그냥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무지하게 된 모든 이유가 목사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사를 만들어낸 뿌리는 개신교의 교회론에 있고 교회론을 포함한 조직신학에 있으며 그 조직신학을 가지고 만들어낸 교리들에 있습니다. 그런 교회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기독교 초기의 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이고 무엇이 개혁의 대상이지요? 교인들인가요? 아닙니다. 기독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 천년 역사 가운데 부패가 없었나요?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패와 패악질뿐입니다. 그것을 가리고 미화하고 왜곡시켜서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사라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대단한 역사로 그려지고 있지만 겉으로 회칠한 부분을 벗겨놓고 보면 가히 상상하지 못할 패악질만 가득한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를 구약에 비추어 보면 구약의 재판이 지난 이천년 동안 기독교에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교회들의 모습만 보아도 가관이요 갈수록 점입가경입니다. 제가 성경을 신뢰하는 이유는 교회에서 성경이 신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그런 바보같은 소리 때문이 아니라 고대의 사람들의 깊은 안목으로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이런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그것을 아주 심층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정확하게 기술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개혁의 대상은 교인이 아니라 기독교 그 자체란 말입니다.

오늘 뉴스앤조이를 보니 김동호 목사가 예정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에 대해 고신의 신학교수 하나가 김동호 교수를 이단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멍청한 인간이 대학의 신학 교수로 있는 나라가 한국이요 그런 나라의 주류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가지고 성경적이니 개혁이니 운운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신성남님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열정과 순수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지를 말하여 주고 싶은 심정이 있기 때문에 이런 댓글을 쓰는 것입니다.

님이 아무리 성경적이니 뭐니 해도 님이 배운 성경의 지식 그 자체가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나 원래의 기독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말다는 말입니다.

님은 이 말을 부인하고 싶겠지만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체험하고 많은 학자들이 기독교에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어떤 결론에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한다면 지금 님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나 방법 그 자체가 정말로 우물안의 수준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님이 아무리 갸혁을 말하며 순수한 신앙심에서 발로한 열정을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님의 머리에 있느 ㄴ성경에 대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지식은 지금 님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고 동일한 사고의 틀 가운데에서 개혁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결코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개혁이란 단어를 접어둔 채 조심스럽게 기독교라는 종교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취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부터 접근하는지 공부해 보세요. 그들은 기독교의 가장 뿌리적인 문제를 조심스럽게 건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제도적인 문제만을 다루고 있을 뿐 기독교의 교리와 개신교 신학의 근본적인 문제, 특히 조직신학과 관련된 내용에 대하여 거의 입을 다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의 개신교가 이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성숙함에 이르기에 아직은 역사적으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겪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의 태생적 문제를 벗어나기에는 그 문제의식조차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나라의 기독교도 겪지 못했던 천민자본주의에 기생한 개신교의 기형아적 성장이나 지나치게 폐쇄적인 구조속에서 발전한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만연함이 오늘날의 한국의 개신교의 기과한 모습을 낳은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작은 의식이라도 가지려면 김진호 실장의 글이라도 읽어보세요.

좀 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한국의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목사들의 자질이고 그 자질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정책과 그리고 구조와 직접적인 연관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니고 다만 이런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목사들의 수준이 너무도 낮기 때문에 그런 지성적 수준이 낮은 목사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 사회에서 개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듣기 좋은 말만 가르치고 마치 기독교인은 그런 말을 들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것처런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도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잘 될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낙관론은 좋게 말할 때에나 낙관론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를 보지 못하는 자들의 무지의 소치일뿐입니다.

개혁의 대상은 교회나 제도가 아니라 기독교 그 자체입니다.

이미 기독교가 시작할 때부터 예수 없이 시작한 게 기독교입니다.

개혁은 예수를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는 일이 바로 개혁입니다.

