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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도 평신도이다개신교에 '성직자'란 없다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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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4월 03일 (화) 08:45:12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22:16 [조회수 : 8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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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대형 교회 원로 목사님의 발언 가운데 '장로를 평신도로 지칭'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에 관심을 두고 존경하던 목사님의 발언인지라 당시 필자는 순간적으로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왠지 불편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목사 역시 '가르치는 장로'로서 본질상 장로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로인데 과연 무슨 근거로 '다스리는 장로'는 평신도이고,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는 평신도가 아닐까요. 또는 신도 중에 오직 목사만이 주의 종일까요.



개신교 직분에 '성직자'는 없다

목사는 별도로 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안수를 받은 특별한 종이기에 성직자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 역시 자신을 그리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임 시에 목사만 안수 받는 것이 아니라, 장로와 집사도 안수를 받습니다. 그런즉 안수 자체가 직분자를 성직자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단지 신학을 전공하였다고 해서 그를 성직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 성경의 '교사'에 해당되는 신학교 교수는 성직자가 아니라 그냥 교수일 뿐입니다. 결국 신학 전공이나 안수가 목사를 평신도가 아닌 성직자로 분류할 근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본래 개신교에 '성직자' 직분이란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성직자인 사제직을 폐지한 이유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개신교의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며, 신약의 사도도 아니고 그리고 중세 교회의 사제는 더욱 아닙니다.

신약 교회에서 목사, 장로, 교사, 또는 집사 등의 직분은 마치 귀족과 평민을 구별하듯 신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역의 구분'을 의미합니다. 신분상으로는 직분에 관계없이 모든 신도가 다 동등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바른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어느 목사라도 자신이 특별한 성직자이며 사도나 제사장이나 사제와 동급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이미 사이비의 문턱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는 거의 예외 없이 목사나 교주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신성시하여 기필코 '성스로운 존재'로 둔갑시킵니다. 그래야만 추종자들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며 그 사특한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간자 역할을 하던 구약의 성직자인 제사장을 폐하셨고, 그 결과 모든 신자가 다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 교회에는 모든 신자가 신분상 이미 다 성직자가 되었으니, 별도로 '성직자' 역할의 직분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신약시대에는 교회 내의 직분만이 성직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신자들이 담당하고 있는 모든 직업이 다 거룩한 소명을 지닌 성직입니다. 도의적인 문제만 없다면 신자에게 천하거나 속된 직업이란 없습니다. 세탁업도 성직이며, 국밥집도 성직이고, 그리고 막노동도 성직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돌보는 것도 성스러운 사역이고, 남은 여력으로 이웃과 사회를 돕는 것 또한 매우 성스러운 사역입니다. 따라서 더는 성속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폴 스티븐스 교수 역시 "성경에 기록된 헬라어 '라오스'라는 단어는 평신도나 성직자의 구분이 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여러분들은 안수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라며 목사와 평신도가 서로 다른 계급의 신분이 아니라 같은 신도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평신도'라는 용어가 중세 교회의 계급적 표현이라서 적절치 않다는 일부의 지적은 매우 타당합니다.

물론 세인들이나 언론에서는 목회자를 가톨릭의 사제나 불교의 승려에 준하는 신분으로 생각해서 성직자로 예우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굳이 도시락 들고 따라다니며 시정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회 내에서는 이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인식이 관습을 바꾸며, 잘못된 관습은 제도와 사상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직분 우월 의식은 비기독교적 사상

