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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근의 전통신학의 파산이유와 현대신학의 한계전통신학에서 궁극적으로 다루는 문제는 결국 신론이나 그리스도론이 아닌, 인간 구원론입니다. 인간구원이야말로 그리스도교가 존재하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며 확신시키지 못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은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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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08일 (화) 22:24:15 [조회수 :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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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근의 전통신학의 파산이유와 현대신학의 한계

이 항은 사실 처음 집필시에는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전문적 신학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신앙을 위한 내용을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이 부분을 추가하는 것이 본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보다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인식 교수의 글을 나름대로 정리하였습니다.  

전통신학 파산의 최근 이유

인간에 대한 일정한 규명없이는 신, 자연 등의 현상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여도 의미를 찾기 힘들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의신학은 오늘날 신학적 인간학이어야 한다고까지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통신학에서 궁극적으로 다루는 문제는 결국 신론이나 그리스도론이 아닌, 인간 구원론입니다. 인간구원이야말로 그리스도교가 존재하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며 확신시키지 못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간구원의 대 드라마를 이루기 위해 교의신학은 신론으로부터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구도를 수립해왔습니다. 그 결과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무엇보다도 발달된 것은 인귄이요, 이를 위한 자유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문제로 넓게 드러나게 된 것은 그 모든 것이 ‘개인’의 권리요, 자유요, 구원이라는 점입니다. 인간과 그의 구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학은 휴머니즘에 근거한 ‘개인주의’라는 서구정신의 일반적 사조를 자연스럽게 수용하였습니다. 개개의 인간을 존중한다는 개인주의 정신은 전통신학의 전 분야에 걸쳐 깊숙히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신, 계시, 은혜, 구원 등의 모든 개념은 개인을 위한 신학적 주제로 특징지워집니다.

이와같은 인간중심의 전통신학은 휴머니즘으로부터 개인주의, 더 나아가 개인주으로부터 이기주의로 퇴락한 세속정신에 대항할 수 있는 지반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문명권이 타문화권보다 더 심각한 에고이즘에 의해 지배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신학이 학문의 여왕이라 자부해 왔지만,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은 마치 암펄이 가져다 주는 먹이만을 받아 먹고 알을 낳지 못하는 여왕벌과 같은 위치로 퇴화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세속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마저도 신학은 가면 갈수록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황신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안이 나타나 관심을 모으기도 하지만, 신학은 점점 더 고립되면서 일반의 삶을 결정해주는 대답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신학의 현 좌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정신사의 발전과 무관하게 자체내 교의의 미분화 작업에만 몰두해오던 그리스도교의 미시적 신학자세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간이기의 극대화 결과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환경파괴현상입니다. 현대에 와서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이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에서 환경중심으로의 패러담임의 전이는 지나온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반성의 필연적 귀결로서, 인간은 환경을 보존하고 관리하기보다는 무한정한 이기심을 가지고 착취해 왔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그 자신 역시 자연 생태계의 지극히 적은 한 일원임을 망각하고 뛰어난 이성을 활용하여 자연을 노예화 했었지만, 자연의 ‘신음’소리를 늦게나마 들으면서, 또한 자연이 병들어 그 기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그로부터 생명의 힘들을 공급받는 일이 힘들어지게 된 위기의 때를 맞이했음을 자각한 결과, 파괴되고 있는 가정의 공동체성과 자연의 생명을 회복하고 살리는 환경중심의 신학을 요청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나 우주나 세계를 단편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 연관성속에서 보아야 함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신학의 주제를 자체의 내적 원리에서만 고찰하지 않고 생명계의 총체적 현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주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살피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요청으로 환경신학이 대두 되었습니다. 환경신학은 환경으로서 대물환경과 대인환경을 말합니다. 환경중심의 신학은 독립적인 자아로서의 인간개인의 구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대인환경과 대물환경 곧 ‘공동체’와 ‘자연’과의 관계속에 있는 개인에 관심을 갖는 것이요, 개인을 담고 있는 공동체와 자연을 살리는 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중심 신학은 대인환경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착상을 구체화하는 공동체신학을 지향합니다. 또한 환경중심의 신학은 대물환경의 자연회복을 위한 착상을 구체화하는 자연의 신학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이같이 생명체계의 총체적 현상을 통찰할 수 있는 틀이 마련하더라도 전통신학의 주제를 생명의 전체성과 연관시켜 그 주제의 가치와 의의를 설명하는 과제가 최종족으로 남습니다. 거시신학의 형성을 위해서는 우선 생명계의 총체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거시신학의 성격은 어떠한 세계관에 의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신학의 한계와 신학적 요청