당회장을 누가 하느냐의 문제는 코흘리개 애들이나 고민할 문제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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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4 19:47:37
Picky님, 저 역시 '코흘리게 애들' 같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김진호 실장님의 글은 저도 애독하고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만, 비약이 심한 주장으로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시는 그 성숙치 못한 말투는 아직 못 버린신 듯 하여 안타깝군요. 비록 님의 주장에 주옥같은 내용이 분명히 있슴에도 제가 님의 댓글을 이리 평하니 아마 좀 억울한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진정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작은 의식이라도 가지시려면, 타인에게 누구의 글을 읽어 보라고 권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글이나 다시 여러번 읽어 보시라고 저도 권하고 싶군요.

님의 댓글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으나 그냥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개혁에 관심을 둔 분들이 '제도 개혁' 문제만 다룬다는 그 일방적인 오판과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알 수가 없군요. 그 많은 분들의 마음과 의도를 어찌 그리 단정적으로 간단히 폄하하실 수 있는지 그 무모함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분들은 님의 일방적인 주장에 아마 많이 억울해 하실 것입니다.

하여튼 주신 의견은 매우 고마우나, 앞으로는 남들이 나보다 많이 모른다고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타인을 존중하며 댓글을 달아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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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4 23:44:23
존중이란 단어가 기독교에
어울리는 단어인가요? 외식하는 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죠.

님이 말하는 '더 성경적이다'라는 말로 인간의 탐욕을 숨겨 온 것이 바로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 님의 눈에 저의 주장은 단지 억측으로만 보이겠죠.

타닝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기 전에 님이 열심을 내시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존중을 입에 담을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부터 살피시지요. 개독소리 들으며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치욕스러운 짓거리를 성경을 가지고 정당화하며 우월주의와 배타주의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가지고 누구에에 존중을 요구합니까?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잖으면 존중입니까? 그 마음 속에는 온갖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한데.

독사의 자식들이란 소리를 듣던 바리새인들도 사람들 앞에서는 문안 인사 받으며 점잖을 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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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5 07:29:28
고맙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윗글처럼 부드럽게 표현을 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좋은 지적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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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3 10:40:07
추가로, 교회 헌법과 민주주의 또한 성경의 원리에 맞게 만들고 적용해야 옳지요...
특히 '교회 헌법'이야말로 '성경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약 성경은 개인의 삶 뿐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를 중시하고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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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oo (112.168.222.133)
2012-07-12 18:08:46
연합감리교에서는...
정회원 목사를 장로라 부릅니다.
즉 장로를 말함을 교회의 원로가 아닌 목사도 칭할수 있지 않을까요?
가르치는 장로는 말씀을 주로 하는 목사와 행정 및 교회 전반을 치리하는 목사가 함께 동역하는 구조를 생각나게 합니다.
세상에 회사의 창업주와 전문경영인으로 나뉜것을 예를 들수 있지 않을까요? 한번 적용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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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일리가 있습니다. (218.39.77.67)
2012-07-12 07:48:18
감리교회는 실제로 감독을 감독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최상부가 부패하면
아무도 그상황을 개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패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시스템이 아래로 그대로 전달이되고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입니다.
어느누가 150평의 아파트에 자기 자식과 그의 가족을 유학보내고 엄청난 연봉에
잦은해외여행과 은퇴를 앞두고 권력과 재산의 효율적인 확보를 위해 재단설립등의 부패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어떠한 말이라도 할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날수조차 없고 폭압적인 분위기는 봉건사회의 군주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현재까지 아직 남아있는 고대의 세계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왕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간원과 왕족까지 처벌이 가능한 사헌부가 있었습니다. 이 절대권력의 시스템은 이너서클의 부패를 전혀 아무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게끔 만들었기에 상대편이 골키퍼와 수비수가 없는 축구를 하는 것처럼 완전한 부패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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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누굴 말하시는 건가 (112.172.98.50)
2012-07-12 17:33:10
선생의 댓글 중에 "어느누가 150평의 아파트에 자기 자식과 그의 가족을 유학보내고 엄청난 연봉에 잦은해외여행과 은퇴를 앞두고 권력과 재산의 효율적인 확보를 위해 재단설립등의 부패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어떠한 말이라도 할수 있을까요"한 부분은 실제사례를 말하는 건가요. 감리교회 정회원목사로서 처음 듣는 말씀이고 매우 충격적이로군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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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프랑스인들이 (218.39.77.67)
2012-07-12 07:54:30
봉건왕조에 대해
어떠한 방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프랑스사람들이 폭력적이거나 야만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부패의 권력구조를 없애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구에서 바퀴벌레를 없애는것과 같이 잠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확실히 뭔가를 보여줬고 영국은 무서워서 알아서 권력을 국민에게 이양했습니다. 그만큼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부패가 질려버릴 정도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프랑스혁명에서 온순한 프랑스 인들이 사용했던 마지막 방법 '길로틴' 같은 것 말입니다.
부패는 길로틴이 약입니다. 부패의 근절은 목숨까지도 빼았겠다는 자정의 의지만이 가능합니다. 부패의 쪽에서는 어떻게 하면 길로틴을 해체할까 벌써 생각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절대 자기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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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게스트 (101.109.50.13)
2012-07-11 20:02:30
제도가 문제가 아니고 인격이 문제지...
직분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인격이 문제지요.