작금의 한국교회가 바로 그런 형국입니다. 목사를 특별한 성직자로 생각하여 장로나 교사 그리고 집사보다 크게 성스러운 직분으로 대우하거나, 또는 비록 일부이겠지만 목사 스스로 자신을 신도보다 우월한 신분으로 자처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최근 한기총의 홍 아무개 목사님은 한기총 사태 해결을 위해 법원에서 파견된 변호사에 대해 "일개 집사가 목사를 오라 가라 하느냐"는 식의 발언을 하여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를 '일개 목사'의 발언이라고 무시하기에는 그 파장이 너무 컸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일부 목회자들 속에 돌처럼 경직된 직분 우월 의식이 크게 들통 난 실례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신약 교회에서 회중이 선출한 특정 직분자를 마치 타 종교의 사제, 승려, 교주 또는 무당처럼 대우하여 다른 직분자나 신도보다 우월한 신분에 두는 것은 매우 교권주의적이며 비기독교적인 발상입니다. 성경은 목사, 교사, 장로, 그리고 집사 등을 서로 보완적이며 협력적인 대등한 직분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르치는 직무를 중시하여 '가르치는 장로'를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스승을 존경한다고 해서 스승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지는 않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위임합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를 존경한다고 해서 교회가 그에게 과도한 교권과 함께 지나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필자가 한국교회를 전반적으로 매우 '기형적인 교회'라고 혹평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요즘 예수교가 '목사교'라고 지탄을 받을 정도로 목사직이 심하게 교주화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잘 몰라도, 목사의 가르침이라면 별다른 검증이 없이 무조건 따르는 맹신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실하신 목사님들만 계신다면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무인가 신학교만 해도 무려 200 개가 넘으며, 전국의 신학교들에서 매년 만 명 가까운 목회자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수백만 원만 내면 정규 신학교 학위는 물론 목사 자격까지 만들어 주는 중개업자들이 있고, 보다 심한 경우로는 돈만 내면 며칠 만에 목사로 신분 세탁을 해 주는 곳까지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오늘날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상처투성이로 만신창이 된 것인지 쉽게 설명이 됩니다. 여러 교단의 교세 확장 우선 정책과 이에 따른 신학교의 난립으로 목사의 저급화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보면 직분 우월 사상이 교회를 얼마나 심각하게 해치고, 목사직의 특권화가 한국교회 부패와 타락에 얼마나 안락한 온상이 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단 목사직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장로나 집사직 역시 만성적인 직분 우월 사상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직분자는 근본적으로 '섬기는 자'인데, 어찌 된 일인지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아직도 교인들을 차별하며 목이 뻣뻣한 장로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사랑과 섬김입니다. 그런데 교회 개척 초기에는 주인의 밥상 아래 개처럼 낮아져 하찮은 일도 마다 않던 직분자들이 중형 교회 정도가 되면 정승처럼 행세하려 하고, 나중에 대형 교회가 되면 아예 왕처럼 회중을 휘두르며 군림하려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최고 의결 기관인 공동의회를 아예 동네 반상회만도 못한 '날치기 의회'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재정, 증축, 또는 세습 등 예민한 문제들을 처리할 때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일부에서는 이제 그것도 배부르고 싫증이 났는지 정치권마저 넘보며 그 허망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순진한 신도들을 기만하고 우민화하며 교단 정치에서 잔재미를 톡톡히 보시더니 요즘은 세속 정치마저 아주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하여튼 선거철이 될 때마다 빠짐없이 혼탁한 먹물을 뿌리며 나서는 꼴뚜기들 중에 제대로 된 생선은 하나도 없다고 단정해도 큰 실수는 아닐 것입니다.



성속 구분은 중세적 구습

직분 우월 의식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목회자 납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기총 대표회장은 "원칙적으로 목회자 납세에 반대한다.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이므로 과세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목사가 교회에서 하는 사역은 성스러운 일이고, 생업에 수고하는 교인들의 사역은 세속의 일이라는 이원적 사고에 기인합니다.

아울러 그 봉사 논리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만 봉사하나요. 오히려 진정한 봉사자는 무보수로 헌금과 세금을 내며 수고하는 장로와 집사들일 것입니다.

직업에 있어 성속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극히 중세적인 구습입니다. 목회자 납세 논란은 목사가 성직자라는 중세적 특권 의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공식적으로 성직자를 인정하는 가톨릭의 사제도 세금을 내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많은 외국 교회 목사들도 소득세를 내는데 유독 한국교회 목회자들만이 면세가 되어야 한다는 그 논리는 매우 궁색하기만 합니다.

반면에 성속을 구분하지 않고 사역하셨던 허병섭 목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하월곡동 달동네로 들어가 '동월교회'를 열었고, 국내 최초로 교회에 탁아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목회자의 직분을 버리고 직접 공사판 미장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월곡동 일꾼두레'를 만들어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후에는 시골로 내려가 손수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 공동체 사역에 여생을 헌신했습니다.

이 분의 향기로운 삶 앞에서 성속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고, 누가 감히 '목사는 성직자이다'라고 잡론을 펴며 구취를 풍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자들에게 더는 구분된 성스러운 땅, 성스러운 건물, 성스러운 강단, 성스러운 가운, 또는 별도의 성직자직 따위란 결코 없습니다. 오직 성스러운 소명을 향한 거룩한 사역만이 있을 뿐입니다.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사역자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이교적 직분 우월 사상이 한국교회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특정 직분이 성직자가 되고, 나머지는 평신도가 되는 것은 이방 종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복음 진리에 세워진 신약 교회에서는 직분에 따른 사역의 구분은 있으나 신분의 구분이란 없습니다.

거룩한 교회 내에서 직분을 계급화하는 것은 진리를 대적하는 일이며, 종교 업자들의 밥그릇을 치장하는 기만적 잔수를 따르는 일입니다. 기독교 진리는 단순히 종교의 틀에 가둘 수 있는 그런 유치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를 포장하여 종교화하거나 상업화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직업이 다 고상한 성직이며, 모든 신자가 다 거룩한 소명을 지닌 성직자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전제 아래에서든 장로와 집사가 평신도라는 논리가 옳다면, 목사도 당연히 평신도입니다.

결국, 모든 평신도가 사실상 성직자인 개혁 교회에 별도의 특별한 신도나 성직자란 결단코 없습니다. 다만, 사랑과 섬김으로 가슴이 불타는 '사역자'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샬롬!

