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예배당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집은 예배당과 꽤 먼 거리였지만 그래도 목회자가 예배당에 나와 있어야 할 것 같아 열심히 출근하듯이 나와 있을 때였다. 사무실에서 일을 보다가 예배공간으로 나와 보니 장의자에 남루한 옷차림의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해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누워 있는 사람을 흔들어 깨워보니 노숙자였는데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술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5-600명가량 나오던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담임목사님이 나를 불러 지금 노숙자가 교육관에 들어와 자고 있으니 그를 깨워 쫓아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교회가 노숙인 같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하는데 쫓아내라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가노숙인들이야 말로 장 먼저 챙기고 함께 했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엄하신 담임목사님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 노숙인을 깨워 좋은 말로 그러나 짜증이 섞인 말투로 그를 내보내면서 내가 목회를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결코 쫓아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그 기억이 난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깨워 이야기를 했다. 어디에 살고 있으며 왜 노숙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뜬금없이 자기가 청년시절에 다녔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문산에 살면서 다녔던 교회인데 그 교회 목사님과 정이 깊었고 사모님과도 가깝게 지냈다는 것이다. 신세 한탄을 하면서 술을 한 잔 마셨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우리 교회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절주절 옛날 이야기를 30분가량이나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측은한 마음도 들고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뭔가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돈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주머니도 빠듯하거니와 돈을 주면 다시 술을 사 마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은 줄 수 없다고 하자 자기를 문산 고향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추슬러 데리고 나가 내 차에 태워 파주로 향했다. 스스로도 참 잘한 일이라며 마음 뿌듯해했다.

그런데 3-40분 정도 달렸을까, 문산 가까이오자 이 사람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안 된다고 하자 그는 투덜투덜거리더니 급기야는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결국 문산 가까운 곳 도로변에 있는 공원에 그를 강제로 내리게 하고는 지갑에서 만 원 짜리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는 만 원이 적다며 다시 화를 냈다. 그 때는 이미 나도 화가 나 있는 상태라 그냥 그를 내려놓고 예배당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참 착잡했다. 눈물도 찔끔 나왔고 핸들을 잡은 손은 부르르 떨려왔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스스로 생각해도 비참했다. 기름 태우면서 문산까지 왔다갔다 하고 이게 무슨 더러운 기분일까, 기름값 생각한다면 차라리 교회에서 돈 몇 푼 줘서 내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가장 분노가 치밀었던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힘겨운 이웃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었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전략조차 없었던 내 자신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이후로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오는 것이 싫었다. 아니, 두려웠다. 가난한 이웃, 힘겨운 삶에 지친 이웃을 이해하는 마음도 없었고,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도와야 할까에 대한 지식도, 전략도 없는데 노숙인들이며 가난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데 솔직히 두려웠다. 그렇지만 한 번의 실패로 두려워 숨어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고 더군다나 손쉬운 선택이라고 해서 천 원 짜리 한 장 쥐어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적잖은 고민을 하였다. 그들의 눈물 어린 하소연에 무턱대고 넘어가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원칙을 세우고 마음을 조금 딱딱하게 먹어야 할 필요도 느꼈다. 실질적인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안목이 생겼다. 여전히 우리교회에 찾아오는 사람에게 돈을 주지는 않겠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그들에게 ‘우리 교회는 돈을 직접 주면서 사람을 돕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했다.

옷이 필요하면 옷을 주겠고 쌀이 필요하면 쌀을 주겠다고 했다. 가끔은 수세미 같은 것을 가져와 팔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너무 과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다 팔아주었다. 잠자리가 없다면 노숙인 쉼터에 연결해 주겠다고 하였다. 가끔은 고향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다고 돈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난감한 경우이지만 어쨌건 돈을 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도하였다. 우리 교회에 복지사업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을 보내달라는 제목으로 몇 년 동안 기도하였다. 또한 우리가 이웃을 위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지 지금은 노숙인들의 재활을 돕는 신학생이 우리 교회에 출석한다. 그 신학생은 주일오후마다 혜화동 대학로에서 열리는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야유회를 갈 때는 얼마 안 되지만 식사비를 찬조하기도 하였고 부활주일에는 삶은 달걀을 준비하여 보내기도 하였다.

그외에도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참여하기도 하였고 또 프로그램을 운용하거나 장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물론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지원할 수 있어서 기쁘다.