민주적이고 공평한 제도를 잘 운영하지 못하고

독그같은 인격으로 그 제도를 악용하는 놈이 문제지요.

감리교회에는 장로라는 제도가 없는 감독교회입니다.

그리고...오늘날의 장로와 성서에서의 장로는 차이가 있는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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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 (91.6.239.234)
2012-07-11 16:39:22
노회 또는 교단
오늘 이 글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며칠전 어느 분은 사교 클럽이라 표현하셨습니다.
독일에서 과거 한인 예배당을 20년 다닌 경험에 의하면 "조폭 집단"이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군요. 심복 심기,세 불리기등등 마로 표현하기가---
상식이 안 통하는 집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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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
비성경적 (211.218.76.53)
2012-07-11 09:14:41
신약성경의 장로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는 신약 성경에 명확히 규정된 직분입니다. 여기에 감리교와 장로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어느 교회이든 성경이 구분한 원리대로 분담하여 사역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장로를 오늘의 장로와 동일시 하면서 '성경적'을 운운한다니...
알고 쓰고, 알고 말하시는 것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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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1 09:25:51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신약성경의 장로가 오늘의 무슨 직분과 동일시 해야 하는가요? 설마 현행 목사직만이 신약의 장로라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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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211.187.2.91)
2012-07-11 08:38:51
제도가 사람을 바꾼다면?
제도가 사람을 바꾸고 교회를 바꾼다면 이미 타락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그 때에는 개혁이 이루어진 것 같고, 변화된 것 같지만, 그 바뀌어진 제도에도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생각 악한 마음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요.
제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시키시려고 하시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아버지와 마음을 달리 한 인간의 마음은 본래 하나님을 등진 생각과 마음을 갖고 태어나고 자라기 때문에 아무리 제도를 바꾸어도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제도를 말함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제도도 쓸모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모두 인간의 지식으로 인해 굳어지고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스승이나 부모의 가르침을 머리 조아리면서 듣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기본이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어른들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좋은 부모, 좋은 스승의 표상이 없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지금 이 땅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한 문제가 아닙니다. 개혁이 시급한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면 무엇이라고 하실까?" 고민하면서 기도하면 그 교회마다 가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실 수 있도록 교회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옳다고 떠드는데,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분쟁을 낳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분쟁이 사라지고 문제가 사라집니다. 온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되면,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교회를 평화롭게 하고, 당면한 문제가 순리대로 잘 해결되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교회는 더욱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교회를 개혁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유명하고 능력있는 목사도 이제는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지금이 과도기입니다. 목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마도 지금 이 시대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가르치는 것도 통하지 않을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 뿐만 아니라 성도들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도가 사람을 바꾼다면, 교회를 바꾼다면, 사람을 지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교회를 바꾸는 것이 되어야지요.
장로가 당회장이 되면 당장에 목사의 비리는 사라지겠지요.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없을까요? 사람이 본래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와 같은 심판을 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요? 매번 악하다고 심판하시면 사람을 다 죽여야 하는데요. 그래서 참고 참으시며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셨는데요.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모두가 다 자기 생각에 붙들려 있는 시대이니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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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1 11:17:07
문제가 없는 제도란 거의 없겠지요
그러나 '최고의 제도'는 없어도 '최선의 제도'는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적어도 최선을 다할 의무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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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211.187.2.91)
2012-07-12 08:38:08
문제의 근원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문제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도에서 문제를 찾으면 우리는 평생 제도만 바꿔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항상 최상의 제도를 찾으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제도를 새로 뜯어고치는 것보다 사람이 문제이기에 사람에게 충격을 주고, 사람에게 경고하고, 사람을 각성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당당뉴스의 기사처럼 지금 이렇게 고발하는 것들, 이렇게 경고하는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교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생각있고 깨어있는 자라면 타산지석의 교훈을 귀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깨닫지 못하는 자라면 제도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듣지 못하는 자는 주님께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바꿉니까?