"우리는 성경에 세 부류의 사역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고대 교회의 사역자들도 세 부류로 나뉘었다. 장로 계열에서 일부는 목사와 교사로 선택되고, 나머지 장로들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들을 책망하고 지도하는 일을 맡겼으며, 빈민을 돌보고 구제 물자를 분배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위임했다." - 칼뱅(Jean 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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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 (119.205.72.126)
2012-04-13 11:45:18
섬기는 사람은 권한이 없는 종의 신분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권한과 명예마져 독점한다면,
누구를 섬긴다는 것인지 모릅니다.
섬기는 사람이라고 자처한다면, 글자그대로 섬겨야 합니다.
섬긴다는 것은 권한은 교우들에게 드리고 자신은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권한과 명예를 독점하면서, 섬기는 것도 자신들이 하고 있다고
둘러대는 것은 예수님을 욕되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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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
감사합니다 (125.197.206.116)
2016-03-09 01:45:51
귀한 글 감사합니다
명확하게 정리되는 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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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바두기 (24.127.248.25)
2012-12-30 01:57:00
황당한 논리
이사람 여기서도 이런거 쓰고 다녔군요.
인간의 세치 혀가 무섭습니다. 성직자는 종교를 직업으로 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쓰는 호칭인데 인간의 몇마디 말을 거치고 나면 평신도가 성직자가 되고 성직자가 평신도가 되어버립니다. 정말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교회 개혁을 목청높여 외치는 자들이 실제로는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개혁의 대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이 깨어있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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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1
허허 (125.197.206.116)
2016-03-09 01:40:28
이분 최소 글도 제대로 안 읽고 욱하는 것 같네요
교회 내에서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인데 목사만 성직자라고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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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
이진희 (112.105.144.93)
2012-04-21 02:24:48
과객님께 드립니다.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문안을 드립니다.
주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귀하는 저의 글을 읽으시고 크게 네 가지 면에서 오해를 하셨습니다.

첫째: “목사가 성직이 아니라면 혼란이나 큰일이 날까봐 분노를 표출했다.”고 오해하셨습니다.
귀하는 “ ‘목사를 성직이 아니라 하면 큰 혼란이 올지도 모르고 목사의 권위가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큰일이다.’ 라고 하면서 표출하고 있는 심한 분노의 표현일 뿐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1)‘큰 혼란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수많은 오해자를 낳고 공교회 성결의 본질을 크게 훼손할 것을 알고 선포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권위주의 목사들이 크게 타격을 입는 그런 큰 혼란이 아니라 오도된 신자들에 의해 형성될 기독교의 손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2)‘목사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큰일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큰일이 귀하가 오해하시는 바와 같이 목사의 권위가 하락하는 것을 염려하는 일부 목사의 고민이 아닙니다. 그 큰일은 “목사가 성직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과 교회 본질인 성결에 손상을 가져오는 중대 오류라는 것입니다.
(3)“표출하고 있는 심한 분노의 표현일 뿐입니다.”라고 하셨는데 분노는 맞습니다. 거짓말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과 교회의 성결을 손상시키는 비 진리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러나 귀하가 오해하시는 것처럼 일부 권위주의 목사들이 자기 권위의 존립을 위해 반격하는 그런 악의의 분노가 아닙니다. 그리고 “분노일 뿐”이라고 하셨는데 저의 글에 어찌 귀하가 오해하시는 그런 불결한 분노만 있겠습니까? 글 속의 진정한 의미는 진리로 귀정하자는
것입니다.
둘째: “말 꼬리를 잡아서 본인의 감정을 합리화하려고 하지 말고” 라고 오해하셨습니다.
(1)귀하께서 저의 글을 보시고 “말꼬리를 잡아서”라고 하셨는데 크게 오해를 하셨습니다. 제가 잡은 것은 “말꼬리가 아니라” “말머리”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논란의 글에 나타난 말머리는 “개신교 직분에는 ‘성직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머리를 잡았으나 다수의 독자들은 이 말머리를 떠나 권위주의에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2)그리고 “본인의 감정을 합리화 하려고 하지 말고”라고 오해하셨습니다. 신약교회에 성직과 성직자의 존재여부는 본인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리의 여부입니다. 만일 귀하께서 저의 글을 보실 때에 진실로 본인의 감정의 합리화로 보이신다면 저는 귀하께서 단순히 오해하신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신 분’으로 의심하게 됩니다.

셋째: “실재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글의 본뜻을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라고 오해하셨습니다.
(1)귀하께서 “실재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글의 본뜻을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2)그러나 논란의 그 글은 제가 지적한 만큼 중대한 문제가 야기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론하는 것은 본뜻을 이해하는 연습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보신다면, 외람되지만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오히려 제가 귀하에게 “실재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글의 본뜻을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라고 건의하고 싶습니다. 이점 양해를 구합니다.

