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켜는 그리스도인들] 왕십리 철거현장 세입자들과 함께 드린 예배
왕십리가 제2의 용산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의 여덟 번째 목요일 현장예배는 4월16일 오후7:30,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2번 출구에서 청계천방향으로 300미터, 양지사거리에 있는 왕십리뉴타운 철거지역 세입자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진행되었다. 같은 날 열린 교계 행사들로 기독교인들이 별로 많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세입자대책위에서 많이 오셔 60여명이 넘게 모여 예배가 진행되었다.

시대의 증언을 위해 앞에 나온 이은정 님(왕십리뉴타운 1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 시대는 노예제도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말도 안 되는 제도라고 여기는 시대이다. 이처럼 땅과 아파트 때문에 죽어가는 상황을 비웃으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주거실현을위한국민연합 조직국장인 이원호 님은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합의금 더 받으려는 욕심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회보고내용을 보면 이 땅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소유한 이가 혼자 1803채를 가졌다고 하고 평균적으로 부자 한 명당 155채를 가졌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왕십리 거주민의 85%가 세입자이다. 그것은 왕십리가 가장 저렴한 가격대에 전세가격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4천만 원 미만의 전세지역이다. 그러나 뉴타운 건설이 발표되면서 4천만 원 이하의 전세는 없어졌다. 과연 누구의 배를 불리기 위한 개발인가. 우리는 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용산사태 이후에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다’고 힘주어 외쳤다.

세 번째 시대의 증언(말씀선포)은 최헌국 목사(평화교회)가 전했다. 최 목사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증언을 시작하였다. 이어 ‘용산참사 직전 현장에 있었는데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귀가하였는데 아침에 뉴스속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 목사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별로 큰 성과는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용산의 외침은 왕십리로 이어졌고 이제 여기서 예배를 드린다. 현재 서울시 550개소에서 용산과 같은 개발이 강행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주셨다. 이를 평등지권(레위기 25:23)이라 한다. 보상은 철거민의 생존을 위한 것인데 개발자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이를 거부하다보니 용산과 같은 참사가 생긴 것이다. 용산지구에서 삼성이 얻는 이익은 1조 3천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에서 4천억 원만 내놓아도 용산참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용산 상권을 만든 것은 세입자인 자영업자들인데 단지 2천5백만 원의 영업손실금만 주고 내쫓았다.

하나님은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사야 5:8은 지주들에 대한 저주이다. 왕십리는 서울에서 가장 세입자가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 85%는 외면하고 15%밖에 안 되는 지주들, 그나마도 부재지주들이 많은데 이들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려는 성동구청도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세입자 생존권 보장의 법도 무시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 뉴타운 재입주율은 20%를 밑돌고 있으니 이는 분명히 잘못된 정책이다.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개발이 되어야 한다. 용역깡패들의 협박은 세입자들을 더욱 힘겹게 한다. 깡패들이 주민을 폭행하고 경찰은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모른 체 하는 일이 왕십리에서 일어났다.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중재를 포기한 이명박은 철거민들의 요구도 묵살하였다.

왕십리가 제2의 용산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 용산과 왕십리 세입자들이 바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이고 우리가 가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 강도만난 사람들이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이 아니라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는 모습이 되고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사야 10:24은 약탈자들에 대한 저주이다. 이 땅의 약탈자들은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다. 교회는 양다리를 걸칠 수 없다.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주거권은 생존을 위한 하나님의 평등지권이 실현되어야 한다. 잘못된 개발정책이 포기될 수 잇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할 것이다’라고 설교하였다.

예배 후 왕십리 철거현장에서 청계천에 이르는 짧은 구간을 손에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혹은 복음성가,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그리고 다시 처음 기도회를 하였던 장소로 행진하면서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는 성가를 부르고 ‘철거민 대책 외면하는 성동구청장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순간 내 입가에 피식 하고 웃음이 샜다.

이 모습이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중고등학생 시절 성탄절 새벽에 집집마다 돌면서 크리스마스캐롤을 부르던 새벽송이 떠올랐다. 비록 하얀 눈도 없고 기타반주도 없고 환하게 웃으며 애써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캐롤을 부르던 앳된 얼굴들도 없었지만 그것은 내 느낌에는 성탄절 새벽송과 똑같았다. 오히려 지금의 이 행진이 더욱 성탄절 새벽송에 가깝다고까지 느꼈다.

전설에 의하면 아기 예수는 편히 누일 곳이 없어 여관의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었다고 전해진다. 그 전설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억울하게 쫓겨나고 갇힌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의 구원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연 진정한 성탄은 어디에서 구현될까?

잘 차려입은 꼬마들과 학생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그 새벽송일까, 아니면 성탄절과 아무 상관도 없는 날이지만 이제 거주할 곳을 잃고 등 떠밀려 수십 년 삶의 터전으로 일구었던 왕십리지역에서 쫓겨나게 된 이들 세입자대책위원회 사람들이 모인 이 자리일까? 성탄절 새벽송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참된 성탄의 의미를 묻는다면 정답은 이미 명백하리라 본다.  

촛불현장예배를 마치고 청계천까지의 행진이 끝난 후에는 촛불 켜는 그리스도인들이 준비한 떡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전투적인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소시민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왕십리뉴타운 지역 세입자들에게 가장 낮은 땅으로 오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시기를 기도해 본다.

4월 23일에 열리는 아홉 번째 촛불현장예배는 [언론탄압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 ‘예’ 라고 할 때와 ‘아니오’라고 할 때]라는 주제로 여의도 MBC방송국 앞에서 열린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염원하는 이들의 동참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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