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첫 주일, 아마도 2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은 내가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하게 된 날이다. 전임자와 이취임예배를 드리기 위해 장차 담임하게 될 신성교회(교회 명칭은 2006년에 좋은만남교회로 변경)에 처음으로 찾아간 날이다. 비로소 담임자로써 목회라는 것을 시작하는 날이었지만 이날의 설교와 예배 인도는 전임자가 맡아서 하였다. 일종의 업무 인수인계와 같은 일을 한 날이다.

은혜롭게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예배를 마치고 공동식사도 맛있게 하였다.
식사 후에 그날의 헌금 수입을 계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전임자가 맡아서 하였다. 그런데 계수가 다 끝난 후에 전임자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전임자가 하는 말이 그날 그날 수입을 계수하고 지출한 것들을 제한 후에 남은 것은 그냥 가져다가 사례비로 쓰면 된다고 하였다. 일종의 일당 같은 개념이었나보다.

얼핏 보기에도 봉투가 무척 얇아보였다. 그날은 첫주일로 예배당 월세도 나가고 각종 공과금도 나가는 날이었다. 나중에 봉투의 내용물을 보니 천 원짜리 지폐 여덟 장, 즉 8천 원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8천 원!

설레는 마음으로 첫 목회지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에 받은 일당(?)이었지만 그 내용물을 본 순간 기가 막혔다. 산술적으로 계산을 해보니 한 주에 8천 원이면 한 달이래야 기껏 돈 10만원이나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이기는 하지만 10만원이라는 돈은 2인 가족이 한 달을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니 일 주일도 살지 못할 금액이었다.

물론 돈을 보고 목회를 시작하였던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7년이나 늦게 시작한 신학공부였고 그렇게 과정을 마치고 정한 목회지였지만 기본적인 생활이 어떻게 보장될까 하는 생각에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그 후에 보니 10만원보다는 많은 액수를 사례비로 받을 수 있었다. 후에 늦었지만 예산을 세우면서 2000년 목회자 사례비를 30만원으로 책정하였다. 그렇지만 10만원이나 30만원이나 여전히 쥐꼬리만한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목회의 절절함을 피부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신학교를 다니고 목회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잘 결단했다는 말보다는 쩝쩝거리면서 고생하게 생겼다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그 실체를 보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구걸하는 목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여기저기 그동안 거쳤던 교회와 출신교회, 인적인 연고가 있는 교회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목회는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는 일이다. 결코 돈이나 물질 때문에 나선 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생계, 아니 최대한 검소하고 포기하는 생활을 전제한,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도 채우지 못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례비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초년목회자 혹은 미자립교회 목회자는 월 3-60만원의 사례비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저기서 선교비를 지원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합쳐봐야 100만원을 넘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더 어떻게 살아지는 것을 보면 분명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목회자 가정에 자녀가 생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기가 고생하는 것이야 그렇다치지만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지 못해 중대형교회의 부목사로 이임하게 된다. 대부분 담임목회를 한 지 짧으면 3년 길어봐야 6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렇게 작은 교회에 3-6년의 사이클로 악순환을 계속한다.