넷째: “장황한 글과 분노...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라고 오해하셨습니다.
귀하께서 “장황한 글과 분노...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제게 권면하신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제가 비 진리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사욕에 의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으로 오해하셨습니다.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심정으로 진리를 보다 자세하게 설명했을 뿐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반드시 진리 안에서만 맺을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진리여부를 판단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도 실수를 잘 하는 부족한 신자입니다. 제 글에 추호라도 비 진리가 발견되시면 언제나 제게 알려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귀하와 가정과 모든 사역 위에 늘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4.21 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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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9
과객 (119.205.72.126)
2012-04-16 10:26:07
이진희님의 글은 장황한 분노의 표현일뿐
아래 이진희님의 글은, "목사가 성직이 아니다." 라는 말에 대한 심한 분노의 표출입니다.
장황하지만, 요점은 "목사를 성직이 아니라면 하면 큰 혼란이 올지도 모르고
목사의 권위가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면, 이건 큰일이다."라고
하면서 표출하고 있는 심한 분노의 표현일 뿐입니다.
이진희님은 남의 글의 말꼬리를 잡아서 본인의 감정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말고, 실재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글의 본뜻을 이해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장황한 글과 분노...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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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이진희 (112.105.144.93)
2012-04-14 23:05:17
신성남님께 드립니다.(1)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신성남님의 평안을 빕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서 귀하께서 기고하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현재의 교회에 있어서는 안 될 많은 문제점을 잘 지적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귀하의 글이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에 다음과 같이 저의 소견을 올려드리오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귀하는 기독교를 사랑하시고 개선을 위해 순수하게 기고하신 줄 압니다만 본의 아니게 비사실적인 성직자부재론으로 진지하게 독자를 오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귀하는 다음과 같이 신약 교회에 성직자는 없다고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창설과 함께 공존하는 성직자 항존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본의 아닌 거짓말로 독자들을 진지하게 오도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심각한 누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1.“개신교 직분에는 ‘성직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개신교가 종교개혁 이후에 진정한 정통교회의 자격을 가졌다면 거기에는 엄연히 그리고 반드시 성직자가 건재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한 교회에 거룩한 성직자를 세워 거룩한 성직으로 봉사하게 하시는 절대원리는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중세의 부패한 천주교에 부패한 성직자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중세 일정기간 천주교에는 진정한 성직자가 없었다고 말하면 그래도 말이 됩니다. 그러나 엄연히 있는 성직자를 없다고 하시면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그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 거짓말이 되고 듣는 사람을 진지하게 오도하시게 됩니다.

2..“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사역자”라고 하셨습니다.
귀하께서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라고 말씀하신 이 표현은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목사는 성직자이며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 즉 성업에 수종드는 사역자가 바로 성직자입니다. 엄연히 거룩한 직무를 맡은 자를 거룩한 직무를 맡은 자가 아니라 사역자라고 말씀하시는 주장과 정신은 단순히 문제시 되는 목사를 질책하는 수준을 넘어 (1)충성된 목사까지도 경시하여 일반인처럼, (2)목사의 성직까지도 경시하여 세속의 직업처럼 그리고 (3)하나님의 거룩한 일까지도 경시하여 세속의 일처럼 여기는 세속화 풍조를 교회 안팎에 신속하게 촉진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3.“신약 교회에는 모든 신자가 신분상 이미 다 성직자가 되었으니, 별도로 ‘성직자’ 역할의 직분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귀하는 결론 부분에서 .“결국, 모든 평신도가 사실상 성직자인 개혁 교회에 별도의 특별한 신도나 성직자란 결단코 없습니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귀하는 폴 스티븐의 이론에 공감함으로써 성경이 강조하는 진정한 성직과 성직자 개념의 약화와 폐기를 공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1}신약 교회에도 누구나 성직자를 인정할 의무는 있으나 부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의 교회도 거룩하고 성도들도 거룩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도 성직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귀하는 이점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모든 성도가 성직자라고 가르치고 선전하실 의무는 있으며 성직자가 아니라고 하거나 없다고 하실 권한은 없습니다. 귀하는 목사에 대하여도 목사는 성직자라고 가르치고 선전하실 의무는 있고 성직자가 아니라고 하거나 목사 성직자는 없다고 선전하실 권한은 없습니다.
{2}신구약 교회에도 구속사적 진도에 맞는 특별한 성직자를 세우셨습니다.
더 나아가 귀하는 “별도로 성직자 역할의 직분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귀하가 말씀하시는 별도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마 ‘구약의 제사장’이나 ‘중세 천주교의 성직자’ 같은 신분을 말씀하신다면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일반 신도도 성직자라 하시면서 목사의 성직개념을 전면 부정하는 논리는 분명히 반 기독교적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구약이나 신약에 변함없이 성직자를 세우시되 구속사의 진도에 따라 구별된 성직자를 세우셨습니다.
구약에서 예를 들면 언약사상에 따라 (1)아벨은 제사장들과 그리스도와 모든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예표적 성직자로, (2)노아는 여덟 명을 위해 그리고 모든 제사장들과 그리스도와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예표적 성직자로, (3)모세와 아론은 제사장들과 그리스도와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예표하는 성직자로 그리고 (4)구약의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와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예표하는 성직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신약에서는 (1)예수님은 사도들과 모든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위한 성직자로, (2)사도들은 모든 영적 지도자들(장로, 목사, 감독)과 성도들을 위한 성직자로, 그리고 모든 영적 지도자(장로, 목사, 감독)은 성도들의 모범을 위한 성직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사에 세워진 주의 종들이 구약과 신약에도 구별되고 예수님과 사도와 목사도 구별된 성직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와 일반 성도도 구별된 성직자입니다.
{3}신약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가 분명히 구별된 직업이 있습니다.
일반성도가 성직자라면 목사도 성직자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와 목사가 어떤 구별이 있겠습니까? 목사와 일반성도가 다음과 같이 구별되므로 목사를 특별히 성직자라 부르는 것이 합당합니다.
[1]목사는 교회의 책임자로 세움 받음이 일반성도와 다릅니다.
[2]목사는 교회의 대표자로 세움 받음이 일반성도와 다릅니다.
[3]목사는 교회의 목양자로 세움 받음이 일반성도와 다릅니다.
[4]목사는 교회의 감독자로 세움 받음이 일반성도와 다릅니다.
[5]목사는 교회의 헌신자로 세움 받음이 일반성도와 다릅니다.-목사는 몸과 마음과 시간, 공간, 재간, 품위, 재물, 직업 전체를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바쳤습니다.
[6]목사는 교회의 직업자로 세움 받음이 일반성도와 다릅니다.-목사는 오로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위해 풀타임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 장로, 목사, 감독은 교회의 책임자로 동일직의 세 기능을 따라 호칭한 것임: 목사는 목양기능, 장로는 대표기능, 감독은 감독기능)