인류는 역사이래로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을 겪어 왔으며 생태계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위험수위에 이를 정도로 파괴되어 인간의 생존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갖가지 형태의 종교적 분쟁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함으로 인명을 살상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이 되자 종교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종교로 인한 불행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인해 공동체 존재가 위협을 받으며, 생태계 환경이 파괴됨으로 인간존재의 생존이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치명적 문제에 대하여 해결을 위한 대안이 요청됩니다.

현대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신학적 대안으로 도출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신학의 주제는 공동체와 생태계 문제를 주로 다룹니다. 인류공동체의 평화보장과 자연생태계 보전이 중요 논제들입니다. 이 주제는 보편적 신의 존재와 그 존재는 우주의식이라는 이해로 우주의식과의 일체로서의 인간들의 일체를, 우주의 부분으로서의 우주와의 일체를 그들의 주장 논거로 삼습니다. 이는 전체 및 총체성에 대한 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신학이 우주적 신인식을 지향하게 된 이유는 전통신학이 신학의 주제를 모두 분해하여 원자화시켜 버린 것에 대한 극복입니다. 전통신학에서 하나 하나는 엄청난데 그 하나 하나를 합쳐 놓으면 일관성과 통일성과 전체성이 없는 괴물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낱개는 자신의 존재위치 및 의미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 자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몰랐습니다. 그저 그 자체일 뿐이었습니다. 자신만 좋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중심, 개인중심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환경파괴가 치명적인 수위에 다다른 것입니다.이같은 위험사태를 구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신학이 요청된 것입니다.

 

현대신학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중심 신학으로의 전이현상입니다.다원화된 세계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가능케하려면 보편적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데 그리스도교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주장하면 대화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신학의 주제에서 그리스도를 제거하려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제 종교들이 추구하는 신체험의 궁극자를 동일한 신으로 보고 모두가 한 진리, 같은 신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면서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인 신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는 것입니다. 신이야말로 현대의 모든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실재요 정신적 기준이기 때문에, 종교다원적 현상황에서 신 중심의 신학을 전개해나가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결과로 근자의 신 중심 신학의 시도는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생애의 역사적 사실들을 부인하면서 우주적 신인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론에서 핵심적인 교리들, 예를들면 동정녀 탄생, 예수의 부활등이 여지없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공동체 유지와 자연생태계의 보전, 그리고 인류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시대적 필연성입니다. 하지만 현대신학의 사상적 바탕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검토하여 보아야 합니다. 신학이 신 중심으로 논의될 때, 전통적인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에 전반적인 수정과 변화가 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유일성이 신 중심적인 신학논의에서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느냐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신학은 신 이해도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신의 자기 계시로서의 성육신 사건과 신의 본성인 사랑과 공의의 계시사건으로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없이는 성서적 하느님 인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 가능한 신 이해와 예수 사건안에만 유일하게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는 신약의 하느님 이해의 간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신중심 전환의 신학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카톨릭교회의 교회중심 신학으로부터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향했을 때, 전통적 교회론을 부인하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론의 본질을 규명하며 굳게 세우려 했던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현대신학이 신중심 모델의 신학으로 전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것은 전통적 그리스도론 중심의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가 되어야지, 그것을 전복하려는 반 신학적 입장이 될 때 신 중심 신학의 착상은 근거를 잃게 됩니다.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알리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선교적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 유일성을 약화시킴 없이 성령의 진리사역과 하나님의 창조, 보존,섭리의 사역과의 만남 또한 강조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다양하고 보다 포괄적인 계시활동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신 중심 신학으로 전향하고 있는 현대신학에게 부여된 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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