이렇게 신문이 신문으로서의 기능만 잘 하고 있어도 목회자들은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제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목사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제도만 바뀌면 무엇하나요? 시간이 문제이지요. 또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장로가 당회장이 되면 천국이 될 것이라고 여겨지십니까? 거기에는 비리도 없고 정말 깨끗할 것이라고 여겨집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비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마음의 개혁이지요. 그러기 위해 이런 뉴스와 같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글들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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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187.2.91)
2012-07-12 08:32:33
허물지 말고 정면돌파로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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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211.187.2.91)
2012-07-11 08:45:21
지금 제도도 충분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바꾸려고 하고, 사람이 사람을 개혁하려고 하는 것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입니다. 때려죽여도 내려놓지 않는 것이 자기 자존심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누가 바꾼다고 하십니까? 사람은 사람을 절대로 못바꿉니다.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사가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도 성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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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18.39.77.67)
2012-07-12 07:58:08
목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죠
성도는 목사를 두려워합니다. 묶어서 가지말아주세요.
이제 사람들은 이렇게 나쁜것만 목사와 성도를 묶어서 가는것 까지 다 알정도로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안좋은 것들을 너무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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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211.187.2.91)
2012-07-12 08:26:14
아직까지는 그 말씀이 맞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에게서는 점차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였듯이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듣고 부모의 생각 속에서 자라난 아이가 다른 집 아이가 되는 법은 없지요. 교인들은 자연히 담임목사를 닮아가게 됩니다. 옛말에 시어머니 흉보면서 며느리도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목사와 성도라는 것입니다. 목사와 성도는 묶고 싶지 않아도 묶이게 되어 있고, 성도와 성도는 한 교회라는 공동체에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로 분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식이 죄를 지으면 아무 잘못이 없는 부모가 욕을 먹고, 부모가 잘못을 하면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식도 덩달아 죄인 취급받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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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인 (119.204.213.184)
2012-07-11 06:59:12
장로교로 가야 할 사람은 장로교로
교리와 장정을 배울 때 담임자의 직무에 대하여 배웠다. 담임자는 영적책임자, 행정책임자, 교회회의의 주재자 라는 것
왜 사람들은 자꾸 교리와 장정을 바꾸려는 것일까? 감리교인이라면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장로교가 좋다면 장로교로 가면 될것을, 쯔쯔쯔...
난 감리교에서 태어났고, 감리교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감리교가 자랑스럽다.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난 감리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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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dls123 (222.98.132.163)
2012-07-11 16:00:13
감리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긍심을 가진 것은 참 좋습니다만 잘못된 점이 있으면 개선하자는 뜻 아닙니까? 마치 싫으면 장로교로 가라는 안아무인의 자세는 감리교인으로써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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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1 11:13:22
교단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는 신약 성경에 명확히 규정된 직분입니다. 여기에 감리교와 장로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어느 교회이든 성경이 구분한 원리대로 분담하여 사역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감리교의 경우 '감독'이 '다스리는 장로'의 직무를 수행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담임목사직'과 '감독직'의 직무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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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112.166.117.241)
2012-07-11 11:16:39
교단의 특색에 따라서
엄밀히 감리교회는 장로 제도가 없습니다. 감독제이지 그러나 한국 감리교회가 장로교회를 따르다 보니 감리교회의 특색이 사라졌고 장로제도가 감리교회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감리교회의 정회원 목사를 장로 목사로 부릅니다. 그러기에 교단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리교인이 주장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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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1 11:21:34
엄밀히 말하면 감리교에 장로제도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감독이 바로 '다스리는 장로'이고, 담임목사가 '가르치는 장로'이니까요. 단지 호칭의 차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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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인 (119.204.213.184)
2012-07-12 23:57:50
그럼 목사는 없네요.
그렇다면 굳이 목사로 부를 이유가 없지 않나요? 장로로 부르면 되쟎아요? 감독장로, 담임장로. 그것이 성경적이지요. 말이 참 혼란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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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24.60.52.23)
2012-07-11 05:24:59
성경대로?
어떻게 하는 게 성경대로인가요?