4.귀하는 신약 교회에 불필요한 성직자를 거론하면서 신약교회에 있는 올바를 성직자까지 없는 것처럼 오도하셨습니다.

{1}귀하는 구약의 제사장들을 들어 신약교회에 이런 성직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귀하는 “개신교의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약의 성도도 구약의 성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구약에는 성직자가 있고 신약에는 성직자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구약의 성도는 있고 신약의 성도는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거룩한 백성과 거룩한 성직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구약에서 사용하신 성직자이고 신약의 목사들은 신약에서 사용하신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성업을 동일한 성직으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성직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적 성직 수행 방법이 아니라고 신약에는 성직자가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그리고 구약적 방법이 아니라는 방법의 이질성으로 신약의 건재하는 성직자 개념을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
{2}귀하는 신약의 사도들을 들어 신약교회에 이런 성직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을 성직자로 인정하시고 신약의 목사들을 성직자가 아니라고 하는 귀하의 논리로 보면 신약의 사도들도 성직자가 아니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나 귀하께서 “개신교의 목사는 ... 신약의 사도도 아니고”라고 하신 것을 보면 사도들을 성직자로 보신 것 같습니다.
만일 신약의 사도들은 성직자인데 목사들은 성직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성직자의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들은 예수님이 세우셨고 목사들은 사람이 세웠다는 것입니까? 비록 외형적으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인준하신 성직자가 아닙니까? 비록 목사들이 사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어도 둘 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수종드는 성직자임에는 동일하지 않습니까?
만일 사도들은 성직자이고 목사들은 성직자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사도시대를 끝으로 성직자 없는 일반성도의 사역자들에게 거룩한 교회를 맡겨 놓으셨다고 해야 될 것입니다.

{3}귀하는 중세 천주교의 사제들을 들어 신약교회에 이런 성직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목사가 본래 교회에 있어서는 안 될 부패하고 불필요한 중세 천주교의 그런 성직자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목사 본연의 진정한 성직자 신분까지 박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 귀하는 비성경적인 성속일원론으로 교회의 성결본질을 진지하게 손상시키셨습니다.