어느 누구나 거쳐가는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목회자들이 경험했던 터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지방회에서 서리 목회자를 받을 때 생활비를 지원할 교회의 보증을 받는다거나 일체 지방의 지원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젊은 목회자, 초년 목회자가 환영을 받을 리는 만무하고 오히려 골칫덩이가 된다. 개척이라도 할라치면 더욱 심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떨 수 없는 선택인줄은 알지만 치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었다. 미국교회처럼 기본생계비를 본부차원에서 지원하자는 것이다. 최저생계비를 일정부분 본부에서 지원하고 기타 필요한 부분은 목회자가 목회활동을 열심히 하여 충당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한국교회 일반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많은 선배 목회자들은 젊은 목회자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생 좀 해봐야 하고 초년 목회시절에 이런 물질적 결핍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 그들이 그랬었던 것처럼 물질적 결핍이 더욱 목회에 전념하게 만든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저생계비를 지원하자는 안건은 노년층에게 거부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먹고 살만하면 목회는 제대로 안 하고 다른 데만 신경 쓴다는 말이다. 반대의견이 갖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젊은 목회자들이 골칫덩이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하려면 오히려 다른 상황 때문에 골치를 썩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생활비로 사용한 비용 때문에 카드값을 걱정한다면 어떻게 목회가 되겠는가! 불행하게도 이제는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한국교회를 위해 마땅히 환영받아야 하는, 힘든 목회의 길에 나선 젊은이들이 그렇지 못하고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현실이 주는 자괴감과 절망감이다. 앞으로 20여 년 뒤의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소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몇몇 교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지방 소도시 혹은 산골의 교회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몇몇 교파는 최저생계비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미 시행중인 교파의 경험과 데이터를 수집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방법을 찾아 적용하려는 시도가 미래의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첫 목회지에서 8천 원 사례비 봉투를 처음 받아들고 결심한 것이 있다.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가 투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 명이나 나오는 그 작은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사례비를 챙기면 얼마나 챙기겠는가? 설령 100만원을 챙긴다 해도 생활에 넉넉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얼마 안 되는 푼돈이라도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을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헌금은 성도들이 교회운영을 위해 바친 헌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로 교회의 예산을 세웠고 그 내용을 공개했다. 처음 몇 달은 수입과 지출 내역을 매주 주보에 실었다. 매주 하는 것이 번거로워 한 달에 한 번씩 그 달의 재정내역을 주보에 실었다. 재정내역을 주보에 싣는 것이 외부로 유출될 때 별로 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따로 출력을 하여 예배당 한 쪽에 게시하였다.

교인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지만 새로운 재정내역이 게시될 때마다 보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싶다. 원래 셈이 빠르지 않은 나이지만 내가 보기에도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일 년 결산이 이천 만원도 안 되는 작은 교회에서 수입지출이야 뻔한 일일 테지만 성도들이 교회의 재정상태와 운영 내용을 알게 되니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게만 막 쓰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가지고 썼다는 것이 밝혀지니 자발적으로 헌금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사례비가 40만원이 되고 60만원이 되었다. 지금은 100만원을 사례비와 목회비로 받으며 공과금도 지원 받고 있다. 아쉬운 것은 요즘은 재정내역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겨서인지 어쩌다 게시를 해도 거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만간에 매달 하는 것이 어렵다면 분기별로는 한 번씩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중대형교회건 미자립교회건 재정이 투명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가끔 일반 언론에서 보도되는 목회자들의 비리는 대부분 재정문제와 관련이 있다. 일반 언론에서 보도되지는 않지만 목회하면서 더 많이 자주 접하게 목회자 사회의 비리들 역시 금전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

목사가 어용 장로를 재정부장으로 세워 놓고 자기 마음대로 지출을 허가하였다느니 교회 재산을 몰래 빼돌려 횡령했다느니 예산 상에 책정되지 않은 용도로 사용했다느니 하는 일은 이젠 놀라운 일도 아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만큼 돈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목회자까지도 쉽게 넘어뜨리는 큰 유혹이다.

교계 인터넷 언론사이트를 운영하시는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취재를 위해 목회자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 있는데 취재가 끝나면 봉투를 꺼내 놓는 일이 다반사란다.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소위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 놓으신 이 목사님은 매번 그 봉투를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꼭 ‘다시 재정에 환원시켜 달라’고 요청하신단다.

어차피 지출 처리가 된 비용이 다시 재정으로 환원되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며 봉투를 내민 사람과 봉투를 고사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눈 먼’ 돈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삼재사 꼭 환원시켜달라고 요청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 이야기 하시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신다. 이렇게까지 목회자들을 의심해야 할까 하는 답답한 마음도 들지만 금전적 유혹 앞에서 장사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은 교회에서는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빼돌리기는커녕 교회 행사하기에도 빠듯한 재정상태인데 뭐가 문제될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재정내역을 공개하는 것 같은 오히려 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 스스로도 정직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고 작은 규모이지만 그 실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그 교회의 주인이고 주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큰 교회인 교회는 없다. 작은 교회가 큰 교회로 성장하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흔한 속담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작은 규모일 때부터 철저하게 좋은 습관들을 몸에 배게 할 필요가 있다. 목사는 물론 교인들까지 다 포함해서 말이다.

신령과 경건의 능력이 목회자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상식적인 사고방식과 민주적인 운영방식이 전제되어야만 카리스마를 운운할 수 있다.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으로 행동하는 목회자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왔다. 한국교회가 상식적인 사고방식과 민주적인 운영방식을 통해 거듭나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