다들 제각각 성경의 해석을 가지고 있는데...

장로가 당회장하는 것? 목회가 당회장하는 것? 당회란 것이 성경에 없는데 그게 성경대로인가요? 목사라는 직분 자체가 성경에 없는데 이게 성경대로인가요?

다들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하는거지 뭐...

썩을 놈의 고르반의 규례나 전통만 가지고 우기면 모든게 성경적으로 변하는 게 요즘 교회에서 하는 소리 아닌감?

당회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당회...

그런 게 성경에 어디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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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1 08:15:54
성경에 분명히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가 있습니다...
필요시 교회가 적절한 제도와 직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구제하는 직분을 새로 만든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다만 그런 조치가 성경 원리에 부합되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신약 성경을 보면 모임의 장소인 '회당'이 나오고 '회당장'이라는 직책도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 교회에 다스리고 관리하는 기관인 '당회'가 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회가 '성경에 있나 없나'가 이 글의 논점이 아니라, 가르치는 장로가 왜 다스리는 사역까지 독과점하느냐 하는 점이 글의 주제입니다. 주신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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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112.166.117.241)
2012-07-11 11:20:13
회당장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회당장은 오늘날 교회의 회당장이 아닌 구약 시대의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기에 지역에 회당을 짓고 그곳에 책임을 맡은 자로 엄밀히 신약의 회당장을 성경대로라고 교회를 관리하는 당회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회당과 오늘날 교회는 엄밀히 다른 것입니다. 회당엔 회당장은 있어도 제사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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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7-11 11:27:01
물론 신약의 회당이 지금의 교회와는 크게 다르지요
다만 성도들이 모이는 역활을 했으니, 넓은 의미에서 '유형 교회'의 한 형태로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제가 회당을 언급한 것은 성도들이 모일 때 필요에 의해 어떤 조직이나 직책이 생기는 것 자체가 결코 비성경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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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sgh (115.136.89.79)
2012-07-11 11:19:47
목회자는 목양에만 힘쓰고 교회재정관리는 장로들이 해야됩니다 요즘교인들은
너무나똑똑 합니다 용인 수지에 그런교회가 있는데 물론목사님의 설교말씀도
훌륭 하지만 성도들이 주일날이면 구름떼와같이 몰려드는것을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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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61.36.241.228)
2012-07-13 14:00:30
제가 그 쪽에 살고 있는데요. 교회는 정말 많은데, 다닐만한 교회가 없어서 온 가족이 교회 쉬고 있답니다. 어느 교회인지 언급하신 교회가 어느 교회인지 알려 주세요. 힌트라도..

그런데, 원래 재정관리는 장로들이 하고 목사는 거기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기본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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