귀하는 “한기총 대표회장은 ‘원칙적으로 목회자 납세에 반대한다.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이므로 과세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이는 기본적으로 목사가 교회에서 하는 사역은 성스러운 일이고, 생업에 수고하는 교인들의 사역은 세속의 일이라는 이원적 사고에 기인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귀하는 성속일원론을 주장하시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뿐만 아니라 귀하는 다음과 같이 성속일원론의 사상을 묘사하셨습니다.
“세탁업도 성직이며, 국밥집도 성직이고, 그리고 막노동도 성직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돌보는 것도 성스러운 사역이고, 남은 여력으로 이웃과 사회를 돕는 것 또한 매우 성스러운 사역입니다. 따라서 더는 성속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1. 성경은 일반 직업을 한 번도 성직이라고 호칭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대통령직으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귀하가 제시한 세탁업, 국밥업 그리고 막노동 등 그 어느 것도 교회 밖의 직업을 성직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만일 귀하가 교회 밖의 모든 직업이 다 성직이라 하시면 하나님의 신령한 성직을 세속 직업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신령한 성직을 인정하면 세상의 모든 직업을 성직으로 평가 절상하는 것이 되니 이 무서운 사상을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일반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생명을 구하는 신령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명을 전제하여 성직이라는 것이지 막노동하는 직업자체를 성직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결하고 경건한 성도가 도의적 책임이 없는 양복점, 철물점, 과일점, 목축업 등을 경영한다 해도 그런 직업들을 성직이라 할 사람은 귀하와 귀하를 지지하는 분들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2.신약에는 성속의 구별이 없다면 모든 세속 직업이 거룩하여졌거나 아니면 교회의 성직이 세속 직업이 되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귀하의 논설을 통해서 볼 때 귀하는 분명히 기독교 신앙인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거룩한 성직을 신약에서는 세속 직업과 같게 하시기 위해 거룩함을 제거하심으로써 성속의 구별이 없게 되었다고 주장하시지는 않으실 줄 압니다.
그렇다면 귀하의 주장대로 성속의 구별이 없다면 모든 세속 직업이 이미 거룩한 직업으로 전환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모든 세속 직업에 거룩함을 부여하셨습니까? 귀하는 아마도 신약의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됨으로써 모든 직업도 동시에 왕 같은 제사장처럼 거룩하게 되었다는 논리를 제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세속 직업이 성업으로 전환된 근거를 주지 않고 오히려 성도가 세속 직업을 도구로 취사선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 것으로 교훈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의 장막업이 거룩한 직업이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성직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교회의 거룩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성직자가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직자인 사도바울이 장막업을 경영했기 때문에 장막업이 성업으로 전환 된 것도 아닙니다.

3.귀하는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하셨습니다.
귀하의 논리는 하나님의 성결본질과 세상의 세속본질이 동일하므로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는 귀하가 하나님의 성결과 세상의 세속을 구별하면 무의미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직자들과 모 회사의 그리스도인 기업가들의 직업구별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 이유는 둘 다 성직자라는 것이고 두 직업이 모두 성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왜 “그동안 순진한 신도들을 기만하고 우민화하며 교단 정치에서 잔재미를 톡톡히 보시더니 요즘은 세속 정치마저 아주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까? 귀하의 논리라면 세속정치도 성직이 아닙니까?
일반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생명을 구하는 신령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명을 전제하여 성직이라는 것이지 막노동하는 직업자체를 성직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결하고 경건한 성도가 도의적 책임이 없는 양복점, 철물점, 과일점, 목축업 등을 경영한다 해도 그런 직업들을 성직이라 할 사람은 귀하와 귀하를 지지하는 분들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4.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직과 성직자는 통속적인 것이 아니고 공인된 것입니다.

성경이 교훈하는 성물, 성직, 성직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확정 하에 개인적이거나 공인됩니다. 예를 들면 레27:28-29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는 말을 하려면 다음의 예와 같이 몇 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선포하신 사물: 예를 들면 모든 믿는 자를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고 선포하셨으므로 믿는 자는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 ‘아주 바쳐진’ 사물: 교회를 통해 바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바친 것은 개인적으로 인정할 것이나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바친 것은 개인적으로 매매가 금지된 것이므로 성물, 성직, 성직자가 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부동산을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교회가 공인하고 쓰되 개인이 매매하지 못하는 경우 그 부동산은 성물이 됩니다.
[2]동일하게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예배당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나 신약의 예배당은 누구나 들어와 기도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되고 둘 다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은 일반 학교 강단과 구별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이 교회에서 따로 세워서 풀 타임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신 사람
[1]예를 들면 바울과 바나바를 전도자로 세우고 교회 장로의 회에서 디모데를 목사로 세워 공인한 사역자를 성직자라고 부릅니다.
[2]오늘날 목사도 일생을 거룩한 교회에 바쳐 오직 교회 일을 하기로 서원하고 장로의 회에서 성직자로 공인하고 세웠기에 타 직업을 가지고 일시적으로 교회에 봉사하는 장로나 집사와 성도들과 구별하여 성직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장로가 자기 직업으로 세탁업을 개업하면서 개 교회의 목사가 와서 하나님께 개업감사예배를 드리고 이 세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더라도 이 세탁업은 여전히 성직이 아니며 그 장로도 그 세탁업이 성직이 아니기 때문에 성직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목사가 성직자로 호칭되는 이유는 [1]풀타임으로 일생 하나님이 인정하신 교회의 성업을 위해 헌신하였다는 것과 [2]하나님이 인정하는 공교회가 그를 성직자로 공인하여 세웠다는 것과 [3]일생의 직업이 세속의 직업이 아니라 교회의 성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결론적으로 귀하의 논리는 유익도 많으나 그 보다 더 큰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1.귀하의 논리에서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점도 많습니다.
귀하의 논설에는 {1}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나 신약의 사도 그리고 중세 천주교의 사제가 아니라고 확인하신 점 {2}신약 교회에서 목사, 장로, 교사, 또는 집사 등의 직분은 마치 귀족과 평민을 구별하듯 신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고 확인하신 점 {3}대량의 무자격 목사 배출이 문제임을 지적하신 점 {4}목사가 성도를 차별하고 성도가 목사를 경시함을 지적하신 점 {5}목사가 세속 정치에 연연함을 지적하신 점 등 교회가 알고 반성해야 할 교훈들도 많이 있습니다.