같은 지방의 한 교회는 몇 년 전 독거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단다. 출석교인 50명 규모의 작은 교회인데 나름대로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지역의 독거노인을 모셔다가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도 조그마한 것이지만 준비해서 드렸나보다. 그랬더니 이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면서 몇 분이 이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 계시는 노인들이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새벽잠도 없고 하니 새벽기도에 나오셨나보다. 그런데 새벽기도에 오시는 것은 좋은데 기도회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예배당 한 쪽에 마련된 방에 들어가서 노시다 가시겠다고들 하셨단다. 독거노인들이 집에 가봤자 쓸쓸하고 환경도 열악하고 하니까 교회에서 마실 삼아 머무르시는 것을 본 새벽기도회에 나왔던 여선교회 회원들이 안스러워 아침 식사를 차려드리고는 했나보다. 그런데 이게 일상이 돼버렸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여선교회 회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새벽기도회 마치고 빨리 집에 가서 식구들 식사도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 등교도 시켜야 되는데 이제는 노이들이 아침 밥상을 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시게 된 것이다. 결국 노인 중 몇 분은 돌아가시고 또 몇은 이사 가시고 하면서 이 노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서야 드디어 여선교회 회원들은 해방되었다. 그 이후로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독거노인 얘기만 나와도 몸서리를 친다고 그 교회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나름대로 좋은 목회자라고 자부하는 목회자는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남을 돕는 좋은 일을 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러나 막상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스스로에게도 큰 상처가 되고 교인들과 불화하게 되는 경우로까지 번진다.

목회자나 교인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나 혹은 동기가 불순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웃사랑에 대한 개념은 있지만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돕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어떻게 돕는 것이 모두를 위한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어설프게 시작하였다가 낭패를 보면 다시는 하지 말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선한 일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가 교회는 교회 자체의 일에만 몰두하고 매몰된다.

목회자는 신앙, 신, 인간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다보니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경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우리에게 충고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실패하고 실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부디 이웃을 섬기고 이웃과 나누는 선한 일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략을 만들어내는 지혜로움과 선한 일을 악한 목적에 이용하지 않으려는 순결함을 견지하여 교회가 이 시대에 참된 교회로 거듭나는 열매를 거두는 일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검찰신문 2009. 05. 06] “저희 교회가 바로 ‘블루오션’이죠”               * 이 기사는 좋은만남교회 홈피(http://gmmc.wo.to/)에서 당당뉴스 운영자가 가져왔습니다. 성장보다 개성 있는 교회를 꿈꾸는 목사 아담하지만 잘 꾸며진 ‘좋은만남교회’에서 만난 방현섭 목사는 ‘개척가’ 기질이 다분했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던 작은 교회가 이제는 아주 ‘특별한’ 교회가 됐다고 칭찬하니 “나 같아도 작은 교회는 안나가는데… 이런 교회를 안 거르고 나오는 교회 식구들이 더 특이하다 ”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 목사는 출석 교인 20명 남짓한 교회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양식 삼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가 발견한 ‘블루오션’은 작은 교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작은 교회의 이점은 지극히 간단했지만 대형교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이 었다. 교인이 적다보니 예배 끝부분에 교인들끼리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고 중요한 안건에 대해 전교인이 참여하는 회의가 가능하다. 방 목사는 “신학생 시절 예배 후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라고 하는 시간이 너무나 공포스러웠다”며 “이제 매번 보는 얼굴이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며 악수하고 정이 살아있는 예배를 체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무엇보다도 작은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교인 사이, 교인과 교인 사이에 친밀한 직접적 교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남들처럼 시간 내서 특별히 신방을 가지 않아도 그 집 아침 밥상 정도는 금방 알아맞추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우스갯소리도 해본다. “우리 교회 식구 한 명은 다른 교회 100명과 마찬가지죠. 항상 애뜻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정이 넘치는 것 같아요” 그는 정말 작은 교회가 좋은 것일까. 평생 작은 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진심이다”고 답하며 “혹시라도 나중에 교회가 커진다면 분가 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방 목사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회 연합체는 ‘분가선교회’다. 교회가 어느 정도 커지면 분가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성장주의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요즘 개신교의 세태가 조금은 해결되지 않겠냐는 지론이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가 양적 성장에만 죽기 살기로 매달려 있습니다. 성도가 성도를 모르고 목사가 교인을 모르는 교회가 엄밀한 의미에서 과연 교회일까요? 비즈니스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보다 큰 교회를 찾는 현상을 세상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요? 성장제일 주의로 교인들을 희생시키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됩니다” 방 목사는 교인들이 여러 교회에 대해 충분히 판단하고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선택해 출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개의 교회가 있으면 그 중 큰 교회라고 아무 생각 없이 향하지 말고 그 중에 자신의 성향과 맞는 교회가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 목사의 요즘 하루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감리교 감독사태 문제부터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해서 이리 뛰고 저리 또 뛴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앉아있지만 말고 뛰면서 정의를 세우고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며 말을 맺었다. “말로만 구하는 신앙은 너무나 형식적입니다. 이제는 기독교도 말과 ‘행동’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닐까요?”  송범석 기자 이 기사는 '한국검찰신문 / http://www.k-news.kr'에 실린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서열상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낮춤말인 '저희 교회'라는 표현이 교회에 대해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저보다 연세 많으신 분과 대화할 때도 '저희 교회'가 아니라 '우리교회'라고 말합니다. 또 블루오션 혹은 레드오션이라는 개념은 제가 알기로는 경제적인 범주에서 사용됩니다. 저는 경제적 개념을 교회에 대놓고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교회는 상점이 아니고 신앙은 비지니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로 송범석 기자가 작성한 본 기사에 사용된 구체적인 단어와 표현은 제가 인터뷰에서 사용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비슷하지만 단어는 제가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방현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