2.귀하의 논리에서 유익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1}성직자부재론과 성속일원론에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는 논리적 문제
귀하의 논설에서 [1]보편적 성직자만 있다는 말, [2]보편적 성직자 밖에는 다른 성직자가 없다는 말, [3]보편적 성직자 이외에 특별한 성직자가 있는데 없다는 말, [4]목사가 성직자임에도 성직자가 아니라고 하는 말, [5]목사는 사역자이지 성직자가 아니라는 말, [6]성속에 구별이 없다는 말, [7]성속의 구별은 무의미하다는 말 [8]교회 밖의 모든 직업도 다 성직이라는 말, [9]모든 신자가 신분상 이미 다 성직자가 되었으니, 별도로 '성직자' 역할의 직분이 필요가 없다는 말 등을 열거할 수 있는데 이는 귀하께서 남을 속이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만든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논리적 귀결로 판정되는 거짓말로 보입니다. 비록 의도적인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타인을 오도하여 야기될 공교회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2}성직자부재론과 성속일원론에서 결과적으로 세속화를 촉진하는 실제적 문제
[1]모든 성도는 이미 성직자이라고는 언급하면서도 일반 성도보다 현저히 구별된 거룩한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는 목사직에 대하여는 성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고의적 자가당착이며 이는 반성직적, 반교회적, 반기독교적 표현입니다.
[2]직업에 있어 성속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극히 중세적인 구습이라고 함으로써 원래 성속을 구분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3]엄연히 존재하는 성직과 성직자를 없다고 말하면서 세인들의 말을 빌려 교회의 성직과 성직자를 가톨릭의 사제나 불교의 승려에 준하는 신분으로 생각해서 성직자로 예우할 수는 있다고 보며 그런 현상을 별로 고칠 마음 없다고 함으로써 불행히도 세인들 사상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성직을 논하려면 교회에 성직이 있다고 논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존중히 여기는 행위이지만 교회에 성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과 본질을 침해하게 되었습니다.
[5]성직을 버리고 일반 직업에 종사한 H 목사의 사역이 성직자 부재를 증명하는 훌륭한 사례로 제시함으로써 성직과 성직자를 완전히 멸시하는 사상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6]결론적으로 귀하가 “개신교 직분에는 성직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1)사실상 거짓말이며 (2)성경의 교훈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3)성도의 거룩한 신분을 경시하는 것이며 (4)성도의 거룩한 제사장적 삶을 무시하는 것이며 (5)거룩한 교회의 임무를 세속 직업과 동일시하는 것이며 (6)하나님의 본질적 거룩함이 성속의 구별에서 나온 것인데 이를 완전히 폐기하려는 것이며 (7)그리스도의 고귀한 구속의 공로로 얻은 성직을 지극히 경시하는 것이며 (8)결과적으로 목사와 성도들의 성직으로 향상될 공교회의 성화작업에 막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귀하와 가정과 사업과 주를 섬기시는 모든 일들 위에 그리고 함께 나누시는 모든 독자님들 위에 늘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4.13 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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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
신성남 (49.50.206.22)
2012-04-15 07:58:32
이진희님, 주신 의견 잘 읽었습니다 ^^
긴 글로 지적하신 많은 부분에 동의하며 별 이의가 없이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다만 타인의 글을 읽을 때는 단순히 글자 그대로 읽기보다는, 필자가 의도한 바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시면, "아~~ 예수님은 태양 광선이시구나"라고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밝게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속성'을 의미하신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제글에서 "목사가 성직자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 <성직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글을 잘 읽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기사는 제한된 지면에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함축적으로>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여튼 댓글에서 이진희님의 의견을 충분히 밝히신 듯 합니다. 저와 의견을 달리 하시는 부분들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귀한 의견을 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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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
과객 (119.205.72.126)
2012-04-13 11:24:23
교회의 일을 줄여야 합니다. 교회가 경조사에 지나치게 많이 참여하는데,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장례, 결혼, 문병등의 일등에 지나치게 많이 참여함으로써, 말씀과 기도에는 시간을 뺏깁니다.
교회는 경조사나 주로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악습인 경조사에 교회가 간여하거나 참여하는 것을 줄여서 나중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조사는 개인적인 일로 여겨서 교회가 지나치게 그 일에 전념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교회외적인 일은 대폭 줄이거나 없애고, 오직 말씀과 기도 찬양 예배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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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과객 (119.205.72.126)
2012-04-13 11:19:54
신학교가 너무 많고 목사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신학교의 숫자를 줄이고, 목사의 숫자를 줄여야 합니다.
신학교의 입학생수를 정원제로 하지 말고,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최소한만 뽑아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목사도 무급제로 하여서 신학교 지원자를 줄여야 합니다.
전업목사만 유급제로 하고, 나머지 부목사들을 모두 무급제로 한다면,
신학생들의 숫자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영국은 목사의 숫자가 1800명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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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
신학교 (211.117.119.172)
2012-04-22 10:51:39
입학기준을 수능성적 상위 6% 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50명도 남지 않겠지만 그렇게 소수정예로 해야 합니다. 지금은 동네 건달로 할 수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이 목사 라는 말을 하면 피식 웃지 않습니까.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도 엄격해야 합니다. 횡령, 강간.. 아주 별짓을 다해도 목사업무를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체 여기는 조직폭력단입니까? 어떻게 횡령, 강간을 하고도 목사를 계속 할 생각을 합니까. 기독교 멸망은 사실상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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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211.117.119.172)
2012-04-22 10:53:33
우리교회 목사님도 이제 한몫 챙길 생각밖에 안합니다. 이제 5년 남았는데
확실이 스케일은 크더이다. 정말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대도... 큰도둑입니다. 그래도 잡혀가지 않습니다.
도덕이 이 한국교회에 있습니까? 여긴 배트맨의 고담시티 입니다.
범죄의 도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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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
과객 (119.205.72.126)
2012-04-13 11:15:56
대체로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다만 교회의 헌금에 과세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순작용보다, 역작용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교회는 권한과 직무를 이원화해야 합니다.
직분이 높으면, 권한을 줄여야 하고, 직분이 낮은 사람에게 오히려 권한을 많이 부여해야 합니다.
직분과 권한을 독점하면, 교회가 타락합니다.
직분이 낮은 사람이 권한을 많이 가지려면, 민주주의적이라야 합니다.
회의를 통해서, 결의를 하여서, 교회가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결정은 직분이 낮은 사람들의 모임의 결의를 통해서 해야 하고,
직분이 높은 사람은 철저하게 돕고 섬기는 역할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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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신성남 (49.50.206.22)
2012-04-15 08:05:04
헌금에 따른 교회 수입 과세가 아니라, 목회자 소득에 대한 과세입니다 ^^
오해가 있으셨나요. 세법상 교회 법인에 대한 과세는 저도 반대합니다. 다만 본문은 목회자 개인의 소득에 대한 과세를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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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
요나 (1.243.97.145)
2012-04-11 18:52:55
목사님도 평신도이지만 목사직을 맡은 소명을 가진 직분자입니다
목회자가 고생을 하던지 안하던지
아뭏든 간에 목사님들도 직업인으로서 목회자입니다.
그분들을 최소한 직업인으로서 존중은 해드려야 합니다.

선지자 교사 직분자 영적권위자 모든 분들을 구분할게 아니고
예수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종들일뿐
최소한 교회의 운영과 교회의 권위를 지킬 직임자로서는 존중해야 합니다.
장로들이 모여서 목사를 쫓아내는 것은 과하다고 봅니다.
목회자가 중대한 잘못을 하지 않는한 사제로서의 소명은 분명히
그분들의 권위로 지켜드려야 합니다.

시대가 혼란하지만, 잘못된 한국 개신교의 부조리와 비리가 만연하지만
목회자의 직임마저 이런 저런 이유로 흔들어버리면
외려 부패와 왜곡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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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성도 (61.245.168.11)
2012-04-05 12:14:47
다 같은 피조물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목사! 이면서도 목자! 이면서도 성도!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목회하시는 분은 하늘나라 가치관을 이땅에 적용하며 우리와 같이 하늘나라를 만들고, 올라가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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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1
대언자 (116.47.28.22)
2012-04-05 10:22:03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고전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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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1
양수호 (221.143.153.43)
2012-04-04 16:54:02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평신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도"라는 좋은 용어가 있음에도 굳이 평신도라는 차별적 용어를 사용하는 데에서 개신교의 문제는 잉태되었고 은연중에 계급화가 이루어짐으로해서 오늘날 사회로부터 존경이나 동경의 대상이기보다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어진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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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2
과객 (119.205.72.126)
2012-04-16 10:28:58
"성도"라는 용어는 좋지 않습니다. 거룩할 성, 무리 도 짜이고,
개인을 말할 때에는 "성인" "성자" "성녀"라고 해야 합니다.
성인, 성자, 성녀라고 쓰기에는 너무 대단해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성도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교우, 또는 그리스도인 또는 더 참신한 용어를 발굴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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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1
펜과노트 (58.245.167.226)
2012-04-04 14:35:58
기다렸습니다. 잙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렸습니다. 읽으면서 가슴이 시원하고 정신이 또릿해집니다. 아름다운 한국 교회를 꿈꾸며!! 다음 글도 기대하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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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팤 (72.196.235.211)
2012-04-04 10:49:40
잘 읽고 갑니다.
많은 분들이 그리 생각은 하면서도
체면때문에 감히 입밖으로 내놓을 수 없는
문제점들을 논리적으로 잘 지적하셨습니다.